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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바람과 먼지의 세상, 그 길 위에 서서
이 풍진 세상에 /퇴직일기

동네 도서관에 등록하다

by 낮달2018 2022. 3.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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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 도서관에 등록해 대출증을 만들다

▲ 2007 년에 개관한 구미 시립 중앙도서관 봉곡 분관 . 여러 가지 문화강좌 등을 운영하고 있다 .

퇴직하겠다고 하면 주변 사람들이 보여주는 반응은 대체로 비슷했다. 물론 그 반응은 순전히 지인에 대한 염려와 선의의 표현이다. 거기엔 정년이 남았는데 굳이 서둘러 나갈 이유가 있는가, 나가서 후회하지 않을 자신이 있느냐는 걱정이 은근히 담겨 있다.

 

“무슨 일을 할 건데?”

“무슨 다른 계획이 있는가?”

“엔간하면 정년까지 가지, 왜 나가려는가?”

 

내 대답도 정해져 있다. 충분히 있음 직한 질문이고 그게 염려에서 나온 거라는 걸 알면서도 은근히 서운한 느낌이 있다. 나는 속으론 부아를 낸다. 아이들하고 씨름하면서 50분 수업을 하루에 네댓 시간씩 하는 게 얼마만 한 중노동인지 알기나 해?

 

“할 일은 쌨어. 돈이 모자라는 게 문제지, 노는 건 석 달 열흘도 쉬지 않고 놀 수 있거든.”

“어떻게?”

“아무 짓도 안 하고 쉬는 거지. 또 시간에 쫓기지 않고 책도 읽고, 글도 쓸 거야.”

“노는 것도 하루 이틀이지, 금방 싫증이 날걸? 무언가에 마음 붙일 게 있어야 할걸?”

“걱정 마. 정기적으로 도서관에도 가고, 필요하면 문화강좌도 듣고, 여행도 할 거야.”

 

모두가 ‘퇴직자’를 염려한다

 

그래도 상대는 미심쩍은 시선을 거두지 않는다. 정작 자신들은 현직에 있으면서도 걱정을 내려놓지 못하는 것은 퇴직 후의 삶에 적응하는 게 쉽지 않다는 걸 이들은 주변의 이웃을 통해 일찌감치 학습하고 있기 때문이다.

 

퇴직자로서의 첫날은 역사 기행을 떠났는데, 여기서 만났던 이들도 어김없이 비슷한 질문을 건넸다. 이들은 물론 지금도 일하고 있는 사람들이다. 이들은 나를 통해서 자신의 미래를 확인해 보려고 했는지도 모르겠다. 이번엔 에두르지 않고 제대로 답을 해 상대가 입을 다물 수밖에 없게 만들었다.

 

“이제 무슨 일을 하실 생각이세요?”

“아무 일도 안 할 겁니다.”

“……?”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쉬려고 나왔으니까요. 일하려면 굳이 서둘러 나올 이유가 없지요.”

“아! 그건 그렇네요…….”

 

새로운 삶에 대한 부담이나 불안 때문인지는 알 수 없지만, 퇴직자들은 저마다 자기 나름의 계획이 분명하게 있는 거 같다. 사회교육원 같은 데 가서 무슨 강좌를 듣거나, 새로운 운동이나 취미생활을 시작하려고 한다. 주변의 선배 퇴직자들도 대부분 서각(書刻)이나 목공 수련을 하거나 서예나 그림 공부, 골프를 시작하는 등 무언가 드러나는 취미활동을 하는 이들이 많다.

 

글쎄, 게으른 탓이겠지만 나는 새삼스레 무엇을 새로 배우는 건 염두에 두고 있지 않다. 이미 녹슨 머리로 무엇을 새로 배우겠는가, 그간 익혀온 취미나 제대로 건사하는 것도 힘겨운 것을. 그러나 책을 읽고 글 나부랭이나 끼적이는 것으로는 온전하게 주어진 시간이 너무 많지 않을까.

▲ 도서관의 정기간행물실 . 앞쪽은 신문 열람대인데 < 한겨레 > 와 < 경향 >이 제일 먼저 눈에 띄었다 .
▲ 디지털 자료실의 인터넷 . 이곳에도 얼마간 머무를 일이 있을 듯하다 .

내가 퇴직 이후의 할 일로 도서관을 끼워 넣은 이유는 순전히 그 때문이다. 마침맞게 동네에 걸어서 15분쯤 가면 공공도서관이 있다. 거기 간다고 두 번이나 집을 나섰더니 공교롭게도 비가 내리고 있었다. 그래, 바쁠 건 없으니까. 나는 얌전히 발길을 돌렸었다.

 

문화강좌 수강 신청은 실패, 대출증을 만들다

 

둘째 날에 가기로 마음먹었던 도서관에 간 건 일주일 후, 지난 월요일이다. 나는 쉬엄쉬엄 걸어서 도서관으로 갔다. 안동에서 기사를 쓰기 위한 자료를 찾아 도립도서관에 드나든 이후, 거의 십 년만이다.

 

2007년에 개관했다는 도서관은 독특한 디자인의 3층 건물이었다. 종합자료실이 있는 3층을 나는 승강기를 이용하지 않고 천천히 걸어 올라갔다. 내부는 깨끗했고 적막하다 할 만큼 조용했다. 나는 자료실 어귀의 여직원에게 가서 도서대출증을 만들었다. 그녀는 피시 카메라로 사진을 찍고 이내 대출 카드를 건네주었다.

 

종합자료실을 중앙에 두고 왼쪽은 정기간행물실, 오른쪽은 인터넷을 이용할 수 있는 디지털 자료실이었다. 정기간행물실 입구엔 일간지 열람대, 차례대로 <한겨레신문>과 <경향신문>이 나란히 비치되어 있었다. 이 보수적인 도시에서 오랜만에 보는 진보지가 반가웠다.

 

나는 서가에 일목요연하게 꽂혀 있는 주간·월간·계간지 등의 정기간행물을 훑어보았고, 디지털 열람실에서 잠깐 인터넷에 접속해 보기도 했다. 그냥 나오려다가 이왕 대출증을 만든 것, 싶어서 서고로 들어갔다. 종합자료실 왼쪽은 문학 자료 중심, 오른쪽은 전문 자료실이었다.

 

한눈에 들어올 만큼의 단출한 서가에 책들은 꽤 잘 정리되어 있었다. 나는 얼마 전부터 새로 읽어 보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던 김주영의 대하소설 <화척(禾尺)>을 어렵지 않게 금방 찾아냈다. 고려 무신정권의 변천과 그 속에서 천민들이 꿈꾸던 미완의 혁명을 다루고 있는 이 소설을 읽은 것은 1996년 무렵이었다.

 

그때 나는 근무하고 있던 시골 고등학교에서 도서관을 맡아 386 컴퓨터로 도서관을 전산화한다고 골몰하고 있었다. 나는 덤핑으로 사들인 조악한 전집류, 저속한 일본 대중문학 시리즈 따위를 골라 몇 개의 마대에 담아 내버렸다.

 

▲ 김주영 대하소설 < 화척 >(1995)

십진분류법과 무관하게 엉망진창으로 정리해 놓은 장서를 재분류했고 제대로 된 단행본을 2~30% 할인된 가격으로 사들였다. <화척>은 그렇게 내가 사들인 책이었다. 20년 전에 읽은 책을 왜 새로 읽고 싶어졌는지는 모르겠다. 어쨌든 나는 <화척> 전질 5권을 빌려서 도서관을 나왔다.

 

도서관에 가기 전에 나는 인터넷으로 도서관에 접속하여 회원으로 가입했다. 그 며칠 전에 나는 도서관에서 시행하는 문화 강좌 프로그램을 확인했었다. 2~30명씩 모집하는 성인강좌 가운데 나는 영어 회화 강의를 들어볼까 생각 중이었고 수강을 신청하려고 했다.

 

나는 동네에 있는 시설이라고 도서관을 시뻐 본 모양이다. 수강 신청 기한이 ‘마감 때까지’로 되어 있어서 대수롭지 않게 생각한 것이다. 불과 이틀만인데 강좌는 모두 마감되어 있었다. 도서관에 전화를 걸었더니 이미 인원이 차서 신청이 불가능하다고 했다. 아뿔싸, 시골이라고 내가 너무 얕잡아 본 거로구먼. 나는 하반기 강좌를 듣기로 하고 미련을 버렸다. 시간은 얼마든지 있으니까 말이다.

 

그동안 <화척>을 4권까지 읽었다. 두 번째로 읽는 책이니만큼 이 잡듯 읽을 일은 없다. 그래서 나는 성큼성큼 책장을 넘겼다. 대출 기간은 15일이지만 며칠 후엔 책을 반납하러 다시 도서관을 찾아야 한다. 다음에는 어떤 책을 빌릴까, 거기 머무르는 시간을 얼마나 정할까, 거기서 글을 쓸 수도 있겠다는 따위의 시답잖은 고민을 하면서 나는 <화척> 제5권을 다시 펼친다.

 

 

2016. 3. 9. 낮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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