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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바람과 먼지의 세상, 그 길 위에 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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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국] ‘마시탄’ 사건의 이의준 순국하다 압록강에서 사이토 총독 공격한 이의준 의사 사형집행으로 순국1929년 오늘(1월 25일), 1924년 5월, 압록강 중류인 평안북도 강계군 고산면 마시탄(馬嘶灘)에서 조선 총독 사이토 마코토(齋藤實)를 공격했던 참의부 소대장 이의준(李義俊,1893~1929)이 일제의 사형 집행으로 순국하였다. 향년 36세. 스물아홉 살에 만주로 건너가 항일무장투쟁을 벌였으나 이름조차 생소한 이 독립운동가는 사진 한 장도 온전하게 남아 있지 않다. 우리는 대신 그가 사살하고자 했던 일제 총독 사이토 마코토를 통해 그의 삶을 역으로 돌아볼 뿐이다. 사이토 총독 공격한 마시탄 사건 이의준은 평북 위원(渭源) 사람이다. 성장기와 독립운동 투신 이전의 삶은 알려지지 않는다. 그가 역사의 전면에 등장하는 것은 1922년 8월이다... 2026. 1. 25.
[순국(殉國)] 1930년 오늘 - 청산리의 김좌진, 흉탄에 스러지다 1930년 1월 24일, 김좌진 장군 흉탄에 스러지다1930년 새해를 김좌진(金佐鎭, 1889~1930)은 활기차게 맞았다. 지난해 7월 김좌진의 신민부가 김종진, 이을규, 이강훈 등의 아나키스트와 연대하여 결성한 재만한족총연합회(한족총련)가 북만주 지역의 독립운동에 새 바람을 일으키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1월 하순 어느 날, 그는 중동선(中東線) 산시역 근처에 있던 한족총련 소속의 도정공장으로 나갔다. 중동선 일대의 한인들이 생산한 수만 석의 미곡을 도정하여 위탁 판매하는 과정에서 중국 상인들에게 농단 당하지 않게 설치한 정미소였다. 이 공장에서 김좌진은 조선공산당 만주총국 소속의 한인 박상실의 총에 맞는다. 1930년 1월 24일 오후 4시였다. 향년 41세. 1920년 항일무장투쟁사에 빛나는 .. 2026. 1. 24.
내란중요임무종사 한덕수 ‘징역 23년’ 선고가 알려준 것들 2월 21일 한덕수 전 총리 선고공판에 부쳐어제(21일) 오후 텔레비전으로 중계한 한덕수 전 총리 선고공판을 시청했다. 이미 보도된 대로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3부(부장판사 이진관)는 내란중요임무종사 등 혐의로 기소된 한덕수 전 국무총리에게 구형량인 15년보다 8년 많은 징역 23년을 선고했다. 내란 후 414일 만에 내란중요임무종사 단죄 2024년 12월 3일 내란으로부터 꼭 1년 하고도 49일, 즉 414일 만이다. 내란 관련 판결 가운데 가장 먼저 이루어진 게 5일 전인 16일에 이루어진 특수공무집행방해 등 재판이다. 서울중앙지법 형사35부(재판장 백대현)는 윤석열 전 대통령에게 징역 5년을 선고했다.(이에 앞서 지난 13일 특검은 ‘내란 우두머리’ 재판에서 윤석열 전 대통령에게 사형을 구형했고 .. 2026. 1. 23.
[오늘] ‘피의 일요일’ - ‘1905년 러시아 혁명’의 불을 당기다 [역사 공부 ‘오늘’] 1905년 1월 22일 차르 체제, 노동자들의 요구를 피로 짓밟다1905년 1월 22일, 제정 러시아의 수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는 노동자들의 탄원 집회가 열리고 있었다. 이들은 차르 니콜라이 2세의 초상화와 기독교 성화 상 그리고 노동자들의 요구를 적은 청원서를 손에 들고 차르의 겨울 궁전으로 평화적인 행진을 시작했다. 노동자들의 평화 행진 유혈 진압 2주 전인 1월 9일에 개최된 청원 행진은 러시아 정교회의 사제 게오르기 가폰 신부가 주도하여 진행되었다. 이들이 청원하고자 한 것은 노동자의 법적 보호, 당시 일본에 완전히 열세였던 러일전쟁의 중지, 헌법의 제정, 기본적 인권의 확립 등이었다. 노동자들이 한목소리로 외친 것은 ‘8시간 노동’과 ‘최저임금제’였다. 이는 착취, 빈곤,.. 2026. 1. 22.
‘피지배’의 시간을 견뎌낸 슬픈 아시아, 함께할 공감과 ‘반제·반독재’의 연대 김명희의 (나라말, 2025)를 읽고◆…국어과 선배 김명희 선생이 베푼 이 책의 출판기념회에 나는 다른 일 때문에 참석하지 못했다. 대신 지난해 11월 15일에 이 책을 우편으로 받아서 오랫동안 책상 위에 쟁여 놓았었다. 짬을 내어서 느슨한 소감이라도 끄적거리려 했는데, 해를 넘기고 어느새 두 달이 지났다. 뒤늦은, 서평이라기보다 소감이라는 게 더 알맞을 듯한 난삽한 글을 붙인다. 이 글은 제1부 아시아 편을 중심으로 썼다. 익숙한 러시아나 유럽, 미국 편은 굳이 소감을 곁들이지 않아도 좋으리라고 믿어서다. 글을 쓰면서 새삼 나는 우리가 별로 소속감을 느끼지 못하는 아시아가 사실은 함께 피지배의 시간을 견뎌냈고, 반제국주의와 반독재 투쟁을 통해 깊이 공감하고 연대해야 할 나라들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 2026. 1. 21.
[오늘] 청와대 습격, 1·21사태 일어나다 [역사공부 ‘오늘’] 1968년 1월 21일, 북한 공작원 31명 서울 침투1968년 1월 21일 일요일, 북한 민족보위성 정찰국 소속 특수부대 124부대 공작원 31명이 박정희 대통령을 제거하기 위하여 서울에 침투하였다. 서울 세검정 고개에 이른 이들은 경찰에게 저지당하자 총기를 난사하고 수류탄을 던지고 뿔뿔이 도주했다. 이른바 ‘1·21사태’(김신조 사건)다. 이들 공작원이 정찰국장으로부터 청와대 습격에 관한 구체적인 지시를 받은 것은 1월 13일이었고, 황해북도 연산군의 제6 기지를 출발한 것은 사흘 후인 1월 16일 밤 10시였다. 이들은 17일에 한국군 복장으로 수다에프(PPS-43) 기관단총으로 무장하고 휴전선의 미군 제2보병사단 구역의 군사분계선을 넘었고, 18일에는 꽁꽁 얼어붙어 있던 임.. 2026. 1. 21.
[오늘] 박애주의자, 배우 오드리 헵번 떠나다 [역사 공부 ‘오늘’] 1993년 1월 20일, 오드리 헵번 타계1993년 1월 20일, 할리우드를 대표하는 배우이면서 20세기 대중문화의 아이콘으로 불리었던, 모두가 사랑한 ‘세기의 연인’ 오드리 헵번(Audrey Hepburn, 1929~1993)이 스위스의 자택에서 대장암으로 사망했다. 향년 64세. 그는 영화를 통해 다양한 여성의 삶과 성격을 창조하면서 미국영화협회(AFI)가 선정한 ‘가장 위대한 여배우’ 세 번째에 이름을 올렸다. 그가 주연한 영화 이나 같은 영화는 그 개인의 작품 목록(filmography)를 넘어 영화사에 길이 빛나는 작품들이었다. 오드리 헵번은 예순 살 즈음하여 은퇴한 뒤 나중에 만년의 삶 대부분을 유니세프(유엔 아동기금, UNICEF)에 헌신했다. 1954년부터 이 기구.. 2026. 1. 20.
㉔ ‘큰 추위’ 대한(大寒), 그해 대한은 봄을 기다리기엔 벅찼다 겨울과 24절기의 마지막 절기 ‘대한(大寒)’오는 20일(2026년도 같음)은 24절기 가운데 마지막 절기인 대한(大寒)은 이다. 태양의 황경이 300°가 될 때로 보통 동지가 지난 한 달 후 또는 소한이 지난 반 달 후에 온다. 중국의 경우로 치면 겨울의 매듭을 짓는 절후(節侯)로 추위의 절정기지만 우리나라에선 소한에서 살펴본 것처럼 ‘소한 얼음이 녹’을 정도로 따뜻한 경우가 많다. 대한의 마지막 날이자 입춘(立春) 전날(올해는 2월 3일)이 ‘절분(節分)’인데 이는 ‘철(계절)의 마지막’이란 뜻이다. 실제 정월 초하루가 되려면 일주일이 남았지만, 입춘은 정월절(正月節)의 시작일이므로, 이날은 절월력(節月曆)의 연초가 된다는 것이다. 2019년 기해년(己亥年), 황금돼지의 해가 시작되는 게 입춘부터라 .. 2026. 1. 19.
‘시대의 스승’ 신영복 선생을 보내며 1941 ~ 2016년 1월 15일쇠귀 신영복 선생이 돌아가셨다. 나는 어젯밤 늦게 인터넷 뉴스를 통해서 선생의 부음을 들었다. 드라마 ‘응답하라 1988’을 보고 난 직후였던 듯하다. 아, 신영복 선생이 돌아가셨어. 내가 혼잣말처럼 중얼거리자 아내가 연세가 어떻게 되우, 하고 물었었다. 일흔다섯인데……, 하고 나는 말꼬리를 흐렸다. 선생을 처음 만난 것은 1988년, 당시 창간된 의 지면에서였다. 선생이 옥중에서 가족과 친지들에게 보낸 편지글이었는데 거기서 나는 꽤 충격을 받았던 것 같다. 그의 글은 그때까지 내가 읽은 어떤 글에서도 느낄 수 없었던 기품과 향훈을 그득 담고 있었기 때문이다. 선생의 글에는 지혜(이성)와 감성이 가장 완벽하고 조화롭게 만나고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드넓은 인식의 지평은 .. 2026. 1. 18.
용산참사, 기억의 투쟁 용산참사 7주기, 기억의 투쟁용산참사 유족들이 참사 당시 경찰 책임자였던 현재 경주 국회의원 새누리당 예비후보로 등록한 김석기 전 서울경찰청장에 대해 ‘살인 진압 책임자’라며 ‘후보 사퇴’를 촉구했다는 기사를 읽으면서 내일(20일)이 참사 7주기라는 사실을 알았다. 그간 거의 잊고 있었던 그날을 떠올리며 이른바 나는 ‘기억의 투쟁’을 생각한다. 물리적 시간은 속절없이 흘러가지만, 시간의 경과는 문제의 해결을 담보해 주는 대신 사람들의 기억에서 그 고통과 진실을 바래게 한다. 하여, 기억의 투쟁은 흐르는 시간 속에서 진실을 망각하지 않으려는 싸움이다. 세상은 사람들에게 잊어버리라고 권한다. 일상으로 돌아가라고 권한다. 기억한다고 해서 달리 무슨 방법이 있겠느냐며 잊어버리고 한다. 희미해지는 기억만큼 그 죄.. 2026. 1. 18.
‘내기’와 ‘걸기’의 두려움, 혹은 예기불안 고스톱과 포커 따위의 ‘잡기’를 소 닭 보듯 하며 살아온 까닭 교단을 떠나기 전의 일이다. 연말에 생활기록부를 쓰려고 아이들에게 자신의 좋은 점과 나쁜 점을 열 가지씩 적어내라고 해서 받아본 적이 있다. 아이들은 저마다 자신의 장단점을 깨알같이 적어냈는데, 뜻밖의 반응을 읽고 나는 미소를 지을 수밖에 없었다. 그림 공부를 하는 아이였는데, 그 아이는 투박한 필체로 “인생을 재미없게 살고 있다”라고 썼다. 나는 열여덟 살 소녀가 생각한 인생은 어떤 것이며, 그 아이가 말한 ‘재미없는 인생’은 어떤 것일까를 잠깐 생각하다 말았다. 도대체 재미있는 인생이란 어떤 걸까. ‘재미없는 인생’이라면 나도 안 빠진다? 어떤 이들은 인생을 재미있게 사는 방법 가운데 하나로 이른바 ‘주색잡기’를 들 수도 있을 것이다... 2026. 1. 16.
[순국] 이육사, 베이징의 지하 감옥에서 지다 육사, 1944년 1월 16일 베이징 일본 총영사관 지하감옥에서 순국1944년 오늘 새벽 5시, 베이징(北京)의 일본총영사관 지하 감옥에서 한 조선 청년이 눈을 감았다. 그는 ‘겨울’을 봄을 예비하고 있는 ‘강철로 된 무지개’로 여겼던 사람, ‘청포도’와 ‘광야’를 노래했던 시인 이육사(李陸史, 1904~1944)였다. 향년 40세. 1943년 4월에 베이징으로 온 육사는 충칭(重慶)과 옌안(延安)을 오가면서 국내에 무기를 반입할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7월에 모친과 맏형의 소상(小祥)에 참여하러 귀국했다가 늦가을에 일경에 체포된 뒤 베이징으로 압송되어 새해를 맞은 지 16일 만에 육사는 마침내 쉼 없는 투쟁의 삶을 마감한 것이었다. 육사, 일본총영사관 지하감옥에서 지다 육사의 시신을 수습한 이는 항일 .. 2026. 1. 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