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이 바람과 먼지의 세상, 그 길 위에 서서

이 풍진 세상에 /함께 읽기 16

김광규 시 ‘나뭇잎 하나’ 아이들에게 을 가르쳐 온 지 서른 해를 넘겼는데도 여전히 문학은 쉽지 않다. 때로 그것은 낯설기조차 하다. 아이들 앞에선 우리 시와 소설을 죄다 섭렵한 척하지만 나날이 배우고 익혀야 한다는 점에서 교사도 아이들과 다르지 않다. 단지 교사는 아이들보다 경험의 폭이 크고 깊으며, 그것을 어떻게 이해하고 느껴야 하는지를 알고 있을 뿐이다. 교과서에 실리는 시편도 그렇지만, 부교재나 모의고사 따위에 나오는 시들 가운데서는 뜻밖에 낯선 시들도 나날이 목록을 더해 간다. 그 시편들을 낱낱이 뜯고 찢어내어 아이들에게 펼쳐 보이는 게 교사들의 주된 임무(?)다. 가슴으로 느끼고 담으라고 하는 대신 우리는 낱낱의 시어에 담긴 비유와 이미지를 기계적으로 설명해 주는 데 그친다. 그나마 그런 과정을 통해서 자신도 낯선 시편.. 2021. 5. 4.
최호철 “강이 죽었단다” “강이 죽었단다” [악! 법이라고?·12] 4대강 정비 이 펴고 있는 “MB악법 바로보기 릴레이 카툰”의 12번째 만화다. 만화가 최호철이 그린 멋진 그림은 ‘4대강 정비’를 야유하고 풍자한다. 2021. 2. 9.
백무산 시 ‘장작불’을 읽으며 백무산 시인과 이재무 시인은 각각 ‘장작’을 노래했다. 한 사람은 ‘장작불’을, 또 한 사람은 ‘장작 패는 법’을 노래했다. 하나는 우리 자신이고, 다른 하나는 우리가 넘어야 할 세계다. 차이는 그것뿐, 두 편의 노래 속에 담긴 뜻은 다르지 않다. 이 시편들에 대해 보태는 것은 군더더기다. 사람들은 이미 알고 있다. 이제는 장작이 일어나 말할 차례라는 것을. [장작불 택스트 보기 / 장작을 패며 택스트 보기] 2008. 12. 17. 낮달 2020. 12. 19.
사랑은 ‘잉여’ 아닌 ‘결핍’에서…김정환 시 「가을에」 어제 상주에 다녀왔다. 시를 쓰는 선배가 뒤늦게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여 스케치 전시회를 한다고 해서다. 오랜만의 외출이어서 피곤했던가 보았다. 5시께 돌아와 저녁을 먹고 나서 9시 안 돼 고꾸라졌다. 실컷 잤다 싶어 깨어나 시간을 보니 새로 1시였다. 두어 시간 잠들지 못했다. 거실에 나와 하염없이 앉아 있다가 베란다 문을 여니 자욱한 빗소리가 뛰어 들어왔다. 창에 머리를 바투 붙이고 바깥을 내다보았다. 앞과 옆 동에도 여럿 불 켜진 창이 보였다. 지금도 잠들지 못한 이들이 있는가 하다가 머리를 흔들었다. ‘아직’ 새벽 1시인 것이다. [시 '가을에' 읽기] 김정환의 시 ‘가을에’가 떠오른 건 그때다. 이 시를 만난 건 1990년대 막바지였다. 경북 북부의 시골 고등학교에서 근무할 때였다. 시 전문을 출.. 2020. 11. 1.
해바라기의 비명(碑銘) 아마 고등학교 1학년 때쯤에 처음 만난 시로 기억된다. 시보다는 시와 관련된 몽환적 분위기에 압도되던 시절이었다. 그때를 회고한 글에서 나는 이렇게 적었다. 고등학교에 진학하면서 비로소 애매하게나마 나는 ‘문학’에 대해 눈뜨기 시작했던 것 같다. 입학과 동시에 들어간 문학 동아리 활동을 통해서 나는 처음으로 일반적인 의미에서 ‘자아’를 의식하기 시작했고, 이어진 소설에만 치우친 책 읽기와 끊임없이 ‘자아와 세계와의 불화’를 주제로 한 시건방진 글쓰기로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고 있다는 거짓 만족에 사로잡혀 있었다. 그 무렵, 동아리의 친구들에게 거의 ‘바이블’로 여겨졌던 소설이 이동하의 장편, 이었다. 삼성문고로 출간(지금도 간직하고 있는 그 책의 정가는 160원이다, 세상에!)되었던 그 작품에 등장하는 대.. 2020. 7. 11.
민들레, 민들레 요즘 걸어서 출퇴근하면서 자주 민들레를 만난다. 출근할 때는 꽃잎을 오므려 그리 눈에 띄지 않던 꽃이 퇴근할 무렵이면 거짓말처럼 곳곳에서 발견되는 것이다. 마치 일부러 찾아가 뿌리를 내린 듯 민들레는 인도의 깨어진 블록 틈새에, 간선도로변 점포와 인도의 경계에, 주택가 골목의 담 아래에 옹색하게 피어 있다. 민들레는 국화과에 속하는 다년생 초본식물로 흔히 백성을 뜻하는 ‘민초(民草)’로 비유되는 꽃이다. 이 꽃은 겨울에 줄기는 죽지만 이듬해 다시 살아나는 강한 생명력을 지니고 있어 마치 밟혀도 다시 꿋꿋하게 일어나는 백성과 견주어지는 것이다. 어떤 선원 노동자의 아내가 썼다는 “민들레의 정신”이라는 글이 새삼스러운 울림으로 다가오는 것은 그런 까닭일 터이다. 지은이는 ‘소달구지와 경운기의 육중한 바퀴 밑.. 2020. 4. 10.
조태일의 ‘국토 서시’를 들으며 ▲ 교육학자 고 성내운 교수가 낭송하는 조태일의 시 '국토 서시' 조태일(1941~1999)의 를 성내운 선생의 목소리로 다시 듣는다. 조태일 시인을 다시 기억 속에서 불러낸 것은 순전히 성내운 선생의 ‘마치 영혼 깊은 곳에서 울려오는 듯한’ 목소리 덕분이고 턱까지 치받고 올라온 한미 FTA 소식 탓이다. [시 전문 텍스트로 보기] 그를 처음 만난 것은 고등학교 시절, 문예 동아리 방에서였다. 시를 쓰는 친구들이 으스대듯 전해 주던 그의 연작과 따위를 통해서였는데 어렸던 때라 ‘멋있긴 하지만 좀 과격한, 괴짜 시인’ 정도로 그를 기억하게 되었던 것 같다. 이 시를 새로 들으면서 그가 이미 고인이 됐다는 걸, 그리고 70년대 유신독재에 정면으로 맞섰던 이였다는 걸 뒤늦게 알았다. 1974년 고은, 황석영 .. 2020. 3. 18.
성내운의 목소리로 듣는 신동엽 시인의 ‘진달래 산천’ 고 성내운 교수의 을 들으며 성내운 교수의 시 낭송은 여느 사람의 것과는 다르다. 그의 목소리는 옷깃을 여미게 하는 비장감으로 다가오는가 하면, 가슴 깊은 곳에서부터 격동하는 감정의 분출을 뜨겁게 느끼게 하기도 한다. 그는 김구와 장준하와 문익환의 사자후를 대신 토하기도 하고 신동엽과 고은, 조태일과 김지하의 시를 읊조리며 우리를 당대의 가장 뜨거운 현장으로 이끌기도 한다. 나는 저서를 통해 그를 알았지만, 그가 뜨거운 낭송의 주인공이었다는 것은 그가 세상을 떠난 뒤에야 알았다. 어떤 경로였는지, 그의 시 낭송 1집 테이프가 내 손에 들어왔기 때문이다. 그는 1989년 12월에 세상을 떠났다. 89년이라면, 민족·민주·인간화 교육을 내걸고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이 출범한 해다. 교육지표 사건이 아니더라도 전교.. 2020. 3. 12.
김광규 시 ‘희미한 옛사랑의 그림자’ 김광규의 시는 평범한 일상을 다루면서도 그 속에 곡진한 삶의 흔적과 체취를 담고 있는 경우가 많다. 그의 발언은 낮으면서도 적지 않은 울림을 갖고 있다. ‘묘비명(墓碑銘)’은 어느 부자의 무덤 앞에서의 상념을 통해 ‘역사’와 ‘시인’을 노래한다.[ 시 전문 읽기] ‘희미한 옛사랑의 그림자’는 기성세대로 편입한 혁명 세대의 우울한 초상을 그리고 있다. ‘아무도 귀 기울이지 않는 노래’,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노래’를 ‘저마다 목청껏 불렀’던 그들은 ‘살기 위해 살고’, ‘아무도 이젠 노래를 부르지 않’는다. 그리고 ‘옛사랑이 피 흘린 곳’을 지나며 부끄러움을 느끼지만, ‘바람의 속삭임 귓전으로 흘리며’, ‘짐짓 중년기의 건강을 이야기’하고, ‘또 한 발짝 깊숙이 늪으로 발을 옮’기는 것이다. [시 전.. 2020. 1. 6.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이후 20년 글쎄, 쇠귀 선생의 글은 모두 짙은 사색의 향기를 어우르고 있긴 하지만, 그가 쓴 글의 으뜸은 역시 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거기 실린 글 ‘비극에 대하여’를 읽고서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20년 20일쯤을 감옥에서 보낸다면 이런 깨달음, 이런 인식의 지평에 이를 수 있는 것인가. 신영복 선생을 만난 게 1988년이다. 87년 6월항쟁의 과실을 어부지리로 챙긴 노태우가 올림픽에 명운을 걸고 있던 때였다. 3월에 4년간 근무한 여학교를 떠나 고향 인근의 남학교로 옮겼다. 전세 500만 원, 재래식 화장실에다 부엌이 깊은 집(가족들은 지금도 그 집을 ‘부엌 깊은 집’으로 부르곤 한다.)에 들었다. 그 당시 창간된 을 받아보았는데 그 지면에서 쇠귀의 글을 만났다. 서른셋, 이른바 학습능력도 괜찮고 감성도 위태하.. 2019. 10. 26.
시월의 들녘에서 읽는 ‘벼는 벼끼리 피는 피끼리’ 어제는 아내, 딸애와 함께 장모님 밭에 가서 고구마를 캤다. 노인네가 힘들여 심은 것을 우리는 잠깐의 노동으로 수확해 겨우내 그걸로 궁금한 입을 달랠 수 있게 되었다. 생산자와 소비자의 몫이 다르긴 하지만, 이럴 때 우리는 그냥 노인의 거룩한 노동과 그 결과를 노략질하는 자일 뿐이다. ‘황금들판’이라고 부르기엔 좀 이르지만 10월 초순의 들녘에 나락이 누렇게 익어가고 있었다. 여름내 참외를 따냈던 대형 비닐하우스에 막혔다가 이어지는 들판 저편으로 짙푸른 하늘이 성큼 높았다. 드러난 살갗에 감기는 햇볕이 따뜻했고 가끔 이는 바람이 고개 숙인 벼들을 흔들고는 들판 저쪽으로 스러지곤 했다. 사진기를 들고 나는 잠깐 논두렁에 서 있었다. 나락의 낟알은 아직 실해 보이지 않았다. 벼의 낟알이 옹글게 여물려면 얼마.. 2019. 10. 22.
아내들에게 바침, 문정희 ‘작은 부엌 노래’ 한가위 전날이다. 따로 차례를 모시지 않는 우리 집 풍경은 조금 쓸쓸하다. 귀향한 아들 녀석과 제 누이는 어젯밤 내내 도란도란 이야기꽃을 피우더니 아직도 늦잠이다. 아내는 ‘그래도 섭섭할까 봐’ 부침개 몇 종류를 준비한다. 대형 전기 팬을 거실 바닥에 놓고 갖가지 준비를 해 놓으면 아이들이 달려들어 거들 것이다. 한가위 전날 풍경 마련할 음식이래야 단출하기만 하다. 쇠고기 산적과 두부전, 명태전을 조금 부치고 나면 명절 준비는 끝이다. 떡을 잘 먹지 않으니 우리 집에선 송편도 준비하지 않는다. 명절이라고 식솔들을 이끌고 가야 할 본가도 큰집도 없으니 내일 성묘를 마치고 아이들 외가를 들러 오면 그뿐이다. 여든이 내일모레인 장모님이 손자와 함께 지키고 있는 처가의 고적(孤寂)을 우리 식구가 흩트려 놓을 것.. 2019. 9. 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