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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바람과 먼지의 세상, 그 길 위에 서서

민중7

‘위대한’ 국민과 ‘우매한’ 유권자 사이 7·30 보궐선거의 결과 굳이 야당의 지지자가 아니더라도 6·4 지방선거에 이은 7·30 보궐선거의 결과에 대해 이런저런 감회가 없을 수 없다. 지지할 후보가 있건 없건 ‘한 표’를 행사할 수 있었던 지방선거와는 달리 제 고장에 선거가 없었던 경우에 사람들은 냉정한 ‘관전자’가 될 기회다. 워낙 여당의 실정이 거듭된 상황이었는데도 이를 제대로 살리지 못한 야당의 헛발질 덕분에 선거 결과는 아는 대로다. 기사회생한 여당은 표정 관리를 하면서도 시나브로 세월호 정국을 비켜 갈 속셈을 은근히 비치고 있는 형국이다. 당연히 자식 잃은 슬픔을 넘어 나라를 바꾸어야 한다고 믿으며 싸우고 있는 유족들이 주장하는 특별법의 갈 길은 더 멀어지고 있는 듯하다. 지리멸렬…야당 , ‘유권자’의 몫은? 재보선이 끝나고 나서 당.. 2020. 8. 11.
조태일의 ‘국토 서시’를 들으며 ▲ 교육학자 고 성내운 교수가 낭송하는 조태일의 시 '국토 서시' 조태일(1941~1999)의 를 성내운 선생의 목소리로 다시 듣는다. 조태일 시인을 다시 기억 속에서 불러낸 것은 순전히 성내운 선생의 ‘마치 영혼 깊은 곳에서 울려오는 듯한’ 목소리 덕분이고 턱까지 치받고 올라온 한미 FTA 소식 탓이다. 그를 처음 만난 것은 고등학교 시절, 문예 동아리 방에서였다. 시를 쓰는 친구들이 으스대듯 전해 주던 그의 연작과 따위를 통해서였는데 어렸던 때라 ‘멋있긴 하지만 좀 과격한, 괴짜 시인’ 정도로 그를 기억하게 되었던 것 같다. 이 시를 새로 들으면서 그가 이미 고인이 됐다는 걸, 그리고 70년대 유신독재에 정면으로 맞섰던 이였다는 걸 뒤늦게 알았다. 1974년 고은, 황석영 등과 함께 자유실천문인협의회.. 2020. 3. 18.
하회, 그 ‘낮은 사람들의 삶’도 기억하게 하라 [관광객 천만 명 돌파] 안동 ‘하회마을’을 다시 본다 경북 북부의 소도시, 안동을 온 나라에 알리는 데 가장 크게 이바지한 곳이 하회마을이다. 요샛말로 하자면 하회는 ‘안동의 아이콘’인 셈이다. 안동이라 하면 ‘퇴계’나 ‘도산서원’을 먼저 떠올릴 법하지만, 사람들은 그리 ‘성리학적’이지 않다. 고리타분한 왕조 시대의 유학자보다야 수더분하게 이웃 마실 가듯 들를 수 있는 ‘하회’가 사람들에겐 더 친숙한 것이다. 이 오래된 마을을 본격적으로 세상에 알린 것은 엘리자베스 영국 여왕이다. 1999년 그의 방문 뒤에 봉정사가 생뚱맞게 입장료를 받기 시작했다는 ‘뒷담화’가 떠돌기는 했다. 그러나 사람들에게 하회에 머무는 바람과 햇빛이 고즈넉한 중세의 그것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게 한 것은 전적으로 이 할머니의 덕이.. 2020. 2. 10.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이후 20년 글쎄, 쇠귀 선생의 글은 모두 짙은 사색의 향기를 어우르고 있긴 하지만, 그가 쓴 글의 으뜸은 역시 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거기 실린 글 ‘비극에 대하여’를 읽고서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20년 20일쯤을 감옥에서 보낸다면 이런 깨달음, 이런 인식의 지평에 이를 수 있는 것인가. 신영복 선생을 만난 게 1988년이다. 87년 6월항쟁의 과실을 어부지리로 챙긴 노태우가 올림픽에 명운을 걸고 있던 때였다. 3월에 4년간 근무한 여학교를 떠나 고향 인근의 남학교로 옮겼다. 전세 500만 원, 재래식 화장실에다 부엌이 깊은 집(가족들은 지금도 그 집을 ‘부엌 깊은 집’으로 부르곤 한다.)에 들었다. 그 당시 창간된 을 받아보았는데 그 지면에서 쇠귀의 글을 만났다. 서른셋, 이른바 학습능력도 괜찮고 감성도 위태하.. 2019. 10. 26.
시월의 들녘에서 읽는 ‘벼는 벼끼리 피는 피끼리’ 어제는 아내, 딸애와 함께 장모님 밭에 가서 고구마를 캤다. 노인네가 힘들여 심은 것을 우리는 잠깐의 노동으로 수확해 겨우내 그걸로 궁금한 입을 달랠 수 있게 되었다. 생산자와 소비자의 몫이 다르긴 하지만, 이럴 때 우리는 그냥 노인의 거룩한 노동과 그 결과를 노략질하는 자일 뿐이다. ‘황금들판’이라고 부르기엔 좀 이르지만 10월 초순의 들녘에 나락이 누렇게 익어가고 있었다. 여름내 참외를 따냈던 대형 비닐하우스에 막혔다가 이어지는 들판 저편으로 짙푸른 하늘이 성큼 높았다. 드러난 살갗에 감기는 햇볕이 따뜻했고 가끔 이는 바람이 고개 숙인 벼들을 흔들고는 들판 저쪽으로 스러지곤 했다. 사진기를 들고 나는 잠깐 논두렁에 서 있었다. 나락의 낟알은 아직 실해 보이지 않았다. 벼의 낟알이 옹글게 여물려면 얼마.. 2019. 10. 22.
[한글 이야기] ‘심심파적’과 ‘불여튼튼’ 얼마 전 의 서평 기사에 ‘심심파적’이란 낱말을 썼다. 송고할 때는 분명 그렇게 썼는데, 편집하면서 실수로 빠졌는가, 기사에는 ‘심심파’로 나왔다. 수정해 달라고 요청하려다가 말았다. 아는 사람은 바르게 고쳐서 읽겠지 하고서. ‘심심파적’에서 ‘심심-’은 형용사 ‘심심하다’의 어근(語根)이다. ‘-파적(破寂)’은 말 그대로 ‘고요를 깨뜨림’이란 뜻이니 이는 곧 ‘심심풀이’란 뜻으로 쓰이는 말이다. 순우리말 어근에다 한자어가 붙어서 만들어진 말인 셈이다. 언제쯤 이 말이 쓰이기 시작했는지는 알 수 없다. 표준국어대사전의 용례에도 김원우의 소설(1986)과 이희승의 회고록(1996)을 인용하고 있으니 그리 오래되지는 않은 듯하다. 기본적으로 ‘새말[신어(新語)]’은 새로운 개념과 대상의 등장에 따라 대개 합.. 2019. 10. 13.
찔레, 그 슬픔과 추억의 하얀 꽃 바야흐로 찔레꽃의 시절이다. 학교 뒷산 언덕바지에 찔레꽃이 흐드러졌다. 장미과에 속하지만 줄기와 잎만 비슷한 동북아시아 원산의 이 꽃(Rosa multiflora)은 보릿고개의 밤을 하얗게 밝힌 꽃이었다. 연중 가장 힘들고 배고프던 시기에 피었다는 이 꽃에는 저 절대 빈곤 시대의 슬픈 추억이 서려 있다. 찔레꽃의 추억과 슬픔 찔레꽃을 먹기도 했다지만, 나는 찔레순 껍질을 벗겨 먹어본 기억밖에 없다. 찔레꽃은 5월에 흰색 또는 연한 붉은 색으로 꽃을 피운다고 하는데 연분홍 찔레꽃을 아직 한 번도 만나지 못했다. 양지바른 산기슭, 골짜기, 냇가 등지에 피는 이 꽃의 소박한 흰 빛은 좀 슬프다. 그래서일까. 송찬호 시인이 노래한 ‘찔레꽃’은 저 잃어버린 시절의 사랑과 회한을 노래한다. ‘너’는 결혼하고 홀로 .. 2019. 8. 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