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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바람과 먼지의 세상, 그 길 위에 서서

이 풍진 세상에 /함께 읽기 19

배려와 관용으로 자라는 ‘아이의 세계’ - 빌라드 <이해의 선물> 미국의 아동문학가 폴 빌라드의 자전적 에세이 ‘이해의 선물’ 중학교 2학년 때였는지 3학년 때였는지 잘 기억나지 않는다. 우리 학교에서는 민중서관에서 발행한 ‘Gateway’라는 이름의 영어 교과서를 쓰고 있었는데 나는 그 책에서 ‘이해의 선물’이라는 글 한 편을 만났다. 그 글을 영어로 배웠던 것은 아니다. 나는 아마 번역해 놓은 국판 크기의 자습서에서 그 글의 전편을 읽었던 것 같다. 그 글을 쓴 이가 폴 빌라드(Paul Villard : 1910∼1974)라는 걸 알게 된 것은 훨씬 뒤의 일이다. 빌라드는 미국의 아동문학가다. 그는 순수한 아동의 심리 세계를 진실하게 묘사하여 참된 사랑의 교훈을 깨닫게 하는 작품을 주로 썼다고 한다. 그의 유년 시절의 성장통을 그린 자전적 에세이 《Growing P.. 2023. 12. 25.
시월의 들녘에서 읽는 ‘벼는 벼끼리 피는 피끼리’ 하종오의 시 ‘벼는 벼끼리 피는 피끼리’ 어제는 아내, 딸애와 함께 장모님 밭에 가서 고구마를 캤다. 노인네가 힘들여 심은 것을 우리는 잠깐의 노동으로 수확해 겨우내 그걸로 궁금한 입을 달랠 수 있게 되었다. 생산자와 소비자의 몫이 다르긴 하지만, 이럴 때 우리는 그냥 노인의 거룩한 노동과 그 결과를 노략질하는 자일 뿐이다. ‘황금들판’이라고 부르기엔 좀 이르지만 10월 초순의 들녘에 나락이 누렇게 익어가고 있었다. 여름내 참외를 따냈던 대형 비닐하우스에 막혔다가 이어지는 들판 저편으로 짙푸른 하늘이 성큼 높았다. 드러난 살갗에 감기는 햇볕이 따뜻했고 가끔 이는 바람이 고개 숙인 벼들을 흔들고는 들판 저쪽으로 스러지곤 했다. 사진기를 들고 나는 잠깐 논두렁에 서 있었다. 나락의 낟알은 아직 실해 보이지 .. 2023. 10. 30.
아이들의 글, 순위를 매겨주세요 한글날 기념 백일장 입상작, 순위를 한 번 매겨주세요 우리 학교의 한글날 기념 백일장은 12일에 열렸다. 한글날인 9일은 ‘놀토’였고, 그다음 주 토요일인 16일에는 다른 행사가 겹쳤기 때문이다. 해마다 내가 제목을 챙겼지만, 올해는 시를 쓰는 동료 교사에게 부탁했다. 아이들에게 주어진 제목은 ‘책’, ‘꿈’, ‘교실’, ‘향기’ 등 네 개였다. 글쓰기는 그리 만만한 게 아니다. 남학생과 비기면 훨씬 섬세한 감수성의 여자아이들이지만 얘들에게도 이런 형식의 글쓰기는 쉽지 않다. 두 시간 동안 원고지를 붙들고 끙끙대긴 했지만, 정작 아이들의 글 가운데 ‘정말 잘 썼다’ 싶은 글은 그리 많지 않다. 한 일주일쯤 아이들의 글을 책상 위에 묵혀 두었다가 담당 교사의 채근을 받고서야 서둘러 읽기 시작했다. 동료들은.. 2021. 10. 28.
신경림 ‘장미에게’ 몇 해 전부터 내가 살고 있는 도시에는 유난히 장미가 흔하다. 가정집 담 너머로 가지를 뻗은 것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아파트 화단이나 담장, 길가 가드펜스 등에도 붉은 장미가 흐드러졌다. 늘 그렇듯 기억은 혼란스럽다. 예전부터 있던 걸 이제야 발견한 건지, 근년에 시에서 의도적으로 심은 것인지가 애매하다는 말이다. 어쨌든 출퇴근길에 풍성하게 핀 장미꽃을 즐길 수 있다는 건 좋은 일이다. 그러나 화무십일홍, 이내 장미는 진다. 꽃 진 자리가 정갈한 꽃이 어디 있겠나만 장미의 뒤끝도 그리 깔끔하지 않다. 학교 교사 뒤편의 축대에 핀 장미도 시나브로 지고 있는 참이어서 앙상한 꽃받침만 남았다. 다섯 잎으로 된 꽃받침은 이름 그대로 꽃을 받쳐주고, 꽃술을 보호한다고 한다. 꽃보다 크기가 훨씬 작아서 꽃이 피어 .. 2021. 6. 29.
너무 많다! ‘대통령의 업적’ [명박퇴진] 알고 보면 이명박도 잘한 일이 엄청 많습니다 - 알바들을 대거 고용해서 실업자 구제에 앞장서신 점 - 미국산 쇠고기의 위험성을 촛불의 힘을 빌려 전 세계에 널리 알리신 점 - 잊혀져 가던 고소영과 강부자를 슈퍼스타로 만들어 주셔 문화·예술 진흥에 앞장서신 점 - 불타버린 국보 1호 숭례문을 대신해서 눈 깜짝할 사이에 명박산성을 쌓아올리신 점 - 모르고 있었던 컨테이너의 기발한 용도를 세계만방에 알리신 점 - 양초와 종이컵, 우비 등 영세사업을 육성하셔 경제발전에 이바지하신 점 - 조·중·동의 해악을 전 국민에게 알려주신 점 - 조·중·동에 광고하면 기업이 망한다는 평범한 진리를 깨닫게 해주신 점 - 우리에게 매일매일 숙제를 내주시어 기업들을 칭찬하게 해주신 점 - 뉴라이트 실체를 밝혀주셔 전.. 2021. 6. 22.
김광규 시 ‘나뭇잎 하나’ 일상의 삶에서 이루어지는 성찰, 그 담백한 기록 아이들에게 을 가르쳐 온 지 서른 해를 넘겼는데도 여전히 문학은 쉽지 않다. 때로 그것은 낯설기조차 하다. 아이들 앞에선 우리 시와 소설을 죄다 섭렵한 척하지만 나날이 배우고 익혀야 한다는 점에서 교사도 아이들과 다르지 않다. 단지 교사는 아이들보다 경험의 폭이 크고 깊으며, 그것을 어떻게 이해하고 느껴야 하는지를 알고 있을 뿐이다. 교과서에 실리는 시편도 그렇지만, 부교재나 모의고사 따위에 나오는 시들 가운데서는 뜻밖에 낯선 시들도 나날이 목록을 더해 간다. 그 시편들을 낱낱이 뜯고 찢어내어 아이들에게 펼쳐 보이는 게 교사들의 주된 임무(?)다. 가슴으로 느끼고 담으라고 하는 대신 우리는 낱낱의 시어에 담긴 비유와 이미지를 기계적으로 설명해 주는 데 그친.. 2021. 5. 4.
‘봄’은 ‘밥’이고 ‘민주주의’다 이성부 시인의 시편 ‘봄’을 읽으며 유난히 지난겨울은 추웠다. 겨울은 겨울답게 추워야 하는 게 맞지만 고단하게 살아가는 헐벗은 사람들을 생각하면 지난겨울 추위는 혹독했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영상의 기온을 회복하긴 했지만, 여전히 바깥바람은 차고 맵다. 입춘 지나 어저께가 우수, 그래도 절기는 아는지 어느새 한파는 고즈넉이 물러나고 있는 낌새다. 아직 봄을 느끼기에는 이르다고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어느새 우리는 ‘지난겨울’을 이야기하고 있다. 겨울의 막바지에 서 있지만 우리는 정작 이날을 겨울로 느끼지 않으며, 우리가 서둘러 온 이른 봄 가운데 있다고 느끼는 것이다. 계절 가운데 ‘봄’만큼 다양한 비유나 상징으로 쓰이는 게 또 있을까. 일찍이 이 땅에서 ‘봄’은 빛과 희망이었고, 해방과 독립이었다. .. 2021. 2. 21.
최호철 “강이 죽었단다” “강이 죽었단다” [악! 법이라고?·12] 4대강 정비 이 펴고 있는 “MB악법 바로보기 릴레이 카툰”의 12번째 만화다. 만화가 최호철이 그린 멋진 그림은 ‘4대강 정비’를 야유하고 풍자한다. 2021. 2. 9.
백무산 시 ‘장작불’을 읽으며 노동시인 백무산의 시 ‘장작불’ / 이재무 시 ‘장작을 패며’ 백무산 시인과 이재무 시인은 각각 ‘장작’을 노래했다. 한 사람은 ‘장작불’을, 또 한 사람은 ‘장작 패는 법’을 노래했다. 하나는 우리 자신이고, 다른 하나는 우리가 넘어야 할 세계다. 차이는 그것뿐, 두 편의 노래 속에 담긴 뜻은 다르지 않다. 이 시편들에 대해 보태는 것은 군더더기다. 사람들은 이미 알고 있다. 이제는 장작이 일어나 말할 차례라는 것을. [장작불 택스트 보기 / 장작을 패며 택스트 보기] 2008. 12. 17. 낮달 2020. 12. 19.
사랑은 ‘잉여’ 아닌 ‘결핍’에서…김정환 시 「가을에」 사랑은 ‘진귀함과 고귀함’이 아니라 ‘상처와 아픔’으로 채워진다 어제 상주에 다녀왔다. 시를 쓰는 선배가 뒤늦게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여 스케치 전시회를 한다고 해서다. 오랜만의 외출이어서 피곤했던가 보았다. 5시께 돌아와 저녁을 먹고 나서 9시 안 돼 고꾸라졌다. 실컷 잤다 싶어 깨어나 시간을 보니 새로 1시였다. 두어 시간 잠들지 못했다. 거실에 나와 하염없이 앉아 있다가 베란다 문을 여니 자욱한 빗소리가 뛰어 들어왔다. 창에 머리를 바투 붙이고 바깥을 내다보았다. 앞과 옆 동에도 여럿 불 켜진 창이 보였다. 지금도 잠들지 못한 이들이 있는가 하다가 머리를 흔들었다. ‘아직’ 새벽 1시인 것이다. [시 '가을에' 읽기] 김정환의 시 ‘가을에’가 떠오른 건 그때다. 이 시를 만난 건 1990년대 막바지였.. 2020. 11. 1.
해바라기의 비명(碑銘) 함형수 시 ‘해바라기의 비명(碑銘)’ 아마 고등학교 1학년 때쯤에 처음 만난 시로 기억된다. 시보다는 시와 관련된 몽환적 분위기에 압도되던 시절이었다. 그때를 회고한 글에서 나는 이렇게 적었다. 고등학교에 진학하면서 비로소 애매하게나마 나는 ‘문학’에 대해 눈뜨기 시작했던 것 같다. 입학과 동시에 들어간 문학 동아리 활동을 통해서 나는 처음으로 일반적인 의미에서 ‘자아’를 의식하기 시작했고, 이어진 소설에만 치우친 책 읽기와 끊임없이 ‘자아와 세계와의 불화’를 주제로 한 시건방진 글쓰기로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고 있다는 거짓 만족에 사로잡혀 있었다. 그 무렵, 동아리의 친구들에게 거의 ‘바이블’로 여겨졌던 소설이 이동하의 장편, 이었다. 삼성문고로 출간(지금도 간직하고 있는 그 책의 정가는 160원이다, .. 2020. 7. 11.
민들레, 민들레 요즘 걸어서 출퇴근하면서 자주 민들레를 만난다. 출근할 때는 꽃잎을 오므려 그리 눈에 띄지 않던 꽃이 퇴근할 무렵이면 거짓말처럼 곳곳에서 발견되는 것이다. 마치 일부러 찾아가 뿌리를 내린 듯 민들레는 인도의 깨어진 블록 틈새에, 간선도로변 점포와 인도의 경계에, 주택가 골목의 담 아래에 옹색하게 피어 있다. 민들레는 국화과에 속하는 다년생 초본식물로 흔히 백성을 뜻하는 ‘민초(民草)’로 비유되는 꽃이다. 이 꽃은 겨울에 줄기는 죽지만 이듬해 다시 살아나는 강한 생명력을 지니고 있어 마치 밟혀도 다시 꿋꿋하게 일어나는 백성과 견주어지는 것이다. 어떤 선원 노동자의 아내가 썼다는 “민들레의 정신”이라는 글이 새삼스러운 울림으로 다가오는 것은 그런 까닭일 터이다. 지은이는 ‘소달구지와 경운기의 육중한 바퀴 밑.. 2020. 4.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