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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바람과 먼지의 세상, 그 길 위에 서서
이 풍진 세상에 /풍경

장미와 찔레, 그리고 이연실의 노래들

by 낮달2018 2019. 9.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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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려 ·열정의 장미와 소박한 야생화 찔레

5월은 흔히들 ‘장미의 계절’이라고 한다. 그러나 내겐 5월이 ‘찔레의 시절’로 더 정겹게 다가오는 때다. 장미가 주택가 담장 위와 길가의 펜스에 화려한 자태를 드러낸 건 5월로 들면서다. 그러나 숲길을 다니면서 눈여겨보아 두었던 찔레가 벙글기 시작한 것은 지난주부터인 듯하다.

 

도시의 5월은 ‘장미가 대세’

 

장미는 도시 곳곳에서 이미 대세다. 그 선명하고 도발적인 빛깔이 사람들의 시선을 붙들기 때문일까. 주택가 골목에도 아파트나 공공건물의 울타리에도 장미는 흐드러지게 피어 있다. 흰 페인트를 칠한 울타리 사이로 빨간 장미는 그 빛깔만으로 튀어 보인다.

그러나 도시의 거리에서 찔레를 보기는 쉽지 않다. 찔레가 양지바른 산기슭, 골짜기, 냇가 등지에서 피어나는 꽃이어서일까. 내가 다니는 숲길에서도 찔레는 흔치 않다. 어쩌다 길가에서 발견되는 키 작은 찔레는 사람들 눈에 잘 띄지 않고 스쳐 가기 쉬운 꽃이기도 하다.

 

찔레(Rosa multiflora)도 장미(Rosa)과에 속하는 관목이다. 장미(薔薇)는 그보다 훨씬 포괄적인 범위, 즉 장미과 장미 속의 총칭이다. 비슷한 시기에 꽃이 피지만, 찔레의 원산지는 동북아시아 지역이지만, 야생의 장미는 주로 북반구의 온대와 한대 지방에 분포한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가 말하는 장미는 개량종으로 중세 이후에 개량하여 재배하게 된 원예종이다. 가시는 장미의 특징인데 이는 줄기의 표피세포가 변해서 끝이 날카로운 구조로 변한 것이라 한다. 한국에 관상용 서양 장미가 들어온 건 19세기 후반이고 오늘날의 장미는 8·15 광복 후에 유럽·미국 등지로부터 우량종을 도입한 것이다.

 

<화왕계>와 <한림별곡>의 장미

 

장미는 <삼국사기>, <고려사>, <조선왕조실록> 등의 기록에 언급되는바 대체로 한반도에 장미가 들어온 것은 삼국시대로 추정한다. <삼국사기> 열전의 ‘설총’ 조에 전하는 ‘화왕계(花王戒)’는 신라 신문왕 때의 설총(薛聰)이 한문으로 지은 우화적(寓話的)인 단편 산문이다.

화왕(花王)께서 처음 이 세상에 나왔을 때, 향기로운 동산에 심고, 푸른 휘장으로 둘러싸 보호하였는데, 삼춘가절(三春佳節)을 맞아 예쁜 꽃을 피우니, 온갖 꽃보다 빼어나게 아름다웠다. 멀고 가까운 곳에서 여러 꽃들이 다투어 화왕(花王)을 뵈러 왔다. 깊고 그윽한 골짜기의 맑은 정기를 타고 난 탐스러운 꽃들이 다투어 모여 왔다.

 

문득 한 가인(佳人)이 앞으로 나왔다. 붉은 얼굴에 옥 같은 이와 신선하고 탐스러운 감색 나들이옷을 입고 아장거리는 무희(舞姬)처럼 얌전하게 화왕에게 아뢰었다.

 

“이 몸은 백설의 모래사장을 밟고, 거울같이 맑은 바다를 바라보며 자라났습니다. 봄비가 내릴 때는 목욕하여 몸의 먼지를 씻었고, 상쾌하고 맑은 바람 속에 유유자적(悠悠自適)하면서 지냈습니다. 이름은 장미라 합니다. 임금님의 높으신 덕을 듣고, 꽃다운 침소에 그윽한 향기를 더하여 모시고자 찾아왔습니다. 임금님께서 이 몸을 받아 주실는지요?”

 

- <삼국사기(三國史記)> ‘열전(列傳) 설총’ 조 중에서

 

무신 집권기인 고려 말의 대표적 귀족 시가인 경기체가 <한림별곡(翰林別曲)>에도 장미는 언급된다. 신진 사류(士類)들인 귀족들의 학문적 자부심과 향락적인 풍류 생활을 노래한 제 5장(화훼)에 ‘노랑과 자주의 장미꽃’이 등장하는 것이다.

 

붉은 모란, 흰 모란, 짙붉은 모란들은 화왕이오.

붉은 작약, 흰 작약, 짙붉은 작약들은 화상이다.

능수버들인 어류(御柳), 벚나무 과에 딸린 옥매(玉梅), 노랑과 자주의 장미꽃, 지란과 영지 그리고 동백.

아! 사이사이로 피어나는 광경 그것이야말로 어떻습니까?

합죽도화인 협죽도 꽃이 고운 모습으로 두 분에 담긴 자태가,

아! 서로 어리비치는 광경, 그것이야말로 어떻습니까?

 

-경기체가 <한림별곡(翰林別曲)> 제5장

조선 세조 때의 문신 강희안은 자신의 원예서인 <양화소록(養花小錄)>에서 장미를 화목 9품계 중에서 5등에 넣고 있다. 그는 장미를 석류와 해당화 등과 함께 ‘번화한 것’으로 치고 ‘가우(佳友)’라고 불렀으니, 예나 지금이나 장미의 화려함은 다르지 않았던 모양이다.

 

장미, 3천만 년의 역사

 

장미의 재배 역사는 약 3천만 년 이상 되는 장미화석이 발견될 만큼 길고 오래다. 1900년 크레타섬 탐사 때 기원전 2000~1700년 사이에 건축된 크노소스 궁전을 발굴하면서는 장미 ‘벽화’가 발견되기도 했다. 장미는 처음에는 프레스코(fresco)화로 그려졌다.

 

장미는 영국 왕가의 문장(紋章)으로도 쓰였는데 붉은 장미와 흰 장미 문장을 각각 쓴 왕가끼리의 왕위쟁탈전은 장미전쟁(薔薇戰爭: 1455∼14858)으로 불리었다. 장미는 그 화려함에다 향으로도 사람들을 사로잡았다. 장미 ‘향수’와 장미 ‘목욕’은 클레오파트라뿐 아니라 네로도 즐겼다고 한다.

소박한 ‘서민’의 꽃, 찔레

 

이렇듯 화려한 자태와 향기로 유명한 장미가 서구의 귀족 같은 꽃이라면 찔레는 그야말로 소박한 서민의 꽃이다. 개량되어 여염집 담장이나 건물의 울타리에 심어놓은 장미와 달리 찔레는 양지바른 산기슭, 골짜기, 냇가 등지에 자생하는 꽃이다. 애당초 굳이 개량해 관상용으로 쓸 만한 꽃이 못되었던 것일까.

동시 ‘찔레꽃’은 ‘고향의 봄’을 쓴 이원수가 1930년에 잡지 <신소년>에 발표한 노래다. 찔레꽃은 ‘누나가 일가는 광산 길’에 하얗게 핀 꽃이다. 소년은 누나를 맞으러 ‘저무는 산길에 나왔다가’ 하얀 찔레꽃을 따 먹는다. 글쎄, 찔레 순은 몰라도 찔레꽃을 따 먹는 건 낯설다.

 

찔레꽃의 ‘슬픔과 눈물’

 

누나가 일가고, 돌 깨는 광산은 어디였을까. 장성한 처녀가 험한 광산에 일을 가지 않으면 안 되는 시대, 일제 강점기의 어둡고 우울한 풍경은 누나를 기다리며 찔레꽃을 따 먹는 허기진 남동생의 모습과 겹치면서 슬픔으로 물든다.

 

1920년대에 이태선이 쓰고 박태준이 곡을 붙인 동시 ‘가을밤’을 원곡으로 하고 이 ‘찔레꽃’의 노랫말을 고쳐 써서 만들어진 노래가 가수 이연실의 ‘찔레꽃’(1972)이다. 이 노래에는 누나 대신 엄마가 등장하는데 노래 중간에 미국 민요 ‘클레멘타인(Clementine)’을 번안한 양희은의 ‘엄마 엄마’도 들어간다.

 

▲ 가수 이연실(1950&sim;&nbsp; )

광산에 일 간 누나 대신 이 노래에도 일 간 엄마가 있다. 그 엄마를 기다리며 아이는 엄마를 부르며 찔레꽃을 따 먹으면서 허기를 달랜다. 엄마가 돌아오는 밤길, 저 멀리서 다가오는 엄마의 하얀 버선발, 밤마다 꾸는 엄마의 꿈……. 노래엔 엄마에 대한 아이의 그리움과 슬픔이 애틋하다.

 

‘클레멘타인’도 만만찮은 애조를 띤 노래지만, 이 노래를 부른 이연실의 음색에도 가슴을 저미고 시나브로 눈시울을 적시게 하는 구석이 있다. 70년대에 ‘새색시 시집가네’로 데뷔한 통기타 가수 이연실의 향토색이 짙은 노래에는 이처럼 독특한 울림이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찔레꽃, ‘절대빈곤 시대의 기억’

 

그러고 보면 찔레꽃은 서민들의 고단한 삶과 가난을 증언하는 꽃이다. 찔레꽃은 보릿고개를 힘겹게 넘던 시절의 어린이들 곁을 지켰던 꽃이기 때문이다. 아이들의 허기와 무료를 달랬던 찔레 순과 그 하얀 꽃은 절대빈곤의 시대에 대한 원초적 기억이다.

 

사람들의 눈에 잘 띄지 않는 곳에 쓸쓸히 피어나지만, 찔레꽃은 아름답다. 순백의 하얀 잎도 맑고, 금빛의 노랑 꽃술도 밝다. 단지 장미처럼 사람들의 시야에 강렬하게 다가오지 않을 뿐, 그것은 이 늦봄, 여름의 어귀를 수놓으며 소박한 아름다움을 환기해 주는 것이다.

 

이연실의 ‘찔레꽃’을 들으며 어제와 그제 찍어온 사진을 뒤적인다. 그러고 보니 1950년생인 이연실은 이제 예순여섯이 되었다. 90년대 중반 이후 활동을 중단한 이후 그이의 근황은 알려진 게 없다고 한다. 1973년에 그녀가 발표한 노래 ‘소낙비’를 따라 부르며 거리를 헤매던 스무 살 시절을 문득 떠올려본다.

 

 

 

2015. 5. 16. 낮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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