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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바람과 먼지의 세상, 그 길 위에 서서

민주주의6

‘하사(下賜)’, 왕조시대의 언어와 근대 대한제국이 일제에게 강제 병합되면서 봉건왕조 시대는 끝났다. 그러나 이 난만한 민주주의 시대에도 왕조시대의 수직적 질서와 관련된 말은 여전히 남아 있다. 그 시절의 권위적 언어가 남은 것은 20세기의 100년으로도 완고한 봉건적 질서를 넘기가 간단하지 않았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하사(下賜), 왕조시대의 언어들 뜬금없이 ‘봉건’을 얘기하는 것은 한가위를 앞두고 대통령이 군 장병에게 특별휴가와 간식을 주기로 하면서 쓴 ‘하사(下賜)’란 표현으로 인한 논란 때문이다. 굳이 국어사전을 펴보지 않아도 ‘하사’가 왕조시대의 언어라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임금이 신하에게, 또는 윗사람이 아랫사람에게 물건을 줌.’으로 풀이된 하사의 ‘사(賜)’는 ‘주다’의 뜻이긴 하다. 그러나 그 의미가 예사롭지 않은 것은 그.. 2020. 9. 23.
‘역사’를 거부하는가 - 5·18의 수난 서른세 돌을 맞는 5·18광주민중항쟁이 수난을 겪고 있다. 반역사, 몰역사적 극우세력의 준동이 일상화된 가운데 수구 종합편성채널조차 비열한 방식으로 5·18에 대한 폄훼와 왜곡에 가담했다. 끝내는 정부에서도 행사위원회의 요구를 거부하고 ‘임을 위한 행진곡’ 제창을 5·18 기념식 의전에서 빼기에 이르렀다. 정부는 민주화운동의 상징인 ‘임을 위한 행진곡’에 공식 기념곡에 준하는 지위를 부여하지 않기로 했다는데 그 이유가 거의 만화 수준이다. 국가보훈처는 “‘임을 위한 행진곡’은 일부 노동·진보단체에서 민중 의례 시 애국가 대신 부르는 노래이며 정부 기념식에서 참석자들이 일어나 주먹을 쥐고 흔들며 노래를 부르는 것이 부적절하다는 의견 등이 제기돼 제창 형태로 수용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라고 했단다. 줄이면 .. 2020. 5. 16.
박정희 ‘신화의 종말’과 새로운 ‘시민의 탄생’ 나이 든 지지자들조차 탄식… ‘묻지 마 지지’ 위험성 잘 보여줘 대통령의 유고(有故)다. 마침내 대통령 박근혜는 ‘전임 대통령’으로 신분이 바뀌었다. 지난 10일 11시 21분께 이정미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은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국회의 탄핵 심판 청구 사건 선고에서 재판관 전원의 일치된 의견으로 다음과 같이 주문을 선고했다. “피청구인 대통령 박근혜를 파면한다.” 이 네 어절로 된 문장은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로 불리어 온 유례없는 ‘국정농단’ 사건을 간단히 매듭지었다. 지난해 12월 9일, 국회에서 박근혜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가결되고 헌재에 탄핵소추 의결서를 접수한 지 91일 만이었다. 헌재 선고 이후의 변화를 다투어 전하는 뉴스 가운데는 ‘군부대 대통령 사진 철거’ 소식도 끼어 있다. 국방부에서 .. 2020. 3. 16.
[근조] 고문 없는 세상에서 편히 쉬시라 김근태 전 의원, 2011년 12월 30일 김근태 전 의원이 세상을 떠났다. 어제저녁 YTN에서 오보가 떴을 때 아내와 아이들이 숙연히 애도하는 걸 보면서 그가 남긴 자취가 적지 않다는 사실을 문득 깨달았다. 그렇다. 그는 풍운아였음에도 시대가 품어주지 못한 이다. 나는 그를 개인적으로 전혀 알지 못한다. 내가 아는 것은 매체를 통해 알려진 그의 이미지에 그치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는 그의 모습에서 인간적 겸손과 진정성을 느끼곤 했다. 나는 그가 고통스럽게 지나온 7, 80년대의 민주화 투쟁과 무관하지만, 80년대의 끄트머리에서 교육 민주화 운동의 말석에 참여한 것을 통해 그에게 동지적 연대를 강하게 의식하고 있었다. 지난 총선에서 그가 도봉구에서 낙선했을 때, 나는 내가 모욕받은 듯한 치욕을 느.. 2019. 12. 30.
2009년, 노무현 이야기 둘 어느새 노무현 전 대통령의 10주기다. 2009년 그의 죽음은 이 땅의 정치인들에게는 어떻게 해야 국민의 지지를 받을 수 있는지를, 국민의 사랑을 받는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를 가르쳤고, 그를 지지한 국민에겐 정치적 지지의 시종이 어떻게 이루어져야 하는지를 깨우쳐 주었다. 그러나 여전히 국민의 지지를 받는다는 것은 어렵고 힘든 일이다. 노무현은 적어도 지지를 받기 위해서가 아니라, 또는 성공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것이 옳은 길이어서, 스스로 가야 할 길이라는 걸 깨달았기 때문에 그의 길을 간 지도자다. 그를 따르려던 정치인들은 그 길이 아무나 갈 수 없는 길이라는 걸 눈치챘을 것이다. 그가 떠난 지 8년 뒤에 그의 비서실장이던 ‘친구’ 문재인이 대통령이 되었고 정치적 동지들이 새로운 정부를 구성했다. 그.. 2019. 5. 22.
[오늘] 통합진보당 '정당 해산', 이후 대한민국은 얼마나 튼튼해졌나 [역사 공부 '오늘'] 2014년 12월 19일, 헌재의 통합진보당 '정당 해산 결정' 2014년 12월 19일, 헌법재판소는 2013년 정부의 통합진보당에 대한 정당해산심판 청구를 인용(해산)했다. 헌재는 재판관 8(인용) : 1(기각)의 의견으로, 피청구인 통합진보당을 해산하고 그 소속 국회의원은 의원직을 상실한다는 결정을 선고했다. 정부가 위헌 정당 해산제도에 따라 정당에 대한 해산심판을 청구한 것은 헌정 사상 처음이고, 헌재에서 정당 해산 결정이 내려진 것도 최초였다. 제1공화국 시기에 진보당이 정부의 처분으로 해산되었지만, 통합진보당은 불운하게도 위헌 정당 해산제도에 따라 해산되는 첫 정당이 되었다. 헌재사상 최초의 정당해산 결정 사상 초유의 결정이 내려진 이 심판 사건은 이른바 '이석기 내란 .. 2018. 12. 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