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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바람과 먼지의 세상, 그 길 위에 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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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은 ‘태극기 집회’에, 시민들은 ‘촛불’로 모이다 오늘(2월 11일) 5시 30분부터 구미역 광장에서 스물두 번째 촛불이 켜졌다. 서울은 ‘15차 범국민행동의 날’인데 구미 촛불이 스물두 번째가 되는 이유는 8월 26일부터 시작된 ‘한반도 사드 배치 반대 구미 시민 촛불문화제’가 7차례에 걸쳐 먼저 베풀어졌기 때문이다.[관련 기사 : ‘구미맘(mom)’들이 밝힌 사드(THAAD) 반대 촛불] 시민이 지킨 스물두 번째 촛불 매운 날씨에도 역 광장에 모인 사람들은 백여 명 남짓이다. 42만 인구를 기준으로 하면 보잘것없는 숫자다. 그러나 이들은 모두 한파에 아랑곳하지 않고 자기 뜻으로 나온 이들이다. 김천 사드대책위에서 보내주었다는 플라스틱 의자에 앉아 오리털 파카를 꼭꼭 여민 시민들의 열기도 만만찮았다. 추위에도 불구하고 집회는 얼마간 고양된 가운데 계속.. 2022. 2. 17.
정월 대보름, 무엇을 빌 수 있을까 정월 대보름의 세시 풍속 정월 대보름이다. 아침에 ‘찰밥’(경상도에선 ‘오곡밥’이란 이름보다 찰밥으로 주로 불린다.)을 먹었다. 아주까리 나물은 여전히 입안에서 행복한 미감을 선사해 준다. 부럼은 미리 깨물었다. 어젯밤 지난달에 산 지리산 밤을 깎으면서 식구들 모두 하나씩 깨물어 먹었다. 같은 보름일 뿐, 그게 더 클 이유는 없는데도 우리는 정월 보름을 연중 가장 큰 보름으로 여긴다. ‘상원(上元)’이라 불리기는 하는 이날의 비중은 설날에 뒤지지 않는다. 요즘이야 대보름이라고 해도 오곡밥을 지어 먹거나 보름달이나 구경하면서 보내는 게 고작이다. 그러나 연간 세시풍속의 절반 가까이가 정월에 몰려 있고 그 중 대보름과 관련된 세시풍속이 무려 40~50건에 이를 만큼 대보름은 우리 세시풍속에서 중요한 날이었다.. 2022. 2. 15.
[선산 톺아보기 ⑥] 절의의 도학자 야은 모신 서원과 조선 귀족 김사철 [선산 톺아보기 ⑥] 선산읍 원리 금오서원(金烏書院) 처음 금오서원(金烏書院)을 찾은 건 2013년 2월이다. 2012년 구미로 학교를 옮기고 1년 후였다. 선산읍에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금오서원 이정표를 보고 망설이지 않고 차를 돌린 것이다. 서원에 관해 최소한의 정보도 없는 상태의 깜짝 방문이었는데, 나는 서원을 한 바퀴 빙 둘러보고 애걔걔, 하고 서둘러 발길을 돌렸었다. 오래 안동에 살면서 인근의 서원과 정자를 적잖이 돌아본 터수라, 내게는 고건축물에 대한 어떤 정형의 이미지가 있었던 모양이다. 그것은 도산서원이나 병산서원, 소수서원 등의 유명 서원 건축이 보여준, 여러 차례에 걸친 보수에도 지울 수 없는 ‘퇴락’의 이미지다. 나는 서까래나 추녀, 대청과 툇마루, 분합문과 문설주 따위에 묻은 손때처.. 2022. 2. 14.
‘눈물을 감추고’의 위키 리 별세 1960대 가수 위키 리(본명 이한필) 별세 어제저녁 텔레비전 뉴스를 통해 가수 위키 리(Wicky Lee: 본명 이한필)가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들었다. 한 시대를 풍미한 이후, 1992년 미국으로 건너가 ‘굿 이브닝 코리안’을 진행하는 등 로스앤젤레스 교포 방송에서 활동한 그는 현지에서 눈을 감았다. 1936년생이니 우리 나이로 여든이다. 그는 우리 세대와 친숙한 가수는 아니다. 우리는 단지 초등학교를 졸업할 무렵부터 몇 해 동안 그의 히트곡 ‘눈물을 감추고’를 즐겨 불렀을 뿐이니 그는 우리 앞 세대의 스타였다. 나는 80년대 초반에 스치듯 지나가며 보았던 KBS 1TV ‘전국노래자랑’의 초대 MC로 그를 기억하고 있다. 그의 노래를 즐겨 불렀지만, 전파매체가 대중화되기 이전이어서 나는 이름만 들었.. 2022. 2. 13.
통기타, ‘중년의 추억’도 흔들었다 통기타에 대한 추억을 환기한 옛 ‘세시봉’의 구성원들 기타, 21세기 청춘의 감성을 흔들다 ‘ESC’의 커버 스토리로 ‘통기타, 다시 청춘의 감성을 흔들다’가 실린 것은 지난주다. 지난해 신드롬을 일으켰던 ‘슈퍼스타 케이 2’에서 장재인, 김지수가 메고 있었던 통기타가 요즘 ‘21세기 청춘’들의 주목을 받고 있다는 기사다. 낙원상가에서 초보자들이 쓰는 저가의 기타가 동이 날 지경이며 주요 문화소비층인 2, 30대 여성 기타 인구가 증가하고 있다는 소식도 곁들여져 있다. ‘통기타 치며 밤새 노래를 부르는 건 아저씨 문화’인데도 어느덧 통기타 배우는 이들에게 이는 ‘로망’이 되었다고 한다. 이런 현상이 대중문화에 가끔 나타나는 복고조인지, 아니면 다른 문화적 변화의 하나인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전자음에 .. 2022. 2. 12.
영화 <또 하나의 약속>이 환기한 ‘불편한 진실’ 삼성과 싸우는 반도체 노동자와 그 가족들 지난주 토요일 10시 반께, 나는 아내와 함께 메가박스 3관의 마지막에서 두 번째 줄 의자에 나란히 앉아 있었다. 상영관 축소 논란이 계속되고 있는 을 관람하기 위해서였다. 나는 동료의 조언대로 일반 상영시간보다 훨씬 싼 가격으로 조조 시간을 예약했다. 영화는 염려했던 것과는 달리 지역에선 유일하게 이 복합상영관 한 군데에서만 개봉되었다. 삼성전자 후문에 있는 메가박스 구미 강동점에서의 개봉 여부도 지역 영화 팬들의 관심사였지만, 이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나마 시내에서 이 영화를 볼 수 있다는 데에 만족할 수밖에 없었다. 입장이 시작될 때까지 3관 앞은 비교적 한산했다. 뜻밖에 젊은 여성들과, 연인들이 여러 쌍 보여서 아내와 나는 머리를 잠깐 갸웃거렸다. 뒷자리.. 2022. 2. 11.
[선산 톺아보기 ⑤] 구미 의우총 이야기, 소의 의로움이 이와 같았다 [선산 톺아보기 ⑤] 봉곡동 ‘의우총(義牛塚)’ 빗돌과 산동면 인덕리 의우총 가끔 들르는 우리 동네의 구미 시립 봉곡도서관 구내에는 돌비가 두 기 서 있다. 하나는 고종 연간에 세운 구황불망비(救荒不忘碑)고 다른 하나는 ‘의로운 소의 무덤’이라는 ‘의우총(義牛塚)’ 비석이다. 개의 경우는 ‘의견(義犬)’, 또는 ‘의구(義狗)’라 하여 무덤으로 기리는 예가 있지만, “웬 소?” 싶으면서도 무심코 지나다닌 지 여래 해가 지났다. 의견 설화는 “사람에게 도움을 주거나 은혜를 갚는 개에 관한 설화”(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로 전국에 분포해 있다. 그중 가장 지배적인 유형은 ‘들불을 꺼 주인을 구한다는 유형’, 이른바 ‘진화구주형(鎭火救主型)’이다. 술에 취한 주인이 들판에서 잠들었는데 불이 나자, 개가 제 몸을 .. 2022. 2. 10.
‘혈서 지원’의 가수 백년설, ‘민족 가수’는 가당찮다 노래비 셋과 흉상으로 기려지는 성주 출신 ‘친일 부역’가수 백년설 세 번째 ‘백년설 노래비’를 만난 건 독립운동가 장기석(1860~1911) 선생의 ‘해동청풍(海東淸風)’비를 찾았다가 돌아오는 길에 들른 성주 읍내에서다. ‘나그네 설움’을 부른 대중가요 가수 백년설(1915~1980)이 성주 출신이라는 건 이미 알려질 만큼 알려져 있다. (관련 기사 : 곡기 끊어 순국한 독립운동가와 ‘민족 가수’ 백년설) 성주 군민의 휴식 공간인 성밖숲 공원 들머리에 군민 모금과 성주군의 지원으로 첫 백년설 노래비가 세워진 건 1992년이었다. 당시만 해도 그가 적지 않은 군국가요를 불러 일제에 부역한 인물이라는 사실이 드러나지 않았던 때라 노래비는 말썽 없이 세워졌다. ‘백년설 가요제’로 소환된 친일 가수 백년설은 2.. 2022. 2. 9.
[선산 톺아보기 ④]‘짝퉁’ 이름의 구미 대둔사, 보물 넉 점을 품고 있다 [선산 톺아보기 ④]옥성면 옥관리 복우산 대둔사(大芚寺) 대웅전과 건칠(乾漆) 아미타여래좌상과 삼장보살도(三藏菩薩圖) 등 보물이 세 점이나 있다는 대둔사(大芚寺)가 옥성면에 있다는 걸 확인하고도 한동안 나는 길을 나서지 못했다. 해남 대흥사(大興寺)의 옛 이름이기도 한 대둔사가 구미에 있다는데 어쩐지 그게 무슨 짝퉁인 것 같다는 느낌 때문에 미덥지 않아서였다. 차일피일하다가 길을 나선 건 2020년 8월 말이다. 날씨가 꽤 더웠는데,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마음이 내킨 것이다. 내비게이션을 앞세우고 절집을 찾아가는데, 상주로 가는 국도를 타고 가다가 국도를 버리고 샛길로 들어섰다. 샛길도 잠깐, 내비게이션은 야트막한 산길로 가잔다. 야트막하다고 느낀 건 착시, 차는 꽤 가파른 산길을 위태롭게 타야 했다. .. 2022. 2. 7.
[선산 톺아보기 ③] 무관 출신 문인 박영, 송당학파로 영남 학맥을 잇다 [선산 톺아보기 ③] 선산 신기리 송당 박영과 송당 정사 선산읍 신기리에 있는 송당정사(松堂精舍)를 찾은 것은 지지난해 8월 말이다. 내비게이션의 안내를 따라갔는데, 이쪽 지리에 어두워 선산인지는 알겠는데 선산 어디쯤인지 가늠이 잘되지 않았다. 차에서 내리자 야트막한 언덕에 수더분한 모습으로 서 있는 정사가 한눈에 들어왔다. 무관에서 영남 사림 학맥을 이은 문인으로 송당정사는 조선 중기 무신이자 문인인 송당(松堂) 박영(朴英 :1471~1540)이 1496년(연산군 2년)에 낙향하여 낙동강 강가에 세워 공부하고 후학을 가르치던 강학(講學)의 공간이다. 1860년대에 중건된 송당정사는 2016년 9월 경상북도의 문화재 자료로 지정되었다. 송당 박영의 본관은 밀양. 조부는 안동 대도호부사 박철손, 부친은 이.. 2022. 2. 5.
‘헌법 기초자’로 기억되는 친일 부역자 유진오 제헌 헌법을 기초한 당대의 수재 유진오, 재능을 친일 부역에 쓰다 대동아전은 이미 최후에 돌입하고 말았습니다. 이 전쟁이 이미 3년, 지나사변 이래 자(兹)에 7년, 아니 미영 이 동아의 침략을 시작하여, 이미 수 세기에 걸친 장구한 전쟁의 최후의 막이 이제 바야흐로 닫쳐지려고 하는, 실로 역사적인 숨 막히는 순간입니다. 중대한 순간입니다. 그리하여 전쟁의 귀추는 이미 명백한 것입니다. 침략자와 자기 방위 자의, 부정자(不正者)와 정의자(正義者)의, 세계 제패의 야망에 붙들린 자와 인류 상애(相愛)의 이상에 불타는 자의, 일언이폐지하면 악마와 신의 싸움인 것입니다. 정의는 태양과 같고, 사악은 흑운과 같아서, 구름은 마침내 태양의 적이 될 수 없는 것입니다. 우리는 정의이며 정의 자가 일어설 때 그 승리.. 2022. 2. 4.
일기 쓰기 새해 들면서 일기를 쓰기 시작했다. 중학교 때 두어 해 남짓 아주 열심히 일기를 쓴 기억이 있다. 빼먹지 않고 날마다 쓰는 것에 얽매이느라 정작 속마음은 제대로 털어놓지 못했던 것 같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고여 있는 일상이어서 주로 도서관에서 읽은 책 이야기를 중언부언했다. 그때 읽은 책들이라고 해야 사건을 중심으로 줄거리를 줄여 놓은 서양 고전 다이제스트가 대부분이었다. 그리고 고등학교 때 잠깐 일기를 들쑥날쑥 쓰기도 했지만 이후 일기 따위는 잊어버리고 살았다. 일기 따위를 챙기지 못하는 것은 거의 성격의 문제인 듯하다. 꼼꼼하게 자기 일상을 기록하는 것은 자기 삶을 제어하는 출발점인 까닭이다. 나는 무언가를 메모하거나 기록하는 데는 젬병인 사람이다. 해마다 연초에 들어오는 수첩(이른바 ‘다이어.. 2022. 2.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