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이 바람과 먼지의 세상, 그 길 위에 서서

이 풍진 세상에 /다시 읽기23

노인들 - 세대의 순환, 혹은 역사 2011년 설 특집으로 텔레비전에서 방영한 다큐멘터리 을 다시 시청했다. 무려 8년 전의 프로그램인데, 출연한 노인들의 곡절과 사연들이 훨씬 더 아프게 다가왔다. 그때 50대였던 내가 60대 중반, 동병상련의 감정을 피할 수 없게 한 나이가 노인들을 바라보는 내 눈길을 훨씬 더 부드럽게 바꾸어놓은 것이다. 단순히 노화나 죽음에 대한 개인적 두려움이나 연민만은 아니다. 시간이, 더 본질적인 인간의 생로병사를 나의 문제로 돌아볼 수 있게 해 준 것은 부인할 수 없다. 그리고 그것이 피할 수 없는 인간의 삶의 일부라는 사실도 접어주지 않으면 안 된다. 8년, 그들 중 또 몇몇은 이 세상 사람이 아닐 것이다. 어쩌면 얼굴을 비친 80대 이상의 노인들은 일찌감치 세상을 떴을지도 모르겠다. 그동안 내 주변의 친지,.. 2019. 9. 3.
[김대중 10주기] DJ의 죽음으로 그들은 그 감옥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김대중 전 대통령이 세상을 떠난 지 벌써 10년이 흘렀다. 그는 박정희와 유신독재가 만든 지역감정과 반공 이데올로기의 최대 피해자이자 희생자였다. 그는 국민의 절반에게는 자유 민주주의 지도자로 추앙받았지만, 나머지 절반으로부터는 경원당한 정치인이었다. 그는 한국 정치사에서 가장 뛰어난 경륜을 가진 정치인이었지만, 그것을 인정한 주권자는 절반에 그쳤다. 그는 일평생 지역감정과 반공 이데올로기와 싸워야 했고 영남사람들의 편견과 멸시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지역감정과 반공 이데올로기에 피해를 보았고 편견과 멸시를 당했지만, 그것은 그의 책임이 아니었다. 그가 감내해야 했던 지역감정과 이데올로기, 편견과 멸시는 어떤 합당한 근거도 없는 가해 측의 일방적인 재단이었을 뿐이기 때문이다. DJ에게 가해진 왜곡과 멸시의.. 2019. 8. 16.
‘좋은 이웃’인가, ‘힘센 이웃’인가, ‘우리 안’의 미국과 ‘우리 밖’의 미국 최근 한국을 방문한 미 볼턴 보좌관이 만만찮은 청구서를 내밀었다는 소식이다. 문제는 ‘방위비 분담’ 요구다. 미국은 방위비 분담이 좀 더 ‘합리적이고 공정하게’ 이뤄져야 한다고 했는데, 이는 더 많은 방위비를 부담하라는 주문이요, 압력이다. 그 요구액이 현행의 5배라는 설이 '설'에 그치지 않을 듯하다. ‘호르무즈 해협에서의 해상 안보와 항행의 자유를 위한 협력 방안’을 협의하며 파병 문제도 다루었다고 한다. 원칙적인 언급에 그쳤지만, 미국은 파병을 요구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미 파견된 청해부대가 있어 임무 변화나 추가에 해당하지 않아 별도의 국회 비준 처리가 필요 없다는 의견이 있으나 국회 동의가 필요한 문제라는 반론도 강력하다. 번번이 우리에게 과도한 요구와 겁박으로 속앓이를 강요하는 ‘혈맹(血.. 2019. 8. 14.
‘택택이 방앗간’의 추억 마을엔 방앗간이 새로 하나 생겼다. 그것은 철이네와 같은 물방앗간이 아니었다. 강물로 바퀴를 돌리는 게 아니라 발동기로 했다. 그것이 돌기 시작하면 탁탁하는 굉장히 요란한 소리가 났다. 그래서 마을 사람들은 누구나 이 새로 생긴 방앗간을 ‘탁태기 방앗간’이라고 불렀다. 그리고는 다들 그곳으로 몰려들었다. 철이네의 물방앗간은 아무도 찾는 이가 없게 되었고, 따라서 쿵덕쿵덕하는, 둔탁한 소리를 내면서 돌아가는 일도 영 없어져 버렸던 것이었다. - 이동하 장편소설 『우울한 귀향』 중에서 선친께서 언제쯤 고향 마을에 방앗간을 세웠는지 확인하기 어렵다. 그걸 세세하게 증언해 주실 어머니까지 돌아가시고 나니 더욱 그렇다. 아마 내가 젖을 갓 뗄 무렵이 아니었는가 싶다. 초등학교에 들어가기 전, 대여섯 살 무렵까지 .. 2019. 7. 31.
고치고 깁기, ‘영선(營繕)’을 다시 생각한다 얼마 전 교회 일로 통화하고 있던 아내가 ‘영선부가 어쩌고’ 하는 말을 듣고 나는 반색했다. “아니, 당신 영선부라고 했어?” “그래요, 왜? 교회 시설관리하고 보수하는 부선데. 왜요?” “아니, 거기에 아직도 영선부가 있다 이거지…….” 나는 잠깐 아스라한 감회에 젖었다. 웬 낱말 하나로 괜한 주접을 떨고 있냐고 나무라면 별로 할 말은 없다. 그러나 이 풍요의 시대와 어울리지 않는 지난 세기의 낱말 하나가 조그만 교회 조직에 살아 있었다는 발견은 매우 새삼스러웠다. 영선, ‘고치고 깁기’ ‘영선’은 경영할 영(營), 기울 선(繕) 자를 쓰는 한자 말이다. ‘영선’은 표준국어대사전에 ‘건축물 따위를 새로 짓거나 수리함.’으로 나와 있는데 이 뜻으로 보면, ‘영선’은 ‘건축물’에만 한정된 낱말인 것처럼 보.. 2019. 7. 29.
온달과 노무현, 그 ‘경멸과 증오’의 방정식 온달산성에서 ‘노무현과 그의 시대’를 생각한다 “오늘은 충청북도 단양군 영춘면에 있는 온달산성에서 엽서를 띄웁니다.” 이 문장은 쇠귀 신영복 선생의 글 “어리석은 자의 우직함이 세상을 조금씩 바꿔 갑니다”(나무야 나무야, 2001)의 첫 문장이다. 내가 가족과 함께 단양의 온달산성을 다녀온 것은 지난해 이맘때, 대통령 선거일이었지만, 오늘은 같은 문장으로 이 글을 시작하려 한다. 온달산성이 있는 충북 영춘은 내가 사는 데서 100여 Km쯤 떨어진 한적한 시골이다. 이 조그마한 시골 언저리에 길게 누운 427m의 성산(城山)에 세워진 길이 922m, 높이 3m의 반월형 석성이 온달산성이다. 중3 국어 교과서에도 실린 이 글을 내리 세 해 동안 가르쳤지만 정작 나는 거기 가보지 못했었다. 문학작품 속의 배경.. 2019. 5. 20.
2014년 4월(4) 세월호 참사와 ‘여객선 사고’, 안산을 다녀오다 안산을 다녀왔다. 12일 백만 촛불에 참여한 다음 날 정오께 나는 휴무로 쉬는 아들애를 길라잡이로 지하철을 타고 안산으로 향했다. 집회에 참석하고 하룻밤을 묵은 뒤에 안산을 다녀와야겠다는 생각을 한 것은 오래 마음에 묵은 빚 때문에 낸 궁여지책이었다. 4·16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지 2년이 훌쩍 지났지만 나는 아직도 진도 앞바다에 가라앉은 아이들 곁에 가 보지 못했다. 부지런한 이웃들은 멀다 하지 않고 팽목항과 안산을 다녀왔다고 했지만 나는 고작 서울광장과 우리 지역의 분향소를 찾은 게 다였다. 참사 2년 반, 아직도 진실은 인양되지 못했다 지금은 떠났지만, 참사가 일어났을 때 나는 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었다. 나는 교사 대부분이 그랬듯이 아이들에 대한 연민과 슬픔은 물론이거니와 그들을 구해내지.. 2019. 4. 16.
2014년 4월(3) 세월호, 돌아오지 않는 교사들을 생각한다 가끔 한 학교를 생각해 본다. 경기도 안산의 단원고다. 나는 그 도시에 가 본 적도 없으며, 거기 사는 어떤 사람도 알지 못한다. 당연히 단원고도, 거기 다니는 학생과 교사들에 대해서도 알지 못한다. 그러나 어느 날부터 나는 단원고의 아이들은 물론, 그 아이들과 함께 수학 여행길에 나섰던 열몇 분의 교사들을 아주 오랫동안 알아 온 사이처럼 느끼게 되었다. 단원고, 안산의 그 학교를 생각한다 그들을 만나게 된 것은 한 달도 전에 일어난 여객선 침몰 사고 때였다. 나는 뒤에 오보임이 판명된 보도를 통해 제주도로 가던 배가 가라앉았지만, 학생들은 전원 구출되었다는 뉴스를 들었다. 나는 단원고 아이들과 같은, 열여덟 살짜리 고2 아이들 수업에서 그 소식을 전하며 우정 그렇게 말했다. “……하여간에 전원 구조되었.. 2019. 4. 16.
2014년 4월(2) 아이들아, 너희가 바로 새잎이었다 ‘강철 새잎’을 들으며 메이데이(May Day)다. 어제는 역 광장에서 두 번째 촛불이 켜졌다. 오후 내내 개어 있더니 행사 시작 1시간 전부터 비가 뿌리기 시작했다. 행인들은 비를 피해 종종걸음을 쳤고 참가자들은 역사로 오르는 중앙계단에 하나둘씩 자리를 잡았고 광장 앞 역사를 향해 세운 천막 분향소가 조문객들을 받고 있었다. 빗속에서도 드문드문 조문객들의 발걸음이 이어졌다. 어린 학생들, 젊은 연인들과 아이를 안고 온 부부들, 늙수그레한 중장년의 시민들까지 일단 천막 안으로 들어선 이들은 매우 침통한 표정이었지만 정중함을 잃지 않았다. ‘어른’이라는 사실만으로도 ‘죄인’의 마음이 되는 게 세월호 사고의 특징인지 모른다. 삼백여 ‘목숨의 무게’가 고작 이것인가 중앙계단에 옹기종기 모여 앉은 이들은 수효는.. 2019. 4. 15.
2014년 4월(1) 잔인한 봄―노란 리본의 공감과 분노 어제 역전 광장에서 세월호 희생자 추모 촛불문화제가 열렸다. 지역에선 처음으로 열리는 행사다. 오후 여섯 시, 퇴근 무렵이어서 역사를 등진 채 거리를 바라보며 앉은 참가자들 주변은 역사를 오가는 행인으로 붐볐다. 세월호 희생자 추모 촛불문화제 추모의 성격에 걸맞게 행사는 차분하고 엄숙하게 진행되었다. 주최 쪽에서 참가자는 물론이고 행인 가운데 관심을 보이는 이들에게도 노란 리본을 나누어 주었다. 행인들은 가끔 걸음을 멈추고 행사에 귀 기울이다 고개를 끄덕이며 걸음을 옮기곤 했다. 스무 살도 안 된 재벌 3세에게서 ‘미개하다’고 비난받았지만 국민들은, 이 끔찍한 재난 앞에서 ‘내남’을 구분하지 않는 따뜻한 사람들인 것이다. 교사 한 분이 나와 소회를 밝히면서 아이들의 반응을 전했고, 여성 노동자, 청년 등.. 2019. 4. 15.
아비의 아들에서 다시 아들의 아비로 세월과 세대의 순환 앞에서 마지막 겨울방학을 마치고 아들 녀석이 다시 학교로 돌아갔다. 졸업반, 사회에 첫발을 디디는 시기가 하필이면 이렇게 어려운 때냐고 누구에게랄 것도 없이 항변하던 녀석은 다소 심란한 얼굴로 집을 떠났다. 군 복무를 마쳤고, 졸업반이 되었으니 더는 ‘품 안의 새’가 아니다. 아니다, 우리 아이들은 일찌감치 고등학교에 다니면서 부모의 품을 떠났을지도 모르겠다. 위의 딸애도 그렇고 녀석도 마찬가지다. 애당초 공부로 스트레스를 준 일은 없었지만 그래도 저들의 고교 시절은 결코 가볍지 않았을 터이다. 아들은 아비를 닮았다 녀석은 외모부터 나를 빼닮았다. 못난 점만 골라 닮은 듯해 속이 상하긴 하지만 그래도 나라는 위인의 종족보존이 성공한 경우니 어쩌겠는가. 외모만이 아니라, 속도 크게 다르.. 2019. 4. 1.
밀양, 2006년 8월(2) 친구들과 작별하고 교동 사무소 앞 쉼터에서 만난 다섯 아이(부인이라고 말하는 게 더 합당하겠지만, 여전히 그녀들을 바라보는 내 시선은 ‘사제’라는 관계망을 벗어나지 못한다)와 나는 성급한 안부를 나누는 거로 말문을 텄다. 영주에 살다가 부산으로 이사한 아이와 밀양에 살고 있는 친구를 빼면 나머지 셋은 꼭 1년이 모자라는 20년 만에 만나는 셈이었다. 이들이 졸업의 노래를 합창하고 여학교를 떠난 게 1987년 2월이고, 지금은 2006년인 것이다. 그리고 그때, 그녀들에게 국어와 문학을 가르치던, 넘치는 열정 때문에 좌충우돌하던 청년 교사는 ‘쉰 세대’가 되어, 이제 ‘거울 앞에 선 내 누님같이’ 불혹을 바라보는 성숙한 부인이 된 옛 여고생들과 다시 만난 것이다. 고삐 없는 세월은 살같이 흘렀던가. 두 사.. 2019. 3. 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