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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바람과 먼지의 세상, 그 길 위에 서서

세월8

진달래와 나무꾼, 그리고 세월…… 온산에 진달래가 한창이다. 산등성이마다 들불처럼 타오르던 진달래는 그예 도심까지 들어왔다. 강변에 조성된 소공원마다 선홍빛 진달래가 넉넉하다. 이제 막 꽃잎이 지고 있는 은빛 왕벚나무 물결 끄트머리에 불타는 선홍빛은 외로워 보인다. 내게 ‘진달래’는 여전히 ‘참꽃’이다. 봄이면 온산을 헤매며 탄피와 쇠붙이 따위를 주우러 다니던 시절, 만만찮은 봄 햇볕에 그을려 가며 허기를 달래려 보이는 족족 입에 따 넣던 꽃. 산에서 내려올 즈음엔 조무래기들의 혓바닥은 꽃잎보다 더 진한 보랏빛이었다. 참꽃, 그 아련한 동화 참꽃은 내게 아련한 동화(童話)다. 시골서 자란 이들 누구에게나 그렇듯 그것은 머물러 버린 유년의 길목을 아련하게 수놓는 추억의 꽃이다. 무덤들 주위에 다소곳이 피어나던 저 백두옹(白頭翁), 할미꽃은.. 2020. 4. 15.
시계, 시간, 세월 나는 늘 시계를 몸에 지닌다. 휴대전화가 나온 뒤에 그걸로 시간을 확인한다는 이들이 적지 않다. 그러나 나는 시계는 시계고, 휴대전화는 휴대전화라고 생각한다. 무슨 작업을 한다든지 하는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 나는 시계를 항상 왼쪽 손목에 찬다. 시간을 보는 행위는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을까. 나는 수업을 하다가도 길을 걷다가도 자주 시계를 들여다본다. 그것은 무심한 습관일 수도 또는 자신의 삶과 일상에 대한 확인 행위일 수도 있다. 시계를 보면서 나는 시간의 흐름 속에 놓인 자신의 모습을 객관화하고자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집에 돌아오면 나는 텔레비전 옆 문갑 위에다 시계를 끌러놓는다. 그것은 내가 일상과 삶의 공식에서 벗어났음을 뜻한다. 텔레비전을 보면서 나는 손목시계 대신 벽에 걸린 시계를 올려다본.. 2019. 11. 17.
세월 갑자기 그가 왜 생각나는지 모르겠다. 간 지 벌써 20년이 넘은 친구다. 그는 자기 고향 앞산에 묻혀 있다. 그의 무덤을 찾아가 본 게 까마득하다. 글쎄, 무덤을 찾은들 무엇하랴, 허망해서였다. 고단한 삶은 때로 사람을 추억 속에 머물게 해 주지 않는다. 그는 죽었고 세상과 세월은 그것과 무관하게 흘렀다.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때로 그런 세월 앞에 마치 무시당한 것 같아 분하기도 하다. 그러나 그게 시간이고 세월이다. 우리는 이 압도적 시간의 중력 앞에서는 무력한 존재일 뿐이다. 1988년 1월, 그의 죽음을 전해 들었을 때는 물론, 그를 산에 묻고 돌아와서도 나는 오랫동안 그의 죽음을 믿을 수 없었다. 그건 마치 거짓말 같았다. 때때로 걸려오는 전화 속에서, 휘갈겨 쓴 편지 속에서 그는 생시.. 2019. 9. 23.
박인희, 혹은 사이먼과 가펑클의 ‘스카버러’ 번안곡의 제목이나 노랫말은 원곡과 꽤 동떨어진 경우가 있는 듯하다. 기본적으로 정서가 다르고 사물에 대한 표현이나 서사가 다르니 그럴 수밖에 없을지 모른다. 그러다 보니 번안곡으로 알게 된 노래는 원곡의 내용이나 표현과 무관한 것일 때도 적지 않다. 70년대를 전후하여 꽤 높은 인기를 누렸던 트윈폴리오의 노래 ‘웨딩 케이크(Wedding Cake)’나 조영남이 번안해 부른 노래 ‘프라우드 메리(Proud Mary)’ 같은 노래가 그 좋은 예다. 코니 프랜시스가 부른 원곡 ‘웨딩 케이크’에는 ‘사랑의 상실’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 대신 10년차 주부가 ‘결혼과 결혼 후의 삶’을 담담히 고백하고 있을 뿐이다.[관련 글 : 두 개의 ‘웨딩 케이크’, 그 삶과 사랑] 조영남이 부른 번안곡 ‘물레방아 인생’은 .. 2019. 9. 12.
찔레, 그 슬픔과 추억의 하얀 꽃 바야흐로 찔레꽃의 시절이다. 학교 뒷산 언덕바지에 찔레꽃이 흐드러졌다. 장미과에 속하지만 줄기와 잎만 비슷한 동북아시아 원산의 이 꽃(Rosa multiflora)은 보릿고개의 밤을 하얗게 밝힌 꽃이었다. 연중 가장 힘들고 배고프던 시기에 피었다는 이 꽃에는 저 절대 빈곤 시대의 슬픈 추억이 서려 있다. 찔레꽃의 추억과 슬픔 찔레꽃을 먹기도 했다지만, 나는 찔레순 껍질을 벗겨 먹어본 기억밖에 없다. 찔레꽃은 5월에 흰색 또는 연한 붉은 색으로 꽃을 피운다고 하는데 연분홍 찔레꽃을 아직 한 번도 만나지 못했다. 양지바른 산기슭, 골짜기, 냇가 등지에 피는 이 꽃의 소박한 흰 빛은 좀 슬프다. 그래서일까. 송찬호 시인이 노래한 ‘찔레꽃’은 저 잃어버린 시절의 사랑과 회한을 노래한다. ‘너’는 결혼하고 홀로 .. 2019. 8. 26.
쑥, 혹은 한 시절의 그리움 처가에 다녀오면서 장모님께서 뜯어 놓으신 쑥을 좀 얻어왔다. 여든이 가까워져 오는 노구를 이끌고 들을 다니셨을 노인을 생각하면 마음이 짠해 온다. 그나마 여기보단 남쪽이어서 쑥 뜯기도 수월했으리라 하는 게 위안이다. 식탁에 오른 쑥국, 한 시대의 애환 쑥국을 끓여 먹자고 주문했더니 아내는 이튿날 아침에 냉큼 국을 끓여냈다. 아직 여린 쑥 향이 아련하다. 아이들에겐 낯선 향기지만 쑥이나 미나리, 쑥갓 같은 나물이나 채소의 향기는 우리네 세대에겐 한 시대를 환기해 주는 추억이다. 미각은 단순히 맛을 느끼는 수준이 아니라 한 시대의 삶과 그 애환을 기억해 내주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우리나라 사람들처럼 나는 향신료 따위의 향에 익숙하지 않다. 그러나 채소나 나물이 가진 은은한 향기는 다르다. 한때 나는 가죽나무.. 2019. 3. 19.
세월, ‘청년’에서 ‘초로(初老)’로 14. 세월, ‘청년’에서 ‘초로(初老)’로 고교 때부터 절친했던 벗이 부친상을 입었다는 소식을 나는 다른 친구를 통해 들었다. 스무 살 어름엔 날마다 어울렸던 친구였는데 30년도 전에 교단에 서면서 대구를 떠나 도내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는 바람에 만남이 뜸해졌다. 그를 언제 마지막으로 보았던가, 헤아려 보니 그가 모친을 여의었던 4년 전이었다. 퇴근시간대를 피해 4시쯤 출발하여 다섯 시쯤에 대구의료원 장례식장에 닿았다. 호실을 확인하지 않고 승강기부터 타고 3층에 올라 두리번거리는데, 검정 양복 차림의 상주 하나가 낯이 익었다. 동안의 온순했던 아이, 어느새 50줄이 된 벗의 동생이었다. 그는 날 알아보고는 무척 반가워했다. 조문에서 확인하는 ‘세월’ 이내 친구가 쫓아 나왔는데…, 4년 전의 모습이 아니.. 2019. 3. 15.
사진첩, 함께한 시간과 가족의 발견 어느 날이었던가. 귀가하니 아내가 딸애와 함께 사진첩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몇 권의 사진첩 중 가족사진만 따로 모은 좀 두꺼운 놈들이었다. 거의 모두 손수 찍은 사진인데도 새삼 그 사진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자니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까마득한 과거로 돌아가는 느낌이었다. 나는 늘 사진을 바라보는 것은 그걸 찍을 때의 느낌을 되새기는, ‘감정의 복기(復碁)’ 같은 거라고 생각해 왔다. 10년이나 20년쯤의 시간이라면 그걸 되돌릴 수는 물론 없다. 그러나 사진이란 놈은 마치 주마등처럼 혹은 파노라마처럼 우리가 고단하게 밟아온 시간을 고스란히 우리에게 펼쳐주기도 하는 것이다. 날이 갈수록 기억이 희미해지는 걸 어쩔 도리는 없다. 그러나 오래된 사진 한 장 한 장을 들여다볼 때마다 나는 거기 담긴 한 시절의 풍.. 2019. 1. 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