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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바람과 먼지의 세상, 그 길 위에 서서

이 풍진 세상에 /여행, 그 떠남과 이름의 기록58

‘시간의 복기’와 ‘글쓰기’로 마감되는 여행의 발견 시민기자의 ‘지각 여행·답사기’ 쓰기 여행의 ‘시작과 끝’은 어디에서 어디까지일까. 형식으로 보면 그것은 집을 떠나는 순간에 시작하여 다시 출발지로 돌아옴으로써 끝나는 것이긴 하다. 그러나 어느 날, 여행지 한곳을 마음에 담아두고 가끔 거기로 달려가거나 돌아와 아쉬움으로 그 여정을 되돌아보는 ‘마음의 행로’는 여행의 어디에 해당할까. 낯선 곳으로 집을 떠나고, 돌아와 사진첩에 여정을 갈무리하며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는 ‘여행의 공식’은 십몇 년 전에 에 답사기 몇 편을 싣게 되면서 바뀌기 시작했다. 탐승(探勝)과 휴식을 위한 여행이든, 유적이나 역사 관련 답사든 내게 그것은 돌아온 것만으로는 끝나지 않는다. 내 여행은 적지 않은 시간과 씨름한 끝에 몇 편의 글로 정리되어야만 비로소 마감되기 때문이다. 내 .. 2021. 2. 19.
문명의 철길 위에 펼쳐지는 ‘슬로우’ 바이크 [여행] 강원도 정선 레일바이크 탑승기 철길을 걸어 보았는가. 흔히들 ‘영원한 평행선’이라는 진부한 비유로 기억되는 기찻길을. 19세기의 마지막 해에 태어나 굉음을 지르며 들판을 달려오는 기차를 사람들은 ‘쇠말[철마(鐵馬)]’이라고 불렀다. 여전히 봉건 시대의 질곡을 채 빠져나오지 못한 시기에 그것은 마치 이후 물 밀듯 들어온 낯선 문명의 전초병 같은 것은 아니었을까. 기관차는 증기에서 디젤로, 그리고 전기로 가파르게 발전해 왔지만 변하지 않은 것은 ‘기차가 철로를 따라 달리고 역에서만 선다’라는 점이다. 그래서일까. 기차는 ‘떠남’의 의미를 매우 분명하게 드러내 주는 운송 수단이다. 평행으로 이어져 소실점 저편으로 사라져 가는 철길은 ‘부재’의 의미를 새삼 환기해 주는 것이다. 기차여행이 버스나 승용차.. 2020. 9. 20.
[상트페테르부르크 여행] 이삭, 파리에서의 낮과 밤 앞서 밝혔듯 상트페테르부르크 여행은 비행기를 갈아타야 하지만 아주 싼 항공료에 꽂힌 딸애의 제안으로 이루어졌다. 우리는 파리로 가서 하룻밤을 묵은 뒤에 상트페테르부르크로 들어갔고 나올 때도 역순이었는데, 대신 드골 공항에서 바로 비행기를 갈아탄 점만 달랐다. 환승 때문에 하룻밤을 묵은 파리 7월 24일 오후 2시에 우리는 파리 샤를 드골 공항에 도착했다. 택시를 타고 파리 시내 호텔에 체크인한 게 3시쯤, 잠깐 휴식한 뒤, 우리는 서둘러 시내 관광에 나섰다. 우리 내외는 2016년 4월에 이은 두 번째 방문, 딸애도 파리는 2011년에 이은 7년 만이었는데, 아들 녀석만 초행이었다. 2018년 퇴직 기념으로 아내와 함께 떠난 패키지 유럽 여행에서 파리는 첫 여행지였다. 첫날 밤에 호텔에서 묵은 뒤, 다음.. 2020. 8. 27.
[상트페테르부르크] 그 낯선 도시에서의 5일간 [상트페테르부르크 역사 기행] ⑤ 트롤리 버스와 안내원, 마린스키 극장의 발레 관람, 그리고 미련 여행은 일련의 과정이다. 여행이 단순히 마음에 둔 유적이나 관광지를 둘러보는 것으로 한정되지 않는 까닭이다. 그것은 길을 나서면서부터 돌아올 때까지 여행자가 겪거나 보고 들은 것은 물론이거니와 사소한 부딪힘, 감정의 파문, 인상과 느낌까지를 포괄한다. 상트페테르부르크로 떠나면서 설레지 않았다고 말할 수는 없다. 우리 내외는 물론이고, 아이들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나는 그 설렘이 구체적이지 않았다. 특별한 기대나 마음의 결에 맺힌 곳이 하나도 없었다는 뜻이다. 나이 듦 탓이었을까. 아마 내겐 새로 만나는 어떤 풍경이라도 담담하게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었는지도 모른다. 여행의 과정에서 나는 최초의 사회주의 혁.. 2020. 8. 25.
[상트페테르부르크]왕족 휴양소에서 노동자 휴양소로, 그리고 …페테르고프 여름 별궁 [상트페테르부르크 역사 기행] ④ 표트르 대제와 페테르고프 궁전 다섯째 날의 여정은 상트페테르부르크 도심 서부에 있는 페테르고프 궁전이었다. 흔히 ‘여름 궁전’으로 널리 알려진 이 궁전으로 가는 방법은 육로와 해로 두 가진데, 딸애는 일찌감치 바닷길을 선택해 두었었다. 운임이 싼 대신 이동 시간이 긴 육로보다 비싸지만, 시간이 덜 드는 여객선을 고른 것이다. 표트르의 궁전 페테르고프, 황제의 여름 별궁 숙소에서 우버 택시로 이사크 성당 근처의 선착장으로 가서 우리는 배 시간을 기다리는 동안 네바 강변을 산책했다. 선착장에선 스웨덴의 공격을 방어하고자 네바강 하중도(河中島) 자야치섬에 건설한 페트로파블롭스크 요새가 건너다보였다. 군데군데 푸른 나무 사이로 요새 안 페트로파블롭스크 성당의 123.2m 종탑과.. 2020. 8. 8.
[상트페테르부르크] 러시아, 누적된 모순은 가공할 폭발력을 감춘 채 19세기로 가고 [상트페테르부르크 역사 기행] ③ 예카테리나 궁전과 여제의 시대 넷째 날 일정은 예카테리나 궁전이었다. 우리는 버스로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남동쪽으로 25km 떨어진 푸시킨의 피서지인 차르스코예 셀로에 있는 예카테리나 궁전에 닿았다. 푸시킨? 그렇다.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로 시작되는 유명한 시를 쓴 러시아의 국민시인 푸시킨(1799~1837)이 한때 머문 이 도시는 1937년에 그의 이름을 따 푸시킨 시가 되었다. 예카테리나 궁전은 푸시킨시에 있다 버스 승객들은 물론 대부분 궁전으로 가는 관광객이었다. 관광객은 우리가 탄 버스만 아니었다. 현지에는 전세 버스로 닿은 중국인 단체 관광객이 떠들썩하게 진을 치고 있었다. 딸애가 입장권을 사는 동안 우리는 거의 한 시간 반쯤 궁전 입구의 정원에서 기다려야 .. 2020. 8. 1.
동해 두타(頭陀)산성 샌들 등정기 바야흐로 이 나라의 여가 문화는 비약적 발전을 거듭하고 있다. 그것은 당연히 의복, 장비 등 관련 산업의 융성으로 이어진다. 어쩌다 아무 준비 없이 면바지 바람으로 인근 산이라도 오른 이들은 마치 경쟁하듯 전문 산악인의 복장과 장비로 중무장(?)한 등산객들의 기세에 기가 질릴 지경이 되었다. ‘히말라야 복장’은 아니라도 ‘샌들’은 곤란 오죽하면 “동네 뒷산 오르는데, 등산복은 ‘히말라야 등반용’”이라는 얘기가 떠돌겠는가. 한 일간지의 보도에 따르면 ‘아웃도어 고급품 풀 장착 시 가격’은 417만 원이다. 이쯤 되면 등산도 부자들이나 즐길 수 있겠다는 생각이 아니 들 수 없다. 짚신에서 고무신, 그리고 이른바 ‘지까다비’를 거쳐온 우리에게 수십만 원짜리 고어텍스 등산화는 호사의 극치다. 지금도 시골 노인들.. 2020. 7. 28.
[상트페테르부르크] 성장통과 혁명의 시대, 그리고 ‘레닌그라드는 함락되지 않았다’ [상트페테르부르크 역사 기행] ② 카잔 성당과 피의 구원 성당, 그리고 레닌그라드 포위전 우리 숙소가 있는 넵스키(‘네바강의 거리’란 뜻)대로는 네바강 강변에 있는 상트페테르부르크의 번화가다. 이곳은 원래 늪지대였는데 1710년에 처음으로 길이 뚫리면서 상트페테르부르크를 대표하는 문화, 상업의 중심지가 되었다. 이 아름다운 거리 주변에 카잔 성당과 성 이사크 성당, 피의 구원 성당뿐 아니라, 호텔, 레스토랑과 카페, 상점들, 음악당 등이 모여 있다. 제정시대의 권력의 상징하는 30층 높이의 성 이사크 성당 성 이사크 성당을 찾은 것은 넷째 날, 페트르고프궁(여름 궁전)을 다녀오던 길이었다. 이 성당은 성경 창세기의 ‘이삭’이 아니라, 달마티아의 ‘이사크’라는 성인의 이름을 딴 러시아 정교회 성당이다. 성.. 2020. 7. 25.
나무와 숲은 결코 ‘거저’가 아니다 우중 여행, ‘천리포수목원’을 다녀와서 지난 7월 16일부터 1박 2일 동안 나는 충남 서산과 태안 일원을 돌고 있었다. 여름방학에 들면서 동료들과 함께한 여행길이었다. 공주를 지나면서부터 내리기 시작한 비는 우리가 만리포를 떠날 때까지 쉬지 않고 내렸다. 우리는 폭우 속에서 예산 수덕사와 해미읍성을 둘러보았고 잠깐 비가 그친 틈을 타 서산 마애 삼존불을 답사했다. 가야산 중턱에서 만나게 된 예의 ‘백제의 미소’는 오래도록 마음에 남아 있다. 삼존불의 아름다운 미소는 마음에 새겨 두기로 한다. 서툰 몇 줄의 글로 그것을 표현하는 것은 가능하지도 않을뿐더러 어리석은 일이라 여기기 때문이다. 만리포 인근의 펜션에서 하룻밤을 묵고 이튿날 우리는 태안군 소원면 의향리의 천리포수목원을 찾았다. 나는 여느 사람들과.. 2020. 7. 25.
이호우·이영도 시인의 생가를 찾아서 지난 일요일, 오래된 벗들과 밀양을 다녀오는 길이었다. 출발이 이른 편이어서 운전대를 잡은 친구에게 가다가 운문사(雲門寺)에 들르자고 청했다. 어쩌다 보니 청도 호거산(虎踞山) 운문사는 내가 가보지 못한 절이다. 위치가 경북 남부에 치우쳐 있어 쉽게 갈 수 있는 곳이 아닌 까닭이다. 청도 쪽 길에 워낙 어두운지라 무심히 창밖만 내다보고 있는데, 어느 한적한 시골 거리에 차가 선다. 대구 인근은 물론이거니와 틈만 나면 온 나라 골골샅샅을 더듬고 있는 친구가 시인 이호우·이영도 남매의 생가라고 알린다. 차에서 내리니 좁고 한적한 길 건너편에 ‘이호우·이영도 시인 생가’라고 쓴 높다란 표지판이 걸려 있다. 대체 여기가 어디지? 나는 갑자기 방향 감각을 잃은 듯한 느낌이었다. 청도읍 내호리 259번지, 1912.. 2020. 7. 23.
[상트페테르부르크]예르미타시, 러시아 제국의 ‘영광’과 혁명의 ‘격랑’ 사이 [상트페테르부르크 역사 기행] ① 예르미타시, ‘피의 일요일’과‘2월·10월 혁명’ 지각 여행기를 쓰는 것은 단순히 시간을 복기하는 데 그치지 않고 기억도 같이 복기하여야 한다. 2년이 흘렀는데, 사진을 펼치니 그때의 느낌과 인상이 고스란히 복원되는 듯했다. 지워진 기억은 동행한 가족과 함께 되살려냈다. 이 지각 여행기를 에 송고했더니, 가급적 3개월 이내(계절이 바뀌기 전, 겨울에 여름 여행 기사는 채택 하지 않음), 해외는 다녀온 지 1년 이내 정도라야 기사로 채택(계절이 바뀌기 전, 겨울에 여름 여행 기사는 채택 하지 않음)한다는 규정 상 싣기 어렵다고 난색을 표해 왔다. 백 번 옳은 말이다. 2년이나 게으름을 피운 결과다. 그래서 이 글을 러시아 근현대사를 돌아보는 역사기행 형식으로 바꾸었다. 실.. 2020. 7. 21.
아이고, 저 소나무는 얼마나 힘들까? 충북 괴산 산막이옛길과 ‘반(反) 자연’ ‘호숫가 숲길’이라면 굳이 여행을 즐기는 이가 아니라도 솔깃한 유혹일 수 있겠다. 거기다가 그 길이 내륙 깊숙한 골짜기의 막다른 마을로 가는 산길이라면 흥미는 자연 배가될 수밖에 없다. 토요일 오후 두 시, 어중간한 시간에 우리 내외가 산막이옛길을 찾아 나선 건 그런 까닭에서였다. 지난 목요일 ‘ESC’에서 소개한 충북 괴산의 ‘산막이마을과 길’ 이야기다. 기사가 전한 ‘숲길 걷기’가 당겼던 것도 있지만 다른 현실적인 이유도 있다. 모처럼 쉬게 된 토요 휴무일을 적당한 여행으로 채우고 싶어서였던 데다가 괴산이 한두 시간에 닿을 수 있는 ‘멀지 않은’ 곳이었던 까닭이다. 마을과 길에 붙은 ‘산막이’라는 이름은 뜻이 두 가지다. 하나는 ‘산으로 막힌 곳’, 다른 하나.. 2020. 7. 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