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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바람과 먼지의 세상, 그 길 위에 서서

이 풍진 세상에 /풍경140

의성 조문국(召文國) - 잃어버린 고대 왕국을 찾아서 [가을 나들이 ③] 금성면 대리리 조문국 사적지 그날, 나들이는 벗과 만나고자 한 탑리(塔里)에서 끝났다. 탑리리는 의성군 금성(金城)면의 행정구역이지만 외지 사람들에게는 ‘금성’보다 훨씬 더 잘 알려진 곳이다. 인근 ‘도리원(桃李院)’은 알아도 ‘봉양(면)’을 모르는 것과 마찬가지로 외지인들은 탑리는 알아도 금성은 잘 모른다. 의성 탑리리 오층석탑은 통일신라 시대의 작품이다. 각부의 석탑재가 거의 완전하며, 전탑(塼塔)의 수법을 모방하는 한편, 일부에서는 목조건물의 양식을 보여 우리나라 석탑 양식의 발달을 고찰하는데 귀중한 자료다. 경주 분황사 모전 석탑(국보 제30호) 다음으로 오래된 석탑이다. 국보 제77호. 그간 탑리를 지날 때마다 비계로 가려진 탑을 바라보며 아쉬워하곤 했는데 탑은 2012년 전.. 2019. 9. 21.
장미와 찔레, 그리고 이연실의 노래들 화려 ·열정의 장미와 소박한 야생화 찔레 5월은 흔히들 ‘장미의 계절’이라고 한다. 그러나 내겐 5월이 ‘찔레의 시절’로 더 정겹게 다가오는 때다. 장미가 주택가 담장 위와 길가의 펜스에 화려한 자태를 드러낸 건 5월로 들면서다. 그러나 숲길을 다니면서 눈여겨보아 두었던 찔레가 벙글기 시작한 것은 지난주부터인 듯하다. 도시의 5월은 ‘장미가 대세’ 장미는 도시 곳곳에서 이미 대세다. 그 선명하고 도발적인 빛깔이 사람들의 시선을 붙들기 때문일까. 주택가 골목에도 아파트나 공공건물의 울타리에도 장미는 흐드러지게 피어 있다. 흰 페인트를 칠한 울타리 사이로 빨간 장미는 그 빛깔만으로 튀어 보인다. 그러나 도시의 거리에서 찔레를 보기는 쉽지 않다. 찔레가 양지바른 산기슭, 골짜기, 냇가 등지에서 피어나는 꽃이어.. 2019. 9. 18.
백장청규(百丈淸規)를 지키는 비구니의 수행처 청도 호거산(虎踞山) 운문사(雲門寺) 기행 운문사는 청도에 있다. 이 진술은 한 마디로 ‘뜬금없다’. 그러나 그 진술은 내게 ‘조계사는 서울에 있다’는 진술과는 전혀 다른 뜻으로 이해된다. 그것은 마음만 먹으면 금방 달려갈 수 있는 두 시간 이내의 거리에, 그것도 같은 경상북도 안에 있다는 전제를 포함하기 때문이다. 그 전제 안에는 그런데도 내가 아직 운문사를 찾지 못했다는 사실도 물론 포함된다. 처음 찾은 운문사 정작 가보지 못한 절집인데도 운문사는 내게 ‘비구니 사찰’이라는 이미지로만 떠오른다. ‘구름의 문[운문(雲門)]’이라는 이름이 주는 울림도 예사롭지 않다. 나는 늘 운문사를 생각하면 ‘파르라니 깎은 머리’, ‘정작으로 고와서 서러’운 ‘두 볼’의 여승들의 수행 정진과 ‘복사꽃 고운 뺨에 아롱질.. 2019. 9. 7.
벚꽃과 ‘사쿠라’ 벚꽃에 대한 우리의 ‘애증’을 생각한다 벚꽃의 계절이다. 남도의 군항 진해에서 시작된 벚꽃의 물결은 바야흐로 북상 중이다. 지난주에 몽우리가 한창이던 교정의 벚꽃은 지난 월요일 출근해 보니 만개해 있었다. 다음날 비 소식이 있다고 해서 부랴부랴 사진기를 챙겨 와서 사진을 여러 장 찍었다. 비가 내리고 다시 총선날인 휴무일을 지나면 벚꽃은 슬슬 지기 시작할지도 모른다 싶어서였다. 그러나 목요일 출근하니 교정의 벚꽃은 절정이었다. 그나마 분홍빛이 드문드문 보이던 월요일 날과 달리 벚꽃은 더 풍성한 흰빛이었다. 가까이서 보는 것보다 멀리서 바라보는 벚꽃의 물결은 온통 넉넉한 백색의 축복이다. 우리 선인들이 벚꽃이 아니라 배꽃을 더 아름답게 여긴 까닭은 벚꽃이 요즘처럼 흔하지 않아서였을까. 이조년과 이매창(계랑.. 2019. 9. 6.
메밀꽃과 봉평, 그리고 이효석 처음 만난 봉평의 메밀꽃, 인파에 질려 돌아오다 지난 토요일에는 아내와 함께 강원도 평창을 다녀왔다. 뒤늦게 쉬게 된 주 5일제 휴무였고, 아침에 받은 1면에서 만난 봉평의 메밀꽃에 ‘시선이 꽂혀서’였다. 중앙고속도로를 타고 원주까지 가서 다시 영동고속도로를 탔는데, 봉평에 도착하기까지 두 시간이 좋이 걸렸다. 굳이 메밀꽃 구경을 하자고 나선 것도 아닌, 그냥 무작정 떠난 길이었다. 효석문화제를 따로 염두에 둔 것도 아니었다. 내가 살고 있는 안동 지역의 축제도 제대로 한번 참가해 보지 않는 타고난 게으름이 어디 가겠는가, 나는 인파가 모이고 사람이 부딪히는 자리는 멀찌감치 돌아가는 편인 사람이다. 봉평 나들목에서 내려 봉평면 입구에 들어서자, 이미 차들의 행렬이 굼벵이 걸음 중이었다. 시가지를 관통하는.. 2019. 9. 6.
‘김광석 길’에서 만난 가객 김광석 [달구벌 나들이] ② 대구 대봉동 ‘김광석 길’을 다녀와서 삼일절 날, ‘대구 근대 답사’ 길에 대구광역시 중구 대봉동의 ‘김광석 거리’를 다녀왔다. 거리가 조성된 지 오륙 년이 지났는데도 나는 초행이었다. 해마다 그가 떠난 1월에는 그에 대한 추모가 이어지고, 그를 기리기 위해 조성된 거리가 화제가 되는데도 나는 왜 거기에 가보겠다는 생각을 한 번도 하지 않았을까. 언제든 마음만 먹으면 반나절이면 다녀올 수 있을 만큼 가까운 데이기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김광석(1964~1996)에 대한 내 관심이 평균에 미치지 못해서일까. 나는 여느 사람이 김광석의 노래를 좋아하는 만큼은 그의 노래를 좋아하고 즐겨 듣는다. 그러나 그의 음반을 사거나 음원을 내려받은 적은 없으니 나는 역시 대중음악의 애호자로 자처하기에.. 2019. 9. 5.
다시 무섬에서 영주시 문수면 수도리 ‘무섬마을’의 외나무다리 솟구쳐 흐르는 물줄기 모양 뻗어 내린 소백산 준령(峻嶺)이 어쩌다 여기서 맥(脈)이 끊기며 마치 범이 꼬리를 사리듯 돌려 맺혔다. 그 맺어진 데서 다시 잔잔한 구릉(丘陵)이 좌우로 퍼진 한복판에 큰 마을이 있으니 세칭 이 골을 김씨 마을이라 한다. 필재의 집은 이 마을의 종가(宗家)요. 그는 종손(宗孫)이다. 필재의 집 앞마당에 있는 느티나무 아래 나서면 이 마을이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지금 느티나무 밑에서 내려다보이는 그 넓은 시내가 오대조가 여기 자리 잡을 때만 해도 큰 배로 건너야 할 강이었다고 했다. - 정한숙 단편소설 「고가(古家)」 중에서 시치미를 떼고 작가가 이르고 있는 작품의 배경이 영주시 문수면 수도리 무섬마을이다. 작품에서야 ‘큰 배로 건너.. 2019. 9. 4.
‘조율시리(棗栗枾梨)’의 으뜸 ‘대추’ 이야기 주력(呪力) 갖춘 , 제수 과일의 으뜸 ‘대추’ 한가위에 처가에 갔더니 마당 한쪽에 심어놓은 대추나무에 대추가 푸지게 달렸다. 아직 어린나무인 데다 잔뜩 달린 대추 무게 때문에 가지가 휘어질 만큼. 많이 달린 대신 씨알은 잘다. 장모님께선 붉은빛이 돌면 따내야 한다고 하셔서 꼭지 주변이 불그죽죽하게 익기 시작하는 걸 달려들어 얼마간 따 왔다. 마을을 빠져나오는 길섶에도 대추나무가 이어졌다. 관리를 제대로 해서인지 씨알로 굵은 놈은 실팍하다. 역시 아직 익으려면 얼마간의 햇볕이 더 필요한 듯했다. 집에 가져온 대추는 대그릇에 담아서 베란다에 내놓았다. 대추 볼 붉은 골에 밤은 어이 떨어지며, 벼 벤 그루터기에 게는 어찌 내리는고. 술 익자 체 장사 돌아가니 아니 먹고 어이하리. 대추나무 가지가 휘도록 달린.. 2019. 9. 4.
절집 안으로 들어온 숲, 직지사(直指寺) 황악산 직지사 기행 망자에겐 서운할 터이나 호상(好喪)의 죽음이란 반드시 슬픈 것만은 아니다. 김천에서 나서 자라 만만찮은 보수의 구각과 맞서 싸워 온 선배가 부친상을 입었고, 지난 주말, 선배 한 분을 모시고 그 문상을 다녀왔다. 향년이 84년이라면 사람에 따라 ‘수(壽)했다’고 할 수도, ‘조금 아쉽다’고 할 수도 있는 다소 애매한 시간인 듯하다. 경상도에선 아직도 흔히 볼 수 있는 굴건제복의 상주들이 감정을 담지 않고 느리게 뱉는 호곡(號哭)이나 그들과 맞절을 하고 앉아서 나누는 문상객들의 대화에서 묻어나는 것은 형식화된 슬픔이다. 그러나 의례적인 슬픔과 위로의 수사(修辭)에서 가식이나 위선이 느껴지지는 않는다. 노인들의 죽음이란 늘 준비되어 있는 일정 같은 것이며, 그 죽음으로 말미암게 되는 산 .. 2019. 9. 4.
찔레, 그 슬픔과 추억의 하얀 꽃 찔레꽃 이미지 바야흐로 찔레꽃의 시절이다. 학교 뒷산 언덕바지에 찔레꽃이 흐드러졌다. 장미과에 속하지만 줄기와 잎만 비슷한 동북아시아 원산의 이 꽃(Rosa multiflora)은 보릿고개의 밤을 하얗게 밝힌 꽃이었다. 연중 가장 힘들고 배고프던 시기에 피었다는 이 꽃에는 저 절대 빈곤 시대의 슬픈 추억이 서려 있다. 찔레꽃의 추억과 슬픔 찔레꽃을 먹기도 했다지만, 나는 찔레순 껍질을 벗겨 먹어본 기억밖에 없다. 찔레꽃은 5월에 흰색 또는 연한 붉은 색으로 꽃을 피운다고 하는데 연분홍 찔레꽃을 아직 한 번도 만나지 못했다. 양지바른 산기슭, 골짜기, 냇가 등지에 피는 이 꽃의 소박한 흰 빛은 좀 슬프다. 그래서일까. 송찬호 시인이 노래한 ‘찔레꽃’은 저 잃어버린 시절의 사랑과 회한을 노래한다. ‘너’는 .. 2019. 8. 26.
산당화(山棠花), 내게 와 ‘꽃’이 되었지만 명자꽃 혹은 산당화 자색이 남달랐던 꽃, '명자' 명자나무를 처음 만난 건 2007년, 안동에 살 때다. 내가 사는 아파트 엉성한 뜰에 키 작은 관목 한 그루가 유난히 눈에 띄었다. 빨갛게 부풀어 오른 꽃봉오릴 눈여겨 두었는데, 어느새 꽃을 피웠다. 무심코 지나다니다 그 자색(姿色)이 여느 꽃과 다르다는 걸 알았다. 사진을 몇 장 찍었고, 나무 이름을 알아봐야지 하다가 깜빡 잊어버렸다. 그러다가 어느 날, 오블의 이웃이 쓴 글에서 ‘명자나무’라는 이름과 모습을 본 순간, 그게 내 마음에 담아 두었던 꽃이라는 걸 알았다. 바로 뜰로 나가 보았는데, 아직 꽃봉오리조차 제대로 영글지 않은 상태였다. 그러다 거기 꽃이 핀 걸 확인한 게 한 열흘쯤 전이었다. 인터넷을 검색해서 명자나무를 확인하고 나니 웬걸, 아파.. 2019. 8. 25.
그, 혹은 나의 초가삼간(Ⅱ) 누구나 꿈꾸는 우리의 초가삼간 내 친구 장(張)이 남 먼저 명예퇴직을 하고 의성의 어느 골짜기로 귀촌한 지 이태째다. 도시에서 나고 자라 도시를 전전하며 살아온 그가 시골 산등성이의 복숭아밭 육백여 평을 사고 거기다 조립식 주택과 황토방을 짓고 살 거라 했을 때 반신반의한 것은 나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시골에서 나고 자라 농사일은 그만두고라도 시골살이의 속내를 잘 아는 것도 아니요, 어디 주말농장 같은 데서 텃밭 농사의 경험이 있는 것 같지도 않았다. 땅을 사고 거기다 집을 짓기 시작하는 것[관련 글]을 보면서도 솔직히 내겐 그가 자신이 살아온 가락에 썩 어울리는 일을 하는 것으로 보이지는 않았다. [관련 글 : 그, 혹은 나의 초가삼간(Ⅰ)] 그러나 그는 그 맨땅에다 15평의 훌륭한 조립식 본채를 세웠.. 2019. 8. 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