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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바람과 먼지의 세상, 그 길 위에 서서

이 풍진 세상에 /친일문학 이야기 32

정인택, 국책 선전으로 시종한 ‘황국신민’ 소설가 정인택(鄭人澤, 1909~1953)도 일반 독자에게는 낯설기가 이석훈이나 김용제와 마찬가지다. 대중에겐 낯설지만, 임종국은 그를 “애국반 정신의 고양, 황도 조선의 건설과 내선일체의 앙양, 지원병 징병의 권유며 대화혼(大和魂)의 예찬, 만주 개척 기타의 국책 선전 등으로 시종하여 대단히 우수한 국어 문예 작품을 우리 문학사에 선물해” 준 작가로 평가한다. 임종국은 또 그가 《매일신보》 ‘국어(일본어)면’에 “선구적 작품”을 발표하여 “1937년 1월 12일 국어면이 신설된 이래 최남선, 김소운의 다음을 이은, 문인으로서는 제3착의 영광을 누”렸다고 비꼬기도 한다. ‘국민문학’에 대한 불타는 열정으로 정인택은 1909년에 서울에서 태어났다. 본명은 태양(太陽)이었으나 1930년께에 인택으로 개명하였.. 2022. 7. 4.
김용제, ‘시의 칼’로 동포를 찔러 댄 시인 침략전쟁 찬양 으로 ‘ 국어문예총독상’을 받은 부역 시인 김용제 시인 김용제(金龍濟·金村龍濟, 1909~1994)의 이름도 낯설다. 그러나 임종국에 따르면 그는 “내선일체와 황도 선양” 실현을 위해 진력한, “1940년대의 문단에서 절대로 호락호락하게 넘겨 버릴 수 없는 유수한 논객이요, 시인”이었다. 그는 침략전쟁과 대동아공영권을 찬양한 일문 시집 『아세아시집(亞細亞詩集)』으로 제1회 국어총독문예상을 받은 당대에 가장 잘나가는 시인이었다. 이 수상작은 ‘일본 정신에 입각한 국어 작품일 것’, ‘민중 계발의 선전 효과가 양호할 것’이라는 국민총력조선연맹의 선정 기준을 충족하고도 남는 시집이었다. 국어총독문예상 제2회는 평론 『전환기의 조선 문학(轉換期の朝鮮文學)』으로 평론가 최재서가, 제3회는 전기소설 .. 2022. 7. 1.
이석훈, ‘일본인 이상의 일본인’을 꿈꾼 작가 소설가 이석훈(李石薫·牧洋·石井薰, 1907~? )은 국문학을 공부한 사람에게도 낯선 이름이다. 소설과 희곡, 수필을 썼고 방송 쪽에서 일하는 등 여러 방면에서 활동한 인물이지만, 그는 문학사에서조차 거의 거론되지 않는 잊힌 인물이다. 이는 단지 징병과 지원병을 선전하고 선동하였으며, 내선일체와 황민화 운동에 앞장섰고, 일제의 침략전쟁에 협력한 화려한 친일 부역의 전력 때문일까. 친일 부역으로 이름을 떨친 문인들조차 문학상 제정 등으로 기림을 받는 상황임을 알면 그는 좀 억울하다고 항변할지도 모를 일이다. 1940년부터 훼절, 「고요한 폭풍」으로 친일 정당화 이석훈은 평안북도 정주에서 태어났다. 본명은 이석훈(李錫壎), 호는 금남(琴南)이다. 필명으로 이석훈(李石薫)·석훈생(石薫生)·이훈(李薰)·석훈(錫.. 2022. 6. 20.
유치진, 연극사 거목의 지난날은 비루했다 학교에서 ‘정통 사실주의 극작가’로만 가르치는 동랑 유치진 국문학을 전공하였지만 정작 대학 시절에 희곡 공부는 전혀 하지 못하였다. 유치진(柳致眞, 1905~1974)을 처음으로 공부하게 된 것은 고등학교 교사로 임용되어 국정 국어 교과서를 가르치면서다. 1980년대 제4차 교육과정 『고교 국어 1』의 두 번째 소단원에 그의 희곡 「조국」(1막 2장)이 실려 있었기 때문이다. 「조국」은 3·1운동을 배경으로 시위에 참여하려는 아들과 이를 말리는 홀어머니의 갈등을 통해 독립투쟁의 당위를 다룬 작품이다. 주인공이 3·1 만세 시위에 참여하려다가 홀어머니의 완강한 반대에 부딪혀 뜻을 접자 동료로부터 ‘반역자’라며 매도된다. 그러나 시위가 고조되어 만세의 물결이 다가오고, 그도 어머니의 허락을 받아 시위에 참여.. 2022. 5. 11.
장덕조, 총후봉공(銃後奉公) 제일선에 섰던 역사소설가 TV드라마 과 의 작가 장덕조(1914~2003) 50대 이하 세대라면 소설가 장덕조(張德祚, 1914~2003)는 낯선 이름일 수도 있겠다. 그는 흥미 위주의 스토 리 전개와 활달한 문체로 단편 120여 편, 장편 90여 편을 발표해 한국 문단사에서 다작으로 유명한 작가다. 여성 작가 중 역사소설을 가장 많이 쓴 이로 꼽히는 그는 1960년대에 동양방송(TBC)의 텔레비전 드라마 대본 「대원군」과 「여인열전」을 썼고, 이는 방송 후 책으로도 나왔다. 서른 전 젊은 시절의 ‘자발적 친일’ 장덕조는 경상북도 경산시 자인면 북사리에서 지주의 외동딸로 태어났다. 부친은 외동딸에 대한 기대가 컸던 듯 한학을 가르치고 뒷날 서울로 유학까지 보냈다. 본관은 인동(仁同)이고, 춘금여사(春琴女史)· 일파(一波)·노노자.. 2022. 4. 18.
최정희 - ‘군국’의 어머니와 ‘황군’ 아들 ‘군국의 어머니’를 찬양, 일제의 전쟁 수행과 총동원 체제에 협력 소설가 최정희(崔貞熙, 1912~1990)는 일반에게 널리 알려진 작가는 아니다. 이는 이름을 대면 떠오르는, 잘 알려진 작품이 없는 탓이 크다. 지명도 높이는 데는 그만인 교과서에 실린 소설도 없으니 더 말할 게 없다. 문학을 가르치고 있지만 나 역시 짧게라도 최정희를 설명할 재간이 없을 정도다. 최정희는 서사시 「국경의 밤」과 「웃은 죄」, 「북청 물장수」, 「산 너머 남촌에는」 같은 서정시로 유명한 파인 김동환의 두 번째 부인이었다. 파인과의 사이에 뒷날 소설가가 된 지원(1943~2013)과 채원(1946~ ), 두 딸이 있다. 부창부수라던가, 그도 남편 못잖은 친일 행적을 남겼다. 남편 김동환과 함께 거론되는 친일 행적 최정희는 .. 2022. 3. 27.
정비석, 낙원 일본을 칭송하던 『자유부인』의 작가 의 작가 정비석의 친일 부역 정비석(鄭飛石, 1911~1991)은 40대 이하의 독자들에겐 좀 낯선 작가일 수도 있겠다. 그러나 그는 1930년대에 단편 소설 「졸곡제(卒哭祭)」와 「성황당(城隍堂)」으로 정식 등단한 소설가다. 그는 이른바 미문(美文)으로 널리 알려진, 1960, 70년대 고등학교 국어 교과서에 실린 금강산 기행 수필 「산정무한(山情無限)」의 지은이이기도 하다. 정비석은 1911년 평안북도 의주에서 태어났다. 본관은 하동, 본명은 서죽(瑞竹)이다. 필명으로 비석생(飛石生)·남촌(南村) 등을 썼으며, 본명 대신 스승 김동인이 지어 주었다는 필명 ‘비석’으로 활동하였다. 1929년 6월 신의주중학교 4학년 때 ‘신의주 고등보통학교 생도 사건’으로 검거되어, 1930년 12월 신의주지방법원 형.. 2022. 3. 22.
백철, 친일 부역하고도 한국 문학비평의 대들보 나는 이번 사변에 의하여 북경, 상해, 남경, 서주, 한구 등이 연차 함락되는 보도와 접하고 또는 실사 등을 통하여 지나의 모든 봉건적 성문이 함락되는 광경을 눈앞에 볼 때에 우리들의 시야가 훤하게 뚫려지는 이상한 흥분이 내 일신을 전율케 하는 순간이 있다……. 기왕 허물어질 성문이면 하루라도 속히 허물어져 버리는 것이 역사적으론 진보하는 의미다. - 「시대적 우연의 수리-사실에 대한 정신의 태도」, 《조선일보》(1938년 12월 2~7일 자) 이 글은 문학평론가 백철(白鐵·白矢世哲, 1908~1985)이 1938년에 《조선일보》에 연재한 그의 친일 성향이 드러나는 첫 평론이다. 글에서 말하는 ‘사변’은 중일전쟁, 노구교(盧溝橋) 사건으로, 두 나라 간에 전면전이 시작된 이래 당시 일본군은 파죽지세로 베.. 2022. 3. 16.
최재서, ‘천황에게 봉사하는 문학’ 완성 영국 유학까지 다녀온 엘리트 비평가 최재서 『친일인명사전』에 오른 친일 문인 가운데 상당수는 낯설다. 까닭이야 사람에 따라 조금씩 다르지만, 크게 보면 이들이 대중에게 알려진 문학 작품이 거의 없는 문인이거나 비평 중심의 문학 활동을 한 평론가(비평가)들이기 때문이다. 일제 강점기 평론가 최재서(崔載瑞·石田耕造, 1908~1964)는, 백철(1908~1985)과 곽종원(1915~2001), 조연현(1920~1981) 등과 마찬가지로 비평 활동에 주력한 까닭에 일반 독자에게 거의 알려지지 않은 문인이다. 덕분에 화려한 친일 행적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일반 독자들의 관심에서 비켜 있었다. 그러나 1970년대를 전후하여 중고등학교에 다닌 이라면 국어 시간에 이 평론가들이 쓴 글을 적어도 한 편씩은 배웠을 터이다.. 2022. 3. 12.
‘헌법 기초자’로 기억되는 친일 부역자 유진오 제헌 헌법을 기초한 당대의 수재 유진오, 재능을 친일 부역에 쓰다 대동아전은 이미 최후에 돌입하고 말았습니다. 이 전쟁이 이미 3년, 지나사변 이래 자(兹)에 7년, 아니 미영 이 동아의 침략을 시작하여, 이미 수 세기에 걸친 장구한 전쟁의 최후의 막이 이제 바야흐로 닫쳐지려고 하는, 실로 역사적인 숨 막히는 순간입니다. 중대한 순간입니다. 그리하여 전쟁의 귀추는 이미 명백한 것입니다. 침략자와 자기 방위 자의, 부정자(不正者)와 정의자(正義者)의, 세계 제패의 야망에 붙들린 자와 인류 상애(相愛)의 이상에 불타는 자의, 일언이폐지하면 악마와 신의 싸움인 것입니다. 정의는 태양과 같고, 사악은 흑운과 같아서, 구름은 마침내 태양의 적이 될 수 없는 것입니다. 우리는 정의이며 정의 자가 일어설 때 그 승리.. 2022. 2. 4.
이인직, 이완용의 비서로 한일병합 주도 최초의 신소설 의 작가 이인직도 친일 부역자였다 이인직(李仁稙, 1862~1916)은 국문학사를 배우는 우리 중고생들이 반드시 만나야 하는 작가다. 그는 최초의 신소설인 『혈(血)의 누(淚)』(1906)를 비롯하여 『귀(鬼)의 성(聲)』, 『은세계(銀世界)』, 『모란봉』을 쓴 개화기 문학의 주역이기 때문이다. 학생들은 최초의 신체시인 ‘최남선의 「해에게서 소년에게」’와 짝지어 ‘이인직의 『혈의 누』’를 외운다. 『혈의 누』를 모르는 아이들은 없지만, 정작 그걸 읽어 본 아이들은 없다. 아마 이 점은 그것을 가르치는 교사도 다르지 않을 것이다. 100년도 전에 쓰인 낯선 문체와 형식의 소설을 오늘 다시 읽는 게 쉽지 않은 까닭이다. 첫 신체시를 쓴 최남선, 최초의 자유시 「불놀이」의 주요한, 최초의 현대소.. 2021. 12. 25.
박영희, 문학도 이데올로기도 모두 잊힌 문인 달빛이 가장 거리낌없이 흐르는 넓은 바닷가 모래 위에다 나는 내 아픈 마음을 쉬게 하려고 조그만 병실(病室)을 만들려 하여 달빛으로 쉬지 않고 쌓고 있도다. 가장 어린애같이 빈 나의 마음은 이때에 처음으로 무서움을 알았다. 한숨과 눈물과 후회와 분노로 앓는 내 마음의 임종(臨終)이 끝나려 할 때 내 병실로는 어여쁜 세 처녀가 들어오면서 —당신의 앓는 가슴 위에 우리의 손을 대라고 달님이 우리를 보냈나이다.— 이때로부터 나의 마음에 감추어 두었던 희고 흰 사랑에 피가 묻음을 알았도다. 나는 고마워서 그 처녀들의 이름을 물을 때 —나는 ‘슬픔’이라 하나이다. 나는 ‘두려움’이라 하나이다. 나는 ‘안일(安逸)’이라고 부르나이다.— 그들의 손은 아픈 내 가슴 위에 고요히 닿도다. 이때로부터 내 마음이 미치게 된.. 2021. 12. 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