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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요 ‘꽃밭에서’, ‘과꽃’의 작곡가 권길상 선생 타계

by 낮달2018 2022. 3.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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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요 작곡가 권길상(1927~2015) 선생 별세

▲간선도로변에 핀 나팔꽃. 2009년 안동.

어젯밤, 텔레비전 뉴스에서 동요 ‘꽃밭에서’를 만든 동요 작곡가 권길상(1927~2015) 선생이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러나 정작 고인에 대해 아는 게 없으니 그 부음은 뒷전이고 해맑은 아이들 목소리로 들려주는 ‘꽃밭에서’가 귀에 쟁쟁했다.

 

대중의 사랑을 받는 노래라도 그걸 만든 작사자나 작곡가까지 기려지는 경우는 드문 듯하다. 모두 아주 어린 시절에 무심히 배우게 되는 동요의 경우는 더더욱 그렇다. 그나마 가사를 쓴 이는 시인으로 기억되곤 하지만 작곡가가 누군지 궁금해하는 이는 잘 없는 것이다.

 

노래는 늙지 않아도 만든 이는 떠난다

 

권길상은 서울 출신으로 서울대학교 예술대학 음악부 1회 졸업생으로 서울에서 ‘봉선화 동요회’를 만들어 활동한 이다. 1948년 서울 무학여중고를 시작으로 이화여자중고, 서울예고 등에서 10년 넘게 음악을 가르쳤고, 미국 이민 후에도 가르치는 일은 계속했다고 한다.

 

그는 ‘꽃밭에서’ 외에도 ‘과꽃’, ‘모래성’, ‘푸르다’ 등의 동요와 스승의 날 노래인 ‘스승의 은혜’와 가곡 ‘그리움’을 만들었다. 그리고 그는 한국아동음악상, 31회 소파상, KBS동요대상, 대한민국 동요대상을 수상했으니 아동 음악계에서는 내로라하는 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는 그의 부음을 통해 그의 이름과 만난다. 그게 어쩌면 동요 작곡가가 감수해야 할 운명이라면 운명이다. 동요가 세상에 나와 어리고 해맑은 아이들의 목소리로 늙지 않는 대신 그걸 만든 이들, 작사자와 작곡자는 늙어가고 마침내 세상을 떠나는 것이다.

그와 짝을 이루어 ‘꽃밭에서’와 ‘과꽃’을 만든 아동문학가 어효선(1925~2004)은 이미 11년 전에 세상을 떠났다. 작사자와 작곡자가 유명을 달리해도 노래는 남는다. 특히 동요는 늙지 않는 노래다. 어른들이 불러도 ‘어린이노래’인 것이다. 권길상의 부음을 듣고 사람들은 노래를 만든 사람들의 노고를 생각해 보았을까.

 

일찍이 나는 나팔꽃 이야기를 하면서 ‘꽃밭에서’ 이야기를 했다. [관련 글 : 나팔꽃과 동요 꽃밭에서] 초등학교 때 음악책에서 배우는 동요는 7·5조 3음보 율격을 가진 노래가 태반이고 ‘학교 종’에서부터 ‘반달’까지 이 7·5조의 율격은 마치 관습처럼 되풀이된다고 말이다.

 

과꽃, 누나 때문에 슬픈 꽃

 

요즘이야 어디서나 볼 수 있는 풍경이지만, 정작 그 시절엔 노랫말에서 이르는 부녀(부자)간 관계를 찾는 게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노래 속에 그려지는 부녀(부자)간 관계를 이상적인 가정의 모습으로 그리면서 자랐던 게 아닌가 싶다.

▲ 과꽃 ⓒ BRICS

‘과꽃’도 귀와 눈에 익은 노래다. 내 기억 속의 그 노래는 뭔가 누나의 애틋한 사연이 물들어 있는 그런 노래였다.

 

유난히 누나가 좋아했던 꽃, 그 누나는 시집간 지 온 삼 년이 지나도 소식이 없다. 그래서일까, 나는 그 노래가 쓸쓸한 애조를 띤 것으로 기억한다. 그러나 어제 다음 뮤직에서 받은 노래는 전혀 그렇지 않았다.

 

아이들은 명랑한 목소리로 노래한다. 기억 속의 노래보다 그건 훨씬 빠른 노래다. 맑고 청아한 목소리는 그저 노래에 빠져 씩씩하기만 하다. 거기에 어디 시집간 지 삼 년이 다 돼도 소식이 없는 누나에 대한 근심 따위가 개재될 여지가 없다.

 

그렇다. 아이들 노래가 쓸데없는 애조를 띨 일은 없다. 그건 노래를 부르면서 삶과 그 회한의 세월을 되돌아보기 일쑤인 어른들의 몫일 뿐이다. 아이들의 청아한 목소리로 동요 ‘과꽃’을 들으면서 그 노래를 만든 시대의 어린 시절 추억을 생각한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

 

 

2015. 3.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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