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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바람과 먼지의 세상, 그 길 위에 서서
이 풍진 세상에 /텃밭일기

베란다의 고추 농사

by 낮달2018 2022. 3.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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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란다의 고추 농사(1)

▲ 베란다 고추는 열매는 달지 않고 줄곧 꽃만 피워댔다 .

함부로 ‘농사’라고 말하는 것도 이 땅의 농부들에게 저지르는 결례라는 걸 안다. 그러나 마땅히 달리 붙일 말이 없어 마치 도둑질하듯 감히 농사라고 쓰니 뒤통수가 근질근질하다. 난생처음으로 소출을 겨냥하고 땅에다 심은 게 고추였다. 잡풀들의 끈질긴 공세에도 불구하고 녀석들은 비록 굵지는 않았지만, 소담스럽게 열매를 달고 햇볕에 빨갛게 익어, 얼치기 농사꾼을 감격게 했던 게 몇 해 전이다.

 

이후, 어디서건 고추밭을 바라보는 내 눈빛은 예사롭지 않게 되었다. 잘 걸운 밭에 익어가고 있는, 거의 검푸른 빛깔의 무성한 고추 이파리와 길쭉길쭉 실하게 자라고 있는 고추를 바라보면서 스스로 행복에 겨워하고, 그걸 ‘사랑스럽다’라고 여기는, 농부의 어진 마음의 밑자락이나마 이해할 수 있게 된 것이다.

▲홀로 맺고 익은 고추 하나 .

한 뼘도 땅도 없고, 그렇다고 땅을 빌려서 시작할 엄두는 없었는데, 처가에서 고추 모종 5포기를 얻어와 화분 두 개에다 두세 포기씩 심었겠다. 무슨 소출(所出)을 기대한 것은 아니었지만, 꽃을 피우고 꽃진 자리에 부끄럽게 얼굴을 내미는 새끼손가락 굵기의 고추를 머리에 떠올리지 않았다고 하면 거짓말이다.

 

그러나 문제는 이 작물들이 주인의 맘을 전혀 헤아려 주지 않는다는 데 있다. 꽃은 드문드문 피고 잎도 무성해지면서도 정작 제대로 열매를 맺지 않는 것이다. 지금까지 이 다섯 포기가 맺은 고추는 고작 서너 개다. 그것도 아내가 맺는 족족 따 버려서 지금 달린 것은 빨갛게 익고 있는 놈 하나뿐이다.

 

인근의 야산에 가서 부엽토라고 여겨지는 흙을 담아와, 꽃집에서 파는 거름을 적당히 섞어가며 모종을 옮겼고 날마다 잊지 않고,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게 물주기를 게을리하지 않았는데도 녀석은 고작 키나 키우고 이파리나 늘리고 있을 뿐이다.

 

아내의 진단은 이렇다. 흙도 척박한 데다 변변히 거름도 주지 않았고, 게다가 햇볕마저 반쪽이니 고추가 제대로 열릴 턱이 있수? 고추는 거름을 제대로 해야 한다는데…….

 

다행히 고추는 다섯 그루뿐이다. 그것도 내 심심풀이용이니 제대로 열매를 맺지 않는대서 큰일 날 건 없는 것이다. 제대로 고추를 키우지 못하고 있는 주인의 불행보다는, 옳은 주인을 못 만나 제대로 자라고 있지 못한 고추의 불행이 훨씬 큰 탓이다.

 

몇 해 전에 그랬던 것처럼, 처가에 다녀오는 길에 금비(金肥) 한 줌을 얻어와 뿌려줄까 생각 중인데, 마음은 그리 편하지 못하다. 고작 몇 그루의 고추조차도 제대로 거두지 못하면서 ‘농사’를 함부로 주워섬긴 죄가 큰 탓이고, ‘뿌린 대로 거두리라’는 말씀도 아무나 함부로 쓸 수 있는 게 아니라는 생각이 언뜻 들어서이다.

 

 

2006. 8. 8. 낮달


베란다의 고추 농사(2)

 

민망하다. 한가위를 지나고 서리 소식이 들려오는데, 내가 베란다에 연 텃밭(?)엔 뒤늦은 열매 맺기가 한창이다.

▲ 때늦게 열매 맺은 베란다 고추 .

화분 두 개에다가 청양고추 다섯 그루를 심고, 부지런을 떨며 정성을 기울인 셈이었는데도 고작 키만 키우고 이파리만 늘리고 있다는 불평을 구시렁거린 게 지난 8월이다.

 

“흙도 척박한 데다 변변히 거름도 주지 않았고, 게다가 햇볕마저 반쪽이니 고추가 제대로 열릴 턱이 있냐”며 문제가 ‘거름’에 있다며 퉁을 주는 아내의 충고를 좇기로 했다.

 

9월 초순에 처가에 들러 장모님께 금비(金肥) 한 줌을 청했더니, 안노인은 비료 줬다가 죽일라꼬? 하시더니 쿰쿰한 냄새가 나는 유기질 비료를 한 봉지 담아 주셨다. 너무 많이 주면 안 되네. 조금씩 시간을 두고 나누어 주게나.

 

사람들이 금비를 선호하는 것은 한 줌 뿌리면 금방 풀빛부터 달라지는 가시적 효과 때문이다. 그러나 농부들은 흙과 햇빛, 기온과 바람 따위의 친화에 의해서가 아니라, 인위적으로 흙의 영양을 높이는 게 그 작물의 목숨을 앗는 행위라는 걸 알고 있다.

 

집에 와서 모종삽을 이용해 흙을 헤집고 두어 줌 정도의 거름을 주면서도 내 시비량이 적당한지, 그렇지 않은지는 미심쩍기만 했다. 흙을 덮고 물을 적당히 부어준 다음에는 혼잣말을 하고 말았다.

 

죽어도 할 수 없고…, 올해는 폐농할 수밖에 없다. 몇 그루의 고추조차도 제대로 거두지 못하는 자신이 한심하기 이를 데 없었다.

 

그리고는 이틀 걸러 물을 주면서 유심히 살폈지만, 키가 조금 더 자란 것밖에는 큰 변화가 보이지 않았다. 아니다, 꽃이 좀 요란하게 새로 피는 듯했는데, 열매가 맺히는 기색은 전혀 없었다고 해야 한다.

 

그러나 뒤늦게 뿌려진 거름은 숙성의 시간이 필요했나 보았다. 올 농사는 닫아야겠다고 생각하고 한동안 잊고 있었는데 어느 날, 아내가 뒤늦게 고추가 여럿 달렸다고 알려 주었기 때문이다.

 

왼쪽에 있는 게 방금 플래시를 터뜨려가며 새로 찍은 사진들이다. 따로 세어보지는 않았는데, 그루마다 서너 개씩 열매를 달고 내 작물은 바야흐로 뒤늦은 개화를 계속하고 있다. 한가위가 지났고, 첫서리와 얼음 소식이 간간이 들려오는데, 이제야 내 고추는 흙과 햇빛, 기온과 바람의 도움으로 한살이를 마무리하고 있다.

 

제 주인에게는 이웃들의 온전한 도움 없이는 꽃 한 송이, 열매 하나도 쉽사리 피우고 맺지 못한다는 흙과 바람과 햇빛의 진실을 넌지시 가르쳐주면서.

 

 

2006. 10. 14. 낮달

 

“지난해의 실패를 거울 삼아 다시 한번 거기 도전하겠다.”

 

섣부른 사이비 농사꾼의 결심은 별로 믿을 게 못 된다. 그러나 한 번만 더 제대로 덤비면 무언가 새로운 세계를 대번에 열어 버릴 것 같은 도저한 욕구가 봄바람이 살랑일 때마다 가슴으로부터 스물스물 기어 올라오는 걸 느낀다.

 

새봄에 내가 그리는 농사는 이런 것이다. 아파트 베란다는 포기한다. 무엇보다 부족한 햇빛을 갈무리할 방법이 없어서다. 날마다 그놈을 안고 햇빛을 찾아다닐 수는 없는 노릇인 까닭이다.

 

대신 내가 맡은 학급의 햇빛 잘 드는 창가에다 가능하면 길쭉한 화분 하나를 앉히고 거기다 고추를 다시 심겠다. 아이들과 함께 녀석이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 전 과정을 마치 곤충의 한살이처럼 꼼꼼하게 들여다보겠다. 어렴풋하게나마 아이들이 담임의 어설픈 영농을 지켜보면서 생명과 그것의 빛나는 경이를 깨달을 수 있다면 그것으로도 족하지 아니한가.

 

시간이, 또는 그것과는 무관한 마음의 여유가 허락할는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그런 시간을 꿈꾸고 그려보는 꽃샘추위 속의 봄날은 행복하다. 무릇 생명을 생각하는 일이란 이처럼 벅찬 아름다움과 따뜻한 온기로 타오르는 것인지 모른다.

 

 

2007. 3. 6. 경칩 낮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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