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이 바람과 먼지의 세상, 그 길 위에 서서

생강나무6

오월의 산, 숲은 가멸다 어느덧 오월도 막바지입니다. 오늘은 대구 지방의 온도가 섭씨 35도에 이를 거라니 계절은 좀 이르게 여름으로 치닫는 듯합니다. 서재에서 바라보는 숲은 더 우거졌고 산색도 더 짙어졌습니다. 산에서 내려오는 바람도 얼마간 습기를 머금었습니다. 한동안 베란다에 노랗게 쌓이던 송홧가루도 숙지는 듯합니다. 바람을 통해 수정이 이루어지는 이 풍매화(風媒花)는 이제 꽃가루를 날리고 받는 일은 끝낸 것일까요. 수분(受粉)에서 수정에 이르는 6개월 뒤에 비로소 암꽃은 솔방울을 달게 되겠지요. [관련 글:송홧가루와 윤삼월, 그리고 소나무] 올에 유난히 짙은 향기로 주민들의 발길을 붙들던 아까시나무꽃도 이제 거의 졌습니다. 어디서 날아온 것일까요, 아까시나무 꽃잎은 산길 곳곳에 점점이 흩어져 밟히고 있습니다. 싸리꽃도 끝물.. 2020. 5. 29.
산수유와 생강나무 짧은 밑천은 어디서건 드러나기 마련이다. 아무리 감추려 해도 이 드러나는 것과 다른 내용이면서 같은 이치이다. 오래전에 쓴 글에서 ‘수욕정이풍부지(樹欲靜而風不止) 자욕양이친부대(子欲養而親不待)’라는 글귀를 인용하면서 그 출전이 라고 주절대었다가 이내 “논어에는 그런 글귀는 없다”는 지적을 받고야 말았다. 황급히 찾아보니 이 맞다. 대체로 이런 경우, 교훈은 두 가지다. 내 게 아닌 걸 내 것인 것처럼 꾸미는 건 금방 드러나기 마련이라는 게 하나요, 인터넷에 떠도는 지식 나부랭이도 별로 믿을 건 못 된다는 것이 나머지다. 이번에 또 실수했다. ‘봄날, 어떤 하루’에서 학교 뒷산에서 핀 산수유 얘기를 했었다. 무언가 켕기는 구석이 있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친구 하나가 전자우편을 보내 ‘그거 생강나무 같다’고.. 2020. 3. 23.
다시, 겨울에서 봄으로 겨울에서 봄으로 지난겨울은 춥고 길었다. 겨울에 혹독한 추위라고 할 만한 날이 거의 없는 우리 고장에도 영하 10도 아래로 내려가는 일이 거듭되었으니 말이다. 산과 면한 뒤 베란다에 결로(結露)가 이어지더니 그예 여러 차례 얼기도 했고 보일러 배관이 얼어붙는 사태(!)도 있었다. 엔간한 추위면 꾸준히 산에 올랐던 지지난 겨울과 달리 지난겨울에는 산과 꽤 멀어졌다. 급한 오르막과 내리막을 다니는 게 무릎과 넓적다리관절에 주는 부담 때문이기도 했지만, 산행이 뜸해져 버린 것은 결국 추위 때문이었다. 평탄한 길 위주의 새 등산로를 찾아내고도 여전히 길을 나서는 게 쉽지 않았다. 그러고 보면 길과 추위 때문이라고 변명하는 것도 그리 솔직한 태도는 아닐지도 모르겠다. 사실은 부실해진 몸이 그걸 내치고 있었기 때문.. 2020. 3. 17.
‘봄의 완성’도 우리의 ‘몫’입니다 ‘그 없는’ 약속의 봄이 오고 있습니다 2017년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을 기다리면서 쓴 글 몇 편을 잇는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2016년 12월 9일 국회에서 ㅌ탄핵소추되었고, 2017년 3월 10일 헌법재판소에서는 재판관이 전원일치로 대통령 박근혜 탄.. qq9447.tistory.com 2. ‘그 없는 봄’도 축복입니다 그예 ‘박근혜 없는 봄’이 왔습니다. 안방에서 텔레비전을 시청하다가 헌법재판소장 대행 이정미 헌법재판관의, 감정이 실리지 않은 담담한 어조의 주문 선고를 듣는 순간, 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습니다. 같은 시간에 기쁨과 감격으로 겨워하며 환호한 이들은 전국에 또 얼마였겠습니까. 박근혜 퇴진을 요구하는 촛불이 타오른 지 133일 만이었습니다. 박근혜가 파면됨으로써 그동안 열아홉 차.. 2020. 3. 16.
꽃과 나무 알기- 관계의 출발, 혹은 삶의 확장 그 꽃을 처음 만난 것은 2012년 늦봄이었다. 안동 임하댐이 건설되면서 그 터전이 수몰되면서 집단이주한 구미시 도개면 일선리의 전주 류씨 세거지에서였다. 반듯한 양반가옥의 대문 옆에 피어 있는 분홍빛 꽃이 해맑고 고왔다. 꽃 이름을 알고 싶었는데 어찌하다 보니 그 꽃을 만난 사실조차 잊어버린 채 여러 해가 지났다. 그 꽃을 다시 만난 건 대엿새 전이다. 동네 도서관 앞 길가에 그 꽃이 피어 있었던 것이다. 나는 단박에 식물·꽃·나무 이름을 알려주는 앱인 ‘모야모’를 통해 그 꽃의 이름을 알았다. ‘분홍 낮 달맞이꽃’, 이름은 관계의 출발점 이름도 그 해맑은 아름다움과 어울렸다. 나는 ‘달맞이꽃’은 알지만 ‘낮 달맞이꽃’이 따로 있는지는 몰랐다. 하기야 세상에 우리가 모르고 있는 게 어디 한두 가진가 말.. 2019. 7. 25.
[쑥골통신] 꽃 진 뒤, 잎 나는 봄 창밖엔 봄비가 내리고 있습니다. 창문 너머로 며칠 동안 오르지 못한 산자락을 건너다봅니다. 빗줄기와 안개 사이로 군데군데 신록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하루걸러 산을 오르면서도 정작 만나지 못한 풍경입니다. 역시 산을 벗어나야 산이 보이는 법, 산속에선 느끼지 못했던 봄의 빛깔이 아련하게 눈 아래에 감겨옵니다. 지지난해 숲길로 출퇴근할 때는 산에 꽃이 왜 이렇게 드무냐고 불평이 늘어졌더랬지요. 지난가을에는 왜 꽃이 피지 않느냐고 애먼 소리를 참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꽃은 때가 되어야 피고, 인간의 발길이 잦은 길에는 꽃들이 스스로 몸을 숨기는 듯했습니다. 겨울 지나 봄으로 오면서 산에서 만난 꽃은 진달래와 생강나무 꽃이 주종이었지만 온산을 물들인 그 꽃들의 향연은 더 부러울 게 없는 풍경이었습니다. 진달래야.. 2019. 6. 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