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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바람과 먼지의 세상, 그 길 위에 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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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마트폰으로 담은 산길의 봄 “사진은 비록 똑딱일지언정 전용 사진기로 찍어야 한다.” 디지털카메라로 사진을 찍어온 지 10년이 넘었는데도 여전히 아마추어를 면하지 못하고 있으면서도 내가 줄곧 외쳐온 구호다. 똑딱이에서 시작해서 이른바 디에스엘알(DSLR) 중급기를 만지고 있는 지금까지 나는 ‘좋은 사진’(‘마음에 드는 사진’이라는 표현이 더 정확할지 모르겠다.)을 위해서 길을 떠날 때 카메라를 지녀야 하는 성가심과 고역을 감수해 온 것이다. 2G폰 시절부터 스마트폰을 쓰는 지금까지 휴대전화의 카메라 기능을 이용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제한적이었다. 부득이할 때에 보조 촬영의 기능으로만 그걸 써 왔다는 얘기다. 함부로 카메라를 들이대기 어려운 장례식에서나 사진을 찍어야 하는데 준비되지 않은 상황에서만 부득이 휴대전.. 2021. 4. 6.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 산동네의 봄 안동시 태화동 ‘말구리길’은 안동에서 가장 먼저 봄이 오는 곳이다. 물론 그것은 전적으로 내 생각일 뿐이다. 몇 해 전, 말구리재에 이어진 야산을 거닐다가 그해 처음으로 생강나무꽃과 매화를 만난 곳이 말구리길이기 때문이다. 말구리길은 태화동에서 송현동으로 넘어가는 고개인 ‘말구리재’ 이쪽의 야산 아랫동네를 일컫는다. 말구리길은 지금까지 사용하고 있는 지번 위주의 주소체계를 도로이름과 건물번호를 부여하여 관리하는 새로운 주소체계를 따라 붙인 이름이다. ‘말구리’라는 지명은 전국 곳곳에 흩어져 있는데 다른 데는 어떤지 모르지만 태화동 말구리는 ‘말이 굴렀다’는 뜻을 담고 있다. ‘말’에 ‘구르다’는 동사의 어간(‘구르-’)에 명사를 만들어주는 접사 ‘-이’가 붙어서 이루어진 말이 ‘말구리’가 된 듯하다. 후.. 2021. 4. 5.
숨어 있는 봄 일요일의 늦은 오후, 네 시가 넘어서 사진기를 들고 봄을 찾아 나섰다. 최남선이 수필 ‘심춘순례(尋春巡禮)’에서 쓴 표현을 빌리면 ‘심춘’이다. ‘심춘’은 일간지 ‘심인(尋人)’ 광고에서와 마찬가지로 ‘찾을 심(尋)’ 자를 썼으니 직역하면 ‘봄 찾기’다. 최남선의 수필은 지리산을 중심으로 한 국토를 돈 기록이니 ‘순례’가 제격이지만, 동네 뒷산으로 꽃소식을 찾아 나선 길을 ‘봄 찾기’라 쓰는 것은 좀 무겁기는 하다. 그러나 봄이 와도 한참 전에 와 있어야 할 시절인데 유난히 늦은 꽃소식에 좀이 쑤셔 집을 나섰으니 ‘봄 찾기’가 지나치지는 않겠다. 인근 대구에는 개나리가 만개했다는데 안동의 봄은 여전히 을씨년스럽다. 기온도 기온이려니와 사방의 빛깔은 아직도 우중충한 잿빛이다. 반짝하는 봄기운에 서둘러 피기.. 2021. 3. 28.
봄, 혹은 희망 봄이 오고 있다. 그러나 이 진술은 조금은 뜬금없을 수도 있겠다. 이미 봄은 소리 소문도 없이 와 있으니 말이다. 겨우내 썰렁했던 아파트 담장 위에, 드러난 살갗을 간질이며 매끄럽게 휘돌아 지나가는 바람의 속살에, 숙취로 어지러운 아침 식탁에, 골목에 뛰어노는 아이들의 재잘거림 속에 이미 봄은 깊숙이 들어와 있는 것이다. 며칠 전 아내와 함께 들른 조각공원에서 찍어 온 강변 풍경을 실눈을 뜨고 바라보고 있자면, 그 풍경 속을 스쳐 간 실바람, 미루나무 그늘에 쌓이던 햇볕의 온기까지 뚜렷하게 느껴진다. 넘치는 햇빛 때문에 아련한 푸른빛 기운과 함께 시나브로 다가오는 건너편 산, 잘디잘게 떨고 있는 비췻빛 물결 등이 어울려 연출하는 이 풍경은 이미 봄이 우리 가슴속까지 와 있음을 증명하고도 남음이 있다. 사.. 2021. 3. 27.
어떤 봄날에는… 가끔씩 어떤 봄날에는 김광규 시인처럼 그러고 싶다. 풀무질로 이글거리는 불 속에 시우쇠처럼 나를 달구고 모루 위에서 벼리고 숫돌에 갈아 시퍼런 무쇠낫으로 바꾸고 싶다 2008. 3. 16. 낮달 2021. 3. 16.
춘신(春信), 봄소식을 기다리며 좀 무심하게 2011학년도를 시작했다. 담임을 맡지 않게 되면서 3층 1학년 교무실에서 1층의 본 교무실로 내려왔다. 학년 교무실에 비기면 두 배는 넘을 널따란 교무실은 지난해 수천만 원을 들인 인테리어 공사로 쾌적해졌다. 사방 내벽을 원목으로 처리해서인지 숨쉬기가 훨씬 편해졌다는 걸 느낀다. 배정받은 자리도 마음에 든다. 교감 옆자린데, 지난해 학년을 같이 한 동료들 셋이 옹기종기 모였다. 왼편으로 개수대와 정수기, 출입문 등이 모두 가깝고, 뒤쪽의 수납공간도 마음에 든다. 창을 등지고 앉으니 실내가 한눈에 들어와 시원하다. 드나드는 아이들로 부산한 학년 교무실과 같은 활기는 없지만, ‘절간’ 같은 고즈넉한 분위기도 좋다. 수업 시수는 지난해와 같은데 보충 시간이 줄면서 네 시쯤에 수업이 끝나는 날이 .. 2021. 3. 13.
봄, 혹은 심드렁함 남부라곤 하지만 안동은 경북 북부 지역이다. 봄이 더디다는 뜻이다. 4월에도 이 지방 사람들은 겨울옷을 벗지 못한다. 연일 신문 방송으로 전해지는 꽃소식도 남의 이야기다. 섬진강 근처에는 매화와 산수유가 제철이라던가. 그러나 주변은 온통 잿빛일 뿐이다. 빈 시간에 잠깐 교사 뒤편의 산기슭을 다녀왔다. 옥련지(玉蓮池) 연못가의 수달래는 아직 꽃눈조차 보이지 않고, 남녘에는 한창이라는 매화가 겨우 꽃눈을 내밀고 있다. 사진기를 들고 상기도 쌀쌀한 산 중턱을 기웃거렸다. 어디선가라도 푸른빛의, 새싹 새잎을 만나고 싶었다. 산 중턱의 낙엽 더미에서 새잎을 만났다. 이제 겨우 새끼손톱만큼 자라고 있는 돌나물이었다. 안으로 말린 도톰한 잎의 질감이 싱그럽게 마음에 닿아왔다. 3월 중순, 그러나 3월의 햇볕은 하루가.. 2021. 3. 11.
‘자유인’으로 첫발 내딛기 어쨌든 2월 한 달은 곤혹스러운 시간이었다. 마음의 정리가 필요하다는 생각과는 무관하게 하는 일마다 두서가 없어서 몸과 마음이 두루 어정쩡하고 애매했다. 딱 부러지게 어떻다고 하지도 그렇지 않다고 부정하지도 못하는 요령부득의 시간이 속절없었다. 3월이 눈앞에 다가오자, 나는 새날을 맞을 준비를 하기로 했다. 마지막 일요일 오후엔 머리를 깎았고 다음날 아침엔 공중목욕탕을 다녀왔다. 해마다 새 학년도를 앞두고 만날 아이들을 그리면서 준비하던 일상을 나는 자유인으로 맞이할 날에 고스란히 되풀이한 것이다. 금오산에는 아직 봄이 오지 않았다 마지막 토요일엔 금오산 어귀를 찾았다. 얼음 사이에서 봄을 부르는 꽃, 흔히들 복수초(福壽草)라 부르는 얼음새꽃을 찾아서였다. 이 꽃을 검색하다가 경북 환경연수원 화단에 피었.. 2021. 3. 4.
‘봄’은 ‘밥’이고 ‘민주주의’다 유난히 지난겨울은 추웠다. 겨울은 겨울답게 추워야 하는 게 맞지만 고단하게 살아가는 헐벗은 사람들을 생각하면 지난겨울 추위는 혹독했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영상의 기온을 회복하긴 했지만, 여전히 바깥바람은 차고 맵다. 입춘 지나 어저께가 우수, 그래도 절기는 아는지 어느새 한파는 고즈넉이 물러나고 있는 낌새다. 아직 봄을 느끼기에는 이르다고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어느새 우리는 ‘지난겨울’을 이야기하고 있다. 겨울의 막바지에 서 있지만 우리는 정작 이날을 겨울로 느끼지 않으며, 우리가 서둘러 온 이른 봄 가운데 있다고 느끼는 것이다. 계절 가운데 ‘봄’만큼 다양한 비유나 상징으로 쓰이는 게 또 있을까. 일찍이 이 땅에서 ‘봄’은 빛과 희망이었고, 해방과 독립이었다. 상화(尙火, 이상화)가 ‘빼앗긴 들에.. 2021. 2. 21.
우리 반 고추 농사(Ⅰ) 신록(新綠), 고추 심기 4월도 막바지다. 중간고사가 가까워지면서 아이들은 일제히 ‘열공’ 모드로 들어갔고, 며칠 동안 출제 때문에 끙끙대다 다시 맞는 날들이 어쩐지 수상하고 어수선하다. 한 학기가 ‘꺾여서’인지 다소 숨 가쁘게 달려온 두 달간의 팍팍한 시간이 불현듯 막연해진다. 여전히 갈 길이 멀다는 생각에 등허리가 서늘해지는 기분도 없지 않다. 그래서인가, 블로그를 살피고 돌보는 일도 시들하고 심드렁해졌다. 모두들 바쁜 모양인지 오블도 대체로 그런 분위기로 느껴진다. 이웃들 집을 한 바퀴 도는 일도 뜨악해지고, 퇴근해서는 아예 컴퓨터 근방에도 가지 않기도 했다. 학교 주변에서 만나는 신록이 그나마 변치 않는 감격을 선사해 준다. 학교로 오르는 길고 가파른 언덕길 오른편은 조그만 숲인데 이 숲은 시방 .. 2020. 6. 17.
‘버들피리(호드기)’의 계절 봄은 물가에 먼저 온다. 마지막 살얼음 아래로 맑고 청아한 목소리로 노래하는 냇물, 갯가에 핀 버들개지에 머무는 아직은 차가운 바람, 물가에서부터 파릇파릇 살아나는 풀잎들……. 당연히 시내 곁에 선 갯버들의 미끈한 줄기에도 물이 오른다. 그 물오른 갯버들 가지를 꺾어 만드는 게 버들피리다. 버들피리를 ‘호드기’라고 부르는 지방이 많은 듯한데, 우리 고향을 포함한 경상북도 남부지방에선 이를 ‘날라리’라고 불렀다. 봄철에 물오른 버드나무 가지의 껍질을 고루 비틀어 뽑은 껍질로 만든 피리다. 어릴 적, 봄이 되면 아이들과 함께 냇가에선 버들피리를 만들어 불고, 산에서는 참꽃을 따서 먹으며 놀았다. 들과 산이 모두 아이들의 훌륭한 놀이터였던 시절이다. 버들피리 만드는 법을 누구에게 배웠는지는 모르겠다. 어느 날.. 2020. 4. 9.
길고양이처럼 찾아온 봄 정말, 어떤 이의 표현대로 봄은 마치 ‘길고양이처럼 찾아온’ 느낌이다. 봄인가 싶다가 꽃샘추위가 이어지곤 했고 지난 금요일만 해도 본격 꽃소식은 한 주일은 더 기다려야 할 것 같았다. 일교차가 컸던 탓일 것이다. 한낮에는 겉옷을 벗기려 들던 날씨는 저녁만 되면 표변하여 창문을 꼭꼭 여미게 했다. 토요일 오전에 아내와 함께 아파트 앞산에 올랐는데, 산길 주변 곳곳에 참꽃(진달래)이 무리 지어 피어 있었다. 출근하는 숲길에선 보기 힘든 풍경이어서 나는 잠깐 헷갈렸다. 일요일 오후에 돌아보니 아파트 주차장 어귀에 벚꽃이 활짝 피어 있었다. 그 아래 동백꽃도 화사했고. 사진기를 들고 나갔더니 화단의 백목련은 이미 거의 끝물이다. 아이들 놀이터 뒤편에 못 보던 매화가 하얀 꽃을 피우고 섰다. 원래부터 거기 있었던.. 2020. 3. 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