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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바람과 먼지의 세상, 그 길 위에 서서

사랑11

브레히트 ‘독서하는 노동자의 질문’ 베르톨트 브레히트, ‘독서하는 노동자의 질문’ 세상을 움직이는 세 가지 ‘엘(L)’ 자 - 사랑, 자유, 노동 영화 (1992)에는 “세상을 움직이는 세 가지 ‘엘(L)’ 자” 이야기가 나온다. 그것은 각각 ’사랑(Love), ‘자유(Liberty)’, ‘노동(Labor)’이다. 앞의 ‘사랑’과 ‘자유’가 마음의 영역과 가깝다면 ‘노동’은 몸과 이웃한 영역이다. 그것은 인간이 할 수 있는 가장 정직한 형식의 활동이다. 노동을 ‘정신’과 ‘육체’의 영역으로 구분하는 건 일종의 관행처럼 보인다. 몸의 근력을 소비한다는 점에 있어서 그게 어떤 차이가 있겠는가. 그러나 우리는 그런 구분에 익숙하다. 노동은 눈에 보이는 상품 생산을 위한 활동일 뿐이라는 생각을 잘 넘지 못하는 것이다. ‘노동’이라고 하면 내겐 전.. 2023. 5. 2.
노동 2제(題) - 불온한 시대, 불온한 언어 하나 : ‘노동(勞動)’과 ‘근로(勤勞)’ 사이 언어는 기본적으로 시대나 사회를 반영할 수밖에 없다. 그것은 한편으로는 당대의 세계 파악 방식과 밀접히 연관되어 있다. 이 땅 곳곳에 팬 역사와 슬픔의 생채기만큼이나 우리 시대의 말은 숱한 앙금과 그늘로 얼룩져 있는 듯하다. 그 가장 오래되고 시방도 계속되는 원인은 이 땅을 동강 낸 이데올로기다. 정확히 말하면 그것은 공산주의, 이른바 빨갱이 앞에 중무장한 ‘맹목의 반공주의’다. 거의 반세기에 이르는 오랜 독재 정권을 끝내고 세 번째 민간 정부를 맞았지만 여전히 이 땅에는 ‘반공주의’의 망령이 배회하고 있다. 링컨의 게티즈버그 연설로 유명한 ‘government of the people, for the people, by the people’의 ‘peopl.. 2023. 5. 1.
5월, 그 함성으로 5월, 민주주의의 함성을 기억하며 ‘계절의 여왕’이라는 진부한 수사로는 5월을, 그 아픔과 상처 위에 돋아난 새살을 다 말하지 못한다. 쇠귀 선생의 그림과 함께 일별해 보는 5월의 달력에는 아직도 선연한 피의 흔적, 매캐한 최루탄 내음, 그 푸른 하늘에 나부끼던 깃발과 드높던 함성이 생생하게 살아 있다. 벽두인 1일은 ‘메이데이(May Day)’다. 만국 공통의 이 ‘노동절’은 아, 대한민국에서만 ‘근로자의 날’이다. 이날의 역사도 만만찮다. 메이데이는 ‘공산 괴뢰 도당의 선전 도구’라는 이승만의 훈시에 따라 1957년, 3월 10일(대한노총 창립일)로 생일이 바뀐데다 1963년 박정희 정권에 의해 ‘근로자의 날’로 개칭되어 버린 것이다. “만약 그대가 우리를 처형함으로써 노동운동을 쓸어 없앨 수 있다고.. 2022. 5. 1.
어머니, 아버지, 그리고 노인들… 세상의 노인들…, 그리고 어버이 경북 청송군 부남면 중기리 반자골. 북쪽으로는 주왕산, 남쪽으로는 구암산, 동쪽으로는 포항의 내연산이 둘러싸고 있는 깊은 산골 마을. 10여 년 전만 해도 대여섯 집이 모여 살았으나 지금은 이윤우(78) 김남연(74) 노부부 한 쌍만 남아 있습니다. 스물둘에 재 너머 포항 죽장에서 시집온 꽃다운 새색시는 스물여섯 살가운 남편과 살며 딸 셋, 아들 하나를 두었으나 성장해 모두 도회지로 나갔습니다. 그래서 노부부만 남아 5대째 반자골 고향 집을 지키고 있습니다. 힘이 세어 소를 대신해 쟁기를 끄는 게 아닙니다. 소를 키우기에 힘도 들고 경운기가 올라오기에 길이 너무 외져 두 노인네가 옛날식으로 쟁기질을 해 밭을 갑니다. 할머니가 앞에서 끌고 할아버지가 뒤에서 쟁기를 잡지만 지.. 2021. 5. 9.
이장희- 노래여, 삶이여 음악에 대한 갈증을 확인하게 한 특집 방송 ‘세시봉’ 프랑스어로 ‘멋지다’는 뜻의 ‘세시봉(C’est Si Bon)이 시방 상종가다. 정확히 말하면 40여 년 전 ‘세시봉’이란 음악감상실에서 인연을 맺은 왕년의 가수들이 이야기하는 삶과 노래에 대한 대중의 갈채가 뜨겁다는 얘기다. 지난해 추석 연휴의 첫 방송에 이어서 어제 방영된 2회도 대단한 호응을 불러일으킨 듯하다. 텔레비전은 켜져 있으면 보고 꺼져 있으면 굳이 틀지 않는 편이다. 그러니 어떤 프로그램을 보려고 기다리는 경우는 거의 없다. 그러나 어제는 일부러 기다렸다가 ‘세시봉’ 멤버들이 나오는 ‘놀러와’를 시청했다. 딸애는 물론, 명절을 쇠려고 내려온 아들도 함께였다. 추석 연휴 때도 우리는 ‘재방송’을 함께 시청했었다. [관련 글 : 통기타, ‘.. 2021. 2. 8.
세기를 넘는, 젊은 시인과 혁명가의 만남 안도현 시집 문학 시간에 안도현을 가르치면서 방학식 다음 날부터 시작된 보충수업, 어제는 언어영역 문학 문제집에서 안도현의 시 ‘서울로 가는 전봉준’을 배웠다. 같은 쪽에 실린 고은의 ‘머슴 대길이’와 고정희의 ‘우리 동네 구자명 씨’도 같이 배웠다. 새삼스레 ‘가르쳤다’고 하지 않고 ‘배웠다’로 쓰는 까닭은 아이들에게 가르치면서 나는 스스로 배운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문제를 풀기 위한 이 나라 문학 공부는 거기가 거기다. 정형화된 의미와 상징, 주제로 깡총하게 정리된 시를 가르치고 배우는 문학 교실. 어떤 가외의 해석과 의미도 용납하지 않는 교실에서 노래는 화석이 된다. 어떤 작가가 자신의 작품이 교과서에 실리는 것을 거부한 것도 그런 우려에서일 것이다. 그러나 한편으로 그것은 읽는 것만으로 그 뜻을.. 2021. 1. 8.
토란, 토란국, 토란대 수확한 토란으로 끓인 토란국과 개장에 쓸 토란대 지지난 주말에 장모님의 밭에서 토란을 수확했다. 일손도 마땅치 않은 데다가 밭 위에 쓰러진 굵직한 아까시나무에 깔려 있어 수확하지 못했던 토란이었다. 트렁크에 넣어 다니던 비상용 톱으로 그걸 잘라내고 서둘러 알줄기를 캐냈다. 씨알은 그리 굵지 않았으나 꽤 양이 많았다. 그 알줄기를 트렁크에 싣고 돌아왔다. 딸애가 젊은 애답지 않게 별식으로 토란국을 매우 즐기는 것이다. 아이는 토란 알줄기를 보더니, 반색했고 이내 그걸 손질하기 시작했다. 아이가 토란 알줄기를 잔뜩 넣고 끓인 토란국에 맛을 들인 것은 언제쯤일까. ‘토란’은 식용하는 ‘알줄기’ 토란은 천남성과의 인도·인도네시아 등 열대 원산의 여러해살이풀이다. 토란은 ‘흙 난초’[토란(土蘭)]가 아니라, ‘흙.. 2020. 11. 8.
장미보다, 다시 찔레꽃 5월, ‘찔레꽃의 계절’ 해마다 찔레꽃이 필 무렵이면 사진기를 둘러메고 여기저기 찔레꽃을 찾아 나서곤 해 왔다. 철 되면 피는 꽃이 올해라고 달라질 리 없건마는 4월이 무르익을 때쯤이면 나는 고개를 빼고 산기슭이나 골짜기를 살펴보곤 하는 것이다. * 찔레, 그 슬픔과 추억의 하얀 꽃(2010/05/28) * 장미와 찔레, 그리고 이연실의 노래들(2015/05/16) 그러나 찔레꽃을 그리기 시작하는 시기는 언제나 반 박자쯤 늦다. 조금 이르다 싶어 잠깐 짬을 두었다 다시 찾으면 이미 그 하얀 꽃은 조금씩 시들어가고 있었던 게다. 올해도 다르지 않았다. 무슨 일로 바빴나, 그저께 며칠 만에 오른 산어귀에서 만난 찔레꽃은 바야흐로 그 절정의 시기를 막 넘고 있는 참이었다. 지난 9일 치른 대선이 ‘장미 대선’.. 2020. 5. 20.
‘사랑’의 ‘사전적 정의’, ‘이성애’로 돌아가다 사전에서는 ‘사랑’을 어떻게 정의하는가 국어사전은 모국어 사용의 준거로서 기능한다. 국어와 관련한 시비는 ‘사전 찾아보기’로 해결의 실마리를 찾곤 하는 것은 그 때문이다. 또 사전은 일정한 기간마다 사라지는 말, 뜻이 바뀌는 말과 함께 새말의 탄생 따위를 반영한다. 국어사전을 편찬하는 일을 관련 한글 단체와 출판사 등 민간에만 맡기지 않고 정부가 직접 담당하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우리나라에서는 국립국어원이 편찬한 이 모든 언어생활의 준거로 널리 이용된다. 국립국어원, 기독교계 요구에 밀려 재개정 최근 에 실린, 지난 2012년에 바꾼 ‘사랑’에 관한 정의가 이성애를 기준으로 삼은 과거로 되돌아갔다고 한다. 언어 사용에서 차별을 없애고 소수자 인권을 보호하려 한 뜻풀이가 동성애를 조장한다며 재수정하라는.. 2020. 4. 4.
사랑은 늘그막에 새롭게 시작되는가 노년의 사랑 어떤 작가는 아내는 ‘장롱’ 같은 존재라고 했다. 아내는 장롱처럼 늘 거기 있다. 그래서 그 존재의 의미를 따로 기억하지 못한다. 그러나 아내는 그 자신의 ‘부재’를 통해 그 존재의 의미를 절절히 깨닫게 해 준다는 얘기다. 그건 자유가 ‘공기’ 같다는 오래된 비유와도 같은 맥락이겠다. 아내는 ‘장롱’이다? 모든 남편에게 당신의 아내는 당신에게 무엇이냐고 물어보면 어떨까. 그 질문에 서슴없이 답을 해 줄 수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듯하다. 자신에게 묻는다. 아내는 내게 무엇인가. 마땅한 답을 찾기가 쉽지 않다. 혼인으로 부부가 되면서 우리는 ‘관계’에 대한 고민을 유보해 버리기 때문이다. 삶에서 아내나 남편을 바라보는 눈길은 동서양이 다르지 않다. 우리는 ‘반려(伴侶)’라 하여 배우자를 .. 2019. 10. 7.
문제아는 발길질과 따귀로...내가 왜 이러지? ‘체벌의 진실’ 가르쳐 준 ‘열등반’ 50명 아직 정년은 한참 남았다. 그러나 조만간 교직을 떠나는 게 옳다는 생각을 굳히면서 서른 해 가까이 머문 ‘교사의 자리’를 무심히 돌아볼 때가 더러 있다. 떠난다 해도 퇴임식도 퇴임사도 필요하지 않다. 그러나 자신에게 건네는 ‘퇴임의 변’은 있어야 하지 않겠느냐는 생각을 한다. 그게 내 존재와 삶의 확인일 터이므로. 아이들, 사랑, 삶, 인간, 성장, 존엄성 따위의 단어로 조합된 몇 개의 글귀가 떠올랐지만, 고개를 젓는다. 내게 정말 필요한 것은 참회록이 아닌가 싶어서다. 시인 윤동주는 ‘만 이십사 년 일 개월’의 삶에도 참회록이 필요하다고 했으니 교단에서의 내 삶에는 그보다 더 길고 무거운 참회의 시간이 필요하지 않을까. ‘교직에 오래 있을수록 죄가 많다’던 .. 2019. 2. 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