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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바람과 먼지의 세상, 그 길 위에 서서

이 풍진 세상에 /행복한 책 읽기 92

열일곱 아들 때문에…조선 양반이 보낸 ‘욕망의 편지’ [서평] 전경목 지음 팔순, 구순에 이른 학자들이 책을 내는 시절인데 이제 겨우 육십 대 중반을 간신히 넘긴 터수에 나이 들면서 책 읽기가 쉽지 않다고 하면 건방이 하늘을 찌른다고 욕을 벌 수도 있겠다. 그러나 평생을 연구와 저작으로 살아온 학자들과 고작 소설깨나 읽은 데 그친 무명소졸을 나란히 견줄 수는 없다. 정독을 해야 할 책은 말할 나위도 없고, 설렁설렁 읽어도 좋은 가벼운 읽을거리도 펴들고 반 시간을 버티지 못하는 상황인지라, 책 사기가 두려울 때가 많다. 그러다 보니 살 때의 욕심과 달리 책은 두어 달 책상 위에 굴러다니다가 서가 한쪽으로 사라지는 일이 한두 번이 아닌 까닭이다. 사대부들, 편지로 감정을 진솔하게 드러내다 그러나 나는 지난 4월 하순, 전북 부안의 지인으로부터 추천받고 펴든 신.. 2021. 5. 6.
‘수의사 혹은 농사꾼’이 딸과 나눈 생태 이야기 [서평] ‘해를 그리며’ 박종무의 블로그 가운데 ‘태양 아래 사람이 머무는 풍경’은 웬만한 중학생도 하나쯤 갖고 있다는 이 블로그 전성시대에도 꽤 진귀(?)한 동네다. 가볍고 유쾌한 일상을 꾸밈없이 전하고 있는 우리 시대의 숱한 블로그에 비기면 이 블로그는 꽤 고답적인 곳이라고 여기는 이도 적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태양 아래 사람이 머무는 풍경’이라는 블로그의 문패도 그렇지만, 여기 오르는 글들이 뿜어내는 포스(?) 또한 여간 만만치 않은 까닭이다. 기실 ‘생태주의’는 오늘날의 ‘트렌드’이긴 하지만 일반인들이 다가가기가 그리 쉽지만은 않은 영역이다. 그러나 그것과 관련하여 이 블로그의 주인장이 펼치는 사유와 천착, 그 흐름은 비록 전문가의 그것처럼 유장하지는 않되 만만치 않은 진정성으로 다가오는 까.. 2021. 5. 1.
정말! <아깝다, 학원비!> 교직에 오래 있으면 ‘입시전문가’인 줄 아는 사람이 꽤 많은 듯하다. 그러나 미리 말해두지만,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과 ‘입시’는 별개다. 고등학교에 근무한 지 꽤 되지만 3학년 배정을 피해 와 사실 ‘입시’에 대해서는 나는 별로 아는 게 없다. 정 궁금해하는 사람에게는 3학년 담당 교사에게 물어보라고 미뤄 버린다. 사교육, 불안을 먹고 자란다? 굳이 입시 관련한 정보를 알려고도 하지 않다 보니 몸만 고등학교에 있지, 중학교 교사와 그리 다르지 않다. 교과 등급이나 입학사정관제, 대입 전형에 관련된 사항은 비슷하게 윤곽만 그릴 뿐 그 세부 사항에 대해서는 거의 백지나 다름없다. 그러나 어쨌든 3학년은 아니었지만 지난 4년 동안 담임으로 아이들을 돌봐 왔다. 원하든 원하지 않든, 이 나라의 불꽃 튀는 입시경.. 2021. 4. 1.
<무소유>를 다시 읽으며 법정 스님의 입적 소식을 나는 무심하게 들었다. 그 며칠 전에 그의 병이 위중하다는 소식을 듣고 있었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무심하게’ 들었다는 말은 그의 죽음을 우리가 일상에서 숱하게 만나는 여느 ‘명사의 부음’과 다르지 않게 받아들였다는 뜻이다. 이유는 정확히 알 수 없다. 70년대 중반 이후, 내내 어정쩡한 ‘문청(文靑)’이었던 나는 법정에 대해서 별로 아는 게 없었다. 나는 수필집 의 지은이고, 숱한 저작을 남긴 만만찮은 문인이라는 것 정도로만 그를 이해했다. 내가 70년대 후반의 마지막 3년을 군대에서 보낸 것이 이유가 될지 어떨지는 모르겠다. 곰곰 생각해 보면, 가 공전의 판매량을 기록한 베스트셀러였다는 것과 내가 문청이었다는 사실이 역설적으로 그에 대한 내 무관심을 설명할 수 있을 듯도 하다.. 2021. 3. 24.
대보름 아침, 책 몇 권 정월 대보름이다. 아침 식탁에 찰밥과 나물이 올랐다. 아내는 찰밥이 제대로 된 것 같지 않다고 투덜댔지만, 나는 대추와 밤까지 넣어 지은 밥 한 그릇을 얌전히 비웠다. 나물은 고사리, 취, 냉이, 시금치 등이었는데 내가 늘 입에 올리는 아주까리 나물이 예전 맛이 아니었다. 나물 맛, 혹은 입맛 잎의 결이 살아 있으면서 담백한 풍미를 가진 게 아주까리 나물인데 어째 식감이 예전 같지 않았다. 너무 삶아 물러서 그런가, 고개를 갸웃하다가 나는 입에서 뱅뱅 도는 말을 삼켜버렸다. 아주까리 나물 맛이야 거기가 거길 터, 변한 건 내 입맛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어저께 며칠 전 주문한 책 몇 권을 받았다. 퇴직 신청을 하면서 이제 책 사 읽는 것도 정리해야겠다고 마음먹었지만, 매사가 뜻과 같지 않다. .. 2021. 3. 2.
남자는 가라, 엄마가 딸에게 물려주고픈 공구책 [서평] 필 데이비 외, 소유와 무관하게 집을 지니고 살아가는 일은 그리 간단하지 않다. 금방 지은 새집도 가끔 이런저런 말썽이 생기는데, 오래된 집을 말해 무엇하겠는가. 나이 들면서 사람이 이래저래 부실해지듯 집과 가재도구도 시간이 지나면서 낡고 해지기 마련인 것이다. 말썽 나는 족족 그걸 해결하기 위해 전문 기술자를 부르는 일도 만만치 않다. 그러니 부득이 사람들은 공구를 하나씩 마련하고, 그걸로 문제 해결에 직접 나설 수밖에 없다. 그러나 세상에 공짜는 없는 법, 경험 없는 얼치기 생활인이 그걸 해결하는 건 쉽지 않다. 생활이 ‘공구’를 가르치는 스승이다 목마른 이가 샘 판다고 어설프게 공구를 찾아 들긴 했지만, 정작 그걸 운용하는 게 적지 않은 노하우가 필요한 일이라는 걸 깨닫는 데는 그리 많은 .. 2021. 2. 21.
그래도 시인은 시를 써야 한다 시집 두 권, 이규배와 김주대 시집 모처럼 책 몇 권을 샀다. 결제를 하자말자 온라인 서점에서는 내가 다시 ‘실버회원’이 되었다는 편지를 보내왔다. 서점에서야 내가 산 책의 양으로 회원등급을 매긴다고 하겠지만 나는 그게 내가 결제한 돈의 크기에 비례한다고 생각한다. 그렇다고 해도 거기 따로 유감은 없다. 오랫동안 읽고 싶었던 프란츠 파농의 저작 , 개정판, , 조지 오웰의 에다 시집 두 권이다. 오래 전에 찜 해 두었다가 뒤늦게 구입하는 김주대 시집 와 김 시인이 최근 소개한 이규배 시집 다. 언젠가 김주대 시인에 대해서는 엉성한 글(이웃 시인들-김주대와 이대흠)을 쓴 바 있다. 사실 아이들에게 문학을 가르치고 있지만 기실 시에 대한 내 이해는 얄팍하기 짝이 없다. 고작 문학 참고서류의 해석에 간신히 토.. 2021. 2. 7.
김주대 시집 <그리움의 넓이> 사춘기 시절부터 만만찮은(?) ‘문학소년’이었지만 나는 한 번도 내 이름을 단 시를 쓴 적이 없다. 두어 차례 시 비슷한 걸 끼적이긴 했는데, 동무들의 한 마디로 ‘기똥찬’ 시 앞에 그걸 들이대기가 거시기해 슬그머니 구겨버린 게 고작이다. 소설에 뜻을 둔 친구들도 습작시절에는 시도 심심찮게 쓰는 게 일반적이었던 것 같은데 나는 시라면 아예 손사래부터 치곤 했다. ‘습작시대’를 마감하고 ‘독자’로 돌아오던 20대의 끝 무렵에야 그게 내가 가진 ‘쥐꼬리만 한 재능’의 한계 때문이었다는 걸 알았다. 이래저래 마음이 가서 대학에서 국문학을 공부했고, 한 서너 해쯤 머물러 있기를 바랐던 교직이 평생의 업이 되었다. 초임 시절엔 입에 거품을 물고 시나 소설을 주절댔지만, 내 문학 수업의 수준은 교재에 실린 작품 해.. 2021. 2. 6.
세기를 넘는, 젊은 시인과 혁명가의 만남 안도현 시집 문학 시간에 안도현을 가르치면서 방학식 다음 날부터 시작된 보충수업, 어제는 언어영역 문학 문제집에서 안도현의 시 ‘서울로 가는 전봉준’을 배웠다. 같은 쪽에 실린 고은의 ‘머슴 대길이’와 고정희의 ‘우리 동네 구자명 씨’도 같이 배웠다. 새삼스레 ‘가르쳤다’고 하지 않고 ‘배웠다’로 쓰는 까닭은 아이들에게 가르치면서 나는 스스로 배운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문제를 풀기 위한 이 나라 문학 공부는 거기가 거기다. 정형화된 의미와 상징, 주제로 깡총하게 정리된 시를 가르치고 배우는 문학 교실. 어떤 가외의 해석과 의미도 용납하지 않는 교실에서 노래는 화석이 된다. 어떤 작가가 자신의 작품이 교과서에 실리는 것을 거부한 것도 그런 우려에서일 것이다. 그러나 한편으로 그것은 읽는 것만으로 그 뜻을.. 2021. 1. 8.
<작은책>과 사람들 오늘 오후에 월간 두 권을 받았다. 2008년 1월호. 인근에 사는 리 선생(그는 국어 교사이면서도 자기 성을 ‘이’가 아닌 ‘리’로 쓰고 싶어 한다. 그의 뜻을 존중하는 뜻에서 나도 ‘리’로 쓴다.)이 보내준 것이다. 낯설지는 않으나 은 처음이다. 책을 뒤적이다가 나는 내가 이 책의 성격을 잘못 알고 있었다는 걸 깨달았다. 그에게서 에 대한 문자 메시지를 받은 게 지난 15일이다. “월간 이라고 아시는지? 혹 구독하고 계시는지?” 나는 심드렁하게 답을 보냈다. “아는데 보고픈 생각은 별로야.” “두 권씩 보내드릴 테니 1권은 이상윤 씨 따님에게……, 안 될까요? 문상도 못 갔는데…….” 이 친구는 원래 이렇게 오지랖이 넓은 사람이 아니다. 그런데 왜 이럴까. 물론 그는 고 이상윤을 모른다. 나와 오랫동.. 2020. 12. 27.
중증장애인과 함께한 12년, 그 치유와 성장 [서평] 홍은전 지음, 노들의 배움·노들의 투쟁·노들의 일상 신문이나 잡지에 실린 칼럼 몇 편을 읽고 지은이가 쓴 책을 주문하는 것은 흔한 일은 아니다. 그러나 그것은 짧은 글 한 편에 드러난 글쓴이의 생각과 세계관에 대한 뜨거운 공감과 공명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홍은전을 만난 것은 여러 해 전부터 이어져 온 의 칼럼 ‘세상 읽기’를 통해서였다. 노들장애인야학의 '실패한 적 없는 기우제' 이야기 중증장애인에 관한 글을 주로 썼던 노들장애인야학(아래 ‘노들’) 교사 홍은전의 글을 나는 빼먹지 않고 읽었다. 그리고 그가 쓴 글이 예사롭지 않은 것은 그게 그의 삶과 실천에 이어져 있기 때문이라는 걸 알았다. 그의 글에는 삶에 관한 얕지 않은 성찰이 담겨 있었고, 그가 담담히 들려주는 이야기는 읽는 이의 마음.. 2020. 11. 15.
까발려진 미국의 빈곤과 계급, 그리고 ‘아메리칸드림’ [서평] 세라 스마시 지음 우리는 가난하고, 그리고 여자로 태어났지. 이것만 해도 이 세상에서 우리 몸은 투 스트라이크를 당한 거야. 게다가 엄마는 남자들이 소유하고 싶어 하는 외모를 가졌고, 나는 원하지 않은 아이였으니, 안 그래도 위험한 세상에서 흔들리던 우리가 각각 원 스트라이크씩을 더 먹었지. 하지만 엄마는 자기가 쓰레기가 아니란 걸 알았어. 자기 딸도 쓰레기가 아니라는 것도. - 책 130쪽 1977년 9월, 캔자스주 위치토시의 트레일러 주차장 옆 작은 교회에서 마흔다섯 살 난 농부 ‘아니’가 열세 살이나 어린 신부 베티와 결혼식을 올렸다. 베티는 나이는 서른둘이지만 여섯 번이나 결혼과 이혼을 되풀이해 온 여자였다. 두 사람의 혼인으로부터 누대에 걸친 세라 스마시(Sarah Smarsh)의, 가.. 2020. 10. 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