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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바람과 먼지의 세상, 그 길 위에 서서

박정희9

[오늘] 박정희의 ‘제3공화국’ 출범 [역사 공부 ‘오늘’] 1963년 12월 17일, 제5대 대통령 박정희 취임, 제삼공화국 출범 1963년 12월 17일, 제5대 대통령 선거(1963.10.15.)에서 당선된 박정희가 대통령에 취임함으로써 한국의 세 번째 공화 헌정 체제인 제삼공화국이 출범했다. 1962년 12월 17일 국민 투표로 확정된 개정헌법에 따라 대통령 선거와 제6대 국회의원 선거(1963.11.26.)를 거친 뒤였다. 이로써 박정희는 합법적으로 대한민국의 최고 권력자의 자리에 올랐다. 1961년 5·16 쿠데타 이후 정변 주도세력이 만든, 입법·사법·행정 3권을 장악한 최고 통치기구 국가재건최고회의에 의해 시행된 군정 1년 7개월 만이었다. 군정 19개월 후 박정희, 권력의 정점에 오르다 박정희는 국가재건최고회의를 통해서 헌법.. 2019. 12. 16.
[오늘] 컬러TV 시험방송 시작, ‘총천연색 안방극장’이 열렸지만 [역사 공부 ‘오늘’] 1980년 12월 1일, 24년 만에 ‘컬러텔레비전’ 방송 시작 1980년 12월 1일, 이 ‘수출의 날 기념식’ 생방송을 시작으로 하루 3시간 동안의 컬러텔레비전 시험방송이 시작되었다. 컬러TV가 국내 시장에 처음 선보인 지 4개월(8월 2일) 만에, TV 방송이 첫 전파를 띄운 1956년 5월 12일로부터 무려 24년 만이었다. 그것은 모든 사물이, 말하자면 삼라만상이 제가 가진 본래의 빛깔로 사람들과 만나는 일이어서 이른바 ‘총천연색 안방극장’ 시대를 여는 역사적인 사건이었다. 일상에선 천연색 세계를 만나다 텔레비전을 켜면 흑백으로 퇴행하는 시간이 바야흐로 끝나고 있었다. 12월 22일부터는 2TV와 이 컬러TV 방송에 합류했다. 그리고 완전한 컬러텔레비전 방송은 1981년 .. 2019. 11. 30.
[한글 이야기] 권위의 언어, 평등의 언어 남 앞에 자신을 이를 때 우리는 대명사 ‘나’ 또는 ‘저’를 쓴다. ‘저’는 윗사람 앞에서 쓰는 낮춤 표현이고 ‘나’는 그 밖의 경우에 쓴다. 때에 따라서는 자신의 지위를 대신 쓸 수도 있다. 부모가 자녀에게 자신을 ‘아빠, 엄마’라 지칭하는 게 그것이다. 부모가 자녀 앞에서 자신을 ‘엄마(어머니), 아빠(아버지)’로 이르는 경우는 비교적 자연스럽다. 어린 자녀에게 그것은 서로의 관계를 강조하는 가르침이고 동시에 본인에게는 보호자의 책임을 확인하는 호칭인 까닭이다. 학교에서도 비슷한 사례가 있다. 교사들이 아이들에게 자신을 ‘선생님’이라고 부르는 경우다. 아마 이는 학교 사회에는 일종의 문화로 정착한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닌 것을 보면 아마 교단에 처음 섰을 때의 버릇이 굳은 게 아.. 2019. 10. 8.
<뮤직 박스(Music Box)>, 혹은 세상의 ‘아버지’를 생각한다 시절이 하 수상해서일까. 도처에 ‘아버지’의 그림자가 어른댄다. 뉴스 속의 아버지는 자상하지만, 무력한 가장의 모습을 하고 있기도 하고, 천륜조차 저버리는, 비정한 짐승의 얼굴이기도 하다. 어떤 아버지는 그 자녀들의 ‘스승’이고 또 어떤 아비는 세상의 모든 자식의 ‘반면교사’이기도 하다. 미국에서 있었던 일이다. 알코올 중독자인 아버지 밑에서 자란 두 청년이 있었다. 이들은 나이가 들면서 파산한 집을 떠나 각자의 길로 나아갔다. 몇 년이 지난 후, 알코올 중독이 한 가정의 어린이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분석하고 있던 한 심리학자가 그의 연구 조사에서 이 두 청년을 만나 질문하게 되었다. 한 청년은 깨끗하고 빈틈없는 금주가로 행복하게 살고 있었지만 다른 한 청년은 그의 아버지와 마찬가지로 희망 없는 알.. 2019. 9. 18.
[오늘] 경부고속도로 개통과 그 ‘신화의 이면’ [역사 공부 ‘오늘’] 1970년 7월 7일, 경부고속도로 전구간 개통 1970년 오늘, 1968년 2월 1일 첫 삽을 떴던 경부고속도로가 2년 5개월여 만에 완공되어 전 구간이 개통되었다. 경부고속도로는 부산광역시 금정구를 기점으로 서울특별시 서초구가 종점인 대한민국 고속국도 제1호선이고, 아시안 하이웨이 1호선(일본~불가리아) 구간의 일부다. 경부고속도로는 대전과 대구, 울산 등 3개 광역시를 거칠 뿐만 아니라 수도권 대도시, 지역 거점 도시들을 거치기 때문에 ‘국토의 대동맥’이라 비유되었다. 또한, 경부고속도로는 서울·수원·오산·천안·대전·영동·황간·김천·구미·왜관·대구·영천·경주·언양·양산·부산 등 주요 지역을 거쳐 전국을 일일생활권으로 연결하는 것이었다. 단군 이래 최대토목사업 29개월 만에 준.. 2019. 7. 7.
산천은 의구하되 인걸은 간데없다 야은(冶隱) 길재(吉再)와 채미정(採薇亭) 구미에 들어와 산 지 어느새 4년째다. 선산 골짝을 골골샅샅 훑는 데만 족히 서너 해가 걸릴 거라는 생각을 하면서 왔건만, 골골샅샅은커녕 아직 금오산에도 오르지 못했다. 블로그의 ‘선산 톺아보기’에 쓴 글도 8편이 고작이니 ‘개점휴업’이라 해도 할 말이 없다. 금오산 어귀의 채미정(採薇亭)을 지날 때마다 자신의 게으름을 돌이켜보곤 한 게 한두 번이 아니다. “조선 인재의 반은 영남에 있고 영남 인재의 반은 선산(善山)에 있다.”()고 할 때 그 인맥의 출발점이 곧 야은(冶隱) 길재(吉再, 1353~1419)이기 때문이다. 야은은 목은(牧隱) 이색(1328~1396), 포은(圃隱) 정몽주(1338~1392)와 함께 여말 삼은(三隱)으로 불리는 이다.(야은 대신 도.. 2019. 5. 19.
[오늘] <민족일보> 폐간과 조용수 [역사 공부 ‘오늘’] 1961년 5월 19일, 진보 일간지 강제 폐간 1961년 오늘(5월 19일), 진보 성향의 일간지 가 강제 폐간되었다. 육군 소장 박정희가 이끈 5월 16일의 쿠데타 사흘 만이었다. 그것은 의 발행인 조용수와 논설위원 송지영을 비롯한 민족일보 관계자 열 사람을 구속한 다음 조치였다. 쿠데타로 정권을 탈취한 박정희는 ‘용공 분자 색출’이라는 이름으로 진보 인사들을 탄압하기 시작했고 정부의 대북 강경책과 노동자 탄압을 비판해 오던 를 희생양으로 삼은 것이었다. 1961년 2월 13일, 우여곡절 끝에 창간된 이 진보지는 5월 19일 92호를 마지막으로 석 달여 만에 폐간되었다. 1961년 5월 19일, 강제 폐간 4월혁명 이듬해 는 진보정당의 재건과 대북 강경책의 허구를 국민에게 알리.. 2019. 5. 18.
허형식과 박정희, 극단으로 갈린 둘의 선택 [서평] 박도 실록 소설 ‘경상북도 구미’하면 ‘박정희(1917~1979)’를 떠올리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긴 하다. 시내 상모동에서 태어나서 만주군 장교를 거쳐 해방 뒤 쿠데타로 집권한 그 덕분에 오늘의 구미가 만들어진 건 부정할 수 없으니 말이다. ‘선산군 구미면’은 그가 이 고을에 공업단지를 유치하면서 ‘선산읍’을 거느린 인구 40만이 넘는 ‘구미시’가 되었다. 그는 개발독재를 통하여 근대화를 추진했고, 유례없는 고도성장을 구가함으로써 구국의 지도자로 기려진다. 18년 독재 끝에 비명에 갔지만 그는 지역에서 가히 ‘반신반인’으로까지 숭앙 되기도 한다. 그리고 그는 지금 경상북도 기념물 제86호로 지정되어 성역화된 상모동 생가 부근에 세운 5m 크기의 청동상으로 살아 있다. 박정희의 상모동, 혹은 왕산.. 2019. 5. 12.
‘구미’ 하면 박정희? 이 사람도 기억하라 [선산 톺아보기 ①] 왕산 허위와 박정희 전 대통령의 구미 '구미'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인물은 역시 박정희(1917~1979) 전 대통령일 것이다. 그는 상모동에서 태어나 이 고장에 국가산업단지를 유치해 오늘의 '구미시'를 만든 장본인이다. 당연히 그의 자취는 곳곳에 남아 있다. 상모동에 그의 생가가 공원화되어 있고, 생가 앞을 지나는 왕복 4차로에 '박정희로'라는 이름이 붙었다. 구미, 왕산 허위와 박정희 전 대통령 그보다 앞서 2002년에는 그 전해에 개관한 구미실내체육관의 이름을 '박정희체육관'으로 변경했다. 박정희 시대의 '영욕과 공과'에 대한 역사적 평가가 정립되지 않은 상황에서 성급한 결정이라는 시민단체의 문제 제기는 지역 정서에 묻혀 버렸다. 예의 '박정희로'에 2009년 3월 박정희·.. 2018. 12. 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