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이 바람과 먼지의 세상, 그 길 위에 서서

이 풍진 세상에 /부음, 궂긴 소식들31

한국인 전범의 65년 싸움, 이대로 끝낼 수 없다 [근조] 한국인 B·C급 전범 이학래(1925~2021) 선생 별세에 부쳐 오늘 새벽 인터넷에서 태평양전쟁 뒤 비시(B·C급) 전범으로 복역했던 한국인 이학래(1925~2021) 동진회(同進會) 회장의 부음을 확인했다. 블로그에 실은 서평 글 의 조회 수가 부쩍 늘어나는 걸 보고도 무심히 지나쳤는데, 일간지 기사에서 선생의 부음을 확인한 것이다. 의 보도에 따르면 선생은 지난 24일 자택에서 넘어져 머리를 다쳤고, 28일 외상성 뇌출혈로 숨졌다고 한다. 향년 96세. 전범이 된 조선 청년 이학래, 96세를 일기로 떠나다 나는 회고록 으로 그를 만났었다. 그가 일본에서 펴낸 이 회고록의 한국어판은 2017년 말에 나왔고, 나는 이 책의 서평을 쓰면서 그가 살아온 우리의 아픈 현대사를 돌아볼 수 있었다. 그.. 2021. 3. 29.
죽음, 혹은 영면(永眠) 강남희 1940~2007.12.27. 형수님이 돌아가셨다. 지난 27일 오전 6시께. 급성 신부전증으로 투병했는데 좀 회복되는가 했더니 병마는 이미 당신의 몸을 망가뜨리고 있었던 모양이다. 향년 68세. 얼마든지 더 살아 있어야 할 나이다. 떠날 나이가 아니었기 때문에 남은 사람의 슬픔은 더 컸다. 아니다. 당신이 산 세월이 워낙 고단해서 자식들의 비통함이 더 컸는지 모른다. 고인의 지아비, 그러니까 내 형님이 세상을 뜨신 게 1992년이니 15년 만에 내외는 이승이 아닌 저세상에서 만나게 될 것인가. 음력으로 치면 형님이 세상을 버린 날짜 하루 전이다. 정작 생전에 내외의 정리는 그렇지 못했으니 이건 웬 반어인가. ‘천생연분’이라고 말하면서도 사람들의 마음이 착잡해진 이유도 거기 있다. 형수가 우리 ‘.. 2020. 12. 31.
활동가 ‘고 이상윤’을 보내며 1961~2007.12.10 한 활동가가 죽었다. 불의의 사고다. 지난 10일 자정께 지인들과 술자리를 마친 귀갓길, 그는 횡단 보도를 건너고 있었고 한 음주 운전자가 그를 덮친 것이다. 내가 그의 죽음을 안 것은 이튿날 오후, 내가 고입 논술시험 채점을 하고 있을 때였다. 소식을 전해주던 동료 하나는 이틀 전 그를 만났을 때, 그가 내 안부를 물었다는 얘기도 곁들였다. 채점을 마치고 바로 의료원에 들렀다. 이미 지역의 지인들과 활동가들이 장례식장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나는 그들 중 하나에게서 그를 치고 달아난 사고 운전자가 잡혔다는 소식을 들었다. 막역하게 마음을 나누어 온 사이가 아닌 한, 타인의 죽음 앞에 눈물을 흘리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은 아니다. 식장을 짓누르고 있는 슬픔과 숨죽인 비탄 사이에.. 2020. 12. 14.
[근조] 리영희 선생님의 부음에 부쳐 1929~2010. 12. 5. 리영희 선생께서 돌아가셨다. 며칠 전 정운현 선생의 블로그에서 문병 소식을 들으면서 병환이 매우 위중하다는 것을 알았는데 불과 며칠 새에 결국 세상을 버리신 것이다. 아침에 조반을 짓던 아내로부터 나는 선생의 부음을 들었다. “이영희 선생이 돌아가셨대.” “그래, 위중하시다더니 그만…….” 아침밥을 먹고 나서 인터넷에 들어갔더니 여기저기서 선생의 부음 관련 기사가 떠 있다. 많은 기사에서 선생을 ‘사상의 은사’라고 보도했던 프랑스 일간지 의 평가를 전하고 있다. 외국 언론의 평가지만 그것은 더하거나 뺄 필요가 없는, 선생의 삶과 사상이 이 나라의 젊은이들에게 끼친 가르침에 걸맞은 표현이다. 나는 선생을 존경하고 선생의 저작을 통해서 눈과 생각이 트이기는 했지만, 그를 내 .. 2020. 12. 5.
<아버지는 그렇게 작아져간다>의 작가 이상운 떠나다 1959~2015.11.8. 오늘 아침 신문 ‘궂긴 소식’란에서 작가 이상운의 부음을 읽었다. 8일 새벽, 그는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 수능일이 며칠 남지 않은 3학년 교실에서 그 부음을 읽고 나는 잠깐 마음의 평정을 잃었다. 아, 나는 자습하는 아이들에게는 들리지 않도록 나지막하게 신음을 흘렸던 것 같다. 소설을 읽지 않은 지 좋이 10년이 넘었다. 매체에서 작가라고 소개하는 이들을 적지 않게 만나지만 나는 그들의 소설을 읽은 적이 없으므로 그냥 작간가 보다, 하고 만다. 이상운도 그런 작가 가운데 한 사람이다. 그러나 나는 소설 대신 그가 쓴 간병일기 를 읽었다. 그는 가까운 포항 출신이다. 1959년생이니 우리보다 몇 년 아래다. 그는 1997년에 장편소설 으로 대산 창작기금을 받으며 작.. 2020. 11. 8.
‘직녀에게’의 시인, 문병란 떠나다 문병란(1935~2015.9.25.) 지난 25일, 문병란(文炳蘭, 1935~2015) 시인이 세상을 떠났다. 향년 80세. 전남 화순에서 태어나 군부 독재정권에 맞서 민중과 통일을 노래하는 참여시를 꾸준히 발표해 온 시인은 1962년 으로 등단했다. 시인은 조선대학교 교수, 민족문학작가회의 이사, 5·18기념재단 이사, 민주화를 위한 교수협의회 공동의장 등을 지냈다. 문 시인은 1970년대 이후 ‘죽순밭에서’, ‘벼들의 속삭임’ 등을 발표하며 저항 의식을 바탕으로 한 민중문학을 선보였다. (인학사·1971)(창작과비평·1981), (풀빛·1984), (청사·1986) 등 시집 여러 권을 냈고, 전남문학상(1979), 요산문학상(1985)과 박인환 시문학상(2009) 등을 수상했다. 선 굵은 민중시의 시.. 2020. 9. 25.
소설가 최인호를 보내며 최인호(1945∼2013. 9. 25.) 소설가 최인호 씨가 세상을 떠났다 한다. 조금 전 새벽잠에서 깨어 뒤척이다 들여다본 스마트폰 뉴스를 통해서였다. 아내에게 그의 부음을 일러 주었더니 어젯밤에 진작 들었다는 무심한 답이 돌아왔다. 벌써 그렇게 된 거야? 한 70 되었을걸, 하고 대답하다가 그가 1945년생, 해방둥이, 우리 작은누나와 동갑이란 사실을 기억해 냈다. 1970년대 초반 고등학교에서 문예 동아리 활동으로 공연히 바쁘고 심각할 때다. 그의 신춘문예 당선작 (1967)와 꽤 반향을 일으켰던 ‘당선 소감’을 읽으면서 우리는 문학에 입문했다. ‘아이가 태어났다. 어머니는 , 그러나 어머니는 아이의 성장에 별 관심이 없다. 아이가 제대로 자라면 고마워할 뿐…….’ 이라는 요지의 수상 소감을 우리는.. 2020. 9. 25.
‘분단문학’의 거목, 작가 이호철 떠나다 이호철(1932~2016. 9. 18.)) 소설가 이호철(李浩哲,1932~2016) 선생이 세상을 떠났다. 뇌종양으로 투병하고 있던 작가는 지난 18일 오후 7시 32분에 서울의 한 병원에서 눈을 감았다고 한다. 1950년 한국전쟁 때 단신으로 월남했던 19살 청년은 끝내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이남에서 눈을 감았다. 향년 85세. 단신 월남 19살 청년에서 분단문학의 거목으로 일주일이면 돌아갈 것으로 생각하고 삼팔선을 넘었던 작가는 결국 한반도 분단과 이산을 상징하는 인물이 되었다. 고인은 1950년 인민군으로 징집되어 참전한 한국전쟁에서 포로가 됐다가 풀려난 뒤 이남에서 작가로 살아오면서 자신이 직접 겪은 전쟁과 이산의 아픔을 형상화해 왔다. 1955년 단편 ‘탈향(脫鄕)’이 에 추천되어 문단에 나.. 2020. 9. 18.
극작가 에드워드 올비 돌아가다 에드워드 올비(Edward Albee, 1928~2016. 9. 16.) 지난 16일(현지 시간), 미국 극작가 에드워드 올비(Edward Albee, 1928~2016)가 세상을 떠났다. 향년 88세. 에드워드 올비는 유진 오닐(1888~1953), 테네시 윌리엄스(1911~1983), 아서 밀러(1915~2005)를 잇는 현대 미국을 대표하는 극작가다. 의 에드워드 올비 올비는 최초의 단막극 가 독일(1959)과 오프브로드웨이(1960)에서 공연되어 성공을 거두면서 세상에 알려지기 시작한 이래, (1967), (1975), (1994) 등으로 퓰리처상을 세 차례나 수상했다. 그가 남긴 30여 편의 희곡은 오늘의 미국 사회와 미국인이 안고 있는 소외·좌절·고독·허무와 절망적 삶의 모습을 다루고 있다. .. 2020. 9. 16.
‘조국’의 시조 시인 정완영 선생 돌아가다 시조시인 정완영(1919~2016. 8. 27.) 오늘 새벽에 인터넷에서 시조 시인 정완영(1919~2016) 선생의 부음 기사를 읽었다. 기사는 지난 27일 오후 3시께 노환으로 별세한 선생을 ‘시조 문학의 큰 별’이라는 표현으로 기리고 있었다. 향년 98세. 초임 시절인 5차 교육과정 고교 국어 교과서에 그의 시 ‘조국’이 실려 있었으니 얼추 내가 그의 시를 가르친 것도 30년이 넘었다. 그러나 그게 다였던 것은 시조라는 갈래가 가진 한계 탓이다. 고려 시대에 만들어진 이 오래된 민족 정형시는 지금껏 살아남았지만 겨우 교과서에 실리는 것 정도로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시 전문 텍스트로 읽기] 3장 6구 45자 안팎이라는 정형 안에 복잡다단한 현대인의 정서를 그려내는 것은 원천적으로 어려운 일일까. .. 2020. 8. 28.
두 부음에 부쳐- 목순옥과 이윤기 전통 찻집‘귀천’과 천상병 시인의 목순옥(1935~2010. 8. 26.) 한 여인이 세상을 떠났다. ‘목순옥’(1935~2010)이라고 하면 갸웃하다가도 천상병 시인의 부인이라면 모두가 머리를 끄덕일 것이다. 서울 인사동에 있다는 전통 찻집 ‘귀천’의 주인이다. 숱한 시인 묵객들의 명소가 되었다는 그 찻집을 나는 이름만 들었지 가보지 못했다. 천상병(1930~1993)의 시를, 그의 시 ‘귀천(歸天)’을 가르치면서 나는 가끔 그이의 이야기를 아이들에게 해 주곤 했다. 1967 동백림사건으로 중앙정보부에 끌려가 고문을 받아 폐인이 된 채 행려병자로 떠돌던 천상병 시인을 구한 이가 그이였다고. 지극정성으로 간호해 그를 살려내고 그의 반려가 되었던 여인……. [시 전문 텍스트 보기] 1935년 경상북도 상주.. 2020. 8. 27.
<닥터 지바고>의 오마 샤리프, 떠나다 1932 ~ 2015. 7. 10. 오늘 새벽, 스마트폰 뉴스를 통해 이집트 출신의 영화배우 오마 샤리프(Omar Sharif, 1932~2015)의 부음을 읽었다. 알츠하이머로 투병해 왔던 그는 어제(7월 10일)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 향년 83세. 그의 부음은 무심하게 받아들였지만, 그가 여든을 넘긴 노인이었다는 사실 앞에서 잠깐 망연했다. 중1 때 문화 교실로 본 내가 오마 샤리프를 만난 것은 1969년, 중학교 1학년 때 영화 , 보리스 파스테르나크, 그리고 노벨문학상 모니터 화면으로 영화 를 다시 보았다. 상영 시간이 무려 3시간 12분이었다. 이 영화를 처음 보았던 열네 살 때도 이렇게 길었던가, 그러나 거짓말처럼 기억이 전혀 없다. 그러나 시 qq9447.tistory.com 2020. 7.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