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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바람과 먼지의 세상, 그 길 위에 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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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거운 한가위 되세요?” 명절 인사 잘못하셨습니다 한가위 인사, “한가위 되세요”로 쓰면 안 되는 이유하도 “즐거운 한가위 되세요” 같은 비문(非文, 문법에 맞지 않는 문장)이 늠름하게 쓰이는 현실이 안타까워서 ‘~되세요’를 함부로 써서는 안 된다는 글로 블로그에 ‘가겨찻집’ 문을 연 게 2007년이다. 그리고 비슷한 이야기를 주절대면서 8년쯤을 보냈다. 아무리 그게 ‘대세’라 해도 ‘아닌 건 아니다’ 아무도 청하지 않은 일을 8년간 이어간 것은 자신이 국어 교사라는 사실을 늘 확인하면서 살아온, 넘치는 자의식 때문이었다. 국어를 가르친다고 해서 사람들의 언어 습관에 시비를 걸어야 할 이유가 있는 것은 아닐 터이지만, 그렇게 오지랖을 떤 것도 앞의 이유 탓이다. 8년간의 오지랖이 막을 내린 것은 “‘한가위 되세요’, 진보 진영의 동참”이라는 글을 끝으.. 2026. 9. 23.
한가위 풍경, ‘귀성(歸省)과 ‘귀향’ 사이 추석 명절, 귀성 없는 귀향기다릴 어버이 계시지 않는 고향 한가위가 가깝다. 예년과 달리 징검다리긴 하지만 거의 한 주를 쉴 수 있는 연휴라 그런지 은근히 들뜬 분위기가 느껴진다. ‘아니, 들뜬 건 내 마음인지 모르지’ 하고 중얼대다가 다시 고친다. 내게 들뜰 이유가 있어야 말이지. 돌아갈 고향이 있나, 반겨줄 어버이가 계시나……. 아, 참. 선생님은 고아시니까 그렇죠? 공연히 마음이 싱숭생숭해져서 날이 갈수록 명절이 오히려 쓸쓸해진다고 했더니 동료가 농을 건넸다. 그렇다. 어버이를 모두 잃었으니 나는 고풍스럽게 말하면 ‘고애자(孤哀子, 어버이를 모두 여읜 사람이 상중에 자기를 이르는 일인칭 대명사)’인 셈이다. 부모님뿐이 아니다. 내게 열아홉 살 연상의, ‘아버지 맞잡이’였던 맏형님도, 그 형수도 세.. 2026. 9. 23.
⑯ 추분(秋分), 우렛소리 멈추고 벌레도 숨는다 추분(秋分), 가을의 네 번째 절기 23일(2026년도 같음)은 추분(秋分)이다. 백로(白露)와 한로(寒露) 사이에 드는, 24절기 가운데 16번째 절기, 가을의 네 번째 절기다. 이날 추분점에 이르러 낮과 밤의 길이가 같아진다. 사람들은 추분을 특별한 절일(節日)로 여기지는 않는다. 그러나 낮과 밤의 길이가 같아지는 이 날을 중심으로 계절의 매듭 같은 걸 의식하게 된다. 낮과 밤의 길이가 같은 날이지만, 실제로는 해가 진 뒤에도 어느 정도까지는 여광(餘光)이 남아 있어서 낮의 길이가 상대적으로 길게 느껴지기도 한다. 그러나 추분을 지나면 점차 밤이 길어지기 시작하므로 자연히 여름이 가고 가을이 왔다는 사실을 실감하게 되는 것이다. 실제로 서양에선 ‘추분부터 대설까지’를 가을로 여기지만, 우리는 ‘추분.. 2026. 9. 23.
[순국] 의병장 이근주, “의로움을 취해 인을 이루다” 1910년 9월 23일, 의병장 이근주 자정(自靖) 순국하다1910년 9월 23일, 충남 홍주의진(洪州義陣)의 의병장 이근주(李根周, 1860~1910)가 부모의 묘에 주과(酒果)로 제사 지내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경술국치, 일제의 강제병합(8.29.)으로부터 25일 만이었다. 향년 50세. 그는 죽기 전 나무에 “중화를 높이고 오랑캐를 물리치고, 사학을 배척하고 정학을 지킨다”는 ‘존화양이 척사부정’(尊華攘夷 斥邪扶正)이라는 8자를 써 놓았다. 가족과 사우(社友)에게 남긴 유서는 왜경이 압수해가서 그의 형 이근상이 돌려달라고 하였으나 거부당했다. 그는 매장하지 말고 화장할 것을 당부하면서 ‘매장은 비린내 나는 땅으로 나를 멸하는 것’이라 하였다고 한다. “삶을 버리고 의를 취하겠다”며 자정 이근주는.. 2026. 9. 23.
일흔이 다 돼서야 ‘자두’ 맛을 알았다 기막힌 맛의 과일 ‘자두’ 이야기한가위를 앞두고 대형마트에 갔다가 자두를 한 상자 샀다. 봉지로 파는 소량이야 더러 샀지만, 상자째로 사기는 처음이다. 7월에 햇자두가 처음 나올 때 언제 김천의 청과물센터에 가서 상품으로 한 상자 사 먹자고 아내에게 약조했지만, 여름도 가고 가을의 초입에야 그 약속을 지킨 셈이다. 어릴 적 풋자두 말고 60대에 이르러서 간신히 자두를 만났다어릴 적에도 동네에 밭이 있어서 자두의 존재를 알고 있었지만, 나는 한 번도 제대로 익은 자두를 맛보지 못했다. 경상도 말로 ‘에추’라고 불렀던 자두는 설익은 풋자두를 잠깐 입에 머금어 보는 게 고작이었던 탓이다. 여름에서 가을에 걸쳐 거두는 계절 과일이긴 하지만, 그게 상품으로 유통하리라고는 전혀 상상하지 못했다. 풋과일로 잠깐 .. 2026. 9. 22.
‘반민특위’, 혹은 ‘역사 청산’의 좌절 77년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1948.9.23.~1949.10.4.) 이후, 일흔일곱 해다시 되짚어보는 ‘반민특위’ 1948년 9월 23일은 대통령 이승만이 ‘반민족행위처벌법’을 법률 제3호로 공포한 날이다. 그 보름 전에는 제헌국회에서 ‘국권 강탈에 적극 협력한 자, 일제 치하의 독립운동가나 그 가족을 악의로 살상·박해한 자 등을 처벌하는 목적’으로 제정한 반민족행위처벌법(안)을 통과시킨 바 있었다. 해방 공간에서 들끓기 시작한 친일 부역(附逆) 세력에 대한 단죄 문제는 1947년 3월 13일, 입법의원에서는 ‘부일(附日)협력자·민족 반역자·전범·간상배(奸商輩)에 대한 특별 조례 법률’의 초안을 상정하면서 시작되었다. 그러나 과도입법의원은 군정의 자문 기구에 불과했고, 과도입법의원에서 제정한 법률의 인준권은.. 2026. 9. 19.
[오늘] 광복 3년 만에 ‘반민족행위 처벌법’을 공포했지만… [역사 공부 ‘오늘’] 1948년 9월 22일, ‘반민족행위처벌법’ 공포1948년 오늘, 이승만 대통령은 ‘반민족행위처벌법’을 법률 제3호로 공포하였다. 제헌국회에서 ‘국권강탈에 적극 협력한 자, 일제 치하의 독립 운동가나 그 가족을 악의로 살상·박해한 자 등을 처벌하는 목적’으로 제정한 반민족행위처벌법(안)을 통과(9월 7일)시킨 지 15일 만이었다. 해방 공간에서 일제의 식민통치에 협력한 친일 부역(附逆)세력에 대한 반감과 함께 이들을 처벌해야 한다는 여론이 비등한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그러나 미 군정 하의 한국 사회에 그러한 권한과 재량은 주어지지 않았다. 미 군정은 국가 관리에 필요한 인적 자원이 모자라는 상황에서 친일파 제거에 반대하였을 뿐 아니라, 군정에도 행정 경험을 가진 친일파를 폭.. 2026. 9. 19.
2026년 초가을 – 플라타너스 ‘숲 지붕’과 메밀꽃 풍경 구미 낙동강 체육공원 초가을 풍경 한 바퀴*PC에서 ‘가로 이미지’는 클릭하면 큰 규격(1000×667픽셀)으로 볼 수 있음.낙동강 강변의 체육공원 이야기를 마지막으로 쓴 건 지난 5월 하순이다. 지난해 가을부터 겨울 거쳐 올봄, 그리고 당시 5월의 플라타너스 산책길 풍경 사진으로 쓴 짤막한 글이다. 아마 나는 6월 들어서는 더는 강변에 가지 않았을 것이다. 기온이 올라갔고, 나는 새벽에 동네 중학교 운동장을 찾기 시작했으니까. [관련 글 : 낙동강 강변 플라타너스 산책길 풍경 6제] 몇 달 만에 다시 찾은 플라타너스 산책길 한 보름 전쯤에 샛강에 다녀온 아내가 아주 가을 풍경이 역력하다고 얘기해 주어서, 나는 담에 같이 한 번 강변에도 가 보자고 약속했다. 그러고도 짬이 잘 나지 않아서 날만 받다가 어.. 2026. 9. 16.
경기 화성 출신 독립운동가 이규선, 서대문형무소에서 순국하다 1941년 오늘 - 이규선 선생, 서대문형무소에서 순국하다1941년 9월 15일, 서대문형무소에서 10년째 복역하고 있던 독립운동가 이규선(李奎善, 1885~1941)이 옥중 순국했다. 향년 56세. 그는 일찍이 1919년 3·1운동 때 만세 시위에 참여한 이래, 만주로 망명하여 임정의 밀명으로 군자금을 모금하다 체포되어 12년형을 선고받고 수감 중이었다. 이규선은 경기도 화성 사람이다. 집안의 내력과 성장 과정을 비롯한 정보는 전하지 않는다. 은 물론 독립유공자 공훈록에도 공적 사항만이 짧게 기록되어 있을 뿐이다. 그는 1919년 화성군 송산면 사강리 일대에서, 홍면·왕광연·문상익·홍명선·김교창 등이 주동한 독립 만세 시위에 참여하였다. 그는 3월 26일 오후 5시께 송산면사무소에 모인 시위군중과 함께.. 2026. 9. 15.
[오늘] 대구감옥에서 순국한 오성술, 그리고 호남 출신 의병장들 [역사 공부 ‘오늘’] 1910년 9월 15일, 의병장 오성술 대구 감옥에서 순국1910년과 1941년 9월 15일에 두 분의 독립운동가가 순국하였다. 한 분은 처형으로, 또 한 분은 옥중에서 순국하였다. 물론 건국훈장으로 기리긴 하지만, 세상엔 잘 알려지지 않은 이들이다. 순국한 지 108년과 77년이 넘어서만은 아니다.2018년 8월 15일 현재 독립유공자로 건국훈장을 받은 이는 대한민국장 30명, 대통령장 93명, 독립장 824명, 애국장 4,306명, 애족장 5,664명 등 10,917명이고, 건국포장 1,253명, 대통령 표창 2,887명 등 모두 15,057명이다.생각보다 많다는 생각이 들 수도 있겠지만, 해방 당시 우리나라 인구가 2천5백만이니 0.0006%밖에 되지 않는다. 건국훈장의 등.. 2026. 9. 15.
[오늘] 대종교 개조(開祖) 나철 순교·순국 [역사 공부 ‘오늘’] 1916년 9월 12일, 대종교 개조 나철 자결 순교·순국1916년 9월 12일은 대종교(大倧敎) 창시자 홍암(弘巖) 나철(羅喆, 1863~1916)이 순교, 순국한 날이다. 이틀 전 시봉자(侍奉者) 6명을 대동하고 구월산 삼성사(三聖祠)에 들어가 수행을 시작한 그는 이날, 유서를 남기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9월 10일, 사당 앞 언덕에 올라 북으로는 백두산, 남으로는 선조의 묘소를 향해 참배한 뒤 그는 “오늘 3시부터 3일 동안 단식 수도하니 누구라도 문을 열지 말라.”고 문 앞에 써 붙인 뒤 수도에 들어갔다. 12일 새벽, 인기척이 없어 제자들이 문을 뜯고 들어가니, 그는 죽음을 택한 이유를 밝힌 유서를 남기고 조식법(調息法)으로 이미 숨을 거둔 뒤였다. 나철이 1909년 .. 2026. 9. 12.
[오늘] 부관연락선 이키마루[일기환(壹岐丸)], 한국과 일본을 잇다 [역사 공부 ‘오늘’] 1905년 9월 11일, 부산과 시모노세키, 이키마루 취항1905년 오늘, 부산과 시모노세키[하관(下關)] 사이의 240km 바다를 잇는 최초의 연락선 이키마루[일기환(壹岐丸)] 호가 시모노세키에서 취항하였다. 한국과 일본을 잇는 이 연락선은 부산의 앞 글자(‘부’)와 시모노세키의 뒷 글자(‘관’)을 따서 ‘부관연락선’이라고 부른다. 일본에서는 종종 순서를 바꾸어 ‘관부연락선’ 또는 ‘관부 항로’라고 불렀다. 침략과 조선인 강제동원의 연결창구 두 달 후에 체결된 을사늑약(11. 17.)으로 외교권을 빼앗기면서 대한제국은 자주권을 잃게 되지만 이미 대한제국은 빈사 상태에 이르러 있었다. 같은 해 1월 1일, 경부선 열차가 운행을 시작한 데 이어 이날 정기 뱃길을 엶으로써 일본의 식.. 2026. 9. 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