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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바람과 먼지의 세상, 그 길 위에 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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쥘부채…, 세월 그리고 인연 어릴 적에도 덥기는 마찬가지였다. 햇볕에 발갛게 익어 집에 들어가면 어머니는 커다란 부채로 한참 동안 바람을 부쳐 주시곤 했다. 그것도 아주 느리게 천천히. 그게 성이 차지 않아 어머니에게서 부채를 빼앗아 마구 까불 듯 부쳐 보지만 금세 팔이 아파서 그치곤 했다. 그러면 어머니는 싱긋 웃으시고 다시 가만가만 공기를 떠밀어내듯 설렁설렁 부채질을 해 주시는 것이었다. 어머니는 팔도 아프지 않으실까. 어째서 어머니는 지치지도 않고 저리 부채질을 하실 수 있는 것일까. 그건 오래도록 쉬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였다. 거듭하는 얘기다. 올해는 더위를 유난히 견디지 못했다. 여자아이들은 온도에 매우 예민하다. 교사는 숨이 막히는 듯한 느낌을 견디고 있는데도 몇몇 아이들은 얇은 담요를 덮어쓰고 있다. 심하면 치마 아래에.. 2021. 9. 18.
금오산 둘레길 돌면서 해동초성의 ‘초서’를 만나는 법 [전시] 구미성리학역사관 특별기획전 “매학(梅鶴)을 벗 삼아 펼친 붓 나래” 구미성리학역사관의 특별기획전 “고산(孤山) 황기로 탄생 500주년 기념 – 매학(梅鶴)을 벗 삼아 펼친 붓 나래”에 들른 것은 우연이었다. 아내와 함께 역사관 앞 금오지(金烏池) 둘레길을 돌다가 역사관 앞을 지나는데 전시를 알리는 현수막이 눈에 띄어서였다. 고산 황기로(1521~1567)는 9년 전 구미에 옮겨와 인근 문화재를 찾아 나선 길에 처음 만난 매학정(梅鶴亭)의 주인이다. 고산은 낙동강 강변 언덕 아래 정자를 짓고 자연을 벗하며 ‘글씨와 술’로 일생을 보냈다. 아호인 ‘고산’과 ‘매학정’은 중국 서호(西湖) 고산(孤山)에 매화를 심고 학을 길러 ‘매처학자(梅妻鶴子)’로 불리며 처사(處士)로 살았던 북송의 은둔 시인 임포.. 2021. 9. 17.
우리도 빚을 지고 있다 - ‘최소한의 변화를 위한 사진 달력’ 이야기 (아래 )을 알게 된 건 지난해다. 망설이지 않고 그걸 주문했다. 두어 달 후에 배달된 달력은 지금 내 방 책상 위에 얌전히 걸려 있다. 이 벽걸이 달력은 크기도 모양도 별로 눈에 띄지 않는다. 스무 명 가까운 사진가들이 찍은 사진으로 구성된 모두 20장짜리 달력이다. 각 달의 달력 위에는 두 장의 사진이 붙어 있다. 물론 눈에 확 들어오는 미모의 여배우도, 경탄을 자아내는 아름다운 풍경 사진도 아니다. 평범한 시민들의 일상이거나 우리 주변의 범상한 풍경이 다다. 아들을 태운 자전거를 타고 눈길을 가는 어머니, 옥상 건조대에 걸린 원색의 빨래들, 크리스마스를 맞은 쌍용자동차 노동자들의 모습들……. 나는 몰랐지만 은 지난해가 네 번째였다. ‘사진 한 장을 얻기 위해 한 줌 빛에, 숨 막히듯 아름다운 풍경에.. 2021. 9. 17.
광부가 찍은 사진 한 장, 그 앞에서 노인은 왜 오열했나 전제훈 사진전 ‘증산보국’… 광부로 일하며 탄광 속 삶을 기록하는 까닭 광부 사진가 전제훈(59) 작가가 4일부터 경북 문경에서 사진전 ‘증산보국’을 연다는 소식을 알게 된 것은 일간지 기사를 통해서다. 인터넷 검색으로 전시장이 새재 근처의 갤러리카페 ‘피코’라는 것도 확인하고, 도내의 전시회라 나는 전시장·작가와 날짜를 맞추어 지난 금요일에 문경을 다녀왔다. 사람들은 흔히 ‘새재’를 떠올리지만, 문경은 1926년에 남한 지역에 최초의 탄광이 문을 연 광업도시였다. 해방 후 대한석탄공사의 6대 탄전의 하나였던 문경광업소 대성탄좌와 민간광산인 봉명광업소, 60여 개가 넘는 소규모 탄광이 국내 무연탄의 30%를 생산했지만, 1993년 석탄산업 합리화 조치로 이들 탄광은 모두 폐광됐다. 문경의 이력을 과거형으.. 2021. 9. 16.
[2017 텃밭 일기 5] 따, 말아? 감나무 꼭대기의 호박 감나무 꼭대기까지 오른 호박 바람 온도가 심상찮다. 한여름이 고비를 넘겼다 싶었는데 어느덧 계절은 가을로 곧장 들어서 버린 것이다. 갈아엎은 묵은 텃밭에 쪽파를 심은 게 지난달 말이다. 그다음 주에는 쪽파 옆에다 배추 모종을 심고 무씨를 뿌렸다.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나는데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나는 건 정한 이치지만, 얼치기 농부는 제가 한 파종도 미덥지 못하다. 심긴 심었는데 쪽파가 싹이 트기나 할까, 배추 모종 심은 건 죽지 않고 뿌리를 내릴까 하고 지레 걱정이 늘어진 것이다. 어제 아침 텃밭에 들러 우리 내외는 새삼 감격했다. 쪽파는 쪽파대로 듬성듬성 싹을 내밀었고, 뿌리를 내릴까 저어했던 배추도 늠름하게 자라 있었기 때문이다. 밭 귀퉁이 한구석에서 볕도 제대로.. 2021. 9. 16.
초등 무상급식의 ‘섬’, 영남 4개 시도 전혀 몰랐던 사실은 아니지만 막상 기사를 통해 그걸 확인하는 기분은 좀 씁쓸하다. 우리가 사는 지역의 초등학교 무상급식 이야기다. 유은혜 국회의원(새정치민주연합)이 교육부로부터 받아 공개한 국정감사 자료에 따르면 경상북도 지역의 무상급식 비율은 54.3%다. 전체 13만314명 가운데 7만791명이 무상으로 급식을 제공받고 있는데 이는 간신히 절반을 웃도는 수치다. 울산 36%, 대구 13.5%, 경북 54.3%, 경남 5% 그나마 인근 울산(36%, 2만3829 명/6만6159 명), 대구(13.5%, 1만7169 명/12만6957 명)에 비기면 상대적으로 나은 수준이라고 해야 할 것인가. 도지사의 무상급식 예산 지원이 중단된 경상남도는 초등학생 18만8616 명 가운데 9351명(5.0%)만 무상급식.. 2021. 9. 15.
[오늘] 1910년과 1941년, 독립운동가 오성술과 이규선의 순국 [역사 공부 ‘오늘’] 1910년과 1941년 9월 15일, 독립운동가 오성술, 이규선 순국 1910년과 1941년 9월 15일에 두 분의 독립운동가가 순국하였다. 한 분은 처형으로, 또 한 분은 옥중에서 순국하였다. 물론 건국훈장으로 기리긴 하지만, 세상엔 잘 알려지지 않은 이들이다. 순국한 지 108년과 77년이 넘어서만은 아니다. 2018년 8월 15일 현재 독립유공자로 건국훈장을 받은 이는 대한민국장 30명, 대통령장 93명, 독립장 824명, 애국장 4,306명, 애족장 5,664명 등 10,917명이고, 건국포장 1,253명, 대통령 표창 2,887명 등 모두 15,057명이다. 생각보다 많다는 생각이 들 수도 있겠지만, 해방 당시 우리나라 인구가 2천5백만이니 0.0006%밖에 되지 않는다... 2021. 9. 14.
초가을, 산, 편지 초가을, 산 아직 ‘완연하다’고 하기엔 이르다. 그러나 이미 가을이 깊어지고 있음은 모두가 안다. 그것은 숨 가쁘게 달려온 지난 시간을 새삼 실존적으로 환기해 준다. 어쩔 수 없이 가을이라고 인정하면서도 자기 삶의 대차대조표를 들이대기엔 아직은 마뜩잖은 시간이지만. 아침저녁은 서늘한 반면 한낮엔 아직 볕이 따갑다. 그러나 그것도 ‘과일들의 완성’과 ‘독한 포도주’의 ‘마지막 단맛’(이상 릴케 ‘가을날’)을 위한 시간일 뿐이다. 자리에 들면서 창문을 닫고, 이불을 여며 덮으며 몸이 먼저 맞이한 계절 앞에 한동안 망연해지기도 한다. 늦은 우기에 들쑥날쑥했던 산행을 다시 시작했다. 공기가 찬 새벽을 피해 아침 8시 어름에 집을 나선다. 한여름처럼 땀으로 온몸을 적실 일은 없지만, 이마에 흐르는 땀은 어쩔 수 .. 2021. 9. 13.
신산업재해론 “산업재해(産業災害)는 산업 과정에서 발생하는 사고로 인해 발생하는 인적, 물적 피해를 일컫는 말이다.” 는 ‘산업재해’를 그렇게 풀이해 놓았다. 이어진 ‘산업재해의 원인’도 아주 낯익다. ‘주로 노동자’의 ‘부주의’로 인해서 발생하는 것이 산업재해란다. 노동을 구성하는 제반 요건들 이를테면 작업장의 상태, 노동자의 휴식 정도, 재해 예방을 위한 안전시설 따위는 별 변수가 아니다. 원인 산업 현장에서 재해는 주로 노동자 당사자의 과로나 기기 상태의 열악 등 불완전한 상태로 인해 발생하지만 부수적으로 완벽한 환경에서도 노동자의 부주의로 인해 발생하기도 한다. 하인리히(Heinrichi)의 안전사고 발생 단계에 따르면 불안정한 사회 환경과 노동자의 개인적인 결함이 불완전한 행동, 즉 부주의로 이어지고, 부주.. 2021. 9. 12.
사회적 약자, 공익제보자와 대한민국 2, 30년 전의 이야기다. 장애인 150여 명이 생활하는 서울의 한 재활원이 너무 좁았다. 이사를 가기로 하고 부근의 다른 지역에 집을 짓기로 했다. 그런데 이 사실을 알게 된 마을 사람들이 온갖 방법으로 건축을 방해하기 시작했다. 장애인과 시설이 들어오면 마을의 주거 환경이 나빠진다는 이유에서였다. 그 때 신축 재활원 건물에서 오십여 미터 떨어진 곳에 있는 어떤 중학교 교장은 주민 대표라고 하는 사람들 앞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사람보다 ‘돈’이 더 대접받는 나라 “우리 학생들과 같이 한창 감수성이 예민한 나이의 학생들이 장애자들을 자주 보게 되면 교육적 측면에서 나쁜 영향을 받게 될 것입니다. 맹모삼천지교(孟母三遷之敎)라는 말이 있듯이 수많은 장애자들이 학교 바로 앞에서 집단생활을 하는, 교육 환.. 2021. 9. 11.
청정 숲길로 드는 옛 가람, 고운사(孤雲寺) 고운사(孤雲寺)에 들른 건 지난 8월 중순께다. 의성에 갔다가 돌아오는 길이었다. 대략 백오십여 장의 사진을 찍었고, 짬이 나는 대로 사진을 훑어보면서 방문길의 감흥을 되새기곤 했다. 비록 생물은 아니지만, 사진도 오래 바라보고 있자면 마치 참나무통에 든 포도주처럼 숙성되고 있는 건 아닌가 하는 느낌이 없지 않다. [관련 글 : 의성 등운산 고운사(孤雲寺)의 가을 본색 고운사, '시대와 불화한 고독한 천재' 최치원과의 연 고운사 방문은 두 번째다. 9년 전쯤 가족들과 스치듯 들렀는데, 절간 한쪽을 흐르는 시내 위에 세워진 누각이 인상적이었다는 기억만 남아 있다. 의성에서 근무할 때, 날마다 고운사 입구를 표시한 이정표를 쳐다보며 다녔지만, 정작 이 절집의 이름이 왜 ‘고운(孤雲)’인지에 대해서는 전혀 생.. 2021. 9. 10.
<한겨레>, ‘모아 댄 워즈(more than words)’는 심했다 는 창간 때부터 한글 전용의 가로쓰기 체제로 출발하여 우리 언론의 지형을 바꾸어 온 진보 언론이다. 창간 주주로 의 창간을 기다리다가 1988년 5월 15일 집에 배달된 창간호를 읽으면서 자못 벅찼던 기억이 새롭다. 특히 백두산 천지를 밑그림으로 목판 글씨로 새겨 넣은 다섯 자는 마치 그 감격시대의 표지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가 창간된 뒤 앞서거니 뒤서거니 기존 신문들도 ‘한글 전용’과 ‘가로쓰기’로 바뀌기 시작했다. 가장 늦게 가로쓰기로 전환한 매체는 이었던 것 같다. 한글 전용도 대부분의 매체가 를 뒤따랐다. 그러나 아직도 과 는 기사에서 한자를 여전히 버리지 않고 있으며 한자로 된 신문 제호도 유지하고 있다. 신생지 가 창간되면서 시도한 변화는 여러 가지다. 그중에서 대학생을 이를 때 ‘-군’이나 .. 2021. 9. 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