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뭍에 있는 안동이 제주 섬의 4·3과 무슨 상관? 4·3 당시 안동형무소 희생자를 위한 진혼제 열려 특정 지역에서 일어난 역사가 그 지역성을 극복하는 데 필요한 것은 시간이다. 그러나 시간보다 더 긴요한 것은 그것을 당대의 삶과 역사로 받아들이는 동시대인들의 공감과 연대다. 1980년 5월의 광주민중항쟁은 공식적 역사 속으로 편입했지만, 여전히 그것을 ‘광주사태’로 인식하는 동시대인들이 있는 한 광주항쟁이 ‘광주’를 넘어서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광주가 30년의 역사라면, ‘잠들지 않는 남도’ 제주의 4·3은 60년도 넘은 훨씬 오래된 역사이다. 그러나 여전히 4·3은 제주 섬을 벗어나지 못한다. 공식적으로 보면 4·3은 2000년 ‘제주 4·3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을 위한 특별법’이 제정 공포되면서 사건 발발 반세기가 넘어 그 결자해지의.. 더보기
‘칠군자’ 마을에 항일지사의 빗돌이 외롭다 - 안동 군자마을 기행 이 땅 어느 고을인들 저 왕조시대 양반들의 자취가 남아 있지 않겠냐만, 유독 안동 땅에는 그들의 흔적이 두텁고 깊어 보인다. 여기는 이른바 ‘양반의 고장’, 그것도 꼬장꼬장한 ‘안동 양반’의 땅이다. 엔간한 마을이라도 들어가기만 하면 만만찮은 옛집과 정자가 고색창연하게 펼쳐지는 것이다. 당연히 길가에는 ‘문화재’나 ‘유적’을 알리는 표지판이 줄지어 서 있다. 안동에서 산 지 10년을 훌쩍 넘겼으니 내 발길이 인근의 이름 있는 마을, 고택, 정자 따위를 더듬은 것은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다. 그런 내 여정을 두고 ‘농반진반’으로 ‘양반들 흔적이나 찾아다니는 일’이라며 마뜩잖아하는 벗이 있는 것 역시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나는 예나 지금이나 ‘양반’을 이미 화석이 된 전근대의 신.. 더보기
19년 복역한 독립운동가는 왜 ‘양복 수선공’으로 남았나 뤼순감옥 ‘장기수’ 독립운동가, 박희광 선생 50주기를 추모하며 구미 금오산도립공원으로 가는 길을 오르다 보면 금오지(金烏池)가 끝나는 길목에서 금빛 동상 한 기를 만날 수 있다. 저수지를 등진 채 금오산을 바라보면서 오른손을 들고 있는 입상은 무언가를 말하려 하는 듯하다. 더러 박정희로 오인되는 박희광 선생 동상 동상 아래 세로로 새긴 한자 휘호가 있지만, 으레 그게 박정희 전 대통령이라고 여기는 구미사람들도 적지 않다. 휘호를 쓴 이는 박정희지만, 동상의 주인공은 박희광(1901~1970) 의사다. 그는 일제강점기 펑톈성(奉天省)에서 보민회(保民會)와 일민단(日民團) 등 친일 부역자 숙청작업을 담당한 독립운동가다. 박희광은 박정희(1917~1979)보다 16년이나 연상이니 동년배라고 하기는 어렵다. .. 더보기
[순국] ‘마시탄’ 사건의 이의준 순국하다 1929년 오늘(1월 25일), 1924년 5월, 압록강 중류인 평안북도 강계군 고산면 마시탄(馬嘶灘)에서 조선 총독 사이토 마코토(齋藤實)를 공격했던 참의부 소대장 이의준(李義俊,1893~1929)이 일제의 사형 집행으로 순국하였다. 향년 36세. 스물아홉 살에 만주로 건너가 항일무장투쟁을 벌였으나 이름조차 생소한 이 독립운동가는 사진 한 장도 온전하게 남아 있지 않다. 우리는 대신 그가 사살하고자 했던 일제 총독 사이토 마코토를 통해 그의 삶을 역으로 돌아볼 뿐이다. 사이토 총독 공격한 마시탄 사건 이의준은 평북 위원(渭源) 사람이다. 성장기와 독립운동 투신 이전의 삶은 알려지지 않는다. 그가 역사의 전면에 등장하는 것은 1922년 8월이다. 김창균(1892~1929)과 같이 만주로 건너간 이의준은 .. 더보기
화가 이중섭, 서귀포의 기억 도시는 어떤 형식으로 예술가들을 기억하고 기릴까. 괴테나 쇼팽이나 톨스토이 같은 위대한 작가들을 낳은 유럽의 도시들은 어떤지 모르겠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도시들이 작가들을 기억하는 방식은 매우 상업적이고 천박하지 않은가 싶다. 지방자치 이후 각 지자체는 지역 출신의 예술가들을 주목하기 시작했다. 이들 예술가의 이름을 딴 각종 문화제나 예술제 등이 우후죽순으로 만들어지게 된 것이다. 이는 예술에 대한 이해보다는 이를 관광자원으로 인식한 경제적 관점의 산물이었던 듯하다. 출신 예술가를 관광 상품화하여 세수를 늘리려는 지자체의 이해는 눈에 보이는 기념관 등 건물을 짓고 격에 알맞지 않은 동상을 세우는 등의 사업으로 나타난다. 결국, 주변 풍경과의 조화 따위는 고려하지 않고 급조한 기념관이나 동상 따위가 서둘러.. 더보기
<도가니> , 야만의 세상, 혹은 성찰 며칠 전, 인근 복합상영관에서 요즘 한참 ‘뜨고’ 있는 영화 를 보았다. 그러려니 했지만, 시작 시각을 기다리는 내내 영화관 앞은 사람들로 꽤 붐볐다. 예상을 웃도는 열기에 딸애와 나는 마주 보며 정말, 동의의 눈짓을 나누었다. 거기서 영화를 보러 온 지인을 두 사람이나 만났으니 가히 ‘도가니’의 열기는 뜨겁다고 할 수밖에 없다. 관객이 많을 수밖에 없는 시간대(밤 8시)이긴 했지만 168석의 자리를 거의 채운 채 영화는 시작되었다. 선입견 때문이었을까. 관객들은 숨을 죽이고 화면에 몰입하는 것처럼 보였다. 관객으로 가득 찬 실내는 금방 후덥지근해져서 우리는 겉옷을 벗어야 했다. “안동에 오고 처음이네” “ 때도 아마 이 정도는 들어왔을걸요?” 영화가 ‘뜨고 있다’면 당연히 이유가 있다. 개봉한 지 일주.. 더보기
고 박병준 선생을 추억함 죽음이 삶의 대립 항인 이상 그것은 언제나 낯설어야 마땅하다. 2·30대 팔팔했던 시절에는 ‘죽음’은 늘 ‘강 건너 불’ 같은 거였다. 때때로 만나는 지인의 부음도 지극한 ‘우연’일 뿐, 그것은 일상과는 무관한 특별한 무엇에 그쳤다. 그러나 40대를 거치면서 사람들은 ‘죽음’을 비로소 일상으로 받아들이기 시작한다. 그 ‘돌연사’가 주변의 것이 아니라 ‘내 것’이 될 수도 있다고 느끼게 되는 것이다. 지인들의 부음을 ‘심상’하게 받아들이기 시작하면서 우울한 50대에 접어든다. 안부를 묻는 게 ‘건강’을 묻는 인사로 대치되고, 오랜만의 만남에서 나누는 것은 주변의 죽음이다. 아무개는 혈압으로 아무개는 심장으로 쓰러졌다는 소식을 주고받으며 사람들은 아직 ‘괜찮은 내 건강’이 아니라 나에게 ‘이르지 않은 죽음’.. 더보기
[오늘] ‘피의 일요일’ - ‘1905년 러시아 혁명’의 불을 당기다 [역사 공부 ‘오늘’] 1905년 1월 22일 차르 체제, 노동자들의 요구를 피로 짓밟다 1905년 1월 22일, 제정 러시아의 수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는 노동자들의 탄원 집회가 열리고 있었다. 이들은 차르 니콜라이 2세의 초상화와 기독교 성화 상 그리고 노동자들의 요구를 적은 청원서를 손에 들고 차르의 겨울 궁전으로 평화적인 행진을 시작했다. 노동자들의 평화 행진 유혈 진압 2주 전인 1월 9일에 개최된 청원 행진은 러시아 정교회의 사제 게오르기 가폰 신부가 주도하여 진행되었다. 이들이 청원하고자 한 것은 노동자의 법적 보호, 당시 일본에 완전히 열세였던 러일전쟁의 중지, 헌법의 제정, 기본적 인권의 확립 등이었다. 노동자들이 한목소리로 외친 것은 ‘8시간 노동’과 ‘최저임금제’였다. 이는 착취, 빈곤..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