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전체 글

[오늘] 충무공 이순신, 노량(露梁) 해전에서 지다 [역사 공부 ‘오늘’] 1598년 12월 16일, 노량 바다에서 이충무공 전사 1598년 12월 16일, 삼도수군통제사 이순신(李舜臣, 1545~1598)이 노량 앞바다에서 펼쳐진 해전에서 왜군의 총탄에 맞아 숨졌다. “싸움이 급하니 나의 죽음을 알리지 말라.”는 게 그가 남긴 마지막 말이었다. 향년 53세. 일곱 해에 걸친 일본과의 전쟁, 임진왜란(1592~1598)에서 바다를 지켜낸 장수의 최후는 장렬했다. 이순신은 한성 마른내[건천(乾川)]에서 태어나 유년 시절을 보내고 소년기에는 외가인 아산에서 자랐다. 1576년(선조 9년), 무과에 급제한 이래 그 벼슬이 동구비보 권관, 훈련원 봉사, 발포진 수군만호, 조산보 만호, 전라좌도 수군절도사를 거쳐 정헌대부 삼도수군통제사에 이르렀다. 이충무공, 무술.. 더보기
오늘] 국군과 유엔군, 중공군에게 밀려 ‘흥남철수’ 시작 [역사 공부 ‘오늘’] 1950년 12월 15일, 흥남항을 통한 해상 철수 시작 장진호 전투, 그리고 흥남철수 1950년 12월 15일, 미 제10군단과 국군 제1군단은 함경남도 흥남항을 통해 해상 철수를 시작하였다. 12월 23일까지 아흐레 동안 이루어진 흥남철수(興南撤收)로 장진호 전투에서 패배한 국군과 유엔군 등 10만 명이 넘는 병력과 17,500대의 각종 차량, 35만 톤의 물자를 완전하게 철수시켰다. 1950년 12월, 당시 서부전선으로 북진한 제8군은 육로로 후퇴할 수 있었지만, 동부전선 장진호(長津湖) 방면으로 북진한 미 제10군단의 병력은 원산지역이 중공군에게 넘어가자 퇴로가 막혔다. 활로는 해상 철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장진호 전투는 같은 해 11월 27일, 중국 제9병단이 장진호 지.. 더보기
[오늘] 홀로코스트 전범 아이히만 교수형 선고 [역사 공부 ‘오늘’] 1961년 12월 15일, 예루살렘 법정 아이히만에게 교수형 선고 1961년 12월 15일, 이스라엘 정부가 연 예루살렘의 특별 3심 법정은 반인륜적 범죄로 기소된, 유대인 문제에 대한 ‘최종 해결’, 즉 유대인 박해의 실무 책임자 아돌프 아이히만(Adolf Eichmann, 1906~1962)에게 교수형을 선고했다. 전쟁이 끝난 뒤 미군에게 붙잡혔으나, 1946년 포로수용소에서 탈출한 아이히만이 중동지역을 전전하다가 아르헨티나에 정착한 것은 1958년이었다. 그러나 그가 누린 평화는 짧았다. 나치 전범 추적자 지몬 비젠탈(Simon Wiesenthal)과 이스라엘 자원봉사 단체에 의해 정체가 드러난 아이히만은 1960년 5월 11일 부에노스아이레스 근처에서 체포되어 9일 뒤 비밀.. 더보기
‘크리스마스실’, 사고파는 게 아니라 ‘기부’입니다 1932년에 들어온 ‘크리스마스실’과 항결핵 운동 크리스마스실(Christmas Seal)의 계절이 돌아왔다. 크리스마스실(결핵협회 누리집에도 '씰'로 표기하고 있지만 '실'로 써야 옳다)이라면 옛날 생각이 안 날 수가 없다. 초등학교 때는 크리스마스실을 본 기억이 전혀 없다. 중·고 시절에는 아이들 모두가 골고루 크리스마스실을 몇 장씩 받고 대금을 나누어 낸 것 같다. 강매(?)의 반발을 무마하는 방식이었던 셈인데 그걸 불만스러워하지는 않았던 듯하다. 크리스마스실은 우표를 대신해 쓰는 것이 아니니 우리는 그걸 카드나 연하장에 장식처럼 붙여서 썼다. 겉봉 우표 옆이나 봉투 뒷면 풀 붙이는 자리 중앙에다 마치 봉인처럼 붙였다. 우리는 크리스마스실이 결핵과 관련 있다는 것, 그게 편지에다 붙이는 것이라는 것.. 더보기
[오늘] 전두환의 신군부, 군사반란으로 군권 장악하다 [역사 공부 ‘오늘’] 1979년 12월 12일, 전두환 일당, 쿠데타로 군권 장악 1979년 12월 12일 오후 6시, 최규하 대통령에게 육군참모총장 체포 안에 대한 재가를 요청했으나 거절당한 보안사령관 겸 계엄사령부 합동수사본부장 전두환(소장)은 보안사 인사처장 허삼수(대령), 육군본부 범죄수사단장 우경윤(대령)에게 정승화 총장 연행계획을 진행할 것을 지시했다. 오후 7시에 허삼수와 우경윤은 수도경비사령부 33헌병대 소속 병력 50명을 총장 공관에 투입했다. 헌병들은 총장 공관을 지키던 해병대 병력을 제압하고 공관에 난입했다. 이 과정에서 헌병대 사병 1명이 총상을 입고 숨졌다. 7시 21분, 두 장교는 정승화 총장을 보안사 서빙고 분실로 강제 연행했다. 대통령 재가 없는 육참총장 연행, 하극상의 극.. 더보기
[오늘] 기후변화에 관한 유엔 기본협약 ‘교토 의정서’ 채택 [역사 공부 ‘오늘’] 1997년 12월 11일, ‘기후변화에 관한 유엔 기본협약 교토 의정서’ 채택 1997년 12월 11일, 일본 교토(京都) 시내 국립교토국제회관에서 개최된 ‘지구 온난화 방지 교토 회의(COP3) 제3차 당사국 총회’에서 ‘교토 의정서(議定書)’가 채택되었다. 정식 명칭은 ‘기후변화에 관한 유엔 기본협약 교토 의정서’(Kyoto Protocol to the United Nations Framework Convention on Climate Change). 지구 온난화의 규제 및 방지를 위한 국제 협약인 기후변화협약의 수정안인 교토 의정서는 세계가 구축해 온 협력체계 중 가장 대표적인 국제 협약이었다. 교토 의정서는 55개국 이상이 비준하고 비준 당사국 중에서 부속서 1에 해당하는 .. 더보기
[오늘] 대한민국 임시정부, 일본에 선전 포고하다 [역사 공부 ‘오늘’] 1941년 12월 9일, 임정, 일본과 독일에 선전포고 1941년 12월 9일, 충칭(重慶)의 대한민국 임시정부(임정)는 일본과 독일에 대하여 선전포고를 함으로써 본격적인 항일 독립전쟁을 시작하였다. 12월 7일, 일본군이 하와이 진주만의 미군 기지를 기습 공격함으로써 발발한 태평양전쟁이 발발한 지 이틀 만이었다. 임정의 항일독립전쟁은 의열투쟁과 독립군 단체 지원, 광복군 창설 등의 군사 활동으로 이루어지고 있었다. 이봉창과 윤봉길 의거로 대표되는 의열투쟁은 한국 독립에 대한 세계의 여론을 환기한 성과를 거두었으나 일제의 보복을 피해 임정이 중국 각지를 떠돌아야 했다. 1940년 충칭으로 옮겨온 임정은 1940년 9월 17일 광복군을 창설하였다. 지청천을 총사령관으로 한 광복군은 .. 더보기
아이에게 ‘안중근 의사’를 알려주고 싶다면 [서평] 박도 지음,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로 잘 알려진 박도 작가가 어린이를 위한 책 을 사계절 출판사에서 펴냈다. 표지에 그려진 만화 일러스트가 책이 어린이용임을 알려주고 있는데 정작 나는 ‘어린이용’은 어른들 책과 어떻게 다른지 궁금했었다. 안중근(1879~1910) 의사야 설명이 필요 없는, 한국인들이 가장 잘 알고, 가장 좋아하는 독립운동가다. 그의 삶은 많은 책과 드라마, 영화, 그리고 뮤지컬 등으로 재구성되었고, 사람들은 짧지만 강렬한 그의 삶에서 깊은 감명을 받는다. 그는 일제가 한국을 강제병합하기 1년 전에 하얼빈에서 일제의 한국 침탈 주역인 이토 히로부미(1841~1909)를 저격 처단한 뒤, 사형을 선고받고 이듬해 뤼순 감옥에서 교수형으로 순국했다. 그는 “내가 죽은 뒤에 나의 뼈를 하얼..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