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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바람과 먼지의 세상, 그 길 위에 서서

이 풍진 세상에 /퇴직일기36

노화, 그 우울한 길목에서(3) ‘현명하게 늙어가기’는 과욕, ‘면(免) 노추(老醜)’ 도 쉽지 않다 “마흔이 되면 불혹(不惑)이라더니, 어떻게 나는 이런저런 유혹에 자꾸 마음이 기우는지 모르겠어.” 마흔 살을 갓 넘겼을 무렵, 내가 벗들에게 건넨 푸념이다. 미혹되지 않음은 공자 같은 성인의 이야기일 수만은 없을 터인데도 이런저런 욕망을 내려놓기가 버거워서였다. 그러나 한가하게 그걸 한탄하고 있을 여유가 없었던 나는 그러구러 그 시기를 넘겼다. 공자의 불혹, 나는 끊임없이 유혹에 흔들렸다 인간의 수명을 팔십으로 가정하면 마흔은 그 한가운데다. 2, 30대 열정의 시기를 지나와 ‘이제는 돌아와 거울 앞에 선’(서정주 ‘국화 옆에서’) 나이인데, 이 마흔을 바라보는 시선은 동서양이 비슷하다. 링컨이 남긴 명언, “마흔 살이 되면 인간은 자.. 2023. 2. 1.
‘노화’, 그 우울한 길목에서(2) ‘신체적 변화’와 ‘죽음’의 인식 ‘늙는다’라고 느끼는 것과 그걸 입 밖에 내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예전 같으면 환갑을 넘기면 노인으로 불리었지만, 요즘엔 환갑은 여느 생일과 다르지 않아 기념일에도 넣지도 않는 시대가 되었다. 그래서 몸은 노화 현상을 깨달아도 그걸 화제로 삼는 걸 꺼리게 되는 것이다. 어쩐지 ‘노화’를 이야기하는 게 민망해서 ‘나이 들면서’ 같은 중립적 표현을 쓰게 되는 이유도 거기 있다. 명확한 자각 증성으로 다가오는 ‘노화’ 내가 처음으로 ‘노화’를 인식한 게 쉰으로 접어들던 2006년도였던 것 같다. 그해 신년 벽두에 ‘마음도 나이를 먹는다’라는 글을 쓴 것이다. 나는 내리막을 내려가거나 쉽지 않은 틈새의 개울 같은 헛방을 지날 때 뛰어넘는 대신 저도 몰래 다른 경로를 찾으려.. 2023. 1. 14.
노화, 그 우울한 길목에서(1) 잔병과 약 치레로 지새는 나날들 나는 올해, 우리 나이로 예순일곱이 되었다. 내년부터 시행되는 ‘만 나이’로 치면 예순여섯이다. 이른바 경로 우대는 지난해부터 받았는데, 그런 대우를 받는 게 얼마간 민망하면서도 한편으로 생광스럽기도 했다. 말하자면 나는 내 생물학적 노화의 혜택 앞에서 다소 이중적인 태도를 보인 거였다. 자신이 아닌, 타인의 시선으로 확인되는 나의 ‘노화’ 나는 노화를 받아들이긴 해도 자신을 ‘노인’이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않았다. 그러나 뜻밖의 장소에서 ‘어르신’이나 ‘할아버지’ 따위를 불릴 때 씁쓸해지는 기분으로 타인의 시선에 잡힌 나의 ‘노화’를 확인하곤 했다. 내가 아무리 부인해도 내가 ‘경로 우대’라는 국가의 부조를 받고 있고, 이웃들로부터 ‘노인’으로 이해되고 있음은 사실인 까닭.. 2022. 12. 19.
평생 꺼려 쓰지 않던 모자, ‘방한모’를 마련하다 세월, 마침내 ‘방한모’를 마련하다 모자 쓰기를 탐탁잖게 여긴 건 어릴 적부터다. 아마, 모자를 쓴 제 모습이 낯설고 생뚱맞아 보여서였을 것이다. 외진 시골이어서 모자래야 운동회 때 청군과 백군으로 나눠 쓰는 운동모가 다였으니 그나마 다행이었다. 모자를 꺼린 이유 가운데에는 여느 사람과 비겨 큰 머리도 한몫했다. 다행히 ‘대갈장군’이나, ‘대두’니 하는 별명을 얻을 만큼은 아니었다. 도회의 중학교에 진학하면서 교복과 교모를 갖추어 입어야 했다. 저학년일 때는 무심히 모자를 썼는데, 3학년이 되자 모자가 거추장스러워지기 시작했다. 고교에 진학한 뒤엔 모자를 가방에 넣고 다니다가, 교문에 들어서면서 꺼내 쓰곤 했다. 어쨌거나 제 모습에 민감했던 사춘기였으니 더 말할 게 없다. 학생모에서 군모까지, 모자를 피.. 2022. 12. 13.
‘나라에서 주는 상’ 받을 뻔하다 말다 원치 않았던 ‘퇴직 교원 표창’, 결국 무산되다 4월 중순인가 교무부장으로부터 ‘퇴직 교원 표창’ 때문에 그러는데 학교로 잠깐 나올 수 있는가 하고 연락이 왔다. “그러고 싶지 않다. 표창받을 일이 뭐 있겠냐”라고 얼버무렸는데 한 달쯤 후에 다시 친분이 있는 후배 교사한테 다시 연락이 왔다. 역시 같은 일(표창 상신) 때문에 한 연락이다. 자기들이 해야 하지만, 사실 관례상 본인에게 부탁드릴 수밖에 없다고 했다. 무슨 말이냐 하면 표창을 올리려면 ‘공적조서’가 필수인데 그걸 직접 써 달라는 얘기였다. 나는 표창 받을 일도 없으니 사양하겠다고 에둘러 말했지만, 후배는 아니라고, 정색하면서 번거롭더라도 하는 게 좋겠다고 해서 그러겠다고 했다. 받아도 그만이고 안 받아도 상관없는 일인데, 공연히 ‘거부’한다고.. 2022. 6. 3.
나는 매일 ‘건넌방’으로 출근한다 ‘퇴직의 일상’을 견디는 법 처음으로, 더 이상 출근하지 않아도 된다는 걸 확인하는 순간의 기분을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 지난 3월 1일, 지역 시민단체를 따라간 답사의 뒤풀이 자리에서였다. 문득 내일 출근할 일이 없다는 걸 깨달으면서 나는 마주 앉은 후배 교사에게 으스댔다. 내일 출근해야지? 난 안 해도 된다네. 3월 한 달쯤은 그런 기분이 쏠쏠했다. 일요일에 무리하더라도 월요일 출근을 염려할 일이 없었고, 주중에 과음해도 다음 날을 걱정할 필요가 전혀 없었다. 먼 길을 떠나면서도 시간을 다투지 않아도 되었다. 그게 ‘은퇴자의 여유’였던 것이다. 느슨해지는 ‘시간의 경계’ 그런데 시간이 많다는 것과 시간을 제대로 쓸 줄 안다는 것은 다른 문제다. 시간 여유가 있다는 게 시간관념을 느슨하게 하는 건 .. 2022. 5. 9.
동네 도서관에 등록하다 동네 도서관에 등록해 대출증을 만들다 퇴직하겠다고 하면 주변 사람들이 보여주는 반응은 대체로 비슷했다. 물론 그 반응은 순전히 지인에 대한 염려와 선의의 표현이다. 거기엔 정년이 남았는데 굳이 서둘러 나갈 이유가 있는가, 나가서 후회하지 않을 자신이 있느냐는 걱정이 은근히 담겨 있다. “무슨 일을 할 건데?” “무슨 다른 계획이 있는가?” “엔간하면 정년까지 가지, 왜 나가려는가?” 내 대답도 정해져 있다. 충분히 있음 직한 질문이고 그게 염려에서 나온 거라는 걸 알면서도 은근히 서운한 느낌이 있다. 나는 속으론 부아를 낸다. 아이들하고 씨름하면서 50분 수업을 하루에 네댓 시간씩 하는 게 얼마만 한 중노동인지 알기나 해? “할 일은 쌨어. 돈이 모자라는 게 문제지, 노는 건 석 달 열흘도 쉬지 않고 놀.. 2022. 3. 9.
텃밭을 걷으며 버려진 밭에서 자란 마지막 열매를 거두다 텃밭 이야기를 한 게 지난 7월 초순이다. 게으름을 피우며 간신히 밭을 가꾸어 가면서도 그 손바닥만 한 텃밭이 우리에게 주는 게 어찌 고추나 가지 열매에 그치겠냐고 방정깨나 떨었다. 그게 빌미가 되었던가 보았다.[관련 글 : 텃밭 농사, 그걸 기름값으로 환산할 순 없다] 날씨는 끔찍하게 더웠고, 움직이는 게 힘겹던 시기여서 잔뜩 게으름을 피우다가 보름쯤 뒤에 들렀더니 텃밭 작물들은 거의 빈사 상태였다. 고추도 가지도 바짝 말라 쪼그라들고 있었으므로 아내는 탈기를 했다. “그렇게 나 몰라라 하고 내던져 뒀는데 무슨 농사가 되겠우? 올핸 글렀으니 내년에 어째 보든지…….” 물 구경을 못 한 고추는 자라다 만데다 병충해까지 꾀었다. 익은 것과 성한 것들만 따서 거두어 .. 2021. 9. 27.
연식(年式), ‘건강’과 ‘노화’ 사이 노화를 ‘연식’이라 부르듯 인체도 오래 쓰면 낡는다 나는 어버이로부터 비교적 건강한 몸을 물려받았다. 글쎄, 병원에 입원한 게 한창 젊은 시절에 다쳐서 몇 주 동안 입원한 게 고작이니 건강하다고 말해도 지나치지는 않을 터이다. 흔한 고뿔도 콧물과 기침으로 며칠을 버티면 시나브로 낫곤 했고 남들은 곤욕을 치른다는 몸살로도 몸져누워본 적이 없을 정도다. 물론 젊을 때 얘기다. 감기가 쉬 낫지 않는다는 걸 깨달은 건 50대 후반부터였던 듯하다. 그러다가 신종 플루에 걸려서 곤욕을 치른 게 퇴직 무렵이다. 지난해부터 아내와 함께 보건소에서 시행하는 독감 예방주사를 챙겨 맞게 된 것은 내 몸이 예전 같지 않다는 걸 알아서다. 아픈 건 일시적 현상 아닌 ‘노화의 과정’이다 목과 어깨 부위의 통증이 쉬 가시지 않다가.. 2021. 8. 2.
텃밭 농사, 그걸 기름값으로 환산할 순 없다 다시 ‘텃밭’을 가꾸며 어제는 처가 마당에 가꾸어 놓은 텃밭에 다녀왔다. 그제 내린 비로 시퍼렇게 여물어가고 있는 고춧잎과 제법 실해진 고추나 가지는 물론이고, 다닥다닥 다투어 열린 방울토마토를 바라보는 기분이 무척 좋았다. 그저께 산 알루미늄 지지대를 고추와 가지 옆에다 세우고 끈으로 묶어주었다. 밀짚모자를 써도 두 시간 남짓 일하는 동안 쉬지 않고 땀이 흘러내렸지만 그게 별로 싫지 않았다. 고추는 키가 성큼 자라지는 않았지만 들여다보면 열매가 제대로 달렸다. 가지도 줄기가 거의 비스듬히 눕다시피 기울어졌는데도 제법 큰 가지가 열렸으며 순이 얼기설기 얽힌 방울토마토도 빽빽했다. 상추와 쑥갓은 4월 초에 씨를 뿌려두었지만, 텃밭 농사를 제대로 시작한 것은 지난 5월 중순도 넘어서다. 지난해 장모님을 배웅.. 2021. 7. 7.
손가락 연골이 다 닳았다고? 설마! 손가락 통증으로 병원을 찾았더니 꽤 오래, 그러니까 서너 달 이상 괴로웠던 오른손 통증 때문에 늘 가던 동네 정형외과 대신 다른 병원을 찾았다. 아니, 서너 달이 아니다. 지난해 10월에도 어깨 통증과 함께 손이 아파서 병원을 찾았으니 이는 거의 여덟 달째다. [관련 글 : 마음과 무관하게 몸은 ‘쇠’한다] 동네 병원에서도 진료를 한 차례 받았는데, 원장 대신 근무하는 늙수그레한 의사는 관절염일 가능성이 크다면서 약과 물리치료를 처방해 주었다. 물리치료실에서는 나는 두 번째 파라핀 치료를 받았고 나흘 동안 약을 먹었다. 손가락 연골이 다 닳았다? 다소 차도가 있는 듯했지만, 이번에는 다른 병원에 가서(이도 이른바 ‘의료 쇼핑’에 해당하는 걸까?) 제대로 사진도 찍어보자며 몇 날 며칠을 벼른 끝에 시내 쪽.. 2021. 6. 30.
퇴직 동료와 함께한 문경새재 소풍 퇴직 동료와 함께 문경새재 나들이 지난 9일에는 문경새재 소풍을 다녀왔다. 전교조 경북지부가 창립 27주년을 기념하여 베푸는 행사다. 이름하여 ‘은빛 선생님들의 함께하는 소풍’이다. 어느새 퇴직 조합원이 300여 명이 되었는데 이들 가운데 시간이 나는 이들이 모인 것이다. 지역 퇴직자는 선배 한 분에 후배가 서너 명쯤 있었다. 그중 후배 교사 두 사람과 함께 이 행사에 참여했다. 10시 반에 새재 주차장 앞 정자에 모인 이는 모두 서른다섯. 일흔을 훨씬 넘긴 초대 지부장 이영희 선생님을 비롯하여 선배가 열두어 명, 그리고 나머지 후배 교사들이었다. 해직과 복직을 함께한 동료들, 활동가들 외에도 낯선 이들도 몇 분 있었지만 반갑게 인사를 나누었다. 전교조 창립을 함께 한 동료들의 경우는 그동안 나눈 세월이.. 2021. 6. 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