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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바람과 먼지의 세상, 그 길 위에 서서

이 풍진 세상에 /삶 ·세월 ·노래 26

‘노래하는 사람’ 윤선애의 ‘시대와의 작별’을 지지함 윤선애 새 음반 에 부쳐 인터뷰를 읽고 주문한 윤선애의 새 음반 디브이디(DVD)를 택배로 받은 게 지난 화요일이다. 종이상자를 뜯고 뽁뽁이 봉투를 열자, 목 티셔츠를 입은 윤선애의 상반신이 찍힌 포장의 음반이 얌전히 담겨 있었다. 흑백 사진 속 단발머리의 윤선애는 미소를 띠고 정면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윤선애는 1964년생, 우리 나이로 쉰일곱이다. 1984년 9월, 서울대 중앙도서관 앞 광장의 임시 연단에서 ‘민주’를 부르며 민중가요 가수로 떠오른 스무 살 대학 새내기가 건너온 세월이 서른일곱 해다. 그때 “청아하면서도 처연한 목소리로, 민주주의에 목마른 청년들의 가슴에 불을 질렀”(한겨레 인터뷰 기사, 아래 같음)던 그는 ‘민중가요계의 디바’로 불리면서 8, 90년대 민주화 투쟁 현장에서 활.. 2021. 5. 7.
봄비, 솔(soul) 가수 박인수의 인생유전 6, 70년대에 활약했던 가수들에 대한 기억은 늘 애매하다. 차중락이나 배호가 그랬고, 박건이나 김추자에 대한 기억도 그렇다. 짐작건대 텔레비전이 널리 보급되지 못했던 시대, 서민들이 가수와 그 얼굴을 동시에 기억하는 일은 쉽지 않았던 것 같다. 집에 전축을 두고 가수들의 엘피(LP)판을 사서 대중가요를 즐기던 이들은 그나마 나았다. 그러나 사람들은 대부분 겨우 라디오를 통해서만이 이들 대중문화에 접근할 수 있었다. ‘○○○ 리사이틀’이라는 이름으로 가수들 공연이 있긴 했지만, 그것 역시 서민에겐 멀기만 했다. 그 무렵 김추자의 도발적인 무대 매너가 화제가 되었지만, 그 역시 사람들은 ‘선데이 서울’과 같은 황색 주간지를 통해서 간접으로 전해 들을 수 있었다. 연예계 뉴스가 포털에 뜨거나 대중들의 반응 .. 2021. 5. 5.
이장희- 노래여, 삶이여 프랑스어로 ‘멋지다’는 뜻의 ‘세시봉(C’est Si Bon)이 시방 상종가다. 정확히 말하면 40여 년 전 ‘세시봉’이란 음악감상실에서 인연을 맺은 왕년의 가수들이 이야기하는 삶과 노래에 대한 대중의 갈채가 뜨겁다는 얘기다. 지난해 추석 연휴의 첫 방송에 이어서 어제 방영된 2회도 대단한 호응을 불러일으킨 듯하다. 텔레비전은 켜져 있으면 보고 꺼져 있으면 굳이 틀지 않는 편이다. 그러니 어떤 프로그램을 보려고 기다리는 경우는 거의 없다. 그러나 어제는 일부러 기다렸다가 ‘세시봉’ 멤버들이 나오는 ‘놀러와’를 시청했다. 딸애는 물론, 명절을 쇠려고 내려온 아들도 함께였다. 추석 연휴 때도 우리는 ‘재방송’을 함께 시청했었다. [관련 기사] 세시봉 신드롬, 혹은 음악에 대한 갈증 우리 가족이라고 특별히 세.. 2021. 2. 8.
애니멀스(The Animals)와 김상국의 ‘해 뜨는 집’ 상처 입은 장미들이 모여 사는 거리 눈물에 젖은 가슴들이 웃음을 파는 거리 애니멀스(The Animals)가 부른 ‘해 뜨는 집(The House Of The Rising Sun)’을 처음 만난 것은 중학교 때였다. 고등학교에 다니던 형이 즐겨 불렀던 노랜데, 정작 나는 그 무렵에도 그 원곡을 들어본 적이 없다. 형이 흥얼거린 번안곡을 부른 국내 가수가 김상국이었다는 사실을 안 것도 얼마 전의 일이다. 집에 텔레비전은 아예 없었고, 라디오를 듣는 일도 쉽지 않았던 1960년대였다. 대도시로 유학 와 형과 누나 집을 전전하던 시골 소년이 대중문화를 접하는 일은 고작 그런 형식으로만 가능했던 때였다. 나는 형을 통해 ‘해 뜨는 집’의 리듬과 가사를 익혔다. 40년 전 번안곡으로 만난 ‘해 뜨는 집’ 무엇보다.. 2020. 12. 26.
지금도 마로니에는 피고 있겠지 박건 ‘그 사람 이름은 잊었지만’(1969) 초등학교 4학년 때, 이미자의 ‘섬마을 선생님’이 내가 태어나 처음 만난 대중가요였다. 그리고 그 노래가 주제가였던 라디오 드라마 ‘섬마을 선생님’은 내 일상에 충격으로 다가온 ‘서사(敍事)’의 세계였다. 말하자면 이미자의 노래는 내 유년 시절에 처음으로 열린, 낯선 세계로 열린 창이었던 셈이다. 초등학교를 졸업 후 막 ‘마포종점’이나 ‘소양강 처녀’ 따위로 유행가에 입문하면서 나는 고향을 떠났다. 나는 인근 대도시의 중학교 전기 입시에 실패하고 후기의 한 공립 중학교에 합격한 것이다. 나는 신암동 산동네의, 삼륜 화물차 한 대를 부리던 맏형 내외의 단칸방에 얹혀살게 되었다. 까까머리 시절에 만난 박건의 노래들 그때, 라디오를 통해 익힌 대중가요가 박건의 노래.. 2020. 10. 15.
왜 ‘미친 사랑(crazy love)’은 ‘서글픈 사랑’이 되었나 블루진의 ‘서글픈 사랑’이 된 폴 앵카의 ‘크레이지 러브’ 고등학교 신입생이던 1972년 겨울쯤으로 기억한다. 어느 날 동아리 친구 녀석이 ‘요즘 유행하는 노래’라며 노래 한 곡을 들려주었다. 단박에 느낌이 달랐다. 쥐어짜는 듯한 가수의 목소리가 떠난 사랑을 추억하는 노랫말과 맞춤하게 어울리는 노래였던 까닭이다. 그게 ‘서글픈 사랑’이다. 친구 녀석은 동무들 가운데 드물게 집에 하이파이(!) 오디오 시스템을 갖추고 있었다. 고작 라디오를 통해서 인기 가요를 익히고 있었던 우리와 달리 녀석의 집에는 이른바 ‘엘피(LP)’판이라는 음반이 수북했다. 당연히 대중문화를 받아들이는 데는 녀석이 훨씬 빨랐음은 말할 것도 없다. 우리가 이내 그 노래를 배워 흥얼거리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무쇠라도.. 2020. 9. 10.
아프지 않은 사랑은 없다 -차중락의 ‘사랑의 종말’ 가수 차중락(1941~1968)은 내겐 실재감이 없는 존재다. 더 까마득한 시대의 인물인 김정구나 현인 같은 이와는 달리 나는 살아 있는 그의 모습을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그는 몇 곡의 노래와 풍문으로 내게 다가온 사람이었다. 노래와 풍문으로 다가온 사람, 차중락 그가 죽었을 때 나는 초등학교 6학년이었다. 물론 나는 그의 죽음을 훨씬 뒤에야 알았다. 나는 중학교 시절에야 형이 부르는 몇 편의 노래를 통하여 그와 그의 노래를 만났다. 형이 애절하게 불렀던 그의 노래들―낙엽 따라 가버린 사랑, 사랑의 종말, 철없는 아내―을 나는 꽤 예민하게 받아들였던 것 같다. 나는 이내 그 노래를 배웠고 내 방식으로 노래가 전하는 사연에 몰입할 수 있었다. 사랑과 이별을 이해하기에는 어린 나이였지만 나는 문학적 상상.. 2020. 7. 29.
‘항구와 마도로스’, 기억 속의 노래들 생전 처음으로 유행가라고 듣고 배운 게 이미자가 부른 ‘섬마을 선생님’이었다는 얘기는 일찌감치 한 바 있다. (☞ 바로 가기) 나는 그걸 삐삐선으로 공급되는 이른바 ‘유선 앰프 라디오’의 연속극을 통해서 배웠다. 애절한 이미자의 노래가 환기해 주는 남도의 정서 앞에 나는 오줌을 지릴 것 같은 조바심을 느끼곤 했다. 초등학교 5학년이 되면서 남녀 혼성반이었던 학급이 남녀로 갈렸다. 새로 구성된 학급은 낯설었다. 인근 마을 아이들로 구성되었던 4학년 때까지의 학급과 달리 그보다 훨씬 먼 마을의, 키도 크고 인상도 다분히 고약한 사내아이들이 한 반이 된 것이다. 벌어진 잇새로 침을 갈기거나 거친 욕설을 예사롭게 쓰는 이 새 동무들 앞에서 나는 좀 긴장했던 것 같다. 낯선 5학년, 낯선 친구들, 낯선 노래들 ‘.. 2020. 1. 16.
새해에 듣는 노래, ‘갈 수 없는 나라’ 2011년 새해 첫날, 1면에 실린 사진에 오래 눈길이 머물렀다. 연평도에서 태어나서 평생을 살아온 한 할머니가 천주교 연평도 성당에서 주름진 두 손으로 드리는 기도의 사진이다. 그 기도는 물론 평화와 안전을 비는 것이었을 것이다. 35면 사설은 “평화, 우리 모두의 가슴에 꽃피워야 한다”였다. 소제목까지 붙인 이 사설에는 가 일관되게 추구하는 한반도의 평화와 공존에 대한 염원이 오롯이 실려 있었다. 천천히 사설을 읽어 가는데 1면의 할머니가 주름진 손으로 올리는 기도의 장면이 아주 자연스럽게 겹쳐지는 듯했다. 사설은 지난해 연평도에서의 군사적 충돌 이후 계속되는 대치와 위기상황을 지적하면서 시방 한반도에 필요한 것은 남북 간 평화와 화해라고 힘주어 말한다. 전쟁이 우리에게 가져다주는 것은 ‘폐허’뿐임을.. 2020. 1. 12.
그 강 건너 불빛 - 은방울자매의 ‘마포종점’ 자주는 아니지만 가끔 한 공중파의 대중가요 프로그램을 시청할 때가 있다. 주로 흘러간 옛 노래를 다루는 이 프로그램은 시대별·주제별로 옛 노래를 들려준다. 저 시기에, 저런 주제의 유행가가 저렇게 많았던가 하는 생각을 하면서도 아는 노래가 나오면 공연히 그 노래가 떠올려주는 옛날을 추억하지 않을 수 없다. 노래에 담긴 ‘세월’, ‘시간의 자취’들 유행가에 무슨 심오한 철학이, 삶과 사랑에 대한 대단한 성찰이 담겼을 리는 없다. 그것은 가장 대중적인 언어로 가장 대중적인 주제의 삶과 사랑을 가장 대중적인 방식으로 노래할 뿐이다. 그런데도 유행가가 사람들에게 기억되는 것은 그 노래에 담긴 세월과 시간의 자취 때문이다. 사람들은 대중가요를 단순히 리듬과 멜로디로서가 아니라, 그것과 함께했던 한 시대의 공기, .. 2020. 1. 4.
‘가설 천막극장’에서 만난 영화와 노래들 영화진흥위원회의 통계에 따르면 2014년 현재 전국의 극장은 모두 333개, 스크린은 2,184개다. 대부분 복합상영관(멀티플렉스)일 터이니 가히 ‘영화의 전성시대’라 불러도 지나치지 않겠다. 영화를 보려면 그걸 상영하고 있는 영화관을 찾아다녀야 했던 단관 중심의 과거 극장가는 그야말로 옛이야기가 되었다. 멀티플렉스 시대에 떠올리는 ‘가설극장’ 그러나 여전히 영화관이 없는 시군이 적잖다. 군청 소재지가 있는 소읍에 있던 영화관은 대부분 문을 닫은 지 오래여서 시골 사람들은 영화 한 편을 보기 위해서는 영화관이 있는 대도시로 원정을 가지 않으면 안 된다. 이런 문화 소외 현상을 해소하기 위해서 경상남도에선 ‘작은 영화관’ 건립을 추진한다고 한다. 우리 어릴 적, 영화관은커녕 마땅한 문화 공간이 전혀 없었던.. 2019. 11. 19.
나팔꽃과 동요 ‘꽃밭에서’ 바야흐로 ‘나팔꽃의 계절’이다. 주변에서 나팔꽃을 일상으로 만나게 된 건 요 몇 해 사이다. 걸어서 출근하다 보면 두 군데쯤에서 새치름하게 피어 있는 나팔꽃을 만난다. 한 군데는 찻길에 바투 붙은 커다란 바위 언덕이고 다른 한 군데는 주택가의 축대 위다. 굳이 ‘새치름하다’고 쓴 까닭은 굳이 설명할 일은 없을 듯하다. 때를 맞춰 활짝 무리 지어 피어난 꽃은 ‘흐드러지다’고 표현하지만 이른 아침, 산뜻한 햇살을 받으며 꽃송이를 여는 나팔꽃을 ‘흐드러지다’고 묘사하는 것은 아이들 말마따나 ‘에러’기 때문이다. 나팔꽃은 말 그대로 꽃잎에 나팔 모양으로 생겼다. 짙은 남색이나 연보라, 연파랑 등의 산뜻한 색상으로 피어나는 나팔꽃은 수더분하거나 넉넉함과는 거리가 멀다. 뭐라 할까, 나팔꽃은 마치 제 할 일을 맵짜.. 2019. 9. 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