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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바람과 먼지의 세상, 그 길 위에 서서

이 풍진 세상에 /부음, 궂긴 소식들41

우리의 ‘맏언니·맏누님’, 조영옥 선생님을 보내며 경북 교육, 노동, 인권, 생명 평화운동의 어머니 조영옥 선생을 배웅하면서조영옥 선생님이 먼 길 떠나셨다. 오랜 투병 끝에 가시면서 전교조와 참교육의 이름으로 만난 사람들, 동료, 선후배, 시민단체 동지들을 불러 모아 우리가 함께한 날을 추억하게 하고, 뉘우치게 하게, 사무치게 하고 가신 것이다.  사람에 따라 그를 부르는 호칭이 지부장, 지회장, 대표, 의장 등 제각각이어도 그의 생애를 관통하는 이름은 ‘선생님’이었다. 1976년 경북대 사범대를 졸업하고 울진 죽변중학교에 첫 발령을 받은 이래 그는 아이들에게 다정하고, 자기 삶 속에서 여유와 가치를 추구하려는 ‘보통’의 교사로 살았다. 그러나 1987년 전국교사협의회가 건설되면서 전국의 학교와 교실에서 들불처럼 일어난 ‘교육 민주화’와 ‘참교육’의 격.. 2024. 11. 26.
‘아침이슬’과 ‘상록수’의 김민기, 먼 길 떠나다 김민기(1951~2024.7.21.) 소극장 학전을 이끈 김민기 대표가 세상을 떠났다. 향년 73. 나보다 5년 위일 뿐인데, 병마로 그는 서둘러 먼 길을 떠난 것이다. 오늘 오후에 그 부음을 뉴스로 읽고 나는 우정 그렇게 중얼거렸다. 고작 일흔셋에 세상을 떠나면 어떡하노……. [관련 기사 : 학전 이끈 ‘아침이슬’ 김민기 별세…향년 73] 김민기는 설명이 필요 없을 만큼 유명한 인사지만, 나는 단지 노래 몇 곡으로 그를 기억하는 사람이다. 그 노래는 그가 대학 신입생이던 1971년에 냈다는 ‘아침이슬’과 ‘상록수’(1979) 등이다. 그를 음악인으로 규정하는 데는 더 많은 노래와 그가 소극장 학전을 운영하며 이끈 뮤지컬 등이 넘칠 테지만 말이다.   ‘아침이슬’과 ‘상록수’로 기억되는 사람,  김민기 .. 2024. 7. 23.
한국 노동자 최초 앰네스티 ‘양심수’ 김성환 삼성일반노조 위원장 떠나다 김성환(1958 ~ 2024. 5. 19.)지난 금요일 아침 일찍 군위로 가는 시외버스에서 를 읽다가 김성환(1958~2024) 삼성일반노조 위원장의 늦은 부음을 들었다. ‘가신 이의 발자취’ 꼭지에 실린 송경동 시인의 김성환 위원장을 추모하는 글을 읽으면서였다. 바로 확인해 보니 김 위원장은 지난 19일 세상을 떠났고, 그의 장례는 22일에 이미 치러졌다. 향년 65.[관련 기사 : 김성환, ‘무노조 삼성’ 맞서 투쟁 멈추지 않은 진짜 노동자] 나는 송경동 시인의 추모 글을 읽다가 눈시울이 뜨거워져서 한동안 계속 창밖을 바라보기만 했다. 일면식도 없을뿐더러, 그에 대해서 아는 것이라곤 그가 단연 주인공으로 나오는 삼성의 노조 탄압 기사가 고작인 퇴직 교사가 참았던 눈물의 의미는 무엇이었을까.  삼성에 .. 2024. 6. 2.
‘농무(農舞)’의 시인 신경림 선생 별세 시인 신경림(1935 ~ 2024. 5. 22.)시인 신경림(1935~2024) 선생이 돌아가셨다. 별세 소식은 어젯밤 텔레비전 뉴스에서 들었지만, 정식 부음 기사는 오늘 아침에 확인했다. 보도에 따르면, 선생은 22일 오전 8시17분께 경기 고양시 국립암센터에서 지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향년 89. 89라는 숫자에 잠깐 눈길이 머물렀다. [관련 기사 : ‘농무’ 신경림 시인 별세…민중시로 우리의 마음 울리고] 지난 4월 초에 벗의 모친이 89세로 세상을 버리셨고, 2002년 가을에는 나는 어머니를 여의었는데, 그때 어머니의 향년이 89였다. 그러고 보니 어머니 가신 지 어느덧 20년이 넘었다. 향년이 89라면 장수했다고 할 수도 있긴 한데, 요즘은 워낙 구순을 넘기는 이가 많으니 아쉬워하는 마음도 적지.. 2024. 5. 23.
프로 복서 최요삼과 김득구, 두 죽음에 부쳐 링에서 쓰러져 다시 일어나지 못한 두 프로 복서의 죽음타이틀을 방어하고 링에서 쓰러졌던 프로 복서 최요삼(34·숭민체육관)이 끝내 뇌사 판정을 받았다. 서울 아산병원은 오늘(2일) 낮 12시 45분 최종적으로 그의 뇌사 판정을 결정했다. 병원 측은 유족들의 요청에 따라 그의 법적 사망일을 그의 부친 기일에다 맞추어 주었다. 이는 최 선수에게 제삿밥이라도 차려주기 위한 가족들의 마지막 배려였다고 한다. 최 선수와 가족의 뜻에 따라 오늘 저녁 장기 적출이 이뤄지는데 심장, 신장, 간장, 췌장 등 최대 9부분의 장기가 이식자들에게 새로운 생명을 전하게 된다고 한다. 적출 수술이 끝난 다음 인공호흡기를 떼면 그의 삶을 위한 싸움도 모두 끝나게 된다. 그는 자신의 최후를 내다보았던 것일까. 최 선수는 일기장에 그.. 2023. 11. 19.
‘고별’과 ‘석별’의 중저음 가수 홍민 떠나다 포크 가수 홍민(1947~2023.11.2.) 아침에 식탁에서 태블릿을 보다가 가수 홍민 씨의 부음 기사를 보았다. ‘1970년대 인기를 끈 원로가수 홍민이 지난 2일 대장암으로 별세’했다는 기산데, ‘원로가수’라는 칭호가 어쩐지 낯설었다. 그러나 뒤의, 76세라는 향년을 보고서야 머리를 끄덕였다. [관련 기사 : ‘고별’·‘고향초’로 70년대 풍미한 포크 가수 홍민 별세] 1974년 고교 졸업반 시절에 만난 가수 홍민 그가 나보다 8년이나 위였던가. 나 역시 일흔이 내일모레지만, 그는 내게 1970년대 중반에서 80년대 초반의 2, 30대 젊은 가수로만 환기된다. 1970년대 초만 해도 텔레비전이 막 대중적으로 보급되던 때여서 나는 TV 화면에서 그의 모습을 거의 보지 못했고, 단지 목소리만으로 그를 .. 2023. 11. 3.
‘분단’과 ‘통일’을 화두 삼은 진보 역사학자 강만길 교수 별세 진보 역사학자 강만길(1933 ~ 2023. 6. 23.) 고려대 명예교수 진보 역사학자로 ‘분단’과 ‘통일’을 화두 삼았던 강만길 고려대 명예교수가 23일 세상을 떠났다. 향년 90. 나는 1980년대 후반 해직 시절에 역저 와 (1984)를 읽으면서 선생을 처음 만났다. 그리고 90년대 중반, 선생의 강연을 통해 ‘역사로 성찰한 통일의 의미’를 어렴풋하게 깨달았던 순간을 잊을 수 없다. 선생은 고려대 교수로 재직하면서 일제의 식민사학의 정체성론을 극복하고자 애썼는데, 조선 후기 상업자본이 싹트고 있음을 주목하면서 (1973)을 썼다. 그는 조선 후기 관영 수공업장에서 독립 생산자가 형성되고 노동력 거래가 이뤄지고 있었음을 실증적으로 연구했다. 나는 에서 그러한 자본의 기초적 발전이 사설시조 등 조선 .. 2023. 6. 25.
‘그’가 가고 30년, ‘그’는 우리와 함께 늙어가고 있다 시인 정영상(1956 ~1993)의 30주기에 부쳐*PC에서 ‘가로 이미지’는 클릭하면 큰 규격(1000×667픽셀)으로 볼 수 있음.정영상, 그가 떠난 지 30년이 흘렀다! 월초에 모바일 메신저에 오른 ‘정영상 30주기 추모식’ 소식을 확인하면서 나는 잠깐 말을 잃었다. 세상에, 그새 삼십 년이 흘렀구나! 황망 중에 그를 보냈는데 어느새 한 세대가 바뀐다는 시간이 흘러버린 것이다. 그리고 나는 30년 전 포항 연일의 산기슭에 묻은 뒤 다시 그를 찾지 못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와의 인연은 내 오래된 벗과 함께 내 삶의 한 갈피가 된 ‘안동’과 이어진다. 1984년에 나는 한 절친의 혼인날에 싸락눈이 흩날리던 안동을 처음 찾았는데, 그는 4년 뒤 1988년 1월에 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그는 지금 고.. 2023. 4. 17.
‘바다 같았던 사람’, 숲사람 김창환 선생 10주기에 ‘진심으로 사람을 바라보고 마음을 나눈 사람’ 김창환 선생23일 오전 11시 30분, 경북 안동시 안기동 천주교 공원묘지, 선생의 유택 앞에서 ‘숲사람 고 김창환 선생 10주기 추모식’이 베풀어졌다. 안동은 물론이거니와 대구와 경북의 각 시군에서 달려온 60여 명의 교사, 시민사회단체 회원들은 10년 전에 세상을 떠난 선생을 추모하며 세월의 덧없음을 되뇌었다. 당신의 ‘부드럽고 강한 힘’추모식에 온 이들은 저마다 다른 기억과 이미지로 선생을 떠올리겠지만, 그가 늘 ‘진심으로 사람을 바라보고 마음을 나눈 사람’이라는 믿음과 교감을 공유한 이들이었다. ‘숲사람’으로 불리길 원한 선생은 “한 그루의 나무가 되라고 한다면 나는 산봉우리의 낙락장송보다 수많은 나무들이 합창하는 숲속에 서고 싶”다고 한 신영복 선생.. 2023. 2. 24.
“난쟁이와 한편” 작가 조세희 잠들다 소설가 조세희(1942 ~ 2022. 12. 25.)의 조세희(1942~2022) 작가가 25일 저녁 7시께 80세를 일기로 강동경희대학교병원에서 세상을 떠났다. 지난 4월 코로나로 의식을 잃은 뒤 회복하지 못해 마지막 대화도 나누지 못했다고 한다. 오늘 새벽에 스마트폰에 뜬 뉴스로 선생의 부음을 확인했다. 아내에게 이야기하니 때 되면 가는 거야 어쩔 수 없지만, 돌아가시기엔 좀 이르지 않으냐고 말꼬리를 흐렸다.  1978년 펴낸 , 2017년에는 300쇄작가는 1965년 신춘문예에 단편 ‘돛대 없는 장선(葬船)’이 당선해 등단했으나 10여 년 동안 작품 활동을 거의 하지 않았다고 한다. 1975년 ‘난쟁이 연작’의 첫 작품인 ‘칼날’을 발표한 이후, ‘뫼비우스의 띠’ ‘은강 노동 가족의 생계비’ ‘잘.. 2022. 12. 26.
한국인 전범의 65년 싸움, 이대로 끝낼 수 없다 [근조] 한국인 B·C급 전범 이학래(1925~2021) 선생 별세에 부쳐 오늘 새벽 인터넷에서 태평양전쟁 뒤 비시(B·C급) 전범으로 복역했던 한국인 이학래(1925~2021) 동진회(同進會) 회장의 부음을 확인했다. 블로그에 실은 서평 글 의 조회 수가 부쩍 늘어나는 걸 보고도 무심히 지나쳤는데, 일간지 기사에서 선생의 부음을 확인한 것이다. 의 보도에 따르면 선생은 지난 24일 자택에서 넘어져 머리를 다쳤고, 28일 외상성 뇌출혈로 숨졌다고 한다. 향년 96세. 전범이 된 조선 청년 이학래, 96세를 일기로 떠나다 나는 회고록 으로 그를 만났었다. 그가 일본에서 펴낸 이 회고록의 한국어판은 2017년 말에 나왔고, 나는 이 책의 서평을 쓰면서 그가 살아온 우리의 아픈 현대사를 돌아볼 수 있었다. 그.. 2021. 3. 29.
죽음, 혹은 영면(永眠) 강남희 1940~2007.12.27. 형수님이 돌아가셨다. 지난 27일 오전 6시께. 급성 신부전증으로 투병했는데 좀 회복되는가 했더니 병마는 이미 당신의 몸을 망가뜨리고 있었던 모양이다. 향년 68세. 얼마든지 더 살아 있어야 할 나이다. 떠날 나이가 아니었기 때문에 남은 사람의 슬픔은 더 컸다. 아니다. 당신이 산 세월이 워낙 고단해서 자식들의 비통함이 더 컸는지 모른다. 고인의 지아비, 그러니까 내 형님이 세상을 뜨신 게 1992년이니 15년 만에 내외는 이승이 아닌 저세상에서 만나게 될 것인가. 음력으로 치면 형님이 세상을 버린 날짜 하루 전이다. 정작 생전에 내외의 정리는 그렇지 못했으니 이건 웬 반어인가. ‘천생연분’이라고 말하면서도 사람들의 마음이 착잡해진 이유도 거기 있다. 형수가 우리 ‘.. 2020. 12. 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