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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바람과 먼지의 세상, 그 길 위에 서서

이 풍진 세상에 /식민지 시대 - 항일과 친일28

그 딸의 ‘좌익 아버지 찾기’와 역사적 진실 ‘국내파 사회주의자들의 최후 집결체’ 경성 콤그룹의 핵심 이관술과 그 유족 이야기 사회주의자 이관술(李觀述, 1902~1950)을 이름으로나마 처음 만난 건 지난해 봄, 최백순의 을 읽으면서였다. ‘알려지지 않은 별, 역사가 된 사람들’이라는 부제가 달린 이 만만찮은 저작을 읽으면서 나는 당황했고, 이동휘와 박헌영, 김재봉과 권오설 등의 그나마 익숙한 이름들 사이로 튀어나오는 낯선 이름들의 이력 앞에서 절망했다. 그것은 임시정부를 포함해, 망명지 중국 땅에서 펼쳐진 독립운동사를 공부하면서 나름 잘 알고있다고 여겼던 한국 현대사의 어떤 부분에 대해 내가 ‘완전히 무지’하다는 통렬한 깨달음 탓이었다. 조선공산당 초대 책임비서 김재봉을 비롯한 5인의 ‘사회주의 독립운동가’ 기사는, 그런 상황에서 당대의 역사적.. 2021. 4. 13.
혁명가, 사회주의 소련에서 ‘반혁명’ 혐의로 처형되다 [사회주의 독립운동가⑤] 조선공산청년회 중앙위원·코민테른 전권위원 김단야(1901~1938)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이 세상에 나온 것은 1848년 2월이었고, 69년 뒤인 1917년 러시아에서 세계 최초의 공산주의 혁명이 성공했다. 식민지 치하에 조선공산당이 창립된 것은 1925년 4월이었다. 조선공산당은 ‘조선혁명’의 과제를 민족해방혁명, 반제국주의 혁명으로 규정하고 있었다. 그것이 자기 과업을 수행하면서 독립운동에도 헌신한 이유였다. 그러나 이들은 해방 후 38도선 이남에 친미반공국가가 세워지면서 잊히기 시작했다. 일제의 가혹한 탄압 아래서 이들이 벌인 계급투쟁도, 반제국주의 민족해방 투쟁도 이념 저편에 묻혀 버린 것이었다. 조선공산당 창당을 전후한, 이 잊힌 혁명가들의 삶과 투쟁을 돌아본다. 안동 지.. 2021. 1. 17.
‘풍산 트로이카’ 세 명 중 왜 그에게만 서훈 비켜갔을까 [사회주의 독립운동가④] 조선공산당 중앙집행위원 이준태(李準泰, 1892~1950)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이 세상에 나온 것은 1848년 2월이었고, 69년 뒤인 1917년 러시아에서 세계 최초의 공산주의 혁명이 성공했다. 식민지 치하에 조선공산당이 창립된 것은 1925년 4월이었다. 조선공산당은 ‘조선혁명’의 과제를 민족해방혁명, 반제국주의 혁명으로 규정하고 있었다. 그것이 자기 과업을 수행하면서 독립운동에도 헌신한 이유였다.? 그러나 이들은 해방 후 38도선 이남에 친미 반공 국가가 세워지면서 잊히기 시작했다. 일제의 가혹한 탄압 아래서 이들이 벌인 계급투쟁도, 반제국주의 민족해방 투쟁도 이념 저편에 묻혀 버린 것이었다. 조선공산당 창당을 전후한, 이 잊힌 혁명가들의 삶과 투쟁을 돌아본다. 풍산 오미마.. 2021. 1. 11.
혁신유림 이은 항일 지식인, 일제와 싸우다 쓰러지다 [사회주의 독립운동가③] 제3차 조선공산당(안광천) 조직부장 김남수(1899~1945)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이 세상에 나온 것은 1848년 2월이었고, 69년 뒤인 1917년 러시아에서 세계 최초의 공산주의 혁명이 성공했다. 식민지 치하에 조선공산당이 창립된 것은 1925년 4월이었다. 조선공산당은 ‘조선혁명’의 과제를 민족해방혁명, 반제국주의 혁명으로 규정하고 있었다. 그것이 자기 과업을 수행하면서 독립운동에도 헌신한 이유였다. 그러나 이들은 해방 후 38도선 이남에 친미 반공 국가가 세워지면서 잊히기 시작했다. 일제의 가혹한 탄압 아래서 이들이 벌인 계급투쟁도, 반제국주의 민족해방 투쟁도 이념 저편에 묻혀 버린 것이었다. 조선공산당 창당을 전후한, 이 잊힌 혁명가들의 삶과 투쟁을 돌아본다. 구한말 애.. 2021. 1. 7.
권오설, 살인적 고문 견디고 ‘6·10만세’를 지켜냈다 [사회주의 독립운동가②] 조선공산당 산하 고려공산청년회 책임 비서 권오설(1897~1930)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이 세상에 나온 것은 1848년 2월이었고, 69년 뒤인 1917년 러시아에서 세계 최초의 공산주의 혁명이 성공했다. 식민지 치하에 조선공산당이 창립된 것은 1925년 4월이었다. 조선공산당은 ‘조선혁명’의 과제를 민족해방혁명, 반제국주의 혁명으로 규정하고 있었다. 그것이 자기 과업을 수행하면서 독립운동에도 헌신한 이유였다. 그러나 이들은 해방 후 38도선 이남에 친미 반공 국가가 세워지면서 잊히기 시작했다. 일제의 가혹한 탄압 아래서 이들이 벌인 계급투쟁도, 반제국주의 민족해방 투쟁도 이념 저편에 묻혀 버린 것이었다. 조선공산당 창당을 전후한, 이 잊힌 혁명가들의 삶과 투쟁을 돌아본다. 19.. 2020. 12. 30.
조선공산당도 ‘일제통치 타도·조선 독립’이 목표였다 [사회주의 독립운동가①]조선공산당 초대 책임 비서 김재봉(1890~1944)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이 세상에 나온 것은 1848년 2월이었고, 69년 뒤인 1917년 러시아에서 세계 최초의 공산주의 혁명이 성공했다. 식민지 치하에 조선공산당이 창립된 것은 1925년 4월이었다. 조선공산당은 ‘조선혁명’의 과제를 민족해방혁명, 반제국주의 혁명으로 규정하고 있었다. 그것이 자기 과업을 수행하면서 독립운동에도 헌신한 이유였다. 그러나 이들은 해방 후 38도선 이남에 친미 반공 국가가 세워지면서 잊히기 시작했다. 일제의 가혹한 탄압 아래서 이들이 벌인 계급투쟁도, 반제국주의 민족해방 투쟁도 이념 저편에 묻혀 버린 것이었다. 조선공산당 창당을 전후한, 이 잊힌 혁명가들의 삶과 투쟁을 돌아본다.[기자말] 한국 최초의.. 2020. 12. 24.
부산경찰서에서 터진 폭탄, 의열단 투쟁의 출발이었다 박재혁 의사의 ‘부산경찰서 폭탄 투척 의거’ 100주년을 기리며 올해는 박재혁(朴載赫, 1895~1921) 의사의 ‘부산경찰서 투탄(投彈) 의거’ 100주년을 맞는 해다. 1920년 스물다섯 조선 청년은 단신으로 폭력적 식민통치 권력 기구였던 경찰서에 들어가 서장을 향해 폭탄을 던졌고, 이듬해 감옥에서 단식 끝에 순국했다. 25살 청년 박재혁, 부산경찰서에 폭탄을 던지다 인간의 수명도 쉽게 이르기 어려운 시간인 ‘100년’은 굵직한 역사적 사건과 어우러져 오늘에 소환된다. 1세기 전, 한 식민지 청년의 투쟁과 희생을 기리면서 제대로 청산하지 못한 오욕의 식민지 역사와 함께 독립을 위해 젊음을 던진 청년의 분노와 그의 시대를 생각한다. 1920년이 더러 ‘민국(民國) 2년’으로 불리는 이유는 그 전해(19.. 2020. 10. 27.
‘황도(皇道) 유학’의 이명세, 그 손녀 이인호 이인호 서울대 명예교수(78)가 의 이사장으로 내정되면서 그의 조부의 친일 문제가 뜨거운 쟁점으로 떠올랐다. 공인이라면 웬만한 정보는 얼음같이 드러나는 세상이다. 지명도가 높은 문인이나 관료 출신이 아니면서도 그의 조부의 신상명세가 드러나게 된 데는 민족문제연구소에서 펴낸 (아래 ) 덕분이다. 이사장 이인호, 그의 조부 이명세 에 이명세(李明世/春山明世, 1893~1972)는 ‘유림(儒林)’ 분야에 이름을 올렸다. 이명세는 경학원(經學院) 사성(司成)과 조선유도연합회 상임이사를 역임했다. 경학원과 조선유도연합회는 일제의 총독부 식민정책에 적극적으로 협력한 교육기관(경학원)이거나 친일 유림조직이다. 비단 불교나 천주교·개신교만이 아니라 전통 종교윤리라 할 수 있는 유교 쪽도 일제에 적극적으로 협력한 것이다.. 2020. 3. 4.
인촌 김성수, 56년 만에 서훈 박탈되다 지난 13일, 창업자 인촌 김성수(1891∼1955)의 건국훈장 대통령장 서훈이 56년 만에 박탈되었다. 지난해 4월 대법원이 그의 친일행위를 인정함에 따라 국가보훈처는 서훈 취소를 요청했고 이날 국무회의가 이 훈장의 취소를 의결한 것이다. 김성수는 1962년 일제강점기 와 각종 학교를 세운 ‘언론·교육 분야 공로’로 건국 공로 훈장 복장(현재의 대통령장)을 받았다. 그러나 그는 2009년 대통령 소속기관인 친일 반민족행위 진상규명위원회에서 ‘독립운동을 했으나 뒤에 적극적인 친일 활동을 펼친 사실이 드러났다’라며 친일반민족행위자로 지정한 20인에 포함되었다. 친일 반민족행위 진상규명위 지정 20인 서훈 박탈 완료 논설 ‘시일야방성대곡’으로 유명한 위암 장지연(1864~1921)을 비롯하여 이승만의 비서실.. 2020. 3. 1.
장엄하여라, ‘우국(憂國)의 황혼’이여 [항일의 땅과 인물 ③]자정(自靖) 순국(殉國)의 넋들과 향산 이만도 20년도 전의, 오래된 얘기다. 어느 여학교의 역사 시간이었다. 교사는 문득 ‘망국의 역사’를 염두에 두고 아이들에게 물었겠다. 그것도 매우 근엄하게. 얘들아, 오늘이 무슨 날이지? 아이들은 눈을 빛내며 일제히 입을 모아 소리쳤다. 마이클 잭슨 생일요! 경술국치와 '마이클 잭슨의 생일' 사이 1910년 8월 29일은 이른바 ‘경술국치’일이다. 그날, ‘한국 정부에 대한 모든 통치권을 완전히 또 영구히’ 일제에 넘겨줄 것을 규정한 합병조약에 따라 27대 519년 만에 조선 왕조는 그 명운을 다하고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역사는 때로 화석이 된다. 아이들에겐 그날이 역사 교과서 속에서 만난 봉건 왕조가 사라진 날이 아니라 한 시대를 풍미한.. 2019. 8. 28.
1945년 8월, 독수리작전과 장준하 해방, 그러나 무산된 ‘독수리 작전’ 역사에서 가정이란 얼마나 부질없고 허망한 일인가. 소련이 한 주일쯤이라도 늦게 대일본 선전포고(1945.8.8.)를 하였더라면, 히로시마에 원폭 투하(8.6.)가 한 주일쯤 일렀더라면……. 안타까운 것은 장준하 선생 등이 광복군 장교로 미국 전략사무국(OSS Office of Strategic Service, 미국 CIA의 전신) 훈련을 받고 참여한 국내 진공 작전이 무산된 점이다. 장준하(1918~1975), 김준엽(1920~2011, 전 고려대 총장) 등이 1944년 일본 학도병으로 징집되었다가 배속된 부대를 탈출하여 광복군에 합류한 것은 잘 알려진 이야기다. 태평양전쟁이 일어나자 광복군은 연합국의 일원으로 참전하기 위한 외교적 노력을 기울이는 한편, 임시정부의 .. 2019. 8. 15.
‘모스크바 동네’가 배출한 항일운동가 권오설 [항일의 땅과 사람, 안동 ④] 20년대 사회주의 운동, 잊힌 시대와 삶 여기 한 혁명가가 있다. 감옥에서 찍은 일그러지고 바랜 사진 속에서 그는 정면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다. 그는 일제의 감옥에 갇혀 있다가 의문의 죽임을 당했다. 향년 서른넷. 그의 시신은 일경의 삼엄한 경비로 봉분도 올리지 못한 평장(平葬)으로 고향 인근의 산기슭에 묻혔다. 그 무덤에 봉분이 올라간 건 수십 년이 흐르고 나서였다. 2차 조선공산당 산하 고려공산청년회 제2대 책임 비서였던 그는 민족해방을 위해 공산주의 노선을 택한 ‘실용주의’ 운동가로 평가되는 이다. 조선공산당의 ‘6·10 운동 투쟁지도 특별위원회’ 총책임자로 6·10 만세운동을 기획하고 조직했지만, 해방 후 극심한 좌우 이데올로기의 갈등과 전쟁을 거친 자본주의 조국.. 2019. 6.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