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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바람과 먼지의 세상, 그 길 위에 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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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폰의 시대’래도 카메라는 DSLR이지! 스마트폰 카메라, 갤럭시든 아이폰이든 ‘한계’는 넘지 못한다*PC에서 ‘가로 이미지’는 클릭하면 큰 규격(1000×667픽셀)으로 볼 수 있음. DSLR 카메라 사용자의 편견? 선입견? 어쨌든 디에스엘아르(DSLR : 디지털 일안 반사식 카메라, Digital Single-Lens Reflex) 카메라를 지닌 지 20년을 넘겼다. 첫 DSLR은 펜탁스의 K 마운트 규격을 그대로 가져온 삼성 GX-10이었는데, 나는 곧 GX-10의 기반 모델인 펜탁스 K-10D로 옮겨갔다. [관련 글 : 카메라, 카메라 / 카메라, 카메라 (2)] 그 뒤 몇 해 간격으로 나는 펜탁스 K-5로 업그레이드했고, 이어서 K-3를 거쳐 풀프레임인 K-1에 이르렀다. 앞선 편은 아니지만, 대체로 때맞추어 기종을 바꿔가면서 카메라를.. 2026. 10. 17.
[오늘] ‘유신독재’의 시작(10월유신)과 붕괴(부마항쟁) [역사 공부 ‘오늘’] 1972년 10월 17일, 박정희 영구집권 쿠데타 ‘10월유신’ 선언1972년 오늘(10월 17일), 대통령 박정희는 위헌적 계엄과 국회해산과 헌법 정지 등을 골자로 하는 대통령 특별선언을 발표했다. 삼선개헌에 이어 국회해산과 헌법 일부 조항의 정지, 헌법개정안과 국민투표 계획 등을 내용으로 하는 4가지 비상조치를 통해 그는 민주 헌정을 파괴하고 영구집권을 위한 절차에 돌입한 것이었다.10월유신, 박정희의 영구집권 쿠데타박정희의 특별선언은 10월 17일 발표 당시에는 특별선언, 특별조치, 비상선언, 비상조치, 유신적 조치 등으로 불리다가 10월 27일에 ‘10월 유신(維新)’이라는 이름으로 통일되었다. 이는 일본의 메이지 유신(明治維新)을 원용한 것이었다.특별선언 발표 뒤, 박정희.. 2026. 10. 17.
[순국] 박용만, 항일무장투쟁의 꿈을 남기고 총탄에 스러지다 [역사 공부 ‘오늘’] 1928년 10월 17일, 박용만, 항일무장투쟁의 꿈과 함께 지다1928년 10월 17일, 베이징(北京)의 대본농간공사((大本農墾公司)에서 우성(宇醒) 박용만(朴容萬, 1881~1928)이 한인 청년 이해명의 총을 맞고 쓰러졌다. 1909년 미국 네브래스카(Nebraska)주에서 한인 소년병학교를 세운 이래, 오직 항일무장투쟁의 꿈을 이루고자 진력해 온 독립운동가의 꿈도 스러졌다. 향년 47세. 박용만은 강원도 철원 출신이다. 한성일어학교(漢城日語學校)를 다닌 뒤 1895년(고종 32) 관립유학생으로 선발되어 숙부와 함께 일본으로 건너가 중학교를 졸업하였다. 중학 졸업 후 한국 개화사상 형성에 한 줄기를 이룬 게이오의숙(慶應義塾) 정치과에서 공부하였다고 하나, 이 학교 졸업생 명단.. 2026. 10. 17.
느릅나무, ‘단풍’도 곱디곱다 한강 난지공원에서 만난 느릅나무 단풍*PC에서 ‘가로 이미지’는 클릭하면 큰 규격(1000×667픽셀)으로 볼 수 있음.이태 전 춘천박물관에서 만난 느릅나무 ‘느릅나무’는 눈과 귀에는 설지 않은 이름의 나무지만, 나는 그 나무를 알지 못했다. 그런데 2024년 7월, 국립춘천박물관 앞마당에서 키 큰 느릅나무 한 그루를 만나면서 처음으로 그 나무를 의미 있는 존재로 받아들이게 되었다. 시원하게 뻗은 나무 모양도 좋았지만, 좀 작지 않은가 싶은 단정한 잎사귀가 아주 인상적이어서다. 그러나 느릅나무는 주위에도 있다 그러고는 한동안 느릅나무는 잊어버리고 살았다. 느릅나무가 집 밖에 나가면 아무 데서나 만날 수 있는 나무가 아니었으니 말이다. 그러다가 구미의 강정 습지에서 느릅나무를 한 그루를 만난 데 이어, 아.. 2026. 10. 15.
[오늘] 프랑스 비시 정부 총리 라발 총살되다 [역사 공부 ‘오늘’] 1945년 10월 15일, 비시 프랑스 라발 총리 총살형 집행 1945년 10월 15일, 2차 세계대전 중 나치 독일 점령 하의 남부 프랑스를 통치(1940~1944)한 괴뢰정권 비시 정부(Vichy France)의 총리 피에르 라발(Pierre Laval, 1883~1945)이 국가반역죄로 총살되었다. 그것은 비시 정부의 국가수반 페탱(Pétain, 1856~1951)과 함께 나치 협력자에 대한 숙청의 하이라이트였다.[관련 글 : 1951년 오늘 - 페탱 원수 사망과 프랑스의 과거사 청산] 비시 체제 2인자, 반역죄로 총살되다 1940년 페탱에 전권을 위임하는 상·하원의원 투표를 성사시킴으로써 비시 체제 탄생의 산파 역할을 했고 그해 12월까지는 ‘부총리’를 역임했던 라발은 비시.. 2026. 10. 15.
내가 만난 남한산성, 마흔아홉 해(1977~2026) 스물둘에 만난 남한산성, 49년 만의 만남*PC에서 ‘가로 이미지’는 클릭하면 큰 규격(1000×667픽셀)으로 볼 수 있음.‘남한산성’이라고 하면 “북한산성과 함께 수도 한양을 지키던 조선시대의 산성”이라는 게 가장 기본적이고 객관적인 정의겠지만, 그것은 사람들의 기억과 경험에 따라 여러 가지 모습으로 변주된다. 남한산성 근처에서 자라거나 산 사람에 떠올리는 남한산성과 타 시도에서 이름만 듣고 자란 사람에게 남한산성은 같으면서도 전혀 다른 기억이고 경험이 된다는 말이다. 1977년 가을, 현역 병사로 만난 남한산성 내가 남한산성은 만난 건 1977년 가을이었다. 그해 5월 입대한 나는 남한산성 서쪽 자락 밑의 육군특수전사령부 교육대에서 공수 교육(4주)과 특수전 교육(6주)을 받고 있던 스물두 살의 .. 2026. 10. 14.
[오늘] ‘역적’ 허균, 목이 떨어져 저자 바닥에 내걸렸다 [역사 공부 ‘오늘’] 1618년 10월 12일, 교산 허균 능지처참 형으로 스러지다중세의 모순과 맞서 싸운 시대의 이단아 허균, 형장에서 지다 1618년 10월 12일(음력 8월 24일), ‘역적’ 허균(許筠, 1569~1618)의 목이 떨어져 저자 바닥에 내걸렸다. 그는 심문에 끝내 승복하지 않아서 마지막 판결문인 결안(結案)조차 만들지 못한 상태였다. 막대 셋을 밧줄로 매고 ‘역적 허균’이라는 팻말을 달아 그 막대 가운데에 목을 매달았다. 무려 400년 전의 인물을 새삼스레 불러낸 것은 그의 죽음이 우리 역사에 명멸해 간 숱한 문인들의 삶과 다른 울림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교산(蛟山) 허균은 ‘최초의 한글 소설’ 의 작가로 알려졌지만, 정작 그가 중세의 모순과 맞서 싸웠던 시대의 이단아였다는 사.. 2026. 10. 14.
조명하 의사, 타이페이 형무소에서 순국하다 일본 육군 대장을 독검으로 찌른 조명하 의사, 처형으로 순국하다1928년 오늘, 타이베이 형무소에서 사형이 집행되어 조명하(趙明河) 의사가 순국하였다. 향년 스물넷. 식민지 청년이 선택할 수 있는 극한의 길을 담대하게 간 청년은 이국의 형무소에서 자신의 짧고 굵은 생애를 마감했다. 조명하는 히로히토의 장인인 일본제국 육군 대장 구니노미야 구니요시(久邇宮邦彦王)를 독검으로 찔렀고, 구니노미야 구니요시는 상처에서 패혈증이 생겨 이듬해 1월 죽었다. 조명하(1905~1928)는 황해도 송화 출생이다. 풍천마을에서 공부하기 시작하였지만 가난하여 보통학교를 중퇴하고 군청의 고용원으로 일하며 강의록으로 독학하였다. 황해도 출신인 김구, 노백린(1874~1925) 선생 같은 독립운동가의 이야기를 들으며 성장한 .. 2026. 10. 13.
[순국] 사쿠라다몬 의거의 이봉창(1932) 의사, 형장에서 지다 이봉창 의사(1932.10.10.) 순국 이봉창(1900~1932)은 서울 사람이다. 용산의 문창 보통소학교를 졸업하고 가게 점원과 철도 운전 견습생 등으로 일했다. 1919년 이후 일을 그만두고 일본에 다녀오기도 한 그는 1925년 다시 일본으로 건너갔다. 그는 오사카에서 일본인의 양자가 되었고, 기노시타 쇼조(木下昌藏)라는 일본 이름을 얻었다. 그는 일본인으로 행세하며 노동과 장사 등에 종사하였다. 일본에서의 그의 행적을 살펴보면 그는 여자와 술과 도박 등 향락을 즐기면서 사는 전형적 ‘모던 보이(modern boy)’의 모습을 보인다. 일본인 못지않게 일본어를 유창하게 구사할 수 있었던 그는 일본의 조선인 차별을 반일 민족의식으로 잇기보다는 일본인으로 대접받고 싶어 했다. 그가 일제에 순응적인 조.. 2026. 10. 13.
[오늘] 대하소설 <토지> 25년 만에 완간(1969~1994) [역사 공부 ‘오늘’] 1994년 10월 8일, 작가 박경리 대하소설 완간 1994년 10월 8일, 작가 박경리(朴景利, 1926~2008)의 대하소설 가 25년 만에 완간(完刊)되면서 근현대를 살아온 한국인의 장대한 삶의 파노라마를 다룬 이 위대한 작품의 여정은 마침내 마무리되었다. 1969년 1부를 쓰기 시작했을 때 마흔두 살이었던 작가가 예순일곱의 노년에 이른 이 25년은 한편으로 한국 현대사의 또 다른 파노라마의 연속이기도 했다. 그것은 단순히 25년이란 장구한 세월이 소요되었다거나 원고지 3만 장을 훨씬 넘는 대작이라는 등 수치의 문제가 아니었다. 작가가 긴 세월 동안 수만 장의 원고지에 담아낸 것은 각고의 노력이면서 동시에 한민족의 원형으로서 토지를 중심으로 교직(交織)한 위대한 서사였기 때.. 2026. 10. 13.
‘인공지능(AI) 시대의 한글’을 생각한다 세계에서 가장 과학적인 문자가 맞이한 인공지능 시대580돌 한글날, 1446~2026 올 한글날은 1926년 ‘가갸날’로 처음 한글날을 제정한 지 100년, 세종 28년(1446년) 훈민정음 반포 기준으로는 580돌이다. 1926년 일제강점기 조선어연구회(현 한글학회)가 주축이 되어, 의 기록을 바탕으로 반포 480주년인 음력 9월 29일(양력 11월 4일)을 첫 기념일로 정했다. 당시에는 글을 처음 배울 때 쓰던 ‘가갸’를 따서 ‘가갸날’이라 불렀다. 1928년 주시경 선생 등이 제안한 ‘한글’이라는 이름에 맞춰 ‘가갸날’ 명칭을 ‘한글날’로 바꿨다. 1940년에 경북 안동에서 원본 『훈민정음』(해례본)이 발견되었는데, 이 책 서문에 훈민정음 완성 시기가 음력 9월 상순(상한)으로 기록되어 있었다. 상.. 2026. 10. 9.
[오늘] 체 게바라, 투쟁과 해방의 삶 마감하다 [역사 공부 ‘오늘’] 1967년 10월 9일 - 체 게바라 총살형으로 떠나다1967년 오늘, 볼리비아 라 이게라에서 볼리비아 정부군의, 아르헨티나 출생의 쿠바 혁명가 체 게바라(Che Guevara, 1928~1967)의 총살형이 집행되었다. 게릴라부대를 조직하여 볼리비아 정부군과 전투 중 종아리에 총상을 입고 생포된 지 하루만이었다. 게바라의 해방을 위한 투쟁의 삶은 서른아홉 살로 마감되었다. 서른아홉, 해방을 위한 투쟁의 삶 마감 총살 후 체 게바라를 하찮은 인간으로 보이게 하려는 의도에서 그의 시체는 언론에 공개되었다. 그러나 정부의 의도와 달리, 그의 모습이 예수와 비교되면서 그가 많은 사람의 추앙을 받게 된 것은 역설적이다. 그의 시신은 30년 후 볼리비아에서 발굴되어 쿠바의 산타클라라에 안장.. 2026. 10. 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