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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바람과 먼지의 세상, 그 길 위에 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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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북한, 남한 이어 단독 정권 수립 [역사 공부 ‘오늘’] 1948년 9월 9일 – 북한, 사회주의 정권 수립남한 정부 수립 25일 만에 북한도 정권 수립 1948년 9월 9일, 북위 38도선 이북의 한반도 반쪽, 평양에서 김일성을 수반으로 하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인공)이 수립되었다. 38도선 이남의 남쪽 절반, 서울에서 이승만을 대통령으로 하는 단독정부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8.15.)된 지 25일 만이었다. 같은 해 4월, 남한만의 단독 총선거를 반대하고 김규식·조소앙 등과 함께 남북협상을 통해 민족자결주의 원칙에 입각한 통일을 모색하고자 한 김구의 평양행은 실패로 돌아갔다. 김구를 비롯한 남한 대표들이 평양에 도착하기 전에 이미 북한의 공산주의자들은 전 조선 정당 사회단체 대표자 연석회의를 소집하여 28명의 주석단을 선출해 놓고 .. 2026. 9. 9.
[순국] 간도 국민회군 사령관 안무 장군 전사 1924년 9월 7일, 대한국민회군 사령관 안무 장군 순국1924년 9월 7일, 대한국민회군 사령관 안무(安武,1883~1924) 장군이 용정(龍井) 자혜 병원에서 숨을 거두었다. 일본 경찰과 교전하다가 중상을 입고 병원에 이송된 그는 일제의 치료를 거부하고 죽었다. 향년 41세. 자유시 참변(1921) 이후 북간도 일대에서 활동하던 그는 전날, 일경의 습격을 받아 모아산 부근에서 교전하다가 복부에 총상을 입고 체포되었었다. [관련 글 : 1921년 오늘-대한독립군단 총재 서일, 자결 순국하다] 일제의 치료 거부하고 순국 안무는 함경북도 경성 사람이다. 호는 청전(靑田), 본명은 안병호다. 1900년 대한제국 육군 진위대(鎭衛隊)에 입대하여 해산(1907)될 때까지 교련관으로 일하였다. 이후 경성의 함.. 2026. 9. 7.
⑮ 백로(白露), 벼가 여물어가는 분기점 백로(白露), 가을의 세 번째 절기처서(處暑)를 지나면서 무더위는 한풀 꺾였다. 30도를 넘는 폭염이 계속되다가 거짓말처럼 기온이 30도 아래로 떨어졌고, 아침저녁으로는 한기를 느낄 만큼 일교차가 커졌다. 사람들은 저마다 ‘절기’를 속이지 못한다고 입을 모은다. 24절기가 태양의 움직임을 기준으로 해서 만들어졌다는 사실을 새삼 확인하는 것이다. 9월 8일(2026년도는 7일)은 백로(白露), 24절기의 열다섯 번째, 가을의 세 번째 절기다. 처서(8.23.)와 추분(9.23.) 사이에 드는 백로는 ‘흰 이슬’이라는 뜻으로 이 시기에 밤에 기온이 이슬점 이하로 내려가 풀잎이나 물체에 이슬이 맺힌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다. 백로는 가을 기운이 완연해지는 시기로 옛날 중국 사람들은 백로부터 추분까지의 시기를 .. 2026. 9. 7.
[사진] 가을의 어귀, 9월의 열매들 익어가는 가을, 익어가는 과실들*PC에서 ‘가로 이미지’는 클릭하면 큰 규격(1000×667픽셀)으로 볼 수 있음.‘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여름’이 될 거라던 여름이 가고, 마치 거짓말처럼 선선한 날씨가 이어지고 있다. 지난해에도 9월 내내 더웠으니, 올해도 그러려니 했는데, 갑자기 태세를 바꾼 날씨 앞에 어리둥절해진다. 오늘 새벽에 학교 운동장을 도는데 기온은 20도 이하, 드러난 팔뚝을 간지럽히는 바람이 선득하다고 느꼈을 정도였다. 기상청에서 직접 제공하는 앱, ‘날씨알리미’의 일별 예보는 오늘(5일)부터 15일까지 열흘 동안, 최저 17도에서 최고 29도까지고, 오늘을 지나면 26도까지 떨어지는 날도 있다고 알려준다. 이쯤 되면 ‘가을이 대세’라고 말해도 될지도 모르겠다. 냉방기(에어컨)를 안 .. 2026. 9. 5.
상좌원의 독립운동가들, 연안 이씨 세 형제들 파리장서운동을 같이하다 조선독립후원의용단장 이명균 의사와 4·6촌 형제 이석균·이경균 선생*PC에서 ‘가로 이미지’는 클릭하면 큰 규격(1000×667픽셀)으로 볼 수 있음. 지난 8월 광복절 전날에 배롱나무꽃을 보러 김천시 구성면 상좌원리에 들렀다가 뜻밖의 독립운동가 세 분을 만났었다. 방초정과 상좌원리 사이에 있는 배롱나무 꽃길을 찾으러 들어가다가, 마을 한쪽에 조성된 독립운동가 유적지를 먼저 만난 것이다. [관련 글 : 배롱나무의 ‘발견’, 그 화사함도 은은하다] 우연히 만나게 된 상좌원의 독립운동가, 이명균 의사 붉은 꽃이 핀 배롱나무를 등지고 이명균(1863~1923, 1968 건국훈장 독립장) 의사의 흉상이 서 있었고, 그 옆에 유허비와 2층 정자 모훈정(慕勳亭)이 세워져 있었다. 흉상 옆 오석(烏石)에 새겨진 안내.. 2026. 9. 4.
이방인의 시선에 잡힌 한국, 한국 문화, 한국의 소프트파워 문화 자부심의 원조 프랑스 여성의 ‘한국 탐구’ - “아파도 인정할 건 해야 한다”며칠 전에만 해도 나는 “눈팅꾼의 얼치기 ‘한국 유튜브’론”을 썼었다. ‘눈팅꾼’이란 거의 매일 유튜브를 들여다보고 있으면서도, 스스로 거기 푹 빠져 있지 않다고 생각하는 자의식이 붙인 이름이고, 하여 당연히 ‘한국 유튜브론’도 ‘얼치기’라고 쓴 것이다. [관련 글 : 눈팅꾼의 얼치기 ‘한국 유튜브’론] 나는 내가 직접 보고 들으며 느낀 유튜브의 경향성을 10개에 걸쳐 제시했다. 이 땅에서 생산되는 모든 유튜브 채널을 섭렵한 것도, 그걸 일일이 시청하지도 않으면서 섣부르게 들이댄 내 논지는 기본적으로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는 이유다. 또, 나는 정작 좋은 채널이라고 여기게 된 유튜브는 따로 이야기하지 않았다. 좋은 채널이라.. 2026. 9. 2.
[오늘] 63명의 ‘비전향 장기수’들, 북으로 송환하다 [역사 공부 ‘오늘’] 2000년 9월 2일, 김대중 정부, 비전향 장기수들 북 송환2000년 9월 2일에 63명의 비전향 장기수들이 북녘으로 송환됐다. 이들은 1993년 송환된 이인모와 마찬가지로 판문점 중립국 감독위원회 회의실을 거쳐 북으로 되돌아갔다. 이는 민가협 양심수후원회 등 인권, 종교, 사회단체로 구성된 ‘비전향 장기수 송환추진위원회’의 노력과 함께 석 달 전에 남북 정상이 공표한 ‘6·15 공동선언’의 합의를 충실한 이행한 것이었다. 6·15 공동선언의 합의의 3항에 명시된 ‘비전향 장기수 문제를 해결’한다는 합의는 다음과 같았다. 3. 비전향 장기수 송환① 남측은 북으로 갈 것을 희망하는 비전향 장기수 전원을 2000년 9월 초에 송환한다.② 남측은 북으로 갈 것을 희망하는 비전향 장기수.. 2026. 9. 2.
[오늘] 관동대지진 - 유언비어와 위기의 희생양, 조선인 학살 [역사 공부 ‘오늘’] 1923년 9월 1일, 대지진 일본 중심부 강타, 조선인 2만여 명 학살되다1923년 오늘, 11시 58분(일본 표준시)에 리히터 규모 7.9의 강진이 일본의 중심지 도쿄와 간토(관동關東) 일대를 강타하였다. 환태평양지진대의 일본 열도는 크고 작은 지진이 빈발하였지만, 이 지진은 일본이 메이지유신 후 근대사회로 진입하여 맞이한 최대의 재난이었다. 대지진은 도쿄를 비롯한 관동 일대에 치명적 타격을 입혔지만, 계엄령이 선포된 가운데 현지의 조선인들은 지진으로 인한 피해보다 더 끔찍한 만행의 표적이 되었다. 지진 발생 다음 날(9.2.)부터 일본의 군경과 민간인들이 무고한 조선인들을 학살하기 시작한 것이었다. 규모 7.9의 강진, 사상 최대의 피해 도쿄, 요코하마를 중심으로.. 2026. 8. 31.
눈팅꾼의 얼치기 ‘한국 유튜브’론 유튜브를 ‘배회’하며 바라본 우리나라 유튜브의 경향성난 언제부터 유튜브를 보기 시작했을까. 정확히 기억나지는 않지만, 재바른 사람들보다는 좀 늦고, 느린 사람들보다는 조금 빨랐을 것이다. 유튜브에 가입한 날짜는 2020년 4월이지만, 그때부터 유튜브를 즐기지는 않았을 것이다. 한 1년쯤의 과도기를 설정해 준다면, 유튜브를 본격적으로 즐기기 시작한 것은 한 5년 남짓으로 볼 수 있을 듯하다. 주마간산에 이어 ‘아웃사이더’의 시선으로 바라본 유튜브 블로그를 운영하고 있지만, 이웃을 만들고, 마실을 다니는 따위의 기본 활동조차 하지 않을 정도니, 채널을 개설하지도 않은 유튜브에서는 나는 ‘아웃사이더(Outsider)’일 수밖에 없다. 하루 중 꽤 여러 번 유튜브에 접속하여 각종 영상을 돌아보곤 하지만, 괜찮.. 2026. 8. 31.
[오늘] 경술국치 - 대한제국, 일본에 강제 편입되다 [역사 공부 ‘오늘’] 1910년 8월 29일 한일합병조약 공포1910년 오늘, 대한제국과 일본제국 간 한일합병조약이 공포되었다. 이 조약은 이미 지난 8월 22일, 내각 총리대신 이완용과 제3대 한국 통감인 데라우치 마사타케(寺內正毅)가 형식적인 회의를 거쳐 조인한 것이었다. 이미 조인된 조약이었지만 일본은 이를 발표하지 않고 있다가 일주일 만인 이날, 순종황제의 조칙 형태로 발표했다. 이 조약이 공포됨에 따라 대한제국은 일본제국에 강제 편입되면서 국가의 지위를 잃고 역사의 무대에서 사라졌다. 일제는 ‘일한병합(日韓倂合)’이라고 부르고 우리나라에서는 ‘경술년의 국가적 치욕(경술국치)’이라 기록하는 역사는 그렇게 이루어졌다. 합병 이후, 한반도는 일본제국 영토의 일부가 되어 ‘일본 제국령 조선(Kor.. 2026. 8. 28.
[오늘] 킹 목사, ‘자유와 민주주의의 꿈’을 이야기하다 [역사 공부 ‘오늘’] 1963년 8월 28일-마틴 루서 킹, “나에겐 꿈이 있습니다” 연설1963년 8월 28일 수요일, 햇살은 뜨거웠지만,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이 맑았다. ‘일자리와 자유’를 요구하며 링컨 기념관까지 행진해 온 25만 시민의 환호 속에 기념관 난간(발코니)에 서른네 살의 지도자, 마틴 루서 킹 주니어(Martin Luther King, Jr. 1929~1968) 목사가 모습을 드러냈다. 킹은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I Have a Dream)’라는 연설로 차별 없는 세상을 만들자고 호소하기 시작했다. 흑인이든 백인이든, 유대인이든, 개신교든, 가톨릭이든, 모두 손을 잡고, ‘자유가 왔다’는 흑인영가를 부를 수 있는 날을 만들자고 역설했다. 흑백 평등과 공존 요구한 명연설, “나에.. 2026. 8. 28.
그 새벽의 노래, ‘아침이슬’ 세상에 나오다 [역사 공부 ‘오늘’] 1970년 8월 28일, 김민기 쓴 노래 ‘아침이슬’ 세상에 나오다1970년 오늘(8월 28일), 서울대 미대 재학생 김민기(1951~ )가 쓴 ‘아침이슬’이 세상을 첫선을 보였다. 이 노래는 다음 해 과 양희은(1952~ )의 첫 음반 에 수록되면서 대중의 사랑을 받기 시작했다. ‘아침이슬’은 같은 음반에 실린 ‘세노야’와 함께 무명의 대학생 양희은을 가수의 반열에 세워준 대표곡이 되었다. 대중들은 가요를 즐기면서 그것을 작곡자가 아니라 가수의 것으로 기억하니 말이다. 뒷날, 양희은이 ‘아침 이슬’이 없었다면 자신이 가수가 되지 못했을지도 모른다고 회고한 것도 그래서일 것이다. 김민기가 짓고 양희은이 부른 ‘아침 이슬’ 작곡가와 가수라는 관계를 떠나 김민기와 양희은의 만남을 그들.. 2026. 8. 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