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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바람과 먼지의 세상, 그 길 위에 서서

박정희13

[오늘] 박정희의 ‘제3공화국’ 출범 [역사 공부 ‘오늘’] 1963년 12월 17일, 제5대 대통령 박정희 취임, 제삼공화국 출범 1963년 12월 17일, 제5대 대통령 선거(1963.10.15.)에서 당선된 박정희가 대통령에 취임함으로써 한국의 세 번째 공화 헌정 체제인 제삼공화국이 출범했다. 1962년 12월 17일 국민 투표로 확정된 개정헌법에 따라 대통령 선거와 제6대 국회의원 선거(1963.11.26.)를 거친 뒤였다. 이로써 박정희는 합법적으로 대한민국의 최고 권력자의 자리에 올랐다. 1961년 5·16 쿠데타 이후 정변 주도세력이 만든, 입법·사법·행정 3권을 장악한 최고 통치기구 국가재건최고회의에 의해 시행된 군정 1년 7개월 만이었다. 군정 19개월 후 박정희, 권력의 정점에 오르다 박정희는 국가재건최고회의를 통해서 헌법.. 2023. 12. 17.
[오늘] 컬러TV 시험방송 시작, ‘총천연색 안방극장’이 열렸지만 [역사 공부 ‘오늘’] 1980년 12월 1일, 24년 만에 ‘컬러텔레비전’ 방송 시작 1980년 12월 1일, 이 ‘수출의 날 기념식’ 생방송을 시작으로 하루 3시간 동안의 컬러텔레비전 시험방송이 시작되었다. 컬러TV가 국내 시장에 처음 선보인 지 4개월(8월 2일) 만에, TV 방송이 첫 전파를 띄운 1956년 5월 12일로부터 무려 24년 만이었다. 그것은 모든 사물이, 말하자면 삼라만상이 제가 가진 본래의 빛깔로 사람들과 만나는 일이어서 이른바 ‘총천연색 안방극장’ 시대를 여는 역사적인 사건이었다. 일상에선 천연색 세계를 만나다 텔레비전을 켜면 흑백으로 퇴행하는 시간이 바야흐로 끝나고 있었다. 12월 22일부터는 2TV와 이 컬러TV 방송에 합류했다. 그리고 완전한 컬러텔레비전 방송은 1981년 .. 2023. 12. 1.
[오늘] 경부고속도로 개통과 그 ‘신화의 이면’ [역사 공부 ‘오늘’] 1970년 7월 7일, 경부고속도로 전구간 개통 1970년 오늘, 1968년 2월 1일 첫 삽을 떴던 경부고속도로가 2년 5개월여 만에 완공되어 전 구간이 개통되었다. 경부고속도로는 부산광역시 금정구를 기점으로 서울특별시 서초구가 종점인 대한민국 고속국도 제1호선이고, 아시안 하이웨이 1호선(일본~불가리아) 구간의 일부다. 경부고속도로는 대전과 대구, 울산 등 3개 광역시를 거칠 뿐만 아니라 수도권 대도시, 지역 거점 도시들을 거치기 때문에 ‘국토의 대동맥’이라 비유되었다. 또한, 경부고속도로는 서울·수원·오산·천안·대전·영동·황간·김천·구미·왜관·대구·영천·경주·언양·양산·부산 등 주요 지역을 거쳐 전국을 일일생활권으로 연결하는 것이었다. 단군 이래 최대토목사업 29개월 만에 준.. 2023. 7. 6.
[오늘] <민족일보> 폐간과 조용수 [역사 공부 ‘오늘’] 1961년 5월 19일, 진보 일간지 강제 폐간 1961년 오늘(5월 19일), 진보 성향의 일간지 가 강제 폐간되었다. 육군 소장 박정희가 이끈 5월 16일의 쿠데타 사흘 만이었다. 그것은 의 발행인 조용수와 논설위원 송지영을 비롯한 민족일보 관계자 열 사람을 구속한 다음 조치였다. 쿠데타로 정권을 탈취한 박정희는 ‘용공 분자 색출’이라는 이름으로 진보 인사들을 탄압하기 시작했고 정부의 대북 강경책과 노동자 탄압을 비판해 오던 를 희생양으로 삼은 것이었다. 1961년 2월 13일, 우여곡절 끝에 창간된 이 진보지는 5월 19일 92호를 마지막으로 석 달여 만에 폐간되었다. 1961년 5월 19일, 강제 폐간 4월혁명 이듬해 는 진보정당의 재건과 대북 강경책의 허구를 국민에게 알리.. 2023. 5. 19.
선산(善山) 톺아보기 - 프롤로그 왜 ‘구미’ 대신 ‘선산’ 인가 ‘구미시민’이 된 지 한 주일이 지났다. 구미는 내 고향인 인근 칠곡군 석적읍 옆 동네니 내가 이 지역으로 돌아온 것도 두루뭉술하게 ‘귀향’이라고 말할 수 있을지 어떨지는 잘 모르겠다. 그러나 여기를 ‘고향’이라고 여기지 않는 마음의 자락은 한편으로 이 지역을 굳이 ‘객지’라고 여기지 않는 마음의 한끝과 만난다. 1970년대 초 구미국가산업단지가 조성되기 이전까지만 해도 구미는 선산군 구미읍이었다. 구미가 시로 승격된 것은 1978년이었고 구미시와 선산군을 다시 합쳐 도농복합형 구미시가 된 것은 1995년이다. ‘선산군 구미읍’이었던 시절이 옛말이 되면서 ‘선산(善山)’은 ‘구미시’의 조그만 소읍으로 떨어졌다. 구미로의 ‘귀향’? 내 기억 속의 ‘구미’가 특별한 의미를 새.. 2022. 1. 26.
대법원 사법 농단, ‘이기적 국민’도 알 건 다 안다 대법원의 사법 농단, 조직 보위의 ‘집단 무의식’? 사법 농단 대법원 의혹, 방탄 법원이 막나 오늘, ‘사법 농단’ 의혹을 수사하는 검찰이 청구한 전·현직 대법관들에 대한 압수수색 영장이 또다시 줄줄이 기각됐단다. 강제 징용 및 위안부 민사소송 재판거래 의혹, 그리고 법관 불법사찰 등 혐의에 대한 압수수색 영장을 모두 기각한 이는 서울중앙지법 박범석 영장 전담 부장판사다. 이른바 ‘양승태 대법원’이 저지른 ‘사법 농단’이 밝혀지기 시작한 지 꽤 시간이 지났다. 그러나 시민들은 이 예사롭지 않은 사건의 해결이 만만찮으리라는 생각은 물론이거니와 진상이 제대로 밝혀지고 단죄가 이루어지기는 할까 하는 무력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 짙어지는 의혹에도 불구하고 대법원은 의혹에 대한 수사에 필수적인 각종 자료 제출을 .. 2021. 8. 10.
두 전직 대통령은 왜 <국방백서>에 빠진 걸까 두 진보 대통령을 백서에서 뺀 국방부 눈 밝은 누리꾼의 눈에나 띌 단신 하나가 보도된 것은 지난 21일이다. 홍진수 기자의 기사 “국방·외교 대통령이 ‘국방백서’에서 빠졌는데…누구?”다. 기사의 요지는 국방부가 발간한 ‘2012 국방백서’ 특별부록의 한미 동맹사 연표에 실린 사진에 박정희, 전두환 전 대통령은 있지만 고 김대중, 노무현 전 대통령은 없다는 것이다. 한미 동맹사에서 빠진 ‘전직 대통령들’ 국방백서는 그간 국방정책과 관련 자료 등을 총정리해 국내외에 알리는 목적으로 국방부에서 격년으로 발간하는 백서다. 국방부는 이번 백서에 ‘한미동맹의 과거·현재·미래’란 특별부록을 모두 8쪽(268~275)에 걸쳐 실었다. 1953년 10월 ‘한미상호방위조약’ 체결로 시작된 한미동맹 역사를 연표 형식으로 정.. 2020. 12. 23.
‘그들’의 역사, ‘우리들’의 역사 고위 공직자 청문회 풍경 # 풍경 하나 - 5·16은 쿠데타가 맞느냐? “역사의 평가에 맡겨야 한다.” (류길재 통일부 장관 후보자, 인사청문회에서 이하 같음.) “역사적인 문제에 대해 판단을 할 만큼 깊은 공부가 안 돼 있다.” (조윤선 여성부 장관 후보자) “교과서에 기술된 것을 존중한다. 그 문제에 직답을 못 드리는 이유를 이해해 달라.” (서남수 교육부장관 후보자) “감사원장 후보자로서 역사적 사실에 대해 평가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는 점을 널리 양해하여 주시기 바란다.” (황찬현 감사원장 후보자) # 풍경 둘 - 1980년대 일본의 역사 교과서 왜곡 사건 때 조선 침략을 ‘조선 진출’이라고 기술해 우리 국민이 화가 나 500억 원을 모아 독립기념관을 지었는데 교학사 교과서에서 다시 ‘진출’이라는.. 2020. 11. 28.
[한글 이야기] 권위의 언어, 평등의 언어 자신을 객관화하는 호칭 생각 남 앞에 자신을 이를 때 우리는 대명사 ‘나’ 또는 ‘저’를 쓴다. ‘저’는 윗사람 앞에서 쓰는 낮춤 표현이고 ‘나’는 그 밖의 경우에 쓴다. 때에 따라서는 자신의 지위를 대신 쓸 수도 있다. 부모가 자녀에게 자신을 ‘아빠, 엄마’라 지칭하는 게 그것이다. 부모가 자녀 앞에서 자신을 ‘엄마(어머니), 아빠(아버지)’로 이르는 경우는 비교적 자연스럽다. 어린 자녀에게 그것은 서로의 관계를 강조하는 가르침이고 동시에 본인에게는 보호자의 책임을 확인하는 호칭인 까닭이다. 학교에서도 비슷한 사례가 있다. 교사들이 아이들에게 자신을 ‘선생님’이라고 부르는 경우다. 아마 이는 학교 사회에는 일종의 문화로 정착한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닌 것을 보면 아마 교단에 처음 .. 2019. 10. 8.
<뮤직 박스(Music Box)>, 세상의 ‘아버지’를 생각한다 제시카 랭의 (1989) 시절이 하 수상해서일까. 도처에 ‘아버지’의 그림자가 어른댄다. 뉴스 속의 아버지는 자상하지만, 무력한 가장의 모습을 하고 있기도 하고, 천륜조차 저버리는, 비정한 짐승의 얼굴이기도 하다. 어떤 아버지는 그 자녀들의 ‘스승’이고 또 어떤 아비는 세상의 모든 자식의 ‘반면교사’이기도 하다. 미국에서 있었던 일이다. 알코올 중독자인 아버지 밑에서 자란 두 청년이 있었다. 이들은 나이가 들면서 파산한 집을 떠나 각자의 길로 나아갔다. 몇 년이 지난 후, 알코올 중독이 한 가정의 어린이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분석하고 있던 한 심리학자가 그의 연구 조사에서 이 두 청년을 만나 질문하게 되었다. 한 청년은 깨끗하고 빈틈없는 금주가로 행복하게 살고 있었지만 다른 한 청년은 그의 아버지와.. 2019. 9. 18.
산천은 의구하되 인걸은 간데없다 야은(冶隱) 길재(吉再)와 구미 금오산 채미정(採薇亭) 구미에 들어와 산 지 어느새 4년째다. 선산 골짝을 골골샅샅 훑는 데만 족히 서너 해가 걸릴 거라는 생각을 하면서 왔건만, 골골샅샅은커녕 아직 금오산에도 오르지 못했다. 블로그의 ‘선산 톺아보기’에 쓴 글도 8편이 고작이니 ‘개점휴업’이라 해도 할 말이 없다. 금오산 어귀의 채미정(採薇亭)을 지날 때마다 자신의 게으름을 돌이켜보곤 한 게 한두 번이 아니다. “조선 인재의 반은 영남에 있고 영남 인재의 반은 선산(善山)에 있다.”()고 할 때 그 인맥의 출발점이 곧 야은(冶隱) 길재(吉再, 1353~1419)이기 때문이다. 야은은 목은(牧隱) 이색(1328~1396), 포은(圃隱) 정몽주(1338~1392)와 함께 여말 삼은(三隱)으로 불리는 이다.(.. 2019. 5. 19.
허형식과 박정희, 극단으로 갈린 둘의 선택 [서평] 박도 실록 소설 ‘경상북도 구미’하면 ‘박정희(1917~1979)’를 떠올리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긴 하다. 시내 상모동에서 태어나서 만주군 장교를 거쳐 해방 뒤 쿠데타로 집권한 그 덕분에 오늘의 구미가 만들어진 건 부정할 수 없으니 말이다. ‘선산군 구미면’은 그가 이 고을에 공업단지를 유치하면서 ‘선산읍’을 거느린 인구 40만이 넘는 ‘구미시’가 되었다. 그는 개발독재를 통하여 근대화를 추진했고, 유례없는 고도성장을 구가함으로써 구국의 지도자로 기려진다. 18년 독재 끝에 비명에 갔지만 그는 지역에서 가히 ‘반신반인’으로까지 숭앙 되기도 한다. 그리고 그는 지금 경상북도 기념물 제86호로 지정되어 성역화된 상모동 생가 부근에 세운 5m 크기의 청동상으로 살아 있다. 박정희의 상모동, 혹은 왕산.. 2019. 5. 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