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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바람과 먼지의 세상, 그 길 위에 서서

산수유8

금오산 봄 나들이 구미에 옮아오고 해가 바뀌었다. 그러나 아직 우리 가족은 금오산(976m)에 오르지 못했다. 지난해에는 주말마다 이런저런 일이 생겨 짬이 나지 않았다. 무엇보다도 무릎이 시원찮아서 무리해선 안 된다는 생각이 앞섰고, 어차피 근처를 떠날 일도 없을 터, 서두를 까닭이 없다고 여겼던 것이다. 지난여름에 가족들과 산책을 겸해서 채미정(菜薇亭)을 둘러보았고 가을에도 잠깐 들러 금오지 주변을 거닐었던 기억이 있다. 자라면서 먼빛으로 늘 바라보았던 산이지만 나는 아직 거기 오른 적이 없다. 아내는 케이블카라도 타 보자고 했지만, 나는 금오산을 그렇게 만나고 싶지는 않았다. 어제 아침부터 서둘러 금오산을 향한 것은 금오산에 당도한 봄빛을 만나고 싶어서였다. 교정의 홍매화를 찍다가 부근에 매화 군락이 어디 없느냐고 물.. 2020. 3. 26.
산수유와 생강나무 짧은 밑천은 어디서건 드러나기 마련이다. 아무리 감추려 해도 이 드러나는 것과 다른 내용이면서 같은 이치이다. 오래전에 쓴 글에서 ‘수욕정이풍부지(樹欲靜而風不止) 자욕양이친부대(子欲養而親不待)’라는 글귀를 인용하면서 그 출전이 라고 주절대었다가 이내 “논어에는 그런 글귀는 없다”는 지적을 받고야 말았다. 황급히 찾아보니 이 맞다. 대체로 이런 경우, 교훈은 두 가지다. 내 게 아닌 걸 내 것인 것처럼 꾸미는 건 금방 드러나기 마련이라는 게 하나요, 인터넷에 떠도는 지식 나부랭이도 별로 믿을 건 못 된다는 것이 나머지다. 이번에 또 실수했다. ‘봄날, 어떤 하루’에서 학교 뒷산에서 핀 산수유 얘기를 했었다. 무언가 켕기는 구석이 있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친구 하나가 전자우편을 보내 ‘그거 생강나무 같다’고.. 2020. 3. 23.
거기 ‘은빛 머리 고승’들, 무더기로 살고 있었네 어제는 아내와 함께 봉화를 다녀왔다. ‘병아리 떼 종종종’은 아니지만 ‘봄나들이’다. 바람은 여전히 쌀쌀했지만, 연도의 풍경은 이미 봄을 배고 있었다. 가라앉은 잿빛 풍경은 예와 다르지 않다. 그러나 햇볕을 받아 속살을 드러낸 흙빛과 막 물이 오른 듯 온기를 머금은 나무가 어우러진 빛 속에 이미 봄은 성큼 와 있는 것이다. 목적지는 봉화의 닭실마을. 도암정(陶巖亭)을 거쳐 청암정(靑巖亭), 석천정사(石泉精舍)를 돌아오리라고 나선 길이었다. 시간 여유가 있으면 법전이나 춘양의 정자들도 찾아보겠다고 생각했지만, 그건 아무래도 좋은 것. 풍경이 좋으면 거기 퍼질러 앉아서 보내리라 하고 나선, 단출하고 가벼운 나들이였다. 닭실마을의 충재 종택 마당에서 이제 막 봉오리가 벙글기 시작한 산수유를 만났다. 남도의 봄.. 2020. 3. 20.
다시, 겨울에서 봄으로 겨울에서 봄으로 지난겨울은 춥고 길었다. 겨울에 혹독한 추위라고 할 만한 날이 거의 없는 우리 고장에도 영하 10도 아래로 내려가는 일이 거듭되었으니 말이다. 산과 면한 뒤 베란다에 결로(結露)가 이어지더니 그예 여러 차례 얼기도 했고 보일러 배관이 얼어붙는 사태(!)도 있었다. 엔간한 추위면 꾸준히 산에 올랐던 지지난 겨울과 달리 지난겨울에는 산과 꽤 멀어졌다. 급한 오르막과 내리막을 다니는 게 무릎과 넓적다리관절에 주는 부담 때문이기도 했지만, 산행이 뜸해져 버린 것은 결국 추위 때문이었다. 평탄한 길 위주의 새 등산로를 찾아내고도 여전히 길을 나서는 게 쉽지 않았다. 그러고 보면 길과 추위 때문이라고 변명하는 것도 그리 솔직한 태도는 아닐지도 모르겠다. 사실은 부실해진 몸이 그걸 내치고 있었기 때문.. 2020. 3. 17.
‘봄의 완성’도 우리의 ‘몫’입니다 ‘그 없는’ 약속의 봄이 오고 있습니다 2017년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을 기다리면서 쓴 글 몇 편을 잇는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2016년 12월 9일 국회에서 ㅌ탄핵소추되었고, 2017년 3월 10일 헌법재판소에서는 재판관이 전원일치로 대통령 박근혜 탄.. qq9447.tistory.com 2. ‘그 없는 봄’도 축복입니다 그예 ‘박근혜 없는 봄’이 왔습니다. 안방에서 텔레비전을 시청하다가 헌법재판소장 대행 이정미 헌법재판관의, 감정이 실리지 않은 담담한 어조의 주문 선고를 듣는 순간, 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습니다. 같은 시간에 기쁨과 감격으로 겨워하며 환호한 이들은 전국에 또 얼마였겠습니까. 박근혜 퇴진을 요구하는 촛불이 타오른 지 133일 만이었습니다. 박근혜가 파면됨으로써 그동안 열아홉 차.. 2020. 3. 16.
‘그 없는’ 약속의 봄이 오고 있습니다 2017년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을 기다리면서 쓴 글 몇 편을 잇는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2016년 12월 9일 국회에서 ㅌ탄핵소추되었고, 2017년 3월 10일 헌법재판소에서는 재판관이 전원일치로 대통령 박근혜 탄핵 소추안을 인용함으로써 박근혜는 대통령직에서 파면되었다. 이른바 촛불혁명은 무르익기 시작한 것이다. 1. ‘그 없는’ 약속의 봄이 오고 있습니다 블로그에 ‘Q씨에게’라는 꼭지를 만든 건 2011년 가을입니다. 여는 글을 써 올리고 이듬해 벽두에 한 편을 더 보태고 나서는 이 꼭지를 잊고 지냈습니다. 그러고 5년, 고향 가까이 학교를 옮겼고 지난해엔 아이들 곁을 아주 떠나왔습니다. ‘퇴직일기’를 닫고 ‘Q씨에게’, ‘쑥골에서 부치는 편지’로 학교를 떠난 뒤엔 ‘퇴직일기’라는 이름의 꼭지에다.. 2020. 3. 5.
‘푸른 바위 정자’에서 산수유 벙그는 봄을 만나다 [정자를 찾아서] ② 봉화군 봉화읍 유곡리 ‘청암정(靑巖亭)’ 올겨울은 유난히 추웠다. 연일 계속되는 영하의 날씨, 내복은 물론이거니와 양말도 두 켤레나 껴 신고 나는 지난 1월을 넘겼다. 해마다 겪는 겨울이건만 여전히 멀기만 한 봄을 아련하게 기다린 것은 처음이다. ‘겨울이 오면 봄이 멀지 않으리’라고 노래한 셸리(P. B. Shelly)의 시구가 싸아하게 다가왔다. ‘마음의 여정’, 혹은 ‘기억의 복기’ 청암정을 찾아 봉화로 가는 길은 ‘마음의 여정’이다. 새로 길을 떠나는 대신 나는 컴퓨터에 갈무리된 2010년의 봄을 불러냈다. 거기, 지난해 3월에 아내와 함께 서둘러 다녀온 닭실마을이 막 기지개를 켜고 있었다. 산수유 꽃눈에 내리던 이른 봄의 햇살과 석천계곡에 피어나던 버들개지……. 나는 그저 사.. 2019. 9. 26.
[사진] 의성 화전리, 산수유 꽃그늘이 지키는 마을 지난 26일부터 열리고 있는 ‘의성 산수유 축제’(4월 3일까지)에 다녀왔다. 에 실린 이웃 블로거의 기사를 읽다가 문득 나는 내가 언제든 길을 떠날 수 있게 되었다는 걸 깨달았고 새로 시작되는 주일의 첫날에 길을 떠났던 것이다. '평일 나들이'의 소회 지난 월요일(3. 21.) 날씨는 화창했다. 기침이 낫지 않아 찬바람을 피해야 하는 아내 대신 나는 인근에 사는 친구 ‘미나리’에게 길동무를 청했다. 도중에 의성 탑리에 들렀다가 친구 ‘세한도’도 일행이 되었다. 남들은 노곤한 오후 수업에 여념이 없을 시간에 우리 세 퇴직자는 좀 심드렁한 모습으로 사곡면 화전리에 닿았다. 심드렁하다고 말한 것은 모두에게 화전리는 여러 번 드나든 동네였기 때문이다. 평일 나들이를 하면 한산할 거라는 예측은 늘 빗나가기 쉽다.. 2019. 3. 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