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글2453 [오늘] 1979년 오늘-중앙정보부장은 절대권력의 심장을 쏘았다 1979년 10월 26일, 중앙정보부장 김재규 박정희 시해개인의 체험과 역사 사이 언제나 역사 속에 존재하지만, 역사와 자아와의 관계를 인식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한국전쟁과 같은 역사는 그 외연이 워낙 크고 넓어서 그것을 겪은 이들의 공동의 기억으로 환기되곤 한다. 어떤 이에게 죽음의 공포로, 또 어떤 이에게는 굶주림의 고통이나 절망 따위로 전쟁이 떠오르는 형식으로 말이다. 그러나 극적으로 전개된 우리 현대사에서 6월항쟁 같은 기억은 당사자가 아니면 쉽게 추체험할 수 없다. 이런 경우 현장에서의 체험은 역사와 자아와의 관계를 본질적으로 인식할 수 있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 동시대를 살았으나 그것을 체험하지 못한 이들에 비겨 그는 날것의 역사를 겪은 것이기 때문이다. 전후에 태어난 베이비붐 세대들.. 2026. 10. 26. 삼겹살의 추억 스물아홉에 처음 맛본 ‘로스구이’에서 ‘삼겹살’까지*PC에서 ‘가로 이미지’는 클릭하면 큰 규격(1000×667픽셀)으로 볼 수 있음. 삼겹살 이전의 육식 생활 요즘은 ‘국민 고기’가 되어 버렸지만, 우리가 일상적으로 삼겹살 등과 같은 육식을 즐기며 산 지는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시골 출신의 내가 처음으로 고기를 사 먹은 건 대학을 졸업하고 경주 지방의 소읍에 초임으로 발령받은 스물아홉 살 때였다. 한국전쟁 뒤에 태어난 우리 세대는 그 위아래 세대와 마찬가지로 ‘육식’과 관련한 식생활을 제대로 겪지 못한 채 성장했다. 우리가 먹은 고기는 대부분 국의 형태를 띤 ‘고깃국’이었고, 그건 주로 설이나 한가위 같은 명절에 올리려 장만한 것을 차례를 마친 후 식구들이 나누어 먹는 것이었다. 명절 외에는 기.. 2026. 10. 25. [오늘] 봉오동 전투의 홍범도 장군 카자흐스탄에서 지다 [역사 공부 ‘오늘’] 1943년 10월 25일- 홍범도 장군 ,카자흐스탄 알마티에서 떠나다1943년 오늘, 카자흐스탄 알마티의 크즐오르다 시 쓰체브나야 거리 제2번지 자택에서 ‘백두산 호랑이’ 홍범도(洪範圖, 1868~1943)가 파란 많은 삶을 마감했다. 함경도 주민으로부터 ‘총알로 바늘귀도 뚫는 사람’으로 알려진 ‘산 포수’ 출신이었지만 기민한 유격 전술로 일본군을 연파하면서 일본군에게서는 ‘나는 장군[비장군(飛將軍)]’으로 불리었던 항일 무장투쟁사의 전설적 영웅의 임종은, 그러나 쓸쓸했다. 봉오동(1920)과 청산리(1920) 전투의 대승을 이끌었지만, 나라 잃은 독립투사에게는 승리를 즐길 여가조차 주어지지 못했다. 독립군에게 대패한 일제는 간도 일대의 조선인 마을을 초토화하여 1만 명이 넘는 조.. 2026. 10. 25. [오늘] 레이테만 전투와 마쓰이(松井) 오장의 행방 [역사 공부 ‘오늘’] 1944년 10월 23일, 레이테만 전투 시작1944년 오늘(10월 23일), 필리핀 주변 해역에서 제2차 필리핀해전으로 알려진 레이테(Leyte)만 전투가 막을 올렸다. 필리핀의 레이테섬, 사마르(Samar)섬, 루손(Luzon)섬에서 10월 26일까지 미국과 오스트레일리아 해군 연합과 일본제국 해군 사이에서 벌어졌던 이 전투는 2차 세계대전 중 가장 큰 해전이었다. 1942년부터 1944년까지 일본군은 중앙 태평양 지역에서부터 남태평양 지역에 이르기까지 점령하고 있던 지역을 하나씩 잃기 시작했고 솔로몬·비스마르크·애드미럴티 제도(諸島), 뉴기니섬, 마셜군도, 웨이크섬과 같은 지역의 기지는 고립되고 있었다. 2차대전 중 가장 큰 해전, 레이테만 전투 1944년 6월에는 미 해군 .. 2026. 10. 23. 단풍으로 물들어 가는 가을(1) [사진] 익어가는 과실, 물들어 가는 단풍, 그리고 가을꽃*PC에서 ‘가로 이미지’는 클릭하면 큰 규격(1000×667픽셀)으로 볼 수 있음.날은 어느새 10월 하순으로 접어들었다. 9월부터 가을이라고 보면 이미 가을은 깊었다. 단지 고장 난 계절 시계 때문에 여전히 계절을 확신하지 못하는 착시가 있을 뿐이다. 지난 15일과 18일에 북봉산 어귀를 돌아 나오며 찍은 사진을 들여다보며 이 가을을 실감한다. 어느 결엔가 열매도 익었다. 무심히 지나다녔던 아파트 담장 부근의 산수유는 새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빨간 열매를 다닥다닥 달았고, 북봉산 어귀에서 만난 청미래덩굴의 열매도 진홍빛으로 익었다. 중학교 뒤편의 빈 슬레이트집 뒤란에 빽빽하게 감이 달렸고, 골프연습장 앞 밭둑의 감나무도 힘겹게 열매를 늘어뜨리고.. 2026. 10. 22. [오늘] 국민총력전을 위한 친일단체 ‘조선임전보국단’ 결성 [역사 공부 ‘오늘’] 1941년 10월 22일, 친일단체 ‘조선임전보국단’ 결성1941년 오늘(10월 22일), 경성부민관 대강당에서 국민 총력전을 위한 친일단체 조선임전보국단(朝鮮臨戰報國團)이 결성되었다. 대회는 일본인 요인과 윤치호, 최린 등 준비위원과 각도 발기인 대표 등 6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성대하게 베풀어졌다. 조선임전보국단(아래 보국단)은 같은 해 8월에 결성된 흥아보국단 준비위원회와 임전대책협의회가 ‘나라를 위하여 한 몸을 바치자’라고 하는 하나의 목적을 위하여 통합한 것이었다. 보국단의 강령은 황도(皇道) 정신 선양과 사상 통일, 전시체제에서 국민 생활 쇄신 등 다섯 가지였는데 ‘김동환(일제에 엎드려 ‘웃은 죄’)과 이광수(피와 살과 뼈까지 일본인이 되려 했건만)의 대역작’이라는 .. 2026. 10. 22. [오늘] 청산리 전투, 큰 승리로 막을 올리다 [역사 공부 ‘오늘’]1920년 10월 21일, 청산리 백운평에서 일본군 200여 명 전멸시키다1920년 오늘, 중국 길림성 화룡현 삼도구 청산리 백운평(白雲坪)에서 이범석이 지휘하는 북로군정서(총사령관 김좌진) 제2제대가 일본군 보병 19사단 야스카와 지로(安川二郞)의 전위부대 200여 명을 교전 20여 분만에 전멸시켰다. 첫 전투의 승리로 청산리 전투가 시작된 것이었다. 청산리 전투는 좁게는 이 백운평 전투를 이르지만 이후 전개된 김좌진(1889~1930)의 북로군정서군(北路軍政署軍)과 홍범도가 이끄는 대한독립군 등을 주력으로 한 독립군 부대가 청산리 일대에서 10여 회의 교전 끝에 일본군을 대파한 전투를 포괄한다. 백운평 전투의 승리로 시작된 청산리 대첩 뒷사람들이야 전설처럼 전승되는 이 독립전쟁.. 2026. 10. 20. 아무리 ‘폰의 시대’래도 카메라는 DSLR이지! 스마트폰 카메라, 갤럭시든 아이폰이든 ‘한계’는 넘지 못한다*PC에서 ‘가로 이미지’는 클릭하면 큰 규격(1000×667픽셀)으로 볼 수 있음. DSLR 카메라 사용자의 편견? 선입견? 어쨌든 디에스엘아르(DSLR : 디지털 일안 반사식 카메라, Digital Single-Lens Reflex) 카메라를 지닌 지 20년을 넘겼다. 첫 DSLR은 펜탁스의 K 마운트 규격을 그대로 가져온 삼성 GX-10이었는데, 나는 곧 GX-10의 기반 모델인 펜탁스 K-10D로 옮겨갔다. [관련 글 : 카메라, 카메라 / 카메라, 카메라 (2)] 그 뒤 몇 해 간격으로 나는 펜탁스 K-5로 업그레이드했고, 이어서 K-3를 거쳐 풀프레임인 K-1에 이르렀다. 앞선 편은 아니지만, 대체로 때맞추어 기종을 바꿔가면서 카메라를.. 2026. 10. 17. [오늘] ‘유신독재’의 시작(10월유신)과 붕괴(부마항쟁) [역사 공부 ‘오늘’] 1972년 10월 17일, 박정희 영구집권 쿠데타 ‘10월유신’ 선언1972년 오늘(10월 17일), 대통령 박정희는 위헌적 계엄과 국회해산과 헌법 정지 등을 골자로 하는 대통령 특별선언을 발표했다. 삼선개헌에 이어 국회해산과 헌법 일부 조항의 정지, 헌법개정안과 국민투표 계획 등을 내용으로 하는 4가지 비상조치를 통해 그는 민주 헌정을 파괴하고 영구집권을 위한 절차에 돌입한 것이었다.10월유신, 박정희의 영구집권 쿠데타박정희의 특별선언은 10월 17일 발표 당시에는 특별선언, 특별조치, 비상선언, 비상조치, 유신적 조치 등으로 불리다가 10월 27일에 ‘10월 유신(維新)’이라는 이름으로 통일되었다. 이는 일본의 메이지 유신(明治維新)을 원용한 것이었다.특별선언 발표 뒤, 박정희.. 2026. 10. 17. [순국] 박용만, 항일무장투쟁의 꿈을 남기고 총탄에 스러지다 [역사 공부 ‘오늘’] 1928년 10월 17일, 박용만, 항일무장투쟁의 꿈과 함께 지다1928년 10월 17일, 베이징(北京)의 대본농간공사((大本農墾公司)에서 우성(宇醒) 박용만(朴容萬, 1881~1928)이 한인 청년 이해명의 총을 맞고 쓰러졌다. 1909년 미국 네브래스카(Nebraska)주에서 한인 소년병학교를 세운 이래, 오직 항일무장투쟁의 꿈을 이루고자 진력해 온 독립운동가의 꿈도 스러졌다. 향년 47세. 박용만은 강원도 철원 출신이다. 한성일어학교(漢城日語學校)를 다닌 뒤 1895년(고종 32) 관립유학생으로 선발되어 숙부와 함께 일본으로 건너가 중학교를 졸업하였다. 중학 졸업 후 한국 개화사상 형성에 한 줄기를 이룬 게이오의숙(慶應義塾) 정치과에서 공부하였다고 하나, 이 학교 졸업생 명단.. 2026. 10. 17. 느릅나무, ‘단풍’도 곱디곱다 한강 난지공원에서 만난 느릅나무 단풍*PC에서 ‘가로 이미지’는 클릭하면 큰 규격(1000×667픽셀)으로 볼 수 있음.이태 전 춘천박물관에서 만난 느릅나무 ‘느릅나무’는 눈과 귀에는 설지 않은 이름의 나무지만, 나는 그 나무를 알지 못했다. 그런데 2024년 7월, 국립춘천박물관 앞마당에서 키 큰 느릅나무 한 그루를 만나면서 처음으로 그 나무를 의미 있는 존재로 받아들이게 되었다. 시원하게 뻗은 나무 모양도 좋았지만, 좀 작지 않은가 싶은 단정한 잎사귀가 아주 인상적이어서다. 그러나 느릅나무는 주위에도 있다 그러고는 한동안 느릅나무는 잊어버리고 살았다. 느릅나무가 집 밖에 나가면 아무 데서나 만날 수 있는 나무가 아니었으니 말이다. 그러다가 구미의 강정 습지에서 느릅나무를 한 그루를 만난 데 이어, 아.. 2026. 10. 15. [오늘] 프랑스 비시 정부 총리 라발 총살되다 [역사 공부 ‘오늘’] 1945년 10월 15일, 비시 프랑스 라발 총리 총살형 집행 1945년 10월 15일, 2차 세계대전 중 나치 독일 점령 하의 남부 프랑스를 통치(1940~1944)한 괴뢰정권 비시 정부(Vichy France)의 총리 피에르 라발(Pierre Laval, 1883~1945)이 국가반역죄로 총살되었다. 그것은 비시 정부의 국가수반 페탱(Pétain, 1856~1951)과 함께 나치 협력자에 대한 숙청의 하이라이트였다.[관련 글 : 1951년 오늘 - 페탱 원수 사망과 프랑스의 과거사 청산] 비시 체제 2인자, 반역죄로 총살되다 1940년 페탱에 전권을 위임하는 상·하원의원 투표를 성사시킴으로써 비시 체제 탄생의 산파 역할을 했고 그해 12월까지는 ‘부총리’를 역임했던 라발은 비시.. 2026. 10. 15. 이전 1 2 3 4 ··· 205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