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땅에서 평교사로 살아가기
3월 인사발령에서 평교사에서 교감으로 승진 발령을 받은 이들이 얼마나 되는지는 모르겠다. 거기 아무런 관심이 없는 탓이다. 누가 교감이 되었건, 누가 교장이 되건 그건 나와는 무관한 일이다. 유유상종(類類相從)이라고 주변의 동료들도 비슷한 이들로 넘치니 그런 쪽의 뉴스엔 캄캄하기만 하다.
교직에 들어온 지 햇수로는 25년째다. 통상의 경우라면 승진이 남의 얘기가 아닐 터이다. 그러나 설사 거기 뜻을 둔다고 해도 까먹은 세월 덕분에 후배들보다 호봉이 낮은 터라 언감생심이다. 무엇보다도 우리는 승진과는 무관한 삶을 살아온 것이다.
몇 해 전이다. 부산에서 처가 행사가 있어 갔더니 처사촌 몇이 나를 보더니 반색하고 묻는다. 자형, 이제 교감 될 때 된 것 아닌가요? 어이가 없어서 대놓고 지청구를 먹였다. 야, 이 사람아! 내가 그런 길로 살아오지 않은 거 몰랐는가? 그제야 이 친구들, 뒤통수를 긁적이면서 민망해했다.
10여 년 전만 해도 가깝게 지낸 관리자들은 내게 넌지시 ‘교육 전문직’에 도전해 보는 게 어떠냐고 권유하기도 했다. 그러나 나는 쓴웃음으로 답을 대신했다. 그들은 선의로 건넨 말이지만, 어쩌면 그건 내가 살아온 삶에 대한 부정일 수도 있었던 까닭이다. 나는 당신이 살아온 삶에 동의하지 않지만, 그 삶을 부정하진 않는다. 마찬가지로 당신도 내게 그러길 원한다…….
‘부장’은 직급이 아니라 ‘보직’이다
교장·교감 등의 관리자를 제외하면 학교엔 직급이 따로 없다. 역할이나 학년을 맡은 부장 교사가 있지만, 이는 보직일 뿐이다. 따라서 학교엔 관리자 외에는 모두가 ‘교사’로서 동료일 뿐이다. 물론 보직교사가 결재 과정의 일부를 차지하고 있는 건 사실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그게 상위 직급이라고 볼 수는 없다. 보직은 누구나 받을 수 있는 직위일 뿐이니까.
애당초 부장 교사는 공립학교에선 ‘주임’ 또는 ‘과장’이라 불리었다. 교무주임이나 학생과장 등의 방식으로 불린 이 호칭은 나중에 서울 지역부터 ‘부장’으로 격상되었던 것 같다. 보직인데도 교감·교장으로 승진하지 않으면 평교사로 교직을 마치는 게 다반사다 보니 일종의 ‘신분 격상’의 욕구가 있었는지는 모르겠다.
교무부장, 연구부장, 학생부장 따위의 호칭을 명함에 박고 다니면 주임이나 과장 따위의 옹색함을 덜 수는 있었을까. 졸지에 보직 교사들은 대기업의 부장을 연상시키는 호칭으로 불리게 되었으니 그게 립서비스라면 립서비스였다. 주임 또는 과장으로 불리던 서무과장은 서무실이 행정실로 바뀌면서 행정실장이 되었다. 부장에다 실장까지 바야흐로 학교는 그럴듯한 계급사회로 탈바꿈한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보직의 이름이 ‘부장’이 되는 일련의 과정에 드러나는 것은 그것이 평교사 안에서의 일종의 직급분화 욕구에 부응하고 있다는 점이다. 한 교원단체에서 추구해온 ‘수석교사제’도 평교사 내부의 신분 격상 욕구와 일정한 연관되지 않나 싶다.
보직 교사에게 주어지는 수당은 매월 6, 7만 원 정도니 이는 보수에 대한 배려라고는 볼 수 없다. 결국 ‘부장’이란 호칭은 다른 평교사와는 구분되는 직급이라는 의미가 강하다. 따라서 이 호칭에는 교육계 내부의 관료제에 대한 지향이 일정부분 반영되고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일정한 보직에 따른 호칭이니 당자들을 ‘부장’이라고 부르는 게 이상할 일은 없다. 그러나 이런 저간의 사정을 고려한다면 그런 호칭을 아무 거리낌 없이 쓰는 걸 망설이지 않을 수 없다. 보직교사의 이름과 관련한 의미들을 깨우친 이후, 나는 그런 호칭을 쓰지 않는다.
부장, ‘관료제 지향’ 혹은 ‘직급분화 욕구’
‘부장’이란 호칭이 단순히 사무적인 역할을 가리키기만 한다면 그건 억지다. 이미 보직이 결정되고부터 학교 운영의 일부분에 대한 책임이 지워지면서 그 호칭은 무거워질 수밖에 없다. 그것은 원하든 원하지 않든 계급적 표지로 기능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10년 전쯤에 나는 본의 아니게 연구부장, 교무부장을 거쳤고, 전임학교에서는 학년 부장도 지냈다. 그러나 나는 동료들에게 ‘부장’이 아니라 ‘선생’으로 불러 줄 것을 요청했고, 동료들은 내 뜻을 따라 주었다. 우리는 서로를 ‘선생’으로 불렀는데 그게 내가 보직교사의 역할을 하는데 아무런 장애가 되지 않았다.
나는 우리 학년의 후덕한 학년 부장을 비롯하여 학교 안의 어떤 보직교사도 부장이란 호칭으로 부르지 않는다. 나는 단지 그들의 이름에다 ‘선생’이란 호칭을 붙일 뿐이다. ‘부장’ 대신, 그렇게 불리면 본인들은 좀 서운한지 어떤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교사를 부르는 호칭으로 ‘선생’은 최고의 부름말이다.
정년퇴임을 얼마 남겨 놓지 않은 원로 교사도 선생님이고, 올해 처음으로 보직을 맡은 교사도 선생님이다. 그들에게 부장이란 이름이 필요할 경우는 자신의 역할을 소개할 때면 족하지 않겠는가. 교무부장 김 부장을 김 선생으로, 학년 부장 박 부장을 박 선생으로 부르는 건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인 것이다.
어떤 경우에도 보직을 맡지 않기로 결심한 것은 삼 년 전이다. 보직 경력은 승진에 필요하기도 한 모양이지만 내겐 그럴 까닭이 없거니와 때로 그게 교육과 무관한 일로 골머리를 썩여야 하는 직책이기 때문이다. 나는 이제 가르치는 일 본연의 뜻을 좇고 싶고 거기에 몰두하고 싶기도 했다.
굳이 보직을 사양할 일도 물론 없다. 관리자들이 내게 보직을 제의할 일이 전혀 없으니 말이다. 학교에서 나이가 많은 이들은 모두 무보직이다. 개중에는 이태쯤 후면 정년으로 학교를 떠나셔야 하는 분들도 있다. 이분들은 나이나 경력과 무관하게 묵묵히 자기 역할을 다한다. 그리고 때가 되면 학교를 떠날 것이다.
누구에게나 승진이 ‘필수’인 것은 아니다
한때, 교감으로 승진하지 못하고 평교사로 정년 퇴임하는 선배 교사들을 측은하게 바라보는 시기가 있었다. 반드시 그래서는 아닐 터인데, 얼마나 무능했으면……, 하는 분위기가 은연중에 남아 있었다. 곤혹스럽기는 정년을 맞은 이도 마찬가지였다. 승진을 위해 노력했다가 실패했든, 승진을 염두에 두지 않고 살았든 민망함은 다르지 않았다.
교사들 대부분이 승진을 위해 질주하지만, 아예 처음부터 그것과 무관하게 자유로운 삶을 누렸던 이들도 없지 않았다. 그러나 이들도 말년에는 자신을 바라보는 후배들의 눈길이 부담스러웠을 것이다. 승진을 위해 애쓰다가 중도 포기한 사람을 포함하여, 승진을 염두에 두지 않고 살았던 교사들을 가리켜 ‘교포(교감을 포기한 사람)’라고 불렀던 시기도 있었다.
기본적으로 일정한 경력을 쌓으면 ‘승진’하는 것은 ‘과정의 일부’로 이해하던 때다. 그래서 그 과정을 포기한 이들을 일종의 일탈자로 받아들이는 분위기였던 것 같다. 그러나 교원노조가 생기면서 이런 학교의 관행은 한 차례 무너져 버린다. 초기부터 교원노조 운동에 참여했던 활동가들은 애당초 승진과는 무관한 삶을 살았고, 그런 변화의 기운이 자연스레 학교 사회에 녹아든 것이다.
언제부터일까, 더 이상 평교사로 정년을 맞이하는 이들을 연민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일은 드물어졌다. 젊은 교사들을 중심으로 의연하게 교단을 떠나는 이들 선배를 기리기도 했다. 승진은 이제 일정 경력을 쌓은 교사들이 필수적으로 거쳐야 하는 과정이 아니라 선택이 된 것이라고 하면 지나칠까.
주변에는 여전히 승진을 꿈꾸는 이들이 적지 않다. 그들은 자기 생활의 상당 부분을 승진을 위한 활동에 투자한다. 평정권자인 학교장의 근무평정은 ‘1등급 수(秀)’를 필수적으로 받아야 하고, 연구점수와 벽지 점수, 보직 점수 등도 체계적으로 관리하여야 한다.
그런데 국외자의 눈으로 볼 때 그 길은 만만치 않은 길이다. 그들의 눈물겨운 노력은 때때로 동료들의 신망을 잃는 걸 감수해야 하고, 경쟁자와는 교장에 대한 충성 경쟁을 벌여야 한다. 점수를 위해서라면 교육의 주체로서 자기 정체성 따위를 내버려야 하는 사태에 이를 수도 있다.
그것이 이른바 ‘교포’들이 승진에 목을 매기 꺼리는 이유 중의 하나다. 그들은 승진을 포기하는 대신 ‘자유로운 삶’과 간섭받지 않는, 자신의 정체성을 지키는 길을 선택한다. 시간이 갈수록 이런 이들이 늘어나는 추세임은 삶을 새롭게 바라보려는 가치관의 변화에서 비롯되는 듯하다.
교단에서의 삶의 성패는 결코 승진 여부로 갈라지는 것이 아니라는 건 분명하다. 일반적인 관점에서라면 교감을 거쳐 교장을 지내고 퇴임하는 모양이 한결 좋아 보일지는 모르지만, 정작 현장을 지키는 교사들의 생각은 다른 것 같다.
승진 여부가 교단에서의 ‘성패’를 가르는 것은 아니다
어쩌다 보니 나는 그간 여러 학교에서 정년을 맞은 선배 교사들을 보아왔다. 특히 교장의 퇴임은 모두 다섯 차례나 겪었다. 어떤 형식으로든 퇴임식을 마치고 떠나는 그들을 배웅하면서 느낀 것은 일종의 환멸이다. 유감스럽게도 나는 그들 중 단 한 사람도 마음으로 배웅하지 못했다. 그들이 떠나간 다음, 후배 교사들이 벌이는 후일담은 절대 유쾌하지 않다.
재임 중에 그가 보였던 불합리와 억지, 편협하고 비상식적인 경영 관리, 탐욕으로 점철된 회계 관리 등으로 인해 그들은 마치 온갖 불합리와 비리의 반면교사처럼 비친다. 아무리 접고 들어가도 마음으로 경의를 바칠 만한 이를 겪지 못한 것은 나만의 불운일까. 돈 문제에 담백했던 이들은 그나마 후한 점수를 받았으니 다행이라면 다행이다.
퇴임식을 마치고 그들을 떠나보내며 나는 불현듯 달려드는 환멸을 가눌 수 없었다. 아이들은커녕 후배 교사들로부터 단 한 뼘의 존경도 받지 못하고 떠나는 삶일진대, 그들이 받는 국가 훈장과 사십몇 년의 세월이 무슨 소용이 있는가. 그것은 그가 받아든 자기 삶의 성적표가 아니던가 말이다.
그러고도 세월이 많이 지났다. 10여 년 전에 비기면 터무니없는 관리자도 많이 줄긴 했다. 그러나 교사들이 모이는 자리에서 안줏감으로 떠오르는 각급학교의 관리자들 얘기를 들어보면 세월은 여전히 거기쯤에서 제자리걸음을 하는 게 아닌가 싶다.
언제쯤 내가 학교를 떠나게 될지는 알 수 없다. 정년까지 갈 것인지, 아니면 한두 해 일찍 떠나게 될는지는 아직도 결정하지 못했다. 그러나 두려운 것은 비록 평교사로 학교를 떠날지라도 나를 마음으로 배웅해 주는 후배 교사가 몇이나 될 것인가 하는 점이다. 지난 적지 않은 세월 동안, 내가 쏟아낸 말들은 다시 부메랑이 되어 내 뒤통수로 꽂히지는 않을까…….
나이를 먹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저 세월 가기만 기다려도 생물학적인 나이야 한 살씩 더해지는 것이니까. 그러나 지혜로워지는 것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주책과 망발 없이 늙어가는 것도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새로 봄을 맞으면서 나는 문득 두 가지 사실을 은근히 꿈꾸어 본다. 교직을 마치기 전에 마음으로 배웅하고 싶은 교장, 교감을 한 분이라도 만나고 싶은 것이 하나요, 언제 어느 때 떠나더라도 한두 사람쯤, 후배 교사로부터 마음의 배웅을 받고 싶다는 게 그것이다. 그러나 이 소박한 바람도 쉬 이루어질 것 같지 않으니 불현듯 스산해지는 마음을 가누기 어렵다.
2009. 3. 17. 낮달
<오마이뉴스>에 실린 기사의 제목은 위에 보듯 “학교에 부장·실장이 어딨어? 다 선생이지”다. 기사 제목은 편집자의 권한이니 이러쿵저러쿵할 것은 못 된다. 어떻게 생각하면 그게 기사의 내용과 더 가깝다는 느낌도 없잖아 있다.
나는 학교가 관료사회처럼 보이는 이유로 부장과 실장을 이야기했을 뿐, 일반 행정직인 실장에 대해 이의를 제기한 것은 아니다. 한편으로 승진의 한 과정처럼 인식되는 부장을 거치며 이루어지는 학교 안 풍속도를 이야기하고자 했을 뿐이다.
뜻밖에 많은 분이 기사에 댓글을 달아 동감을 표시해 주었다. 대구의 어느 고등학생의 댓글이 기억에 남는다. 아이들도 알 것은 다 아는구나, 그런 생각을 했다. 어떤 독자는 개인적으로 편지를 보내 동감과 경의를 표하기도 했다. 멀리 있는 옛 동료들도 안부를 전해 주었다.
그러나 남는 것은 쓸쓸함이다. 여전히 학교는 마치 잘 짜인 톱니바퀴처럼 기계적으로 돌아간다. 관행과 관성에 묻힌 이 풍경에 어떤 고민도 묻어나지 않는 듯하다. 성찰도 반성 따위가 낄 여지도 없는 것일까. 그 톱니의 한 부분으로 나는 보충수업에 들어가고, 문제를 풀고 형식만 남은 서류를 만들곤 한다.
교원소청심사위원회는 지난해 12월 학생과 학부모들의 일제고사 선택권을 존중했다 파면·해임당한 교사 7명에 대해 ‘해임’으로 최종 처분을 내렸다고 한다. ‘퇴직금 몇 푼 정도의 차이밖에 없는 징계 양형’을 결정하고 소청심사위는 자기 역할을 다했다고 만족하고 있을까.
그 병아리눈물 같은 심사 결과에 애당초 ‘정의’나 ‘양심’ 따위의 덕목이 개입될 여지는 없었던 게다. 그게 현 정부의 코드를 충실하게 따르고 있는 ‘영혼 없는’ 사람들의 한계일 뿐이다. 어저께 해직 교사들의 겨울나기를 다룬 ‘MBC 스페셜’을 나는 일부러 보지 않았다. 그런 아픔과 상처를 다시 확인하고 싶지 않아서다.
그러나 알고 있다. 마땅히 그 상처를 확인하는 걸 두려워하지 말아야만 같은 고통이 되풀이되지 않으리라는 걸. ‘경제’, ‘실용’ 등과 같은 외적 요인들로 민주주의를 이해하는 일이 얼마나 위험한 일인가 하는 것도……. 새삼, 정의나 양심이란 정권의 코드와 무관하게 존재하는 절대적 가치라는 걸 역설적으로 확인하는 시간이다.
'이 풍진 세상에 > 교단(1984~2016)에서'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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