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이 바람과 먼지의 세상, 그 길 위에 서서

이 풍진 세상에 /미각과 삶, 혹은 추억20

곤드레밥이나 콩나물밥이나 어제 아침에 곤드레밥을 지어 먹었다. 얼마 전부터 웬일인지 안동에 살 때 음식점에서 맛본 곤드레밥이 자꾸 생각났다. 마침 산나물이 한창 나는 철이다. 인터넷에서 ‘곤드레나물’로 검색해 보았더니 강원도 쪽에 산지가 여러 곳인 듯했다. 곤드레나물도 말린 것과 생나물을 삶아서 냉동한 것 등이 있었다. 담백한 강원도 나물, 곤드레 대체로 말린 것이 값이 더 나갔고 냉동한 게 싼 편이었다. 인터넷 쇼핑몰을 이용하려다 개인 판매자인 단양 쪽의 농장에다 냉동 나물 4Kg을 주문했다. 4Kg이면 얼마쯤인지 가늠이 되지 않아 물었더니 밥을 지어 먹는 거라면 20인분쯤이라고 알려주었다. 전화로 주문하고 주소는 문자로 보내주고 바로 송금을 했다. 배송료는 물건을 받은 뒤 내가 내야 한단다. 잊어버리고 있었는데 그저께 밤에 .. 2020. 7. 17.
콩국수의 추억과 미각 콩국수의 계절이다. 콩국수를 한번 해 먹으면 좋겠다고 했더니 어제 저녁 식탁에 아내는 콩국수를 내놨다. 하얀 냉면 그릇에 담긴 콩국수의 면은 지금껏 우리 집에서 써 왔던 소면(小麵)이 아니라 적당한 굵기의 중면(中麵)이다.(여기서 쓰는 소면, 중면은 에 나오지 않는다. 사전에 실려 있는 ‘소면’은 고기붙이를 넣지 않았다는 뜻의 素麪뿐이다.) 콩국수의 계절 콩국수의 면이 무엇을 쓰느냐에 따라 맛이 바뀌는 것은 아닐 터이지만, 역시 콩국수에는 굵은 면이 어울린다. 노란빛이 맛깔스레 뵈는 국수가 콩 국물 속에 잠겨 있는 것은 보기에도 역시 좋다. 아내는 왜 진작 이놈을 쓰지 않았을까. 아내는 삶은 콩과 함께 참깨와 땅콩을 갈아 넣었다. 음식점 콩국수에 비기면 훨씬 담백한 맛이다. 콩국수 전문점에서는 우유를 넣.. 2020. 6. 24.
추억의 시장기, ‘누렁 국수’를 아십니까 식성은 결국 ‘피의 길’을 따르는 듯하다. 아이들의 식성이 어버이들과 한참 다른 듯해도 결국은 부모의 그것을 따르게 마련이라는 걸 가르쳐 주는 건 세월이다. 그것은 인간의 감각 가운데서 가장 원형적인 형태로 유전되는 것이 미각인 까닭이다. 마흔 고개를 넘기면서 나는 아니라고 믿었던 내 미각이 선친의 그것을 되짚어가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성년이 된 아이들의 식성을 지켜보면서 나는 아이들의 미각이 역시 내가 밟아왔던 길을 꼼짝없이 반복하고 있다는 걸 깨우쳤다. 대를 이어 재현되는 피의 정직한 순환이란 얼마나 놀라운가. 삽십대 중반을 훌쩍 넘기면서부터 나는 국수에 끌리기 시작했다. 굳이 ‘끌린다’고 표현하는 까닭은 그게 단순한 식성의 변화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냥 ‘먹을 만한 수준’을 넘어.. 2019. 12. 26.
계절의 미각, 고추 부각과 콩잎김치 고추 부각 나이 들면서 좀 눅어지긴 했지만 나는 입이 짧은 편이다. 어릴 때부터 젓갈 따위는 질색이어서 젓갈을 넣은 김치도 먹지 않을 정도였다. 세월이 약이던가, 이제 아내가 깔끔하게 조리한 멸치 젓갈에도 더러 젓가락이 갈 정도이니 발전이라면 장족의 발전을 한 셈이다. 좋아하는 반찬은 대체로 담백한 것들이었다. 김이나 오징어채, 멸치나 달걀 조림 따위의 반찬을 즐겼고, 나물류는 대체로 무난하게 잘 먹었다. 스물을 넘기면서 흠씬 빠진 반찬으로 고추 부각이 있다. 풋고추에다 밀가루를 발라 찐 뒤에 바짝 말려서 기름에서 튀겨낸 이 음식이 ‘부각’이라는 이름으로 불린다는 걸 안 것은 십 년이 채 되지 않는다. ‘부각’은 대체로 ‘식물성 식품에 찹쌀풀을 발라서 말려두었다가 필요할 때 기름에 튀겨 먹는 음식’으로 .. 2019. 12. 19.
‘가지’, 맛있고 몸에 좋다! 나는 가지로 만든 반찬을 즐겨 먹는다. 삶아서 무친 가지나물은 물론이려니와 가지 챗국도 훌륭한 반찬이다. 가지는 적당한 크기로 썰어 볶아도 좋고, 길쭉하게 잘라서 말려두었다가 비빔밥의 재료로 써도 요긴하다. 밀가루를 입혀 지져낸 가지전의 풍미도 훌륭하다. 요즘처럼 시장에 가지가 나오기 시작하면 아내는 즐겨 이런 반찬을 상에 올린다. 밥상에 오르는 보랏빛 채소 ‘가지’ 돌아가신 내 할머니께서도 가지나물을 즐기셨다. 연세 드시면서 무른 음식을 좋아하실 수밖에 없었던 탓이었을까. 할머니 상에는 유독 가지나물이 자주 올랐는데, 나는 익혀져 변색한 보랏빛, 그 거무죽죽한 빛깔에다 뭉크러져 흐물흐물한 열매 살[과육(果肉)] 때문에 가지를 먹기를 한참 동안 꺼렸다. 그러나 자라면서 가지 맛을 알게 되면서 그것과 이내.. 2019. 9. 20.
박과 박나물, 혹은 유전하는 미각 아내가 장모님 농사일을 거들어 드리고 오면서 박 몇 덩이를 가져왔다. 김치냉장고 위에 얹어놓은 박 두 덩이가 소담스럽다. 흔히들 맵시가 얌전한 사람을 일러 ‘깎아놓은 밤송이’ 같다고 하는데, 싱싱한 꼭지를 세우고 처연하게 서 있는 박의 모습은 더하지도 덜하지도 않은 그것이다. “깎아놓은 밤송이 같다더니…….” “그렇죠. 너무 사랑스러워서 칼을 대기가 망설여진다니까…….” ‘초가지붕 위의 박’은 이제 옛말 우리 어릴 적에는 박은 초가집 지붕마다 탐스럽게 익어가던 열매였다. 박속은 나물로 먹고 속을 파내고 삶은 박으로 바가지를 만들어 썼다. 따로 재배할 땅이 필요하지도 않았고, 심어서 지붕 위로 줄기를 올려두면 저절로 자랐다. 나물로 먹을 수 있는 데다 생활에 필요한 바가지로 쓸 수도 있으니 일거양득이 따로.. 2019. 8. 3.
커피, 나의 호사스러운(!) 기호 생활 어떤 사람에게는 일상이 다른 어떤 이에게는 호사나 사치일 수 있다. 빵이 그리운 사람에게 신문이나 음악이 그립다는 사람의 사유세계를 설명하는 일은 쉽지 않다. 인간은 저마다 자기 삶의 범주와 영역 안에서 사고하기 때문이다. 생태주의자의 까칠한 선택을, 생존을 위해 싸우는 민중주의자가 이해하기는 쉽지 않다. 한쪽에서 생존의 문제가 다른 쪽에서는 올바른 먹을거리를 위한 선택이 되는 까닭이다. 어떤 사람은 좋은 음악을 듣기 위해 스피커에 수백만 원을 기꺼이 투자하고 또 어떤 사람은 승용차 ‘튜닝’에다 수백만 원을 버리기도 한다. 국외자의 눈으로 보면 어처구니없는 낭비지만 당사자에겐 이는 최고, 최선의 선택일 수 있는 것이다. 생활양식이 계급의 차이를 일정하게 반영하는 시대가 되었다. 주거 형태에 따라, 책을 .. 2019. 7. 21.
도시락 반찬 변천 약사(略史) 요즘 아이들은 학교에 ‘도시락’을 싸 온 경험이 없다. 초등학교에서 급식이 시작된 것은 1997년이고, 늦어도 99년부터 중고등학교에서도 급식이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단지 소풍(이젠 이것도 ‘체험학습’이라고 부른다.)을 가면서 도시락을 구경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학교 급식은 어머니들을 도시락 스트레스로부터 해방했지만, 아이들은 정해진 시간에 식당에서 ‘뜨신 밥’을 먹게 된 대신 이른바 오래된 형식의 ‘밥상 공동체’로부터 멀어졌다. 저마다 다른 반찬을 나누며(때로는 빼앗아 먹기도 하며), 점심시간을 앞당겨(?) 도시락을 비우던 추억 따위는 아이들의 사전에 없는 것이다. 6·70년대 학창시절, 도시락의 추억 소풍을 가면서 도시락을 가져간다고 하지만, 그 도시락은 김밥 일색이니 굳이 도시락이라고 부를.. 2019. 7. 19.
여름철엔 달고 맛있는 참외가 좋다! “자신이 어떤 과일을 좋아해 즐겨 먹는지를 깨닫게 된 것은 근년의 일이다.”라고 하면 못 믿겠다고 의아해할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자신도 믿기 어렵지만, 이는 특정한 과일에 대한 취향을 스스로 확인할 수 있을 만큼 일상에서 과일을 상복(常服)하지 못해서가 아닌가 싶다. 어린 시절의 귀한 과일들 가장 흔한 과일인 사과만 해도 그걸 일상에서 즐길 수 있게 된 것은 서른이 넘어 밥벌이하게 되면서였다. 어린 시절엔 사과도 귀하디귀한 과일이었다. 여느 날에는 구경도 못 할 그 과일은 제사상이나 차례상에 올라갔다가 내려올 때쯤에야 겨우 맛볼 수 있었다. 귤을 처음 먹어본 게 고등학교 시절 같으니 더 말할 게 없다. 요즘에야 흔해 빠진 과일이지만 그 시절엔 왜 그게 그리 귀했는지. 철 따라 나는 과일도 마찬가지다.. 2019. 6. 26.
공정무역, ‘아름다운 커피’ 이야기 커피를 처음 마신 게 언제였던가 기억나지 않는다. 아마 고등학교에 다니던 때였을 터이다. 그냥 ‘이런 맛이구나!’ 하는 정도에서 그 묘한 빛깔의 음료를 들이켰던 것 같다. 당시만 해도 커피는 서민들의 일상에서 멀리 떨어져 있었던 까닭이다. ‘커피를 즐기는 것’이 마치 중산층들의 품위 있는 삶의 징표처럼 이해되던 때였으니 말이다. 자판기 커피는 물론 없었고, 여유가 있었던 일반 가정에서는 즉석(인스턴트)커피를 ‘접대용’으로 마련하고 있었던 것 같다. 다 먹은 커피 병은 훌륭한 주방 용기로 활용되었고. 나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나서 겨우 다방에 드나들기 시작했는데 커피와는 친해지지 못했다. 좋아서가 아니라 자릿값을 하기 위해 주로 요구르트나 홍차 따위를 시켜 마셨다. 우리나라에 커피가 들어온 건 1882년(.. 2019. 6. 26.
콩나물밥, 한 시대와 세월 어저께 저녁에는 아내가 콩나물밥을 했다. 오랜만이다. 밥을 푸기도 전에 집안에 콩나물의 비린 듯한 담백한 냄새가 확 퍼졌다. 그동안 죽 현미밥만 먹었는데 모처럼 한 메밥이다. 아내가 처가에서 현미라고 찧어온 게 백미에 가까웠다. 그냥 먹기로 했는데 그걸 현미밥이라고 할 수는 없을 터이다. 글쎄, 콩나물밥에 어떤 역사적 유래가 있는지 모르겠다. 특별히 양식을 아끼거나 밥의 양을 늘리고자 한 거로 보이지는 않는다. 인터넷에서 검색을 해 봐도 구체적 자료가 눈에 띄지 않는다. ‘디지털 부천문화대전’이란 사이트에서는 ‘경기도 부천지역의 향토음식’이라고 소개하고 있는데 글쎄, 콩나물밥이 어디 부천만의 음식이랴! 가난한 살림 탓에 생겨난 음식이 아니라면 이는 '별식'이겠다. 어린 시절에 우리 집에서도 콩나물밥을 즐.. 2019. 5. 3.
갱죽(羹粥), 한 시절의 추억을 들면서 지난 주말이었다. 공연히 그게 당겨서 나는 아내에게 갱죽을 끓여 달라고 부탁했다. 아내는 ‘뜬금없이, 웬?’ 하는 표정이었지만, 늘 하던 대로 죽을 끓여냈다. ‘갱죽’은 표준국어대사전에 ‘시래기 따위의 채소류를 넣고 멀겋게 끓인 죽’으로 올라 있다. 소리가 주는 느낌이 아주 토속적이어서 ‘고장 말’인가 싶지만 천만에 국 ‘갱(羹)’자에다 죽 ‘죽(粥)’를 쓴 표준말이다. ‘갱(羹)’은 무와 다시마 따위를 넣고 끓인 제사에 쓰는 국()이니, 갱죽은 거기다 식은밥을 넣은 국인 셈이다. 인터넷에 검색했더니 ‘위키백과’에서는 내 고향인 ‘경상북도 칠곡군의 향토음식’이라고 소개하고 있다. 위키백과에 그런 소개가 올라간 것은 미루어 짐작하건대 칠곡군과 경북과학대학 향토문화재연구소에서 1999년에 발간한 《칠곡군의 .. 2019. 4. 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