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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바람과 먼지의 세상, 그 길 위에 서서

이 풍진 세상에 /풍경140

6월의 연꽃 구경 근무하는 학교 교정의 연꽃 학교 뒷산 기슭에 연못이 하나 있다. 학교 꽃이 수련(睡蓮)이어서 ‘옥련지(玉蓮池)’라 불린다. 물론 인공으로 조성한 못인데, 드는 물도 빠지는 물도 없으니 그 물의 사정은 짐작할 수 있겠다. 이 학교를 나온 딸애는 서슴지 않고 ‘4급수’라고 말할 정도다. 어느 날 보니 그 4급수 연못에 연꽃이 피고 있었다. ‘진흙 속에서 피는 꽃’이라는 명성이 헛되지 않은 것이다. ‘진흙과 연꽃’이란 비유는 ‘번뇌와 해탈’처럼 양극을 이루지만 사실은 서로 떨어질 수 없는 불가분의 관계 즉 ‘불이(不二)’라고 하는 불교적 인식의 표현이다. 나는 주변에서 연꽃을 전혀 보지 못하고 자랐다. 정확히 기억할 수 없지만, 처음으로 연꽃을 구경한 게 스무 살이 넘어서인 듯하다. 요즘은 대규모로 연을 재배.. 2020. 6. 14.
6월에 익어가는 것들, 혹은 ‘화해와 평화’ 6월, 익어가는 꽃과 열매, 그리고 남북의 화해 6월, 익어가는 것들 6월이다. 한동안 다투어 피어나던 꽃들도 고비를 맞았다. 찔레에 이어 온 동네를 붉게 물들이던 장미꽃이 아마 동네에서 만난 마지막 봄꽃이 아닌가 싶다. 어느 날 불타오르기 시작한 장미는 내가 사는 아파트에서 시작하여 인근 공립 중학교, 그리고 산 아래 이어지는 주택가 담장으로 번져갔다. · 동네 한 바퀴-매화 지고 앵두, 살구꽃까지 동네 한 바퀴-매화 지고 앵두, 살구꽃까지 이미 곁에 당도한 봄을 주절댄 게 지난 15일이다. 그리고 다시 보름이 지난 3월의 막바지, 이제 꽃은 난만(爛漫)하다. 산으로 가는 길모퉁이 조그만 교회 앞에 서 있던 나무의 꽃봉오리가 벙글고 � qq9447.tistory.com · 동네 한 바퀴 ② 살구와 명자.. 2020. 6. 12.
송홧가루와 윤삼월, 그리고 소나무 송홧가루와 박목월 시 윤삼월, 그리고 소나무 이야기 박목월의 시 「윤사월」을 배운 건 고등학교에 입학하고 난 뒤 첫 국어 수업에서다. 1972년이었고, 국어과 담당 교사는 도광의 시인(관련 글 : 옛 스승 도광의 시인과 제자들)이셨다. 제2차 교육과정 시기였는데 그 시는 국판의 조그만 교과서 맨 앞쪽에 ‘권두시’ 형태로 실려 있었다. 「윤사월」을 배우던 시절 몸소 시를 쓰시는 분이시라 과연 선생의 강의는 남달랐다. 그 시 한 편을 배우는데 한 시간은 너끈히 걸렸으리라. 선생께선 대단한 열정으로 시의 느낌과 의미를 아주 선명하게 보여주시려 했던 것 같은데, 정작 그때 배운 내용은 거의 기억에 남아 있지 않다. 시골에서 자랐지만 내게 ‘송홧가루’는 낯설었다. 글쎄, 어릴 적부터 지게를 지고 땔나무를 해야 했.. 2020. 5. 23.
장미보다, 다시 찔레꽃 5월, ‘찔레꽃의 계절’ 해마다 찔레꽃이 필 무렵이면 사진기를 둘러메고 여기저기 찔레꽃을 찾아 나서곤 해 왔다. 철 되면 피는 꽃이 올해라고 달라질 리 없건마는 4월이 무르익을 때쯤이면 나는 고개를 빼고 산기슭이나 골짜기를 살펴보곤 하는 것이다. * 찔레, 그 슬픔과 추억의 하얀 꽃(2010/05/28) * 장미와 찔레, 그리고 이연실의 노래들(2015/05/16) 그러나 찔레꽃을 그리기 시작하는 시기는 언제나 반 박자쯤 늦다. 조금 이르다 싶어 잠깐 짬을 두었다 다시 찾으면 이미 그 하얀 꽃은 조금씩 시들어가고 있었던 게다. 올해도 다르지 않았다. 무슨 일로 바빴나, 그저께 며칠 만에 오른 산어귀에서 만난 찔레꽃은 바야흐로 그 절정의 시기를 막 넘고 있는 참이었다. 지난 9일 치른 대선이 ‘장미 대선’.. 2020. 5. 20.
나들이 못 권하는 봄, 그래도 ‘황매산 철쭉’ 오랜만에 다시 찾은 5월의 황매산... 하늘과 맞닿을 듯한 진분홍빛 화원 *PC에서는 ‘가로 이미지’는 클릭하면 큰 규격(1000×667픽셀)으로 볼 수 있음. 연초에 코로나19 발병 소식을 들었을 때만 해도 그게 ‘강 건너 불’이 아니라, 내 일상의 삶을 옴짝달싹 못 하게 하리라고 여긴 이는 아무도 없었을 것이다. 모두가 눈에 보이지 않는 바이러스쯤이야 어느 날 눈 녹듯 스러질 것이고 잠시 멈칫했던 나의 일상은 곧 이어지리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3월에 각급 학교 개학이 미루어질 때만 해도 사태가 가라앉으리라는 기대를 접지 않았다. 그러나 5월도 중순이건만, 여전히 아이들은 학교에 가지 못하고 있다. 코로나19 발병 백일을 넘기면서 경제는 물론이거니와 일상생활마저 무너지면서 사람들은 저마다 한정된 공간.. 2020. 5. 19.
팔공산 자락의 숲길 팔공산 자락의 숲길을 찾아서 오마이뉴스 블로그의 바지런한 이웃, 의 주인장 초석 님이 팔공산 자락을 한 바퀴 돌고 그 답사기를 쓴 게 얼마 전 일이다. 정작 은해사조차 가보지 못한 나는 그 부속 암자인 거조암의 영산전을 마음에 담아 두었고, 5월 초순에 거기를 다녀왔다. 그러나 석탄일 준비로 거조암은 연등 천지였다. 영산전 앞에 철 구조물을 앉히고 연등을 빽빽하게 달아놓았다. 당연히 사진은커녕 정면에서든 측면에서든 영산전을 제대로 바라볼 수가 없었다. 내친김에 은해사와 운부암, 백흥암을 돌아왔는데 팔공산 자락은 넓기도 하지, 빽빽한 숲 사이로 난 길이 매우 아름다웠다. 곧거나 완만하게 휜 늙은 소나무, 길가에 빽빽하게 들어선 교목들, 끊임없이 구부러지고 휘어 돌아가는 숲길은 찬연한 신록, 그 푸른빛의 행.. 2020. 5. 12.
순애보(殉愛譜) 묘비명과 4월의 신록 동네 뒷산의 순애보 묘비명 “내가 한 십 년쯤 아프기라도 하면 당신은 내가 꼴도 보기 싫겠지?” 어느 날인가 아내가 내게 불쑥 그렇게 묻더니 대답 따위 안 들어도 그만이라는 듯 아퀴를 지었다. “아니, 십 년이 뭐야, 1년만 자리보전을 해도 진절머릴 낼 거야, 당신은. 틀림없어.” 느닷없는 질문에 대답이 궁해서 웬 뜬금없는 얘기냐고 퉁을 주었더니 아내는 이번에는 알 듯 말 듯 한 미소를 지으며 이야기를 시작하는 것이었다. “요기 앞산 어귀에 잘 가꾼 무덤이 있잖우? 등성이 오르기 전에. 거기 비석에 쓰인 글 읽어 본 적 없지? ‘무정한 당신’이라는 그 묘비 말이우.” “글쎄. 그런 묘비명이 있었나?” “그게 말이우. 삼십 년을 병고에 시달렸다는 마누라한테 바치는 묘비명이라는 거 아니우. 세상에 십 년도 .. 2020. 4. 27.
목계나루와 신경림의 ‘목계장터’ 충주시 엄정면 목계리, 남한강 강변의 내륙 포구 목계리 어제 우연히 목계 나루터를 다녀왔다. 원주의 토지문학공원을 거쳐 법천사·거돈사 등 절터를 돌아오던 귀갓길에서였다. 원주도 초행이었고 내비게이션이 안내하는 대로 들어간 충주 쪽도 낯설기는 매일반이었다. 오후 내내 날씨는 찌푸린 채였고, 네 시가 넘으면서 비가 찔끔찔끔 뿌려대기 시작할 무렵이었다. 강변을 끼고 달리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남한강이었던가. 오른쪽으로 제법 큰 다리 하나를 흘낏 스쳐보았다고 느꼈는데, 눈앞에 ‘목계나루터’라 새긴 거대한 돌비가 튀어 들어왔다. ‘목계’라……, 저게 신경림의 시 “목계장터”의 그 ‘목계’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고, 나는 반사적으로 브레이크를 밟았다. 내 짐작이 맞았다. 목계(牧溪)는 충주시 엄정면 목계리,.. 2020. 4. 26.
버스 종점의 할미꽃 우리 동네 버스 종점에 핀 할미꽃 집에서 한 백여 미터를 걸어 나가면 버스 정류장이 있다. 시내 여러 방면에서 오는 버스의 종착지니 이른바 종점(終點)이다. 정류장은 지금은 문을 닫은 음식점의 뜰 앞이다. 며칠 전, 버스를 기다리다가 그 뜰의 수양버들 아래 피어 있는 할미꽃을 만났다. 버스 종점에 핀 할미꽃 올봄, 거의 하루걸러 북봉산을 오르면서도 만나지 못한 할미꽃이다. 진달래는 지천으로 피어나 온 산을 붉게 물들이고 있지만 정작 할미꽃 생각은 전혀 하지 못했다. 그런데 할미꽃을 동네에서 만나다니! 얼마나 반가웠는지 거기서 스마트폰으로 사진을 여러 장 찍었다. 할미꽃이 언제부터 귀한 꽃이 되었는지는 알 수 없다. 어릴 적에 할미꽃은 진달래처럼 지천이었다. 양지바른 무덤들 주위에 다소곳이 피어나던 그 꽃.. 2020. 4. 25.
도심 골짜기에서 ‘도원경(桃源境)’을 만나다 도화 대신 살구꽃, 두엄 냄새의 ‘무릉도원’ 한 열흘쯤 전이다. 오전 쉬는 시간에 교정 안팎을 산책하다가 아닌 ‘무릉도원’을 만났다. 꽤 높은 산기슭에 자리한 학교로 오르는 길은 물매가 제법 센 언덕이다. 정문을 지나 그 내리막길을 허정허정 걷고 있는데 문득 돌린 시선에 그 언덕길 아래 골짜기가 잡혔는데, 세상에……. 언덕길 아래는 꽤 깊은 골짜기다. 반대편은 잡목이 듬성듬성 서 있는 산비탈인데 골짝 안으로는 층층이 밭을 갈아 놓았다. 거기 연분홍빛 꽃을 흐드러지게 피운 채 복숭아나무가 몇 그루 서 있었다. 햇볕은 따스했고, 낮은 골짜기에 내리는 햇살은 눈에 부셨다. 주변에도 몇 그루의 어린나무가 있었지만 만개한 복사꽃은 그것을 굽어보는 행인을 압도해 왔다. 도심에서 만난 ‘무릉도원’ 내려가 볼 만한 짬.. 2020. 4. 24.
동네 한 바퀴 ② 살구와 명자 지고 사과꽃 피다 4월도 중순, 사과꽃 피다 동네에 핀 꽃을 둘러보면서 쓴 첫 번째 글에서 ‘우리 동네 꽃 지도’ 어쩌고 하면서 건방을 떨었다. 그게 ‘건방’이란 걸 알게 된 것 이즘 들어서다. 늘 다니던 길 대신 다른 골목으로 들어서면서 새로운 꽃나무를 여럿 만났기 때문이다. 고작 그 정도를 둘러보고 ‘지도’를 들먹였으니 건방도 그런 건방이 없다. [관련 글 : 동네 한 바퀴-매화 지고 앵두, 살구꽃까지] 늘 주변을 살피며 다닌다고는 하지만 우리 눈이란 그리 믿을 바가 못 된다. 겨우내 헐벗은 나무를 보면서 그게 피워낼 꽃을 알아보는 데에는 내공이 필요하다. 새 숲길로 다니던 나는 겨우내 이쪽 길은 아무래도 생강나무가 전의 길만 못한 것 같다고 여겼다. 우리가 참꽃이라고 불렀던 진달래도 어쩌다 눈에 띌 뿐이었다. 처음에.. 2020. 4. 19.
백담사, 만해 한용운과 독재자 전두환 백담사에 남은 독재자의 자취 - 자랑일까, 치욕일까 지난 주말에 설악산을 다녀왔다. 속초 인근의 한 콘도미니엄에서 열린 자형의 칠순 가족 모임에 참석한 친지들과 함께였다. 설악산은 고교 수학여행(1973)으로, 수학여행 인솔(1985·1997)에 이은 네 번째 방문이다. 그전에는 외설악의 관광코스를 돌았지만, 이번에는 내설악의 백담사를 들렀다. 백담사(百潭寺)의 기원은 신라 제28대 진덕여왕 원년(647)에 자장율사가 설악산 한계리에 아미타 삼존불을 조성 봉안하고 창건한 한계사(寒溪寺)다. 그 뒤 이 절집은 1752년(영조 51)까지 운흥사, 심원사, 선구사, 영취사로 불리다가 1783년에 백담사로 이름을 바꾸었다. 전설에 따르면 백담사라는 이름은 설악산 대청봉에서 절까지 작은 못이 100개가 있는 지점.. 2020. 4. 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