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이 바람과 먼지의 세상, 그 길 위에 서서

이 풍진 세상에 /풍경107

신록과 녹음의 산길에서 봄이 깊어지면서 출근길의 산은 한층 더 푸르러졌다. 겨우내 황량하고 칙칙했던 산빛을 그나마 유지해 준 것은 소나무였다. 4월을 넘기면서 새로 돋아난 가지와 새순으로 숲은 충실해졌다. 날이 갈수록 새순의 연록은 조금씩 짙어지면서 튼실해졌다. 시나브로 이루어진 이 변화를 그러나 사람들은 어느 날 갑자기 다가온 것처럼 느낀다. 사람들이 봄이 짧다고 느껴서 ‘봄인가 싶더니 이내 여름’이라고 푸념하는 것은 자신이 주변 환경의 변화에 무심했던 탓이라는 걸 잘 모른다. 5월, 날마다 산어귀에 들어서면 눈앞에 싱그럽게 펼쳐지는 초록의 숲과 나무 앞에 압도당하는 느낌은 놀라움이고 쉬 표현하기 어려운 행복감이다. 그득한 숲 내음 속에 한창 꽃을 피우는 아까시나무꽃의 향기도 그윽하다. 나날이 짙어지는 숲의 빛깔은 단일한 색.. 2021. 5. 12.
씀바귀와 고들빼기, 혹은 이마를 맞댄 ‘민초’의 삶 아파트 주변에도 봄꽃이 여럿 피어 있다. 심어서 가꾼 꽃들 한편에 저절로 자라 군락을 이룬 꽃, 씀바귀와 고들빼기가 지천이다. 얼른 봐서는 잘 구분도 되지 않을 만큼 씀바귀와 고들빼기는 서로 닮았다. 둘 다 국화과의 식물인데 우리 민족은 예부터 씀바귀와 고들빼기를 식용해 왔다. 씀바귀는 이른 봄에 뿌리와 어린순을 나물로 먹는다. 우리 지역에선 씀바귀를 ‘신냉이’라 불렀다. 씀바귀의 줄기나 잎을 자르면 흰 즙이 나오는데, 이 즙은 쓴맛이 난다. 씀바귀를 ‘고채(苦菜)’라 부르는 까닭이다. 고채 씀바귀, 그 쓴맛을 깨닫게 한 나이 어릴 적에는 나는 그 쓴맛을 꺼려서 신냉이를 잘 먹지 않았다. 그러나 나이가 들면서 그 쓴맛이 입맛을 돋우는 묘한 풍미가 있다는 걸 알았다. 입맛은 나이를 먹으며 변한다. 그 쓴맛.. 2021. 5. 6.
스마트폰으로 담은 산길의 봄 “사진은 비록 똑딱일지언정 전용 사진기로 찍어야 한다.” 디지털카메라로 사진을 찍어온 지 10년이 넘었는데도 여전히 아마추어를 면하지 못하고 있으면서도 내가 줄곧 외쳐온 구호다. 똑딱이에서 시작해서 이른바 디에스엘알(DSLR) 중급기를 만지고 있는 지금까지 나는 ‘좋은 사진’(‘마음에 드는 사진’이라는 표현이 더 정확할지 모르겠다.)을 위해서 길을 떠날 때 카메라를 지녀야 하는 성가심과 고역을 감수해 온 것이다. 2G폰 시절부터 스마트폰을 쓰는 지금까지 휴대전화의 카메라 기능을 이용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제한적이었다. 부득이할 때에 보조 촬영의 기능으로만 그걸 써 왔다는 얘기다. 함부로 카메라를 들이대기 어려운 장례식에서나 사진을 찍어야 하는데 준비되지 않은 상황에서만 부득이 휴대전.. 2021. 4. 6.
봄, 새순과 꽃 봄꽃이 피지 않는다고 투덜대었더니 봄은 내 눈을 피해 일찌감치 주변에 이르러 있었던가 보다. 늘 교사 뒤편 산 중턱, 옥련지 주변의 매화와 수달래에만 눈길을 주고 있었으니 소리 없이 당도한 봄을 어찌 알았으랴! 며칠 전에 우연히 동네 뒤의 민둥산을 올랐더니 생강나무가 노랗게 꽃을 피우고 있었다. 산수유인가 했더니 가지에 바투 붙은 수술 같은 노란 꽃의 생강나무였다. 인가로 내려가는 산 중턱엔 매화가 흐드러지게 피어 있었다. 시가지에서 조금 떨어진 산 밑에 웅크린 학교 주변에 오는 봄이 더딘 것은 당연한 일! 내 눈에 뵈지 않는다고 오는 봄을, 피는 꽃을 부정할 수는 없다. 이제 조금씩 자리를 넓혀가는 쑥과 여린 새순을 틔워내고 있는 찔레가 싱그럽다. 교사 앞 화단에 선 동백나무는 이제 겨우 몇 송이의 꽃.. 2021. 3. 28.
숨어 있는 봄 일요일의 늦은 오후, 네 시가 넘어서 사진기를 들고 봄을 찾아 나섰다. 최남선이 수필 ‘심춘순례(尋春巡禮)’에서 쓴 표현을 빌리면 ‘심춘’이다. ‘심춘’은 일간지 ‘심인(尋人)’ 광고에서와 마찬가지로 ‘찾을 심(尋)’ 자를 썼으니 직역하면 ‘봄 찾기’다. 최남선의 수필은 지리산을 중심으로 한 국토를 돈 기록이니 ‘순례’가 제격이지만, 동네 뒷산으로 꽃소식을 찾아 나선 길을 ‘봄 찾기’라 쓰는 것은 좀 무겁기는 하다. 그러나 봄이 와도 한참 전에 와 있어야 할 시절인데 유난히 늦은 꽃소식에 좀이 쑤셔 집을 나섰으니 ‘봄 찾기’가 지나치지는 않겠다. 인근 대구에는 개나리가 만개했다는데 안동의 봄은 여전히 을씨년스럽다. 기온도 기온이려니와 사방의 빛깔은 아직도 우중충한 잿빛이다. 반짝하는 봄기운에 서둘러 피기.. 2021. 3. 28.
산당화에서 할미꽃까지, 나의 ‘꽃 삼월’ 꽃 나들이 - 동네 한 바퀴와 산행 이제 곧 봄이 오는가 싶으면 어느덧 봄은 우리 밭 밑에 와 있다. 날마다 새로워지는 대기로, 맨살에 휘감기는 햇볕으로도 오지만, 역시 봄의 기척은 꽃눈과 꽃망울, 그리고 마침내 피어난 꽃으로 완성된다. 겨우내 추위를 이기고 속으로만 자라난 꽃눈은 봄바람과 만나면서 비로소 그 존재를 시나브로 드러내는 것이다. 올봄은 지난해보단 더디 온 듯하다. 아파트 화단에 해마다 2월이면 꽃을 피우던 산수유가 삼월이 되어서야 비로소 꽃눈을 틔웠다. 산밑 동네에 오는 봄이 더디다는 걸 인정해도 그렇다. 온 세상에 다 봄이 와도 창밖과 울타리 너머에 그 기척이 없으면 ‘나의 봄’은 이르지 않은 것이 아니던가. 지난 금요일에 겨우내 발을 끊었던 산자락에 다시 올랐고 오늘 한 차례 더 다녀왔.. 2021. 3. 23.
어떤 봄날에는… 가끔씩 어떤 봄날에는 김광규 시인처럼 그러고 싶다. 풀무질로 이글거리는 불 속에 시우쇠처럼 나를 달구고 모루 위에서 벼리고 숫돌에 갈아 시퍼런 무쇠낫으로 바꾸고 싶다 2008. 3. 16. 낮달 2021. 3. 16.
‘봄 기척’ 산수유와 매화 해마다 봄이 오는 기척이 느껴지면, 사진기를 둘러메고 동네와 북봉산 어귀를 어슬렁대곤 한다. 역시 가장 먼저 계절을 알리는 ‘봄의 척후’는 산수유다. 지난해 찍은 사진을 살펴보면 산수유와 매화는 꽃망울을 맺은 것은 비슷한데, 벙글기 시작한 건 산수유가 앞섰었다. 유난히 따뜻했던 겨울의 끝, 2월 2일이었다. 봄의 척후, 산수유 올해도 2월 초순부터 아파트 앞 화단의 산수유를 드나들 때마다 눈여겨보았지만 꽃망울은 낌새도 없었다. 올겨울이 제법 추웠다는 걸 떠올리며 당연히 매화도 그러려니 하면서 2월을 보냈다. 그런데 나는 우리 동네가 북봉산 아래여서 봄이 더디다는 사실과 아파트 앞 계단이 볕이 잘 들지 않는 그늘이라는 사실을 잊고 있었다. 그걸 깨우친 것은 2월 하순에 우연히 체육공원을 지나다가 추위에 오.. 2021. 3. 7.
이중섭 ‘은박지 그림’, 여기서 나왔습니다 [대구 재발견] 향촌문화관, 대구문학관 답사기… 대구의 특별한 향기 물씬 지난 11월 첫 주말의 일이다. 대구에 들렀다가 그 며칠 전에 문을 연 ‘향촌문화관’과 ‘대구문학관’을 둘러보았다. 예정에 없이 그곳을 들린 이유는 첫 번째 볼일을 보고 나니 다음 용무 사이에 비어 있는 시간이 지나치게 길었기 때문이다. 어쩌나, 망설이다가 나는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는 나라 안의 이름난 유적 명승지는 물론, 웬만한 박물관 따위는 뚜르르 꿰고 있는 친구다. 시간 보낼 일이 마땅하지 않다고 하니, 그는 “그러면……” 하고 잠깐 뜸을 들이더니 이렇게 말해 주었다. “북성로에 가면, 공구박물관이 있어. 아니면 아마 어저께쯤 문을 연 향촌문화관과 대구 문학관에 가보든지. 역 앞 중앙통 옛날 상업은행 자리, 알지? 거기.. 2020. 11. 20.
이토록 비현실적인 ‘단풍 터널’, 딱 이번 주까지입니다 [사진] 혼자 보기 아까운 팔공산 단풍길 풍경 * 사진을 누르면(클릭) 더 큰 사진으로 볼 수 있음. 늦가을 단풍 찾기는 2019년에 내장산에서 정점을 찍었다. 퇴직 이후 시간에 얽매이지 않고 즐기는 ‘탐승(探勝)’의 시간으로 내장산 단풍은 가슴이 뻐근해지는 감동이었다. 코로나19가 기승을 부리는데도 올해 아내의 지인은 두 번이나 내장산을 찾았다가 차를 대지 못해 되돌아왔다고 하니, 새벽에 길을 나선 2019년의 선택이 새삼 흐뭇하게 되짚어지지 않을 수 없다.(관련 기사 : 늦지 않았다, 때를 지난 단풍조차 아름다우므로) 화요일 점심때가 겨워서 집을 나선 것은 굳이 어딜 가겠다는 마련이 있어서는 아니었다. 나는 가산(901m)과 팔공산(1,192m) 사이에 있는 한국의 아름다운 길 100선에 선정된 한티.. 2020. 11. 19.
시인의 마을, 생명의 숲을 찾아서 경북 영양 ‘주실마을’ 기행 전날 마신 술이 미처 깨지 않은 주말 아침에 아내를 재촉하여 길을 나선다. 오늘의 여정은 경북 북부의 3대 오지인 이른바 ‘비와이시(BYC, 봉화·영양·청송)’ 가운데 하나인 영양이다. 내 계산은 아주 단순했다. 나는 영양 ‘주실마을’을 들렀다가 그 마을 숲을 만난 뒤 ‘대티골 숲길’을 한 바퀴 돌아보리라고 생각하였다. 경북 영양군 일월면 주곡리(注谷里) 주실마을 숲은 지난해에 베풀어진 ‘아름다운 숲 전국대회’에서 ‘생명상’(대상)을 받았다. 올해는 같은 면 용화리의 ‘대티골 숲길’이 어울림 상을 받았으니 영양의 숲은 시방 이태에 걸쳐 ‘아름다운 숲’으로 기려지고 있는 참이다. 그뿐이 아니다. 주실마을이 어디인가. 청록파 시인 조지훈(1920∼1968)이 태어난 동네다. 19.. 2020. 11. 12.
일연의 인각사, 혹은 역사를 기억하는 방법 [가을 나들이 ②] 군위 인각사(麟角寺) 아미산 가는 길에 애당초 내 여정에 포함되어 있지 않았던 인각사에 들른 것은 아쉬움 때문이다. 군위군이 브랜드 슬로건으로 선정할 만큼 일연과 , 그리고 인각사는 지역의 풍부한 문화 콘텐츠임에 틀림이 없다. 그러나 내 기억 속의 인각사는 한적한 시골, 초라한 전각 몇 채가 쓸쓸하게 서 있던 20여 년 전의 풍경에 머물러 있다. 물론 일연이 를 편찬한 절집이라고 해서 인각사가 규모를 갖춘 사찰이어야 할 이유는 없지만, 나는 거기서 일연의 시대를 떠올릴 단서라도 하나 찾아보고 싶었다. 아직도 인각사 대신 ‘인각사지’인 까닭 인각사는 고로면 화북리 화산(華山)의 북쪽 기슭 강가 퇴적 지대에 자리 잡은 절이다. 등에 의하면, 인각사 북쪽에 있는 높은 절벽에 전설상의 동물인.. 2020. 11. 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