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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바람과 먼지의 세상, 그 길 위에 서서

안도현10

세기를 넘는, 젊은 시인과 혁명가의 만남 안도현 시집 문학 시간에 안도현을 가르치면서 방학식 다음 날부터 시작된 보충수업, 어제는 언어영역 문학 문제집에서 안도현의 시 ‘서울로 가는 전봉준’을 배웠다. 같은 쪽에 실린 고은의 ‘머슴 대길이’와 고정희의 ‘우리 동네 구자명 씨’도 같이 배웠다. 새삼스레 ‘가르쳤다’고 하지 않고 ‘배웠다’로 쓰는 까닭은 아이들에게 가르치면서 나는 스스로 배운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문제를 풀기 위한 이 나라 문학 공부는 거기가 거기다. 정형화된 의미와 상징, 주제로 깡총하게 정리된 시를 가르치고 배우는 문학 교실. 어떤 가외의 해석과 의미도 용납하지 않는 교실에서 노래는 화석이 된다. 어떤 작가가 자신의 작품이 교과서에 실리는 것을 거부한 것도 그런 우려에서일 것이다. 그러나 한편으로 그것은 읽는 것만으로 그 뜻을.. 2021. 1. 8.
[오송회와 이광웅] 진실과 정의는 ‘너무 늦다’ ‘오송회 사건’ 관련자 9명, 재심에서 모두 무죄판결 5공 시절 대표적 용공 조작 사건이었던 ‘오송회 사건’의 관련자 9명이 재심에서 모두 무죄판결을 받았다. 진실과 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원회가 지난해 6월 이 사건이 “5공 시절의 전형적 용공 조작 사건”으로 규정하고 피해자들에 대한 사과와 재심을 결정한 지 16개월 만이다. 특히 이 사건에 무죄를 선고한 재판부가 이례적으로 피고인들에게 법원을 대신해 사죄해 눈길을 끌었다. ‘법원에서 진실이 밝혀질 것이라는 기대가 무너졌을 때 당사자들이 느꼈을 좌절과 원망’을 언급하며 재판부는 ‘보편적 정의 추구’를 약속했다고 한다. 1982년 11월에 경찰에 불법 연행되어 83년 5월, 1심에서 모두 징역형을 각각 선고받았던 때부터 따지만 그간 꼭 26년이 흘렀다.. 2020. 11. 27.
코로나 시대의 여행, 바다보단 ‘자작나무숲’ ‘국립 김천 치유의 숲’에서 자작나무를 만끽하다 난생처음으로 자작나무숲을 만났다. 경북 김천시 증산면의 수도산(修道山, 1317m)에서다. 강원도 아닌 경상도 내륙에 자작나무숲이 있다고는 전혀 생각지 못했다. 텔레비전에 나온 영양군 수비면 죽파리의 자작나무숲을 시청하던 딸애가 스마트폰을 검색한 끝에 김천에도 자작나무숲이 있다는 사실을 발견한 거였다. 경북 내륙에도 자작나무숲이 있다 그다음 날, 수도산을 향해 떠난 것은 김천농협공판장에 과일을 구경하러 갔다가 시간이 남아서였다. 경매가 끝나는 정오까지 기다리는 대신, 내비게이션에 ‘국립 김천 치유의 숲’을 입력하고 바로 길을 떠난 것이다. 산 아래, 주차장에 차를 대고 가파른 아스팔트 길을 십여 분 땀 흘리며 올랐다. 그때 나는 내 목적지가 도선국사가 창건.. 2020. 7. 15.
50대 중반에 첫 시집, 조성순을 지지함 [서평] 조성순 첫 시집 며칠 전, 학교로 우송되어 온 시집 한 권을 받았다. 조성순 시집 (2013년, 작은숲). 그는 내 고등학교 후배다. 더 정확히 말하면 고등학교 문예 동아리 ‘태동기(胎動期)’의 2년 후배, 1974년 그가 입학해 문예 동아리에 들어왔을 때 나는 3학년이었다. 고교 문예 동아리 후배 시집을 내다 글쎄, 선후배 간 관계가 나쁘지는 않았는데, 마땅히 떠오르는 후배가 별로 없는 것은 세월이 꽤 흐른 탓일 터이다. 아, 시집 로 유명해진 서정윤이 그의 동기다. 별 교유가 없었어도 나는 그가 예천 촌놈이란 건 알고 있었다. 학년 초였을 게다. 우리 학교만 있었던 동아리 교실에서임은 분명하다. ‘문예실’이라는 그 방은 늘 일상적 잡담과 시건방진 요설, 문학적 일탈을 모의하곤 하던 우리들의 .. 2020. 5. 24.
옛 스승 도광의 시인과 제자들 고교 시절의 은사 도광의 시인에게서 배우며 성장한 문인들 시인 도광의(1941~ ) 선생님을 만난 것은 고등학교 1학년 때다. 그는 우리들 신입생에게 국어를 가르친, 학교 문예 동아리 ‘태동기(胎動期)’의 지도교사였다. 무엇보다 당시 내가 가지고 있었던 병아리 눈물만 한 문재(文才)를 확인해 준 분으로 그를 기억한다. 그해 가을, 선생께서 야심 차게 추진한 교내 현상문예 공모에서 별 기대 없이 내가 써낸 소설이 당선작이 되었다. 나는 포마이카 처리가 된 세련된 상패에다 고급 손목시계까지 부상으로 탔는데, 선생님께선 내 작품에 대해 은근히 칭찬을 아끼지 않으셨던 듯하다. 성년으로 가는 어느 시기를 문학 소년으로 보낸 이들은 적지 않다. 사춘기의 문학에 대한 열망은 마치 운명처럼 다가와 열몇 살의 영혼을 뒤.. 2019. 10. 16.
산당화(山棠花), 내게 와 ‘꽃’이 되었지만 명자꽃 혹은 산당화 자색이 남달랐던 꽃, '명자' 명자나무를 처음 만난 건 2007년, 안동에 살 때다. 내가 사는 아파트 엉성한 뜰에 키 작은 관목 한 그루가 유난히 눈에 띄었다. 빨갛게 부풀어 오른 꽃봉오릴 눈여겨 두었는데, 어느새 꽃을 피웠다. 무심코 지나다니다 그 자색(姿色)이 여느 꽃과 다르다는 걸 알았다. 사진을 몇 장 찍었고, 나무 이름을 알아봐야지 하다가 깜빡 잊어버렸다. 그러다가 어느 날, 오블의 이웃이 쓴 글에서 ‘명자나무’라는 이름과 모습을 본 순간, 그게 내 마음에 담아 두었던 꽃이라는 걸 알았다. 바로 뜰로 나가 보았는데, 아직 꽃봉오리조차 제대로 영글지 않은 상태였다. 그러다 거기 꽃이 핀 걸 확인한 게 한 열흘쯤 전이었다. 인터넷을 검색해서 명자나무를 확인하고 나니 웬걸, 아파.. 2019. 8. 25.
역과 기차, 그리고 세월… 철길과 역 그리고 역(驛)이란 공간이 주는 울림은 만만찮다. 그것은 한 세계를 다른 세계와 이어주는 장소다. 만남보다는 이별이 더 익숙한 공간이기도 하다. 역은 그것을 구성하는 요소들, 이를테면 대합실과 개찰구, 플랫폼, 철길 따위의 부속 요소들이 함축하고 있는 이미지들과 함께 사람들에게 저마다 달리 다가간다. 역, 한 세계를 다른 세계와 이어주는 곳 오늘날에는 그 의미가 ‘철도역’으로 축소되었지만, 근대 이전에는 그 의미가 훨씬 드넓었다. 왕조시대에 역은 역마(驛馬)를 갈아타는 곳이었고, 사람과 말, 마차가 머무르는 여관과 차고이기도 했다. 또 역은 통신을 전달하는 수단으로도 이용되었다. 그러나 현재의 역은 옛날과는 사뭇 다르다. 그 의미조차 축소되어 ‘철도’라는 특정한 교통수단에서만 쓰는 용어가 된 .. 2019. 5. 16.
영주댐 건설로 망가진 회룡포, MB 녹색성장의 결말 망가진 예천 회룡포, 엠비표 녹색 성장의 결말이다 * 가로 사진은 누르면 더 큰 사진으로 볼 수 있음. 영주댐 건설 이후 시름시름 앓는 내성천 지난 9월의 셋째 주말, 경북 예천의 회룡포를 찾았다. 나는 2005년부터 한해 걸러 한 번씩은 내성천이 마을을 한 바퀴 휘감는 회룡포에 들르곤 했다. 시인 안도현과 조성순을 불렀다고 전하면서 내성천에 들러 달라는 김소내 선생의 전갈을 받은 것은 열흘 전쯤이었다. 그리고 지난 9월 20일, 예천민예총과 소내 선생이 준비한 예천아리랑제 ‘엄마야 누나야 강변 살자’가 회룡포 마을에서 열린 것이다. 나는 무엇보다도 상류에 영주댐이 건설되면서 옛 명성을 잃어가고 있는 내성천의 안부가 궁금했다. 거기다 소내 선생을 비롯한 예천의 옛 동지들과 고교 동아리 후배인 두 시인과 .. 2019. 4. 21.
2009년 3월, 의성 산수유 마을 2009년 3월, 의성군 사곡면 화전리 숲실마을 *PC에서 ‘가로 이미지’는 클릭하면 큰 규격(1000×667픽셀)으로 볼 수 있음. 의성군 사곡면 화전리(花田里) 숲실마을에서 베풀어지는 산수유 축제는 어제가 절정이었나 보다. 아주 가볍게 다녀오리라고 아내와 함께 나선 길이었는데 어럽쇼, 화전리 입구도 못 가서 차가 막혀 버렸다. 정체로 막힌 게 아니라, 축제 관계자와 교통경찰에게 막힌 것이다. [관련 기사 : 순박한 맨얼굴의 산수유 마을 '의성 화전리'] 화전리 앞길은 일방통행으로 바뀌었고, 따라서 산수유꽃을 보러 온 상춘객들은 멀찌감치 떨어진 천변이나 인근 초등학교에 차를 세우고, 군에서 운영하는 셔틀버스로 화전리까지 가야 하는 모양이었다. 늘 그렇듯 우리는 별로 망설이지 않았다. 해마다 구경하는 산.. 2019. 3. 22.
매화(梅花), 서둘러 오는 봄의 전령 동네 야산에서 만난 매화 오늘 오전에 올해 들어 처음으로 인근 야산에서 매화를 만났다. 남도에서는 진작 핀 꽃이지만, 아직도 봄은 먼 경북 북부지역에선 ‘아직’이다. 야산 비탈길로 오르는 어귀, 오종종하게 서 있던 가느다란 매화나무 몇 그루에 잔뜩 물이 올랐다. 막 윤기가 흐르는 줄기에 다투어 벋은 가지에 꽃망울이 잔뜩 부풀었다. 그러나 아직은 거기까지다. 뿌리에 가까운 쪽에 한두 송이가 힘겹게, 그것도 꽃잎을 7부만 벌리고 있다. 벌은 아직 보이지 않고, 산등성이에서 상기도 한기를 품은 바람이 미끄러져 내려왔다. 어이없게도 매화(梅花)를 나는 화투 그림을 통해서 먼저 알았다. 거의 직각으로 꺾인 가지 위에 꾀꼬리가 앉아 있는 2월 ‘매조(梅鳥)’로 말이다. 눈썰미가 없었던가, 아니면 주변에 매화가 드물.. 2019. 2. 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