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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바람과 먼지의 세상, 그 길 위에 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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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미사람들과 북봉산, 그리고 ‘새마을’ 대청소 북봉산과 새마을 대청소 프롤로그에서 밝힌 대로 자리 잡는 대로 뒷산도 다녀오고, 인근 재래시장 따위를 한 바퀴 돌아보리라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정작 움직일 만하면 한파가 찾아오곤 해서 나는 고작 인근 할인점 구경 정도만 했었다. 그래도 옮아온 지 한 달이 지나자, 조금씩 이 도시의 공기와 정서가 조금씩 느껴지기 시작하는 듯하다. 이사 오고 사나흘쯤 후에 인근의 목욕탕에 들렀다. 규모가 꽤 큰 온천이었는데 설 대목이라서인지 사람들이 바글바글했다. 목욕하는 내내 설명할 수 없는 이질감을 느꼈는데 목욕탕을 나서면서 그 정체를 깨달았다. 나는 저도 몰래 우리 식구들이 즐겨 찾았던 안동의 학가산 온천과 이 욕탕을 견주고 있었기 때문이다. 평균연령 34세, ‘젊은 도시’ 구미 규모는 안동 쪽의 것이 크다. 그런데 .. 2022. 3. 2.
삼월을 맞으며 20년 만에 여학교로 돌아와서 3월이다. 내 탁상 달력에는 ‘온봄달’이라 이름 붙이고 있는데, 그 ‘온’의 의미가 잘 짚이지 않는다. 아마 ‘온전하다’는 의미인 듯한데, 따로 사전을 찾아서 해결할 문제가 아니니 그러려니 하고 짐작하고 만다. 1일은 3·1절. 오늘 저녁에는 시(市)에서 ‘횃불 만세운동’ 재현 행사를 연다고 한다. 행사 사진을 몇 장 찍어야겠다고 생각하고 있다. 일찌감치 행사장 인근의 건물을 물색해 사진 찍을 장소를 봐 둬야 하는데, 썩 자신이 생기지 않는다. 삼각대를 설치해 야경을 찍은 경험이 없어서다. 안동은 최초의 항일 독립운동인 ‘갑오의병(1894)’이 봉기한 곳으로 경술국치를 전후하여 스스로 목숨을 끊어 순국한 지사를 열 분(전국 60여 분)이나 낳았고, 단일 시군으로는 시도 단위.. 2022. 2. 28.
‘졸업’, 낭만에서 현실로 ‘낭만’이 아닌 ‘고단한 현실’과의 대면 대학 졸업 시즌이다. 전국에서 50만여 명의 대학 졸업생이 그야말로 ‘쏟아져 나온다’. 그들 가운데 절반은 ‘백수’로 불리게 되는 미취업자라고 한다. 심각한 청년층 고용시장 상황 앞에 선 젊은이들의 표정은 어둡고 절박하다. 오죽하면 어떤 일간지는 ‘그들에게는 봄이 없다’라고까지 표현했을까. ‘취업난’과 ‘대출금 상환’으로 돌아온 졸업 입도선매(立稻先賣), 졸업하기도 전에 제각기 기업에 ‘팔려 가던’ 70년대 호시절에 비기면 오늘의 젊은이들은 불운하기 짝이 없다. 70년대 중반에는 사범대 졸업자들조차 기업으로 몰려가 시골 사학에서는 쓸 만한 교사를 모셔오는 게 ‘하늘의 별 따기’였다던가. 80년대 초반에 내가 대학을 졸업하던 때도 그리 상황은 좋지 않았다. 4학년 .. 2022. 2. 27.
정해(丁亥) 설날, 성묫길 2007, 정해년 설날 얼마 전에는 ‘젊은 여자’가 밟힌다고 야살을 떨었지만, 늙은 안노인들이 눈에 밟히기는 훨씬 오래된 일이다. 노인들의 모습에는 딱히 꼬집어 설명할 수 없지만 몇 가지 공통점이 있다. 다소 구부정한 허리, 조심스런 걸음걸이, 육탈(肉脫)이 진행되는 듯한 깡마른 몸피, 불그레한 홍조가 가시지 않는 눈자위 등은 그 황혼의 가슴 아픈 징표들이다. 어머니께서 가신 지 벌써 네 해가 흘렀다. 어머니가 계시지 않는 일상에 일찌감치 익숙해졌는데도 주변에서 만나는 안노인들을 물끄러미 바라보면서 가끔 시간이 되돌고 있는 건 아닌가 하는 혼란에 빠지기도 하는 건 순전히 회한 때문이다. 얼마 전에는 공중파 방송을 보다가 혼자서 눈물을 쏟기도 했다. 길러 준 조모를 버리고 오래 소식을 끊었던 한 청년이 할.. 2022. 2. 26.
70년대 ‘보도 특집’의 재림인가, KBS ‘시사기획 쌈’ KBS ‘대통령 취임 1년-남은 4년의 길’(2009.2.24.) 24일 밤 우연히 채널을 돌리는데 KBS의 ‘시사 기획 쌈’이 잡혔다. 방송된 내용은 ‘대통령 취임 1년-남은 4년의 길’이다. 채널을 돌려 버리려고 하다가 얼마나 망가지고 있는가 싶어서 ‘짬짬이’ 들여다보았다. 50분 가까운 분량인데, 낯 간지러운 내용의 연속이라 참고 채널을 고정하기가 쉽지 않았던 까닭이다. ‘혹시나’ 한 것은 결코 아닌데 ‘역시나’였다고 하면 진부한 표현인가. 70년대와 80년대, 밤 10시가 넘으면 느닷없이 시작하던 관제 프로그램 ‘보도 특집’의 재림(?)이라고 하면 지나칠까. 남자 해설자의 초성 좋은 해설은 감미로웠고, 시종 나긋나긋하게 프로그램을 진행한 여자 아나운서도 예의범절이 깍듯했다. 프로그램은 김영삼, 김.. 2022. 2. 25.
우리 모두의 ‘한 잎의 여자’ 오규원 시인의 ‘한 잎의 여자’ 나는 오규원(1941~2007) 시인을 잘 모른다. 물론 이는 선생의 명성과는 무관하게 내가 ‘무심하고 형편없는 독자’여서이다. 나는 그의 시를 제대로 읽지 않았고 그가 펴낸 시집 나 등 시집을 마치 유행가 제목처럼 기억하고 있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난 뒤 얼마간 우리 집 서가에는 민음사에서 펴낸 ‘오늘의 시인 총서’ 시리즈 중의 하나였던 그의 시집 가 내내 꽂혀 있었다. 그러나 내가 그 시집을 읽었던지 어땠는지는 전혀 기억에 없다. 가끔 어디선가에서 우연히 읽은 그의 시 ‘한 잎의 여자’를 떠올리면서 나는 그에게 참 미안했다. 내가 민음사에서 펴낸 를 다시 산 것은 지난해 2월이다. 서지사항을 확인해 보니 이 책의 초판은 1975년에 나와 16쇄까지 발행했고, 내가 .. 2022. 2. 24.
[선산 톺아보기 ⑧] 청백리 짚신 건 선돌, 이제 무심히 지나는 바위 되었네 [선산 톺아보기 ⑧] 진평동 인동입석(仁同立石) 출포암과 괘혜암 입석(立石)은 우리말로 ‘선돌’이라고 부른 돌기둥이다. 학술적으로는 “선사시대에 땅 위에 자연석이나 그 일부를 가공한 큰 돌을 하나 이상 세워 기념물 또는 신앙대상물 등으로 삼은 돌기둥 유적”이라고 정의한다. 입석은 선사시대에는 주로 고인돌[지석묘(支石墓), dolmen] 주변에 세워 묘의 영역을 나타냈다. 역사시대에 와서는 마을 입구에 세워 귀신을 막거나 경계를 표시했고, 토착 신앙과 합쳐져 장수를 비는 신앙의 대상이 되기도 하였다. 비보풍수(裨補風水)와 인동입석 출포암 안동 입석은 진평동 627-4번지, 진평동사무소 맞은편에 있다. 원래 3기가 세워져 있었지만, 현재는 2기만 남았다. 정면에서 볼 때 왼쪽 입석이 ‘출포암(出捕岩)’이라 .. 2022. 2. 23.
봄은 지금 어디쯤 아스라한 봄의 기척, 조짐들 봄은 시방 어디쯤 오고 있는가. 어릴 적에는 그랬다. 출타한 아버지, 어머니를 목을 빼고 기다리고 있으면 곰방대에 담배를 재며 할머니께서는 늘 그렇게 말씀하시곤 했다. “니 애비(에미) 어디쯤 오고 있는지 어디 뒤꼭지 한번 긁어 봐라.” 내가 긁는 뒤통수의 위치에 따라 아버지, 어머니의 귀가 시간이 점쳐지곤 했다. # 1. 낙동강 강변 강변 축대에 비스듬히 서 있는 버들개지가 눈을 틔우고 있다. 잿빛의 풍경 속에서 그 연록 빛은 아직 애처롭다. 강변을 지나는, 아직은 매서운 바람 속에도 옅은 온기가 느껴지니 봄이 그리 멀지는 않은 모양이다. # 2. 대구수목원 정월 초이튿날, 아들 녀석 면회 갔다가 들른 대구수목원 분재원에 핀 수양 매화. 꽃이 피면서 수양버들처럼 고개를 숙인.. 2022. 2. 22.
[선산 톺아보기 ⑦]‘주화매국’ 화강암에 새긴 척양(斥洋)의 의지 [선산 톺아보기 ⑦]구포동 구미 척화비(斥和碑) 구미 척화비는 구포동 산 52-1번지에 있다. 2020년 9월 첫 방문 때 내비게이션의 안내를 따라갔지만, 찾기가 쉽지 않았다. 빗돌은 구미시 구포동의 구미 3공단에서 구미 2공단으로 넘어가는 솔뫼 고개의 도로변에 있지만 비탈에 드러나지 않게 돌아앉아 있기 때문이었다. 흥선대원군이 1871년에 서울과 전국 각지에 세운 척화비 척화비는 흥선대원군이 1871년, 서울과 전국 각지의 길가에 세우도록 한 빗돌이다. 비석에는 “서양 오랑캐가 침입하는데 싸우지 않으면 화친하는 것이요, 화친을 주장하는 것은 나라를 팔아먹는 것이다(洋夷侵犯 非戰則和 主和賣國)”의 12자는 큰 글자로, 그 옆에 “우리 만대 자손에게 경고하노라! 병인년에 짓고 신미년에 세운다(戒我萬年子孫 .. 2022. 2. 21.
서원과 향교 앞 송덕비의 목민관, ‘조선 귀족’이 되다 금오서원과 선산향교 앞 송덕비로 남은 ‘친일반민족행위자’ 김사철 며칠 전 선산읍 원리에 있는 금오서원(金烏書院)을 들렀다가 돌비 하나를 만났었다. 읍청루 오른쪽 담장 아래 금오서원 안내판 옆의 이 빗돌은 ‘부백김공사철송공비(府伯金公思轍頌功碑)’다. 부백(府伯), 그러니까 선산 부사 김사철(金思轍, 1847~1935)의 송덕비다. 금오서원 앞 송덕비의 주인공 선산부사 김사철 고을마다 줄지어 선 숱한 송덕비 중 하나겠거니 하고 지나쳤다가 나중에 인터넷을 검색해 보니 선산향교 앞에 그의 빗돌이 하나 더 있다. 1892년 7월에 세운 ‘부사 김사철 교중유혜비(校中遺惠碑)’니, 이는 그가 ‘향교에 끼친 은혜’를 기린 비다. 선산 부사로 재임할 적에 선정을 베푼데다가 향교에도 적잖은 이바지를 했다는 얘기다. 혹시나.. 2022. 2. 19.
고별-나의 ‘만학도’들에게 방송통신고 졸업생 여러분께 어떤 형식으로든 나의 만학도, 방송고 졸업반인 당신들에게 마음으로 드리는 인사가 필요하다는 걸 나는 염두에 두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설날 연휴에 가족여행을 다녀오는 바람에 마땅히 시간을 낼 수가 없었습니다. 졸업식은 14일이고 여행에서 돌아온 것은 12일입니다. 호기롭게 떠난 여행이었지만 강행군을 하면서 여독이 만만찮았고, 거기다 가족 모두가 독감을 앓기 시작했습니다. 오한과 발열로 하룻밤을 꼬박 밝히면서 저는 문득 이게 내가 31년을 머문 학교를 떠나면서 치러야 할 통과의례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습니다. 만학도들에게 건네는 고별인사 여행의 첫 3일은 좀 무더웠고 마지막 날은 추웠습니다. 공항에서 몸을 잔뜩 오그리고 비행기를 기다리면서 그런 생각은 더해졌습니다. 귀가해 하룻밤을 .. 2022. 2. 19.
19세기 ‘모니퇴르’, 그리고 ‘KBS’ 2009년, 이명박 정부 시절의 요즘 나는 KBS 뉴스를 보지 않는다. ‘9시 뉴스’는 물론이거니와 한때 뉴스 시간대로는 애매한 저녁 8시에 즐겨 보았던 ‘뉴스타임’도 보지 않는다. 대신 그 시간의 뉴스는 YTN이나 한때는 피한 SBS 뉴스를 보는 걸로 때운다. 당연히 9시 뉴스는 MBC ‘뉴스데스크’를 즐겨 본다. 남녀 앵커가 가끔 ‘내지르는’ 촌철살인의 논평이 시원하고 사안에 대한 심층보도도 알차고, 문제를 바라보는 관점이 마음에 차기 때문이다. 부득이 KBS를 보지 않을 수 없는 시간에도 KBS 뉴스를 보고 있자면 기분이 영 씁쓸해지는 걸 어쩌지 못한다. 며칠 전이다. 11시께 우연히 ‘뉴스라인’의 원세훈 청문회 기사를 잠깐 보다가 그예 채널을 돌리고 말았다. 앞서 본 MBC 기사는 질문자인 박영선.. 2022. 2. 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