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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바람과 먼지의 세상, 그 길 위에 서서

이 풍진 세상에 /마이너리티(minority)를 위하여9

성폭력, ‘욕정’을 못 이겨서? 말과 이데올로기- 과부, 혹은 미망인 아이들에게 국어를 가르치다 보면 언어가 강력한 이데올로기를 갖고 있다는 걸 새삼 깨달을 때가 많다. 기본적으로 언어는 의사소통의 수단이지만, 그 이전에 세계를 이해, 인식하고 그것을 표현하는 매체이다. 연속적인 세계를 불연속적인 것으로 끊어서 표현하는 과정에서 언어는 그 운용자의 주관과 이해를 일정하게 반영하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거기에는 한 사회의 지배적 이념이나 태도가 시나브로 섞여 있다고 봐야 한다. 한국 사회에서 유난히 두드러진 ‘근로’와 ‘노동’의 대립은 바로 그런 현상의 좋은 보기다. ‘힘써 부지런히 일하다’라는 의미의 ‘근로’는 ‘몸을 움직여 일을 함, 사람이 생활에 필요한 물자를 얻기 위하여 체력이나 정신을 씀, 또는 그런 행위’를 뜻하는 ‘노동’에 .. 2020. 11. 15.
‘낙태죄’ 폐지, 여성을 ‘성과 재생산 권리’의 주체로 안전하고 합법적인 임신 중지를 위한 국제행동의 날에 여성 100인, ‘낙태죄 전면 폐지 촉구’ 신문 보도를 보고서 오늘이 ‘안전하고 합법적인 임신 중지를 위한 국제행동의 날’이라는 걸 알았다. 이는 ‘안전하고 합법적인 임신 중지’가 단지 우리나라만이 아니라 전 세계적 이슈라는 것을 시사한다. ‘낙태’가 범죄로 여겨지며 여성에게만 그 책임을 묻는 형태로 존속해 온 이면에 존재하는 강고한 가부장제란 어느 나라에서도 비슷한 것이다. 낙태 반대론의 핵심인 ‘태아의 생명권’, ‘생명 존중’ 등 ‘생명윤리’만을 강조하는 논리지만, 낙태죄 폐지론은 ‘성과 재생산 권리’의 주체로 여성을 상정한다. 그래서 “안전한 임신 중지를 위한 전면 비범죄화, 포괄적 성교육과 피임 접근성 확대, 유산 유도제 도입을 통한 여성 건강권.. 2020. 9. 29.
사우디 여성들의 첫 투표, 그리고 여성참정권 사우디아라비아에서 건국 83년 만에 ‘보통선거’를 통해 20명의 여성 지방의회 의원이 탄생했다. 올해 사우디아라비아는 여성들에게 투표권과 피선거권 등 참정권을 부여했는데 이는 1893년 뉴질랜드에서 처음으로 여성에게 참정권이 부여된 후 122년 만이다. 사우디 여성들 122년 만에 첫 투표 아닌 21세기에 웬 ‘여성참정권’이냐고 반문할지 모르지만, 기실 여성들이 참정권을 얻은 역사는 그리 오래지 않다. 그것도 일찌감치 민주주의를 발전시켜 온 구미 선진국에서는 이 가장 기본적인 시민권을 얻기 위해 적지 않은 희생을 치러야 했다. 근대 민주주의의 발전에도 불구하고 여성의 참정권이 제한되었던 것은 여성은 남성보다 능력이 떨어지고 또 가정을 지키는 것이 그의 본분이며 여성의 이익은 남성에 의해 대변된다는 이유에.. 2019. 11. 4.
‘세계 여성의 날’과 노회찬의 장미, 마거릿 생어와 낙태죄 논란 3월 8일, 세계 여성의 날 내일(3월 8일)은 ‘세계 여성의 날’(International Women’s Day)이다. ‘밸런타인데이’나 ‘화이트데이’ 따위는 꼭꼭 챙기지만, 사람들은 정작 여성의 날이 있는지조차 알지 못한다. 하긴 ‘여성의 날’을 알고 기리는 이는 과연 우리나라 전체 여성 가운데 얼마나 될까. ‘여성의 날’은 여성의 경제적, 정치적, 사회적 업적을 범세계적으로 기리는 날이다. ‘여성의 날’은 자본주의 체제의 발전과 함께 변화한 여성들의 지위와 밀접히 연관된다. 산업혁명 이후의 사회변동에 따라 여성들은 가사노동 담당자에서 자본주의 체제 아래 노동자 계급의 일원으로 편입되기에 이른다. 그러나 새로운 사회체제는 남성보다 여성에게 더욱 가혹했다. 뉴욕의 여성 노동자들은 1857년 항의 시위를.. 2019. 3. 7.
‘피의 일요일(1965)’, ‘셀마 몽고메리 행진’은 끝나지 않았다 1950년대 이후 미국의 흑인 민권운동에서 앨라배마주의 주도 몽고메리(Montgomery)는 기억되어야 할 도시다. 미국 의회가 ‘현대 민권운동의 어머니’라는 찬사를 바친 로자 파크스(Rosa Lee Louise McCauley Parks, 1913~2005)가 주도하여 흑인들의 집단 파업과 버스 승차 거부 운동을 벌인 곳이다. 이 운동은 1955년, 몽고메리의 백화점 재봉사 로자 파크스가 백인 승객에게 자리를 양보하라는 버스 운전사의 지시를 거부한 데서 비롯되었다. 인종 차별법 짐크로우법에 의해 그녀가 경찰에 체포됨으로써 촉발된 이 1년여에 걸친 저항은 이듬해 ‘버스의 인종 분리가 불법’이라는 연방 대법원의 판결로 승리를 거두면서 몽고메리 버스 보이콧은 막을 내렸다. [관련 글 : 로자 파크스, 행동과.. 2019. 3. 6.
로자 파크스, 행동과 참여 두 개의 우연, 안철수와 로자 파크스 구글의 기념일 로고를 검색하다가 ‘로자 파크스’를 만났다. 2010년 12월 1일자 구글 로고는 그녀의 ‘몽고메리 버스 보이콧 55주년 기념’ 로고였던 것이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오늘자 뉴스에서 로자 파크스의 이름이 등장한다. 박원순 서울시장 후보를 방문해 전달한 지지 서한에서 안철수 교수는 그녀를 인용했던 것이다. 안철수 교수는 예의 서한에서 56년 전, 미국에서 흑백 분리의 악법에 따를 것을 거부한 한 흑인여성의 작은 ‘행동’을 떠올린다. 그리고 그녀의 행동이 역사적 변화를 이끌어 낸 힘이었다고 말한다. 그리고 사람들의 참여가 그날의 의미를 바꿔 놓았듯 ‘선거는 그런 참여의 상징’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아프리카계 미국인(흑인) 로자 파크스(Rosa Lee Loui.. 2019. 2. 26.
다시 난설헌을 생각한다 신영복 선생의 ‘난설헌 생각’ 고액 종이돈에 실릴 인물 선정과 관련된 논란이 어지러웠다. 신사임당이 고액권 지폐의 도안 인물로 선정되었다는 소식을 들으면서 나는 엉뚱하게 동시대의 여성 허난설헌을 생각하고 있었다. “비극은 그 아픔을 정직한 진실로 이끌어 줍니다.”란 글에서 신영복 선생이 그랬던 것처럼. 애일당 옛터에서 마음에 고이는 것은 도리어 그의 누님인 허난설헌의 정한(情恨)이었습니다. 조선에서 태어난 것을 한하고 여자로 태어난 것을 한하던 그녀의 아픔이었습니다. 그러나 허난설헌의 무덤을 찾을 결심을 한 것은 오죽헌을 돌아 나오면서였습니다. - “비극은 그 아픔을 정직한 진실로 이끌어 줍니다.” 중에서 선생은 오죽헌을 나오며 율곡이 ‘이조 최대의 정치가이자 학자로서 겨레의 사표임에 틀림이 없고 그를 .. 2019. 2. 10.
[재수록] 성차별, 2013년 미국과 대한민국 기사 두 개, 미국과 한국 며칠 전 뉴스에서 기사 두 개가 유난히 눈길을 끌었다. 하나는 외신으로 미국 워싱턴 주가 주(州)법 조항에서 경찰관을 뜻하는 단어 ‘policemen’과 신입생을 의미하는 단어 ‘freshmen’을 없앴다는 소식[☞ 관련 기사]이고 다른 하나는 국가인권위원회가 여성 승무원의 복장을 치마로 제한한 아시아나 항공에 유니폼 바지를 허용하라고 권고했다는 뉴스[☞ 관련 기사]다. 마침 고정희의 시 를 배운 뒤끝이라 아이들과 이 상반된 기사 두 건의 의미를 짚어보았다. 주법 조항의 모든 단어를 ‘성(性) 중립적으로 바꾸는 작업’을 제도적으로 시행하고 있는 나라와 이제야 국가기구가 민간기업의 성차별적 관행에 제동을 건 나라의 차이는 어떨까 하고 말이다. 보도에 따르면 미국 워싱턴주에서는 경.. 2019. 2. 7.
가사노동, ‘여자가 받쳐 든 한 식구의 안식’ 이 땅의 숱한 '구자명 씨'를 위하여 어버이 모두 돌아가시고 10년째 다시 설날을 맞는다. 부모님이 계시지 않는 명절은, 또 부모님을 뵈러 큰집으로 떠날 일이 없는 설날은 여느 날과 그리 다르지 않다. 객지에 나가 있던 아이가 돌아오는 거로 새삼 명절이란 걸 확인하긴 하지만 쓸쓸하기야 마찬가지인 까닭이다. 딸애를 데리고 아내가 장모님을 뵈러 떠난 빈집에 아들 녀석과 둘이 우두커니 앉아 텔레비전 채널만 이리저리 돌리면서 섣달 그믐날, ‘작은 설’의 반나절을 보냈다. 처가에 가 장모님 음식 장만하는 걸 돕다가 오후에야 돌아온 아내는 이내 자리를 깔고 누워버렸다. 아침부터 감기 기운이 느껴진다더니 제대로 감기가 온 모양이었다. 영화 구경을 하자던 아이들의 청도 한사코 마다한 아내를 남겨두고 우리는 시내에 나갔.. 2019. 2. 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