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이 바람과 먼지의 세상, 그 길 위에 서서

전체 글1387

소와 아버지에게 바치는 <워낭소리> 아내와 함께 대구 동성아트홀에서 상영하고 있는 다큐멘터리 영화 를 보고 왔다. 지난해 3월 를 본 이후 거의 1년 만이다. 이 도시에는 다큐멘터리 상영관도 없고 괜찮은 예술영화 따위도 들어오지 않는다. 챙기지 않으면 못 보겠다 싶어서 서둘러 나는 난생처음으로 인터파크에서 표를 예매했고 부리나케 대구를 다녀온 것이다. 대충 위치가 거기쯤이라는 걸 알고 있었지만, 거의 10년 만에 찾은 도심은 낯설었다. 영화관은 도심의 한 빌딩 3층이었다. 좁고 가파른 계단을 오르면서 아내는 ‘불나면 큰일 나겠다’고 중얼거렸다. 워낙 화제가 되어서인가, 200여 석의 자리가 관람객으로 꽉 찼다. 자리는 좁고 불편했지만, 관객들은 숨을 죽이고 화면을 바라보았다. 낡고 오래된 상영관이어서였을까. 영화의 타이틀 백이 오르면서 등.. 2021. 4. 14.
그 딸의 ‘좌익 아버지 찾기’와 역사적 진실 ‘국내파 사회주의자들의 최후 집결체’ 경성 콤그룹의 핵심 이관술과 그 유족 이야기 사회주의자 이관술(李觀述, 1902~1950)을 이름으로나마 처음 만난 건 지난해 봄, 최백순의 을 읽으면서였다. ‘알려지지 않은 별, 역사가 된 사람들’이라는 부제가 달린 이 만만찮은 저작을 읽으면서 나는 당황했고, 이동휘와 박헌영, 김재봉과 권오설 등의 그나마 익숙한 이름들 사이로 튀어나오는 낯선 이름들의 이력 앞에서 절망했다. 그것은 임시정부를 포함해, 망명지 중국 땅에서 펼쳐진 독립운동사를 공부하면서 나름 잘 알고있다고 여겼던 한국 현대사의 어떤 부분에 대해 내가 ‘완전히 무지’하다는 통렬한 깨달음 탓이었다. 조선공산당 초대 책임비서 김재봉을 비롯한 5인의 ‘사회주의 독립운동가’ 기사는, 그런 상황에서 당대의 역사적.. 2021. 4. 13.
영남 ‘성골’ 유권자에게 뛰어든 서른넷 여성 구미시 갑 선거구 민중연합당 남수정 후보를 찾아서 4·13 총선거가 꼭 일주일 앞으로 다가왔다. 공천과정에서 유례없는 막장을 연출해 유권자들의 정치혐오를 불러일으켜 놓고선 정치권은 이제 바야흐로 표를 달라고 아우성이다. 처음엔 ‘일여다야’ 구도라더니 이제 일부 지역에서도 ‘다여’가 되면서 선거는 결과를 쉽게 점칠 수 없는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바야흐로 정치의 계절이 왔지만 정작 유권자들이 선거 열기를 느끼지 못하는 곳도 적지 않다. 뻔한 구도로 이루어지는 선거, 결과야 ‘안 봐도 비디오’인 곳이 영남에 좀 많은가 말이다. 그중에서도 2000년 제16대 총선 이후, 단 한 명의 야당 선량도 내지 못한 영남 보수의 ‘성골(聖骨)’ 경상북도의 경우, 선거는 요식절차와 다르지 않다. 40년 영남 진보 유권자의.. 2021. 4. 13.
‘boggi’, 어떻게 읽을까 ‘boggi milano’라는, 이탈리아에서는 꽤 알려진 패션 브랜드가 이번에 국내에 들어오는 모양이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예의 브랜드 발음이 좀 ‘거시기’해 수입사 쪽에서 고민 끝에 그 발음을 이 나라 ‘미풍양속’에 저촉되지 않는 선에서 결정했다는 소식[관련 기사 바로 가기]이 있었다. 그렇다. 애당초 브랜드 철자 중 ‘g’가 마땅히 ‘ㄱ’ 발음일 거로 생각했던 수입사 측에선 문제의 발음이 불길하게도(!) ‘ㅈ’으로 발음된다는 사실을 알고 적잖이 당황했다고 한다. 인터넷에서 ‘boggi, it’s your style‘이라는 브랜드 슬로건이 나온다. 바지런한 누리꾼들은 이 브랜드가 한글 표기를 어떻게 할지에 집중되었는데 ‘봇찌’설과 ‘보우쥐’설이 맞섰다고. ‘Boggi’, ‘보기’로 읽기로 하다 한국에.. 2021. 4. 12.
“미래를 위해 생각을 매도해야 하는 사회가 무섭다” ‘자기 검열’을 강요하는 ‘불온’한 사회 ‘불온(不穩)’의 사전적 의미는 “①온당하지 않음. ②(일부 명사 앞에 쓰여) 사상이나 태도 따위가 통치 권력이나 체제에 순응하지 않고 맞서는 성질이 있음.”이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이 말은 ②의 뜻으로 널리 쓰인다. 불온사상, 불온서적, 불온 학생, 불온 인사, 불온한 태도……, 등에서처럼. ‘불온’의 정치 사회학적 의미 ‘불온’의 반대편에 ‘온건(穩健)’이 있음을 추정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온건’의 뜻풀이는 ‘생각이나 행동 따위가 사리에 맞고 건실함.’이다. 그러나 그 속뜻은 ‘사상이나 태도 따위가 통치 권력이나 체제에 순응하고, 맞서는 성질이 없음.’으로 보는 것이 더 합당한 까닭도 거기에 있다. ‘불온’이 매도당하고 백안시되는 것은 ‘온건’이 그.. 2021. 4. 11.
63세 라이더, 세계를 향해 페달을 밟다 일단 그의 파란 많은 삶에 대해선 줄이기로 한다. 적어도 60년쯤 산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만그만한 삶의 굴곡과 사연쯤은 장편소설 분량으로 갖고 있을 터이니 말이다. 초년에 부모의 품을 떠나 완고한 양부(養父) 슬하에서 자랐다거나 그 사춘기가 만만찮았다는 건 굳이 숨길 필요가 없겠다. 한창때엔 적지 않은 돈을 벌었고, 당연히 그걸 까먹고 재기하겠노라고 용을 쓴 세월도 짧지 않았다. 젊은 시절부터 시작한 스쿠버 활동을 통해 수중(水中) 사진을 오래 찍었고, 특별히 글쓰기의 경험이 없는데도 불구하고 한 스쿠버 관련 잡지에 꾸준히 글을 썼다. 에도 잠깐 ‘물 이야기’를 연재했다. 도시 생활을 청산하고 동해의 한적한 어촌에 살기 시작한 십여 년 전에 그는 산악자전거(MTB)에 입문했다. 타고난 체력과 승부욕이 짧.. 2021. 4. 10.
[사진] 봄 아닌 봄, 벚꽃 행렬 오늘을 투표일이 아니라 흔치 않은 임시 공휴일로만 이해한 이들이 훨씬 많았나 보다. 11시쯤 가족들과 함께 인근 투표소로 가 투표를 했다. 노인대학 로비에 마련된 투표소는 한산했다. 선관위에서 예측하듯 투표율은 시원찮은 모양이다. 허리가 잔뜩 굽은 안노인 한 분이 힘겹게 투표소를 나서는 걸 보고, 딸애가 그랬다. “할매, 집에서 쉬시지 않고선…….” 아내가 초를 쳤다. “말조심해라. 그러다가 경친 일도 있지 않아?” 지난 2004년 총선 때의 촌극을 떠올리면서 우리는 멋쩍게 웃었다. 노인이 던진 표의 무게가 내 그것과 다르지 않을 터이지만, 노인의 위태한 행보를 물끄러미 바라보는 기분은 씁쓸하다. 오늘 아침 의 머리기사는 “총선 ‘계급 배반’의 오류 범하지 맙시다”였다. 노인은 ‘자신의 사회·경제적 이해.. 2021. 4. 9.
항저우 서호(西湖)와 ‘공산주의’ 항저우(杭州)에 들른 것은 지난 1월 임시정부 노정 답사단 여정의 둘째 날이었다. 우리는 임시정부 항주 시기의 첫 청사였던 군영반점에서 하룻밤을 묵었다. 이튿날에는 임시정부 항주 옛터 기념관을 거쳐서 전장(鎭江)으로 떠나기 전에 짬을 내 서호(西湖)에 들른 것이다. 항저우(杭州)는 장강(長江) 델타 지역에 자리 잡은 저장성(浙江省)의 성도(省都)다. 중국의 7개 고도(古都) 가운데 하나로 손꼽히는 이 도시는 수나라 때 건설된 대운하의 남쪽에 자리 잡고 있어 일찍부터 대운하를 이용한 상업이 발달하였다. 10세기에 항저우는 난징(南京)과 청두(成都)와 함께 남송(南宋) 문화의 중심지였다. 12세기 초부터 1276년 몽골이 침입하기까지 남송의 수도였는데, 이때는 임안(臨安)으로 불리었다. 당시 북쪽엔 여진이 .. 2021. 4. 8.
‘붓두껍’을 잡으면 ‘세상이 변한다’? 제19대 국회의원 총선거가 사흘 앞으로 다가왔다. 시가지 곳곳에 붙은 후보자의 펼침막과 선거 포스터, 수업 시간에도 들려오는 후보자들의 유세 방송 소음 따위가 총선거의 임박을 환기하지만 정작 사람들은 무덤덤하기만 하다. 1월에 이곳으로 이사했고, 새 임지에서 근무를 시작한 지 한 달이 지났지만, 여전히 구미는 낯설다. 에서 ‘총선 특별취재’를 도와달라는 요청을 받았지만 총선 관련해서 정말 ‘아무것’도 하지 않은 까닭이 거기에 있다. 주변에 이번 선거에 관심 있는 이들도 없는데다가 정작 새 학년이 시작되면서 수업과 업무에 바빠 한갓지게 선거판에 눈을 돌릴 틈이 없었기 때문이다. 바쁘기도 했지만 그런 ‘무심’의 바닥에는 안동에서 18대 총선을 치를 때와 마찬가지로 이 ‘보수 본향’에서의 선거란 뻔하지 않겠느.. 2021. 4. 7.
‘사내애’들에 ‘적응하기’ 한 달 남학교에 와서 사내아이들과 수업을 한 지 한 달이 지났다. 사내아이들을 겪지 않은 것도 아니면서도 어쩐지 적응하는 게 쉽지 않았다. 공교롭게도 내가 맡은 반은 모두 이과 반이다. 문과 반도 국어보다 수학을 잘한대서 ‘수학고등학교’라고도 불린다는 학교다. 수학적으로 사고하기를 즐기는 아이들에게 ‘문학’은 좀 멀다. 그건 감성과 이성 양 측면에서 모두 그렇다는 얘기다. 남학생과 여학생의 ‘차이’ 비슷한 학력을 가진 집단이라면 여학생들은 언어영역에서 남학생은 수리 영역에서 평균 3, 4점 이상의 차이를 보이는 게 보통이다. 단순한 성별 차이가 아니라 뇌 구조 상으로도 증명되는 경향이란다. 그래서일까, 전임지에서의 국어 시간이 은근히 그리워지기까지 한다. 전임지에서 겪은바 여자아이들은 국어 시간에 놀라운 집중력.. 2021. 4. 6.
스마트폰으로 담은 산길의 봄 “사진은 비록 똑딱일지언정 전용 사진기로 찍어야 한다.” 디지털카메라로 사진을 찍어온 지 10년이 넘었는데도 여전히 아마추어를 면하지 못하고 있으면서도 내가 줄곧 외쳐온 구호다. 똑딱이에서 시작해서 이른바 디에스엘알(DSLR) 중급기를 만지고 있는 지금까지 나는 ‘좋은 사진’(‘마음에 드는 사진’이라는 표현이 더 정확할지 모르겠다.)을 위해서 길을 떠날 때 카메라를 지녀야 하는 성가심과 고역을 감수해 온 것이다. 2G폰 시절부터 스마트폰을 쓰는 지금까지 휴대전화의 카메라 기능을 이용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제한적이었다. 부득이할 때에 보조 촬영의 기능으로만 그걸 써 왔다는 얘기다. 함부로 카메라를 들이대기 어려운 장례식에서나 사진을 찍어야 하는데 준비되지 않은 상황에서만 부득이 휴대전.. 2021. 4. 6.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 산동네의 봄 안동시 태화동 ‘말구리길’은 안동에서 가장 먼저 봄이 오는 곳이다. 물론 그것은 전적으로 내 생각일 뿐이다. 몇 해 전, 말구리재에 이어진 야산을 거닐다가 그해 처음으로 생강나무꽃과 매화를 만난 곳이 말구리길이기 때문이다. 말구리길은 태화동에서 송현동으로 넘어가는 고개인 ‘말구리재’ 이쪽의 야산 아랫동네를 일컫는다. 말구리길은 지금까지 사용하고 있는 지번 위주의 주소체계를 도로이름과 건물번호를 부여하여 관리하는 새로운 주소체계를 따라 붙인 이름이다. ‘말구리’라는 지명은 전국 곳곳에 흩어져 있는데 다른 데는 어떤지 모르지만 태화동 말구리는 ‘말이 굴렀다’는 뜻을 담고 있다. ‘말’에 ‘구르다’는 동사의 어간(‘구르-’)에 명사를 만들어주는 접사 ‘-이’가 붙어서 이루어진 말이 ‘말구리’가 된 듯하다. 후.. 2021. 4. 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