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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바람과 먼지의 세상, 그 길 위에 서서

매화15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 산동네의 봄 안동시 태화동 ‘말구리길’은 안동에서 가장 먼저 봄이 오는 곳이다. 물론 그것은 전적으로 내 생각일 뿐이다. 몇 해 전, 말구리재에 이어진 야산을 거닐다가 그해 처음으로 생강나무꽃과 매화를 만난 곳이 말구리길이기 때문이다. 말구리길은 태화동에서 송현동으로 넘어가는 고개인 ‘말구리재’ 이쪽의 야산 아랫동네를 일컫는다. 말구리길은 지금까지 사용하고 있는 지번 위주의 주소체계를 도로이름과 건물번호를 부여하여 관리하는 새로운 주소체계를 따라 붙인 이름이다. ‘말구리’라는 지명은 전국 곳곳에 흩어져 있는데 다른 데는 어떤지 모르지만 태화동 말구리는 ‘말이 굴렀다’는 뜻을 담고 있다. ‘말’에 ‘구르다’는 동사의 어간(‘구르-’)에 명사를 만들어주는 접사 ‘-이’가 붙어서 이루어진 말이 ‘말구리’가 된 듯하다. 후.. 2021. 4. 5.
봄, 새순과 꽃 봄꽃이 피지 않는다고 투덜대었더니 봄은 내 눈을 피해 일찌감치 주변에 이르러 있었던가 보다. 늘 교사 뒤편 산 중턱, 옥련지 주변의 매화와 수달래에만 눈길을 주고 있었으니 소리 없이 당도한 봄을 어찌 알았으랴! 며칠 전에 우연히 동네 뒤의 민둥산을 올랐더니 생강나무가 노랗게 꽃을 피우고 있었다. 산수유인가 했더니 가지에 바투 붙은 수술 같은 노란 꽃의 생강나무였다. 인가로 내려가는 산 중턱엔 매화가 흐드러지게 피어 있었다. 시가지에서 조금 떨어진 산 밑에 웅크린 학교 주변에 오는 봄이 더딘 것은 당연한 일! 내 눈에 뵈지 않는다고 오는 봄을, 피는 꽃을 부정할 수는 없다. 이제 조금씩 자리를 넓혀가는 쑥과 여린 새순을 틔워내고 있는 찔레가 싱그럽다. 교사 앞 화단에 선 동백나무는 이제 겨우 몇 송이의 꽃.. 2021. 3. 28.
숨어 있는 봄 일요일의 늦은 오후, 네 시가 넘어서 사진기를 들고 봄을 찾아 나섰다. 최남선이 수필 ‘심춘순례(尋春巡禮)’에서 쓴 표현을 빌리면 ‘심춘’이다. ‘심춘’은 일간지 ‘심인(尋人)’ 광고에서와 마찬가지로 ‘찾을 심(尋)’ 자를 썼으니 직역하면 ‘봄 찾기’다. 최남선의 수필은 지리산을 중심으로 한 국토를 돈 기록이니 ‘순례’가 제격이지만, 동네 뒷산으로 꽃소식을 찾아 나선 길을 ‘봄 찾기’라 쓰는 것은 좀 무겁기는 하다. 그러나 봄이 와도 한참 전에 와 있어야 할 시절인데 유난히 늦은 꽃소식에 좀이 쑤셔 집을 나섰으니 ‘봄 찾기’가 지나치지는 않겠다. 인근 대구에는 개나리가 만개했다는데 안동의 봄은 여전히 을씨년스럽다. 기온도 기온이려니와 사방의 빛깔은 아직도 우중충한 잿빛이다. 반짝하는 봄기운에 서둘러 피기.. 2021. 3. 28.
산당화에서 할미꽃까지, 나의 ‘꽃 삼월’ 꽃 나들이 - 동네 한 바퀴와 산행 이제 곧 봄이 오는가 싶으면 어느덧 봄은 우리 밭 밑에 와 있다. 날마다 새로워지는 대기로, 맨살에 휘감기는 햇볕으로도 오지만, 역시 봄의 기척은 꽃눈과 꽃망울, 그리고 마침내 피어난 꽃으로 완성된다. 겨우내 추위를 이기고 속으로만 자라난 꽃눈은 봄바람과 만나면서 비로소 그 존재를 시나브로 드러내는 것이다. 올봄은 지난해보단 더디 온 듯하다. 아파트 화단에 해마다 2월이면 꽃을 피우던 산수유가 삼월이 되어서야 비로소 꽃눈을 틔웠다. 산밑 동네에 오는 봄이 더디다는 걸 인정해도 그렇다. 온 세상에 다 봄이 와도 창밖과 울타리 너머에 그 기척이 없으면 ‘나의 봄’은 이르지 않은 것이 아니던가. 지난 금요일에 겨우내 발을 끊었던 산자락에 다시 올랐고 오늘 한 차례 더 다녀왔.. 2021. 3. 23.
봄, 혹은 심드렁함 남부라곤 하지만 안동은 경북 북부 지역이다. 봄이 더디다는 뜻이다. 4월에도 이 지방 사람들은 겨울옷을 벗지 못한다. 연일 신문 방송으로 전해지는 꽃소식도 남의 이야기다. 섬진강 근처에는 매화와 산수유가 제철이라던가. 그러나 주변은 온통 잿빛일 뿐이다. 빈 시간에 잠깐 교사 뒤편의 산기슭을 다녀왔다. 옥련지(玉蓮池) 연못가의 수달래는 아직 꽃눈조차 보이지 않고, 남녘에는 한창이라는 매화가 겨우 꽃눈을 내밀고 있다. 사진기를 들고 상기도 쌀쌀한 산 중턱을 기웃거렸다. 어디선가라도 푸른빛의, 새싹 새잎을 만나고 싶었다. 산 중턱의 낙엽 더미에서 새잎을 만났다. 이제 겨우 새끼손톱만큼 자라고 있는 돌나물이었다. 안으로 말린 도톰한 잎의 질감이 싱그럽게 마음에 닿아왔다. 3월 중순, 그러나 3월의 햇볕은 하루가.. 2021. 3. 11.
‘봄 기척’ 산수유와 매화 해마다 봄이 오는 기척이 느껴지면, 사진기를 둘러메고 동네와 북봉산 어귀를 어슬렁대곤 한다. 역시 가장 먼저 계절을 알리는 ‘봄의 척후’는 산수유다. 지난해 찍은 사진을 살펴보면 산수유와 매화는 꽃망울을 맺은 것은 비슷한데, 벙글기 시작한 건 산수유가 앞섰었다. 유난히 따뜻했던 겨울의 끝, 2월 2일이었다. 봄의 척후, 산수유 올해도 2월 초순부터 아파트 앞 화단의 산수유를 드나들 때마다 눈여겨보았지만 꽃망울은 낌새도 없었다. 올겨울이 제법 추웠다는 걸 떠올리며 당연히 매화도 그러려니 하면서 2월을 보냈다. 그런데 나는 우리 동네가 북봉산 아래여서 봄이 더디다는 사실과 아파트 앞 계단이 볕이 잘 들지 않는 그늘이라는 사실을 잊고 있었다. 그걸 깨우친 것은 2월 하순에 우연히 체육공원을 지나다가 추위에 오.. 2021. 3. 7.
살구꽃, 혹은 성찰하는 공민의 봄 3. 남은 것은 이제 ‘성찰하는 공민’입니다 ‘그 없는’ 약속의 봄이 오고 있습니다 2017년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을 기다리면서 쓴 글 몇 편을 잇는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2016년 12월 9일 국회에서 ㅌ탄핵소추되었고, 2017년 3월 10일 헌법재판소에서는 재판관이 전원일치로 대통령 박근혜 탄.. qq9447.tistory.com 오늘 아침에야 3월 달력을 떼어냈습니다. 연금공단에서 보내준 달력입니다. 삼월분을 찢어내자 드러나는, 한글로 쓴 ‘사월’이란 글자가 무겁게 다가왔습니다. 사월이 무거운 이유는 여럿입니다. 그것은 멀리는 이제 기억에서도 까마득해진 사월혁명, 그때 스러져 간 젊은이들의 피를 떠올리는 시간이고, 가까이는 2014년 4월 어느 날을 아픔과 뉘우침으로 기억하는 시간이기 때문입니.. 2020. 4. 2.
동네 한 바퀴-매화 지고 앵두, 살구꽃까지 이미 곁에 당도한 봄을 주절댄 게 지난 15일이다. 그리고 다시 보름이 지난 3월의 막바지, 이제 꽃은 난만(爛漫)하다. 산으로 가는 길모퉁이 조그만 교회 앞에 서 있던 나무의 꽃봉오리가 벙글고 있었다. 무심히 매화일 거라고 여겼더니만 어저께 돌아오며 확인하니 그건 활짝 핀 살구꽃이었다. [관련 글 : 다시, 겨울에서 봄으로] 이미 설중매로 소개했던 매화는 지고 있었다. 전자 공장 뒤란의 콘크리트 바닥이 떨어진 매화 꽃잎으로 하얬다. 시들어버린 오종종한 꽃잎을 일별하면서 나는 늘 같은 생각을 했다. 왜 우리 선인들은 이 보잘것없는 꽃을 ‘불의에 굴하지 않는 선비정신의 표상’으로 삼았을까. 단지 이른 봄에, 더러는 눈 속에 꽃을 피운다는 것 외에 무엇이 선비들의 맘을 사로잡았을까. [관련 글 : 춘분 날,.. 2020. 3. 30.
길고양이처럼 찾아온 봄 정말, 어떤 이의 표현대로 봄은 마치 ‘길고양이처럼 찾아온’ 느낌이다. 봄인가 싶다가 꽃샘추위가 이어지곤 했고 지난 금요일만 해도 본격 꽃소식은 한 주일은 더 기다려야 할 것 같았다. 일교차가 컸던 탓일 것이다. 한낮에는 겉옷을 벗기려 들던 날씨는 저녁만 되면 표변하여 창문을 꼭꼭 여미게 했다. 토요일 오전에 아내와 함께 아파트 앞산에 올랐는데, 산길 주변 곳곳에 참꽃(진달래)이 무리 지어 피어 있었다. 출근하는 숲길에선 보기 힘든 풍경이어서 나는 잠깐 헷갈렸다. 일요일 오후에 돌아보니 아파트 주차장 어귀에 벚꽃이 활짝 피어 있었다. 그 아래 동백꽃도 화사했고. 사진기를 들고 나갔더니 화단의 백목련은 이미 거의 끝물이다. 아이들 놀이터 뒤편에 못 보던 매화가 하얀 꽃을 피우고 섰다. 원래부터 거기 있었던.. 2020. 3. 29.
금오산 봄 나들이 구미에 옮아오고 해가 바뀌었다. 그러나 아직 우리 가족은 금오산(976m)에 오르지 못했다. 지난해에는 주말마다 이런저런 일이 생겨 짬이 나지 않았다. 무엇보다도 무릎이 시원찮아서 무리해선 안 된다는 생각이 앞섰고, 어차피 근처를 떠날 일도 없을 터, 서두를 까닭이 없다고 여겼던 것이다. 지난여름에 가족들과 산책을 겸해서 채미정(菜薇亭)을 둘러보았고 가을에도 잠깐 들러 금오지 주변을 거닐었던 기억이 있다. 자라면서 먼빛으로 늘 바라보았던 산이지만 나는 아직 거기 오른 적이 없다. 아내는 케이블카라도 타 보자고 했지만, 나는 금오산을 그렇게 만나고 싶지는 않았다. 어제 아침부터 서둘러 금오산을 향한 것은 금오산에 당도한 봄빛을 만나고 싶어서였다. 교정의 홍매화를 찍다가 부근에 매화 군락이 어디 없느냐고 물.. 2020. 3. 26.
춘분 날, ‘설’은 녹고 ‘매’만 남은 설중매(雪中梅) 밤새 눈이 푸짐하게 내렸다. 아침에 일어나니 아파트 주차장의 자동차 지붕에 좋이, 한 뼘가량의 눈이 마치 시루떡 켜처럼 쌓여 있었다. 겨울에 눈이 드문 지방, 봄인가 싶었는데 3월의 두 번째 폭설이다. 오늘이 춘분이라는 걸 알게 된 것은 조간신문을 받아보고서다. 춘분 날, ‘설’은 녹고 ‘매’만 남은 설중매(雪中梅) 어제 산에 다녀오는 길에서 산 아래 전자 공장 마당에 핀 매화 두어 송이를 만났다. 그 며칠 전부터 봉오릴 맺고 있었지만, 갑자기 쌀쌀해진 날씨 때문에 개화를 기대하지 못했었다. 반갑게 찍은 사진 몇 장을 벗에게 보냈더니 오늘에야 그걸 읽은 벗 왈, “이 매화, 오늘은 설중매로 살아야 할 듯”이라는 답을 보내왔다. 아, 그렇다. ‘설중매(雪中梅)’! 그걸 왜 생각하지 못했을까. 두어 달째 낫.. 2020. 3. 17.
‘그 없는’ 약속의 봄이 오고 있습니다 2017년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을 기다리면서 쓴 글 몇 편을 잇는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2016년 12월 9일 국회에서 ㅌ탄핵소추되었고, 2017년 3월 10일 헌법재판소에서는 재판관이 전원일치로 대통령 박근혜 탄핵 소추안을 인용함으로써 박근혜는 대통령직에서 파면되었다. 이른바 촛불혁명은 무르익기 시작한 것이다. 1. ‘그 없는’ 약속의 봄이 오고 있습니다 블로그에 ‘Q씨에게’라는 꼭지를 만든 건 2011년 가을입니다. 여는 글을 써 올리고 이듬해 벽두에 한 편을 더 보태고 나서는 이 꼭지를 잊고 지냈습니다. 그러고 5년, 고향 가까이 학교를 옮겼고 지난해엔 아이들 곁을 아주 떠나왔습니다. ‘퇴직일기’를 닫고 ‘Q씨에게’, ‘쑥골에서 부치는 편지’로 학교를 떠난 뒤엔 ‘퇴직일기’라는 이름의 꼭지에다.. 2020. 3. 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