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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바람과 먼지의 세상, 그 길 위에 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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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년퇴임, 떠나는 이들의 뒷모습을 생각한다 이 땅에서 평교사로 살아가기 3월 인사발령에서 평교사에서 교감으로 승진 발령을 받은 이들이 얼마나 되는지는 모르겠다. 거기 아무런 관심이 없는 탓이다. 누가 교감이 되었건, 누가 교장이 되건 그건 나와는 무관한 일이다. 유유상종(類類相從)이라고 주변의 동료들도 비슷한 이들로 넘치니 그런 쪽의 뉴스엔 캄캄하기만 하다. 교직에 들어온 지 햇수로는 25년째다. 통상의 경우라면 승진이 남의 얘기가 아닐 터이다. 그러나 설사 거기 뜻을 둔다고 해도 까먹은 세월 덕분에 후배들보다 호봉이 낮은 터라 언감생심이다. 무엇보다도 우리는 승진과는 무관한 삶을 살아온 것이다. 몇 해 전이다. 부산에서 처가 행사가 있어 갔더니 처사촌 몇이 나를 보더니 반색하고 묻는다. 자형, 이제 교감 될 때 된 것 아닌가요? 어이가 없어서 .. 2022. 3. 18.
도서관의 일본인 빗돌 내력과 송덕비 미스터리 [도서관의 문화재 ③] 구미시립 인동도서관의 빗돌들 인동도서관은 2000년에 문을 연, 구미의 두 번째 시립도서관이다. 인동은 원래 칠곡군 인동면이었으나, 1978년 시 승격 때 구미로 편입된 지역이다. 구미 원 시가지에서 낙동강 건너에 있는 인동은 인구도 10만이 넘어 독자적인 생활권이어서 도서관 규모도 중앙도서관에 이어 두 번째다. 도서관 뜰에 모아놓은 빗돌 11개 인동도서관 뜰에는 산업화 과정에서 제자리를 지키지 못하고 사라질 위기에 처한 역대 현감과 부사의 선정비, 불망비, 거사비(去思碑) 등의 비석을 옮겨와 한자리에 모아 놓았다. 인동 현감 이보와 인동 부사 김응해·원세정·이희원·정소·정홍채, 경상도 관찰사 홍훈 등 이른바 ‘방백(方伯 : 조선시대의 지방 장관)을 기린 송덕비가 7개, 지역 유지.. 2022. 3. 17.
동요 ‘꽃밭에서’, ‘과꽃’의 작곡가 권길상 선생 타계 동요 작곡가 권길상(1927~2015) 선생 별세 어젯밤, 텔레비전 뉴스에서 동요 ‘꽃밭에서’를 만든 동요 작곡가 권길상(1927~2015) 선생이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러나 정작 고인에 대해 아는 게 없으니 그 부음은 뒷전이고 해맑은 아이들 목소리로 들려주는 ‘꽃밭에서’가 귀에 쟁쟁했다. 대중의 사랑을 받는 노래라도 그걸 만든 작사자나 작곡가까지 기려지는 경우는 드문 듯하다. 모두 아주 어린 시절에 무심히 배우게 되는 동요의 경우는 더더욱 그렇다. 그나마 가사를 쓴 이는 시인으로 기억되곤 하지만 작곡가가 누군지 궁금해하는 이는 잘 없는 것이다. 노래는 늙지 않아도 만든 이는 떠난다 권길상은 서울 출신으로 서울대학교 예술대학 음악부 1회 졸업생으로 서울에서 ‘봉선화 동요회’를 만들어 활동한 .. 2022. 3. 17.
백철, 친일 부역하고도 한국 문학비평의 대들보 나는 이번 사변에 의하여 북경, 상해, 남경, 서주, 한구 등이 연차 함락되는 보도와 접하고 또는 실사 등을 통하여 지나의 모든 봉건적 성문이 함락되는 광경을 눈앞에 볼 때에 우리들의 시야가 훤하게 뚫려지는 이상한 흥분이 내 일신을 전율케 하는 순간이 있다……. 기왕 허물어질 성문이면 하루라도 속히 허물어져 버리는 것이 역사적으론 진보하는 의미다. - 「시대적 우연의 수리-사실에 대한 정신의 태도」, 《조선일보》(1938년 12월 2~7일 자) 이 글은 문학평론가 백철(白鐵·白矢世哲, 1908~1985)이 1938년에 《조선일보》에 연재한 그의 친일 성향이 드러나는 첫 평론이다. 글에서 말하는 ‘사변’은 중일전쟁, 노구교(盧溝橋) 사건으로, 두 나라 간에 전면전이 시작된 이래 당시 일본군은 파죽지세로 베.. 2022. 3. 16.
선산, 한 고을이 사육신과 생육신을 함께 낳았다 [도서관의 문화재 ②] 구미시립 중앙도서관의 이맹전 유허비 도서관에 가면 ‘문화재’가 있다고 하면 어리둥절해할지 모르겠다. 그러나 경북 구미에 있는 시립도서관 여섯 군데 중 세 곳이 그렇다. 원래 다른 데 있던 빗돌인데, 도시개발로 제 자리를 잃고 옮겨온 것들이다. 지자체마다 이들을 따로 모아 관리하는데, 박물관이 없는 도시라, 도서관 뜰에 이들을 다시 세운 것으로 보인다. 이들 오래된 빗돌이 전하는 서사를 따라가 본다. 1994년, ‘시립도서관’이라는 이름으로 문을 연 구미시립 중앙도서관은 구미에서 두 번째로 문을 연 도서관이었다. 첫 도서관은 1986년에 개관한 경상북도립 구미도서관(지금은 경상북도교육청 구미도서관)이었다. 구미공단의 발전에 힘입어 구미가 시로 승격한 게 1978년이었으니 첫 시립도서.. 2022. 3. 15.
그래도 봄…, 3월의 학교 풍경 2008학년도의 시작 그래도 봄이다. 어느 날부터 복도와 게시판에 하나둘 동아리 회원 모집 포스터가 붙기 시작한 것이다. 1년 365일, 책에다 코를 박고 사는 아이들인데도 학년 초에는 1학년 새내기를 회원으로 모셔오느라(?) 용을 쓴다. 학교에서 공식적으로 허용하는 동아리 소개 시간이 따로 있지만, 복도에다 포스터를 붙이고 아는 친구를 통해서 좋은 회원을 많이 확보하기 위한 경쟁은 뜨겁기만 하다. 자세한 내용 없이 동아리 이름을 전면에 내세운 동아리는 어차피 동아리 소개 시간에 자세한 걸 다룰 터이니 새내기들에게 이름으로 어필해 보자는 전략을 선택한 듯하다. 좋은 후배를 모시기 위한 각 동아리의 광고 문안(카피)도 현란하다. 이웃의 남자 고등학교들과의 연합활동을 강조하면서 이성에 목말라하는 여학생들의 .. 2022. 3. 14.
최재서, ‘천황에게 봉사하는 문학’ 완성 영국 유학까지 다녀온 엘리트 비평가 최재서 『친일인명사전』에 오른 친일 문인 가운데 상당수는 낯설다. 까닭이야 사람에 따라 조금씩 다르지만, 크게 보면 이들이 대중에게 알려진 문학 작품이 거의 없는 문인이거나 비평 중심의 문학 활동을 한 평론가(비평가)들이기 때문이다. 일제 강점기 평론가 최재서(崔載瑞·石田耕造, 1908~1964)는, 백철(1908~1985)과 곽종원(1915~2001), 조연현(1920~1981) 등과 마찬가지로 비평 활동에 주력한 까닭에 일반 독자에게 거의 알려지지 않은 문인이다. 덕분에 화려한 친일 행적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일반 독자들의 관심에서 비켜 있었다. 그러나 1970년대를 전후하여 중고등학교에 다닌 이라면 국어 시간에 이 평론가들이 쓴 글을 적어도 한 편씩은 배웠을 터이다.. 2022. 3. 12.
야은 길재, 삼은 가운데 우뚝한 ‘절의의 상징’ [선산 톺아보기 ⑨] 야은 길재를 기리는, 오태동의 지주중류비(砥柱中流碑) 야은 길재(1353~1419)를 기리는 빗돌 ‘지주중류비(砥柱中流碑)’는 오태동, 남구미 나들목 근처에 있다. 경북 유형문화재로 지정된 이 빗돌은 1587년(선조 20)에 인동 현감으로 있던 겸암(謙唵) 류운룡(1539~1601)이 길재의 묘역을 정비한 뒤 주변에 사당과 오산서원(吳山書院)을 창건하고 그 앞에 세운 비석이다. 인동현감으로 있던 류운룡이 세운 낙동강 강변의 지주중류비 1585년에 인동 현감으로 부임한 류운룡은 3년 차인 1587년(선조 20)에 길재의 높은 충절을 기리기 위한 역사(役事)를 벌였는데 이 빗돌은 그것을 매조지는 일이었다. 지금은 터만 남은 오산서원은 1609년(광해군 1)에 사액 되었으나, 대원군의 서.. 2022. 3. 11.
그 도서관에 의로운 ‘소와 사람’의 빗돌이 함께 있다 [도서관의 문화재 ①] 구미시립 봉곡도서관의 의우총과 정려각, 구황불망비 도서관에 가면 ‘문화재’가 있다고 하면 어리둥절해할지 모르겠다. 그러나 경북 구미에 있는 시립도서관 여섯 군데 중 세 곳이 그렇다. 원래 다른 데 있던 빗돌인데, 도시개발로 제 자리를 잃고 옮겨온 것들이다. 지자체마다 이들을 따로 모아 관리하는데, 박물관이 없는 도시라, 도서관 뜰에 이들을 다시 세운 것으로 보인다. 이들 오래된 빗돌이 전하는 서사를 따라가 본다. 지난 2007년에 문을 연, 우리 동네의 구미시립 봉곡도서관 구내에는 돌비가 셋이나 서 있다. 두 기는 고종 연간에 흉년으로 굶주린 이웃을 위해 곳간을 열어 이들을 구제한 이를 기린 빗돌이고, 나머지 하나는 ‘의로운 소의 무덤’, 곧 ‘의우총(義牛塚)’ 비석이다. 개의 경.. 2022. 3. 11.
2022, 대구·경북 대선, 변한 것과 변하지 않은 것 2022년 제20대 대선, 대구와 경북 상황 제20대 대통령선거가 끝났다. 방송 3사 출구조사에서 드러난 대로 선거는 국민의 힘 윤석열 후보의 승리로 마감되었다. 밤새 피 말리는 개표 상황을 지켜보느라 밤을 홀딱 새운 이들은 얼마나 될까. 어떤 사람은 환호했을 터이고, 또 어떤 사람은 열패감으로 몸을 떨었을지도 모른다. 이 선거를 두고 이런저런 규정과 정의가 줄을 잇겠지만, 이 선거가 어쨌든 ‘정권교체’를 바라는 유권자들의 승리라는 사실은 분명하다. 또 사상 최소의 표 차이로 승패가 엇갈린 이 선거가 ‘혐오와 배제’를 기반으로 한 나쁜 선거 전략을 선택한 정당이 이겼다는 사실도 부정할 수 없다. 나는 현 정부의 실정에도 불구하고 만만치 않은 후보 역량이 주권자들의 지지를 받는다면 민주당이 정권을 재창출할.. 2022. 3. 10.
동네 도서관에 등록하다 동네 도서관에 등록해 대출증을 만들다 퇴직하겠다고 하면 주변 사람들이 보여주는 반응은 대체로 비슷했다. 물론 그 반응은 순전히 지인에 대한 염려와 선의의 표현이다. 거기엔 정년이 남았는데 굳이 서둘러 나갈 이유가 있는가, 나가서 후회하지 않을 자신이 있느냐는 걱정이 은근히 담겨 있다. “무슨 일을 할 건데?” “무슨 다른 계획이 있는가?” “엔간하면 정년까지 가지, 왜 나가려는가?” 내 대답도 정해져 있다. 충분히 있음 직한 질문이고 그게 염려에서 나온 거라는 걸 알면서도 은근히 서운한 느낌이 있다. 나는 속으론 부아를 낸다. 아이들하고 씨름하면서 50분 수업을 하루에 네댓 시간씩 하는 게 얼마만 한 중노동인지 알기나 해? “할 일은 쌨어. 돈이 모자라는 게 문제지, 노는 건 석 달 열흘도 쉬지 않고 놀.. 2022. 3. 9.
베란다의 고추 농사 베란다의 고추 농사(1) 함부로 ‘농사’라고 말하는 것도 이 땅의 농부들에게 저지르는 결례라는 걸 안다. 그러나 마땅히 달리 붙일 말이 없어 마치 도둑질하듯 감히 농사라고 쓰니 뒤통수가 근질근질하다. 난생처음으로 소출을 겨냥하고 땅에다 심은 게 고추였다. 잡풀들의 끈질긴 공세에도 불구하고 녀석들은 비록 굵지는 않았지만, 소담스럽게 열매를 달고 햇볕에 빨갛게 익어, 얼치기 농사꾼을 감격게 했던 게 몇 해 전이다. 이후, 어디서건 고추밭을 바라보는 내 눈빛은 예사롭지 않게 되었다. 잘 걸운 밭에 익어가고 있는, 거의 검푸른 빛깔의 무성한 고추 이파리와 길쭉길쭉 실하게 자라고 있는 고추를 바라보면서 스스로 행복에 겨워하고, 그걸 ‘사랑스럽다’라고 여기는, 농부의 어진 마음의 밑자락이나마 이해할 수 있게 된 것.. 2022. 3. 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