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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바람과 먼지의 세상, 그 길 위에 서서

이 풍진 세상에 /텃밭일기25

[2010 텃밭일기 ⑨] 거둠과 이삭(2) 그간 모두 여덟 편의 ‘텃밭일기’를 썼다. 첫 일기는 4월 28일 텃밭농사를 짓기로 결정한 뒤 밭에 퇴비를 뿌린 일에 대한 기록이다. 그리고 파종, 햇상추, 개화, 결실, 병충해에 관한 이야기를 한 꼭지씩 다루었고 9월 5일에 올린 마지막 여덟 번째 일기는 고추를 거두고 이를 말린 이야기였다. 아파트 어린이 놀이터의 구조물 지붕과 에어컨 실외기 위 등을 오가며 건조한 고추는 아내가 방앗간에 가 빻았더니 네 근 반쯤이 나왔다고 했다. 한 열 근은 너끈히 거둔다고 했던 이는 이웃 이랑에서 고추를 지었던 선배다. “애걔, 겨우 그거야?” “올 고추 농사는 다 그렇대. 그간 우리가 따 먹은 풋고추를 생각해 보우. 감사하고 감사할 일이지 뭐…….” 맞다. 뒷간 갈 적과 볼일 보고 난 다음의 마음이 다른 것일 뿐이.. 2020. 10. 28.
우리 반 고추 농사(Ⅴ) 지난 5월 이래 내가 노심초사 가꾸어 온 우리 반 고추농사를 오늘 걷었다. 점심시간에 마지막 사진을 한 장 찍고 화분을 교사 뒤편으로 옮겼다. 일부러 시켰던 것도 아닌데 그 동안 꾸준히 화분에 물 주는 일을 도맡았던 이웃 반 아이와 우리 반 아이 둘이 거들었다. 아이들에게 포기를 뽑으라니 그것도 수월찮은 듯 낑낑대더니 겨우 지지대와 함께 뽑아놓는다. 그나마 총총히 달린 몇 개의 고추를 훑어 따고 나서 화분은 뒤편 산기슭에다 갖다 엎었다. 지난 몇 달간 몇 그루의 고추를 훌륭히 길러 내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게 한 장한 흙인데, 그 양이 보잘것없다. 저 한정된 토양을 더 기름지게 하느라고 나는 몇 번씩이나 유기질 비료를 거기 듬뿍 파묻었던가. 내려오는데 문득 기독인들이 ‘아멘’ 이라 중얼대는 이유가 처음으.. 2020. 10. 27.
2020 텃밭 농사 시종기(3) 고추 농사 ② 올해는 고추를 심되 비싼 모종, 상인 말로는 족보가 있는 모종으로 심었다는 건 이미 말한 바다. 글쎄, 긴가민가했는데 고추가 자라면서 이전에 우리가 10여 년 이상을 보아온 고추보단 무언가 다른 모습을 보고 우리 내외는 머리를 주억거렸다. “암만, 돈을 더 준 게 돈값을 하는구먼.” “그러게. 엄마가 지은 고추가 전부 이런 종류였던가 봐.” 그렇다. 일단 키가 좀 훌쩍하게 크는데, 키만 크는 게 아니라 검푸른 빛깔을 띠면서 뻗어나는 가지의 골격이 심상찮았다. 고추가 달리기 시작하고, 그게 쑥쑥 자라서 10cm 이상 가는 예사롭지 않은 ‘인물’을 선보이자, 우리 내외는 꽤 고무되었다는 얘기도 앞서도 했었다. 처음으로 익은 고추는 지난 회에서 소개한 대로다. 이후, 집 앞과 시골 텃밭에서는 하루가 다르게 물.. 2020. 9. 24.
[2010 텃밭일기 ⑧] 거둠과 이삭(1) 늦장마가 띄엄띄엄 계속되고 있다. 가뭄으로 말라가던 고추는 아연 생기를 얻었고 뒤늦게 새로 꽃을 피우기도 한다. 그러나 이미 때는 많이 늦었다. 이웃의 고추는 물론이거니와 우리 고추도 이미 빨갛게 익어가고 있는 것이다. 밭에 당도한 병충해는……, 결국 ‘불감당’이었다. 그럴 수 없이 잘 자라 미끈한 인물을 자랑하던 고추가 구멍이 뚫리거니 시들시들 고는 걸 지켜보는 것은 못할 짓이다. 그러나 어쩌겠는가. 하는 수 없다. 결국 센 놈만 살아남는 것……, 인간의 삶도 다르지 않다. 아내와 나는 사나흘 간격으로 밭에서 익은 고추를 따 왔다. 고추를 따 보면 뜻밖에 내가 지은 농사가 만만찮다는 생각을 아니 할 수 없다. “우리 지은 농사가 수월찮지?” “그럼! 우리가 그 동안 얼마나 고추를 따다 먹은 지 아우? .. 2020. 9. 2.
[2010 텃밭일기 ⑦] 나는 아직 ‘고추의 마음’을 알지 못한다 지난 일기에서 고추에 벌레가 생겼다고 얘기했던가. 어저께 밭에 가 보았더니 고추에 병충해가 꽤 심각하다. 열매 표면에 구멍이 나면서 고추는 시들시들 곯다가 그예 고랑에 떨어진다. 열매가 허옇게 말라붙어 버린 것도 곳곳에 눈에 띈다. 장모님께 귀동냥한 아내는 그게 ‘탄저(炭疽)병’이라는데 글쎄, 이름이야 어떻든 번지는 걸 막아야 하는 게 급선무다. 아내가 처가를 다녀오면서 약이라도 좀 얻어 오겠다더니 빈손으로 왔다. 잊어버렸다고 하는데 정작 장모님께선 별로 속 시원한 말씀을 해 주지 않으신 모양이다. 딸네가 짓는 소꿉장난 같은 고추 농사가 서글프셨던 것일까. “어떡할래?” “번지지나 않게 벌레 먹거나 병든 놈을 따내고 말지 뭐, 어떡해…….” 두 이랑에 불과하지만, 선배의 말대로 열 근은 좋이 딸 수 있는.. 2020. 7. 22.
2020 텃밭 농사 시종기(2) 고추 농사 ① 제대로 짓는(!) 고추 농사 새로 얻은 집 앞 텃밭을 두고 우리가 잠깐 혼란스러웠다는 얘기는 이미 했다. 그러나 덥석 받아놓고 못 하겠다고 자빠질 수는 없는 노릇이어서 일단, 3월 초순께 농협에서 산 퇴비 2포를 시비(施肥)했다. 농사짓던 땅이라 할 만한 이력도 없는 메마른 땅이라 그거로 해갈이 될지는 자신이 없었지만. 4월 1일에 처가의 텃밭에 멀칭 작업을 하고 난 뒤, 게으름을 피우고 있다가 18일에 집 앞 텃밭에도 비닐을 깔면서 이랑을 만들었다. 내외가 작업하고 있는데 이웃 농사꾼 둘이 다가와 이런저런 조언을 해 주었다. 역시 공터에 땅을 부치고 있는 이들이다. 이들도 농사 경험은 텃밭 가꾼 게 전부라고 했다. 멀칭을 마치고 그날, 김천 아포에 있는 육묘장에 가서 포기에 500원씩을 주고 고추 모종.. 2020. 7. 12.
2020 텃밭 농사 시종기(1) 감자 농사 두 번째 감자 농사 올해 블로그는 가히 ‘개문 휴업’이라 해도 지나치지 않다. 사나흘이면 한 편씩 꼬박꼬박 무언가를 끄적이던 때와 달리 올해는 마치 질린 것처럼 글쓰기를 내팽개쳤기 때문이다. 정말 누구에게 쫓기기라도 하는 것처럼 이런저런 글을 써낸 지난 10여 년이 거짓말 같을 지경이다. 물론, 아주 문을 닫고 논 것은 아니다. 그간 블로그에 썼던 1천몇백 편의 글 가운데, 그나마 쓸 만한 글을 골라 새로 티스토리에 재수록하는 일은 꾸준히 이어 왔기 때문이다. 한 해의 절반이 지난 7월 10일 현재, 블로그에 쌓인 1,094편의 글이 그 결과다(여기엔 일부러 중간중간에 넣어 놓은 ‘예비’ 꼭지가 있으니 실제 글은 이보다 적다). 오늘까지 올해에 새로 쓴 글을 몇 편이나 될까 세어 봤더니, 모두 27편이다.. 2020. 7. 11.
[2010 텃밭일기 ⑥] 꽃이 피어야 열매를 맺는다 ‘장마’라더니 정작 비는 한 번씩 잊을 만하면 잠깐 내리다 그친다. 변죽만 울리고 있는 장마철, 오랜만에 텃밭에 들렀다. 그래도 두어 차례 내린 비는 단비였던 모양이다. 밭 어귀에 들어서자마자 새파랗게 익어가는 작물들의 활기가 아주 분명하게 느껴진다. 밭을 드나들 때마다 저절로 이웃집 고추와 우리 걸 비교해 보게 된다. 밭 어귀의 농사는 썩 실해 보인다. 이들의 고추는 키도 훤칠하니 클 뿐 아니라 대도 굵고 전체적으로 고르게 자라서 한눈에 턱 보면 농사꾼의 ‘포스’가 느껴진다. ‘딸은 제 딸이 고와 보이고, 곡식은 남의 것이 탐스러워 보’여서 만은 아니다. 파종 시기도 빨랐고 제대로 가꾸어 준 표시가 역력한 것이다. 밭 주인이 성급하게 뿌려준 비료로 골병이 들었던 우리 고추는 거기 비기면 뭐랄까, 그간 .. 2020. 7. 11.
[2010 텃밭일기 ⑤] 첫 결실, 시간은 위대하다 고추에 지지대를 박아 주어야겠다고 생각했지만 차일피일하다가 처가에 들른 김에 장모님과 함께 종묘사에 들러 지지대 서른 개를 샀다. 개당 300원, 9천 원을 썼다. 고추 포기마다 쳐 주지는 못하고 서너 포기 간격으로 지지대를 박아 놓고 짬이 나지 않아 며칠을 보냈다. 지지대 사이를 비닐 끈으로 이은 것은 며칠 전이다. 두둑에 심은 고추의 열이 고르지 않아서 두 겹으로 친 줄이 고춧대를 제대로 감싸지 못할 것 같다. 서툰 농사꾼은 어디서든 표가 나기 마련인 것이다. 한 포기밖에 없는 오이 위에는 장모님께 얻어 온 온상용 철근(?)을 열십자 모양으로 박고 끈으로 단단히 묶었다. 오늘 다시 며칠 만에 밭에 들렀다. 밭 어귀에서부터 펼쳐지는 초록빛 물결이 훨씬 짙고 푸르러졌다. 시간은 이처럼 위대한 것이다. 시.. 2020. 6. 24.
[2010 텃밭일기 ④] 과욕이 남긴 것 텃밭 농사가 주는 기쁨은 날이 갈수록 새록새록 쌓여간다. 밭머리에서 우썩우썩 자라고 있는 상추와 쑥갓을 뜯어와 밥상에 올리고, 날마다 빛깔을 바꾸며 크고 있는 작물을 바라보는 기쁨이란 쉽게 설명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이웃과는 달리 비닐을 덮기 전에 미리 퇴비를 얼마간 뿌렸건만, 밭 주인은 초조했나 보다. 우리는 시내 종묘사에서 소형 포대에 든 비료를 사 왔다. 장모님은 물비료를 조금 주고 말라고 했건만 우리는 그걸 귀담아듣지 않았다. 금비를 주려면 뿌리에서 멀찌감치 떨어진 고랑 쪽에다 소량을 묻는 정도로 그쳐야 한다. 필요한 건 ‘욕심’이 아니라 ‘시간’이다 어느 날, 퇴근해 보니 아내가 낮에 비료를 뿌렸다고 했다. 일손을 덜었다 싶어서 나는 흡족해했다. 그런데 한 이틀쯤 후에 밭에 다녀온 아내가 울.. 2020. 6. 23.
[2010 텃밭일기 ③] 햇상추를 비벼 먹으며 어제는 비가 내리고 있는데도 텃밭에 들렀다. 부지런한 농군은 어디가 달라도 다르다. 밭에 미리 나와 있는 사람이 있었다. 우리 이랑에 비닐을 덮어준 선배다. 그도 일찌감치 밭을 둘러보러 나온 것이다. 빠진 데 없이 잘 가꾸어진 밭은 빗속에서도 시퍼렇게 살아난 작물들의 풀빛으로 한껏 그윽해 보였다. 며칠 만인가. 한 일주일가량 못 본 사이에 밭은 무성해졌다. 감자와 고추, 상추와 쑥갓, 콩과 고구마, 토마토와 열무 따위의 작물들이 뿜어내는 생기가 살아 있는 것 같았다. 우리 텃밭 머리에 선배가 뿌려준 상추와 쑥갓이 빽빽하게 자라 있었다. 아내와 나는 감격의 탄성을 내질렀다. 솎아 주어야 할 만큼 잘 자란 상추와 쑥갓 앞에서 우리는 행복했다. 고추와 가지는 이제 제법 늠름하게 자리 잡았다. 말라죽은 것처럼 .. 2020. 6. 22.
[2010 텃밭일기 ②] 파종 이후 텃밭에 퇴비를 뿌리고 난 뒤 이내 비닐을 덮으려고 했는데 차일피일했다. 비가 오거나, 다른 일이 겹쳐서 시간을 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잠깐 둘러본다고 들렀더니 우리 몫의 두 이랑에 얌전히 비닐이 덮여 있었다. 아뿔싸, 한발 늦었다. 밭 옆 학교에 근무하는 선배께서 당신네 일을 하면서 덮어 주신 것이다. 일을 덜어 고맙긴 하지만 마음은 그리 편하지 않다. 따로 공치사하는 대신에 할 일을 미루지 않고 제 때에 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얼치기는 어디서나 표가 나는 법이다. 어린이날에 미리 처가에 들렀다 오는 길에 장모님으로부터 고추, 가지, 들깨, 땅콩 등의 모종을 얻어왔다. 돌아와 바로 옷을 갈아입고 밭에 나갔더니 선배와 동료 교사 한 분이 고구마를 심고 있었다. 뒤늦은 공치사는 거기서 했다. 여러 해 거기서.. 2020. 6. 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