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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바람과 먼지의 세상, 그 길 위에 서서

이 풍진 세상에 /풍경140

벗의 도화원(桃花源), 그 연분홍 안개 의성 초전리 오막재를 찾아서 의성 탑리의 외진 시골 마을, 완만한 산자락에 조립주택과 황토방 하나씩 짓고 사는 친구가 제 복숭아밭에 복사꽃이 절정이라고 전해 왔다. 3월을 맞아 잔뜩 심란해져 있을 때, 안부를 물어온 친구에게 나는 복사꽃이 피면 알려달라고 부탁했었다. 금요일 퇴근해 집에 잠깐 들렀다가 바로 길을 떠났는데도 근처 시장 거리에서 만나 저녁을 먹고 초전리(草田里) 그의 집을 찾았을 때는 어둠 살이 내리고 있었다. 황토방 너머 그의 복숭아밭, 복사꽃은 부윰한 빛을 내면서 어둠 속에 아련하게 떠 있었다. 시간은 넉넉하니까……. 복사꽃을 만나는 일에 서두를 일은 없었다. 그의 황토방에서 우리는 밤늦게까지 술을 마셨다. 몇 병의 소주가 동나자, 그는 경기도 어느 지역에서 누룩으로 발효한 술을 증류시켜.. 2020. 4. 14.
동네 한 바퀴-매화 지고 앵두, 살구꽃까지 봄꽃 찾아 동네를 돌다 이미 곁에 당도한 봄을 주절댄 게 지난 15일이다. 그리고 다시 보름이 지난 3월의 막바지, 이제 꽃은 난만(爛漫)하다. 산으로 가는 길모퉁이 조그만 교회 앞에 서 있던 나무의 꽃봉오리가 벙글고 있었다. 무심히 매화일 거라고 여겼더니만 어저께 돌아오며 확인하니 그건 활짝 핀 살구꽃이었다. [관련 글 : 다시, 겨울에서 봄으로] 이미 설중매로 소개했던 매화는 지고 있었다. 전자 공장 뒤란의 콘크리트 바닥이 떨어진 매화 꽃잎으로 하얬다. 시들어버린 오종종한 꽃잎을 일별하면서 나는 늘 같은 생각을 했다. 왜 우리 선인들은 이 보잘것없는 꽃을 ‘불의에 굴하지 않는 선비정신의 표상’으로 삼았을까. 단지 이른 봄에, 더러는 눈 속에 꽃을 피운다는 것 외에 무엇이 선비들의 맘을 사로잡았을까. .. 2020. 3. 30.
길고양이처럼 찾아온 봄 어느 날 소리 없이 찾아온 봄 정말, 어떤 이의 표현대로 봄은 마치 ‘길고양이처럼 찾아온’ 느낌이다. 봄인가 싶다가 꽃샘추위가 이어지곤 했고 지난 금요일만 해도 본격 꽃소식은 한 주일은 더 기다려야 할 것 같았다. 일교차가 컸던 탓일 것이다. 한낮에는 겉옷을 벗기려 들던 날씨는 저녁만 되면 표변하여 창문을 꼭꼭 여미게 했다. 토요일 오전에 아내와 함께 아파트 앞산에 올랐는데, 산길 주변 곳곳에 참꽃(진달래)이 무리 지어 피어 있었다. 출근하는 숲길에선 보기 힘든 풍경이어서 나는 잠깐 헷갈렸다. 일요일 오후에 돌아보니 아파트 주차장 어귀에 벚꽃이 활짝 피어 있었다. 그 아래 동백꽃도 화사했고. 사진기를 들고 나갔더니 화단의 백목련은 이미 거의 끝물이다. 아이들 놀이터 뒤편에 못 보던 매화가 하얀 꽃을 피우.. 2020. 3. 29.
김삿갓, 구비시(口碑詩)의 창조자 방랑 시인 김삿갓의 무덤을 찾아 시인 김삿갓[김병연(金炳淵, 1807∼1863)]은 실존 인물이면서도 마치 전설처럼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는 인물이다. ‘전설처럼’이라고 굳이 표현한 것은 그와 그의 문학에 대해 정작 제대로 아는 이가 드물다는 뜻도 포함된다. 그에 대한 인상이 ‘삿갓’과 ‘죽장(竹杖)’, 그리고 ‘뜬구름’과 같은 ‘방랑’의 이미지로만 구성되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실존했으나 전설처럼 떠오르는, 반공 이데올로기로 소비된 인물 그러다 보니 그의 이미지는 냉전 시대의 독재 정권에 의해 반공 이데올로기를 강화하는 데 이용되기도 했다. 1964년부터 무려 30년간 한국방송(KBS) 제1라디오 전파를 탔던 반공 드라마 가 그것이다. 이 드라마는 ‘김삿갓’의 가상 여행을 통해 북한 주민들의 비참한 생.. 2020. 3. 24.
거기 ‘은빛 머리 고승’들, 무더기로 살고 있었네 봉화 닭실마을을 찾아서 어제는 아내와 함께 봉화를 다녀왔다. ‘병아리 떼 종종종’은 아니지만 ‘봄나들이’다. 바람은 여전히 쌀쌀했지만, 연도의 풍경은 이미 봄을 배고 있었다. 가라앉은 잿빛 풍경은 예와 다르지 않다. 그러나 햇볕을 받아 속살을 드러낸 흙빛과 막 물이 오른 듯 온기를 머금은 나무가 어우러진 빛 속에 이미 봄은 성큼 와 있는 것이다. 목적지는 봉화의 닭실마을. 도암정(陶巖亭)을 거쳐 청암정(靑巖亭), 석천정사(石泉精舍)를 돌아오리라고 나선 길이었다. 시간 여유가 있으면 법전이나 춘양의 정자들도 찾아보겠다고 생각했지만, 그건 아무래도 좋은 것. 풍경이 좋으면 거기 퍼질러 앉아서 보내리라 하고 나선, 단출하고 가벼운 나들이였다. 닭실마을의 충재 종택 마당에서 이제 막 봉오리가 벙글기 시작한 산수.. 2020. 3. 20.
춘분 날, ‘설’은 녹고 ‘매’만 남은 설중매(雪中梅) 3월의 두 번째 폭설 뒤의 매화 밤새 눈이 푸짐하게 내렸다. 아침에 일어나니 아파트 주차장의 자동차 지붕에 좋이, 한 뼘가량의 눈이 마치 시루떡 켜처럼 쌓여 있었다. 겨울에 눈이 드문 지방, 봄인가 싶었는데 3월의 두 번째 폭설이다. 오늘이 춘분이라는 걸 알게 된 것은 조간신문을 받아보고서다. 춘분 날, ‘설’은 녹고 ‘매’만 남은 설중매(雪中梅) 어제 산에 다녀오는 길에서 산 아래 전자 공장 마당에 핀 매화 두어 송이를 만났다. 그 며칠 전부터 봉오릴 맺고 있었지만, 갑자기 쌀쌀해진 날씨 때문에 개화를 기대하지 못했었다. 반갑게 찍은 사진 몇 장을 벗에게 보냈더니 오늘에야 그걸 읽은 벗 왈, “이 매화, 오늘은 설중매로 살아야 할 듯”이라는 답을 보내왔다. 아, 그렇다. ‘설중매(雪中梅)’! 그걸 왜 .. 2020. 3. 17.
다시, 겨울에서 봄으로 긴 겨울 지나고 싹트는 봄의 조짐들 겨울에서 봄으로 지난겨울은 춥고 길었다. 겨울에 혹독한 추위라고 할 만한 날이 거의 없는 우리 고장에도 영하 10도 아래로 내려가는 일이 거듭되었으니 말이다. 산과 면한 뒤 베란다에 결로(結露)가 이어지더니 그예 여러 차례 얼기도 했고 보일러 배관이 얼어붙는 사태(!)도 있었다. 엔간한 추위면 꾸준히 산에 올랐던 지지난 겨울과 달리 지난겨울에는 산과 꽤 멀어졌다. 급한 오르막과 내리막을 다니는 게 무릎과 넓적다리관절에 주는 부담 때문이기도 했지만, 산행이 뜸해져 버린 것은 결국 추위 때문이었다. 평탄한 길 위주의 새 등산로를 찾아내고도 여전히 길을 나서는 게 쉽지 않았다. 그러고 보면 길과 추위 때문이라고 변명하는 것도 그리 솔직한 태도는 아닐지도 모르겠다. 사실은 부.. 2020. 3. 17.
보성 차밭 구경 보성 녹차밭을 찾아서 말로만 들었던 보성 녹차밭을 직접 만난 건 지난 1월 12일이다. 아내와 함께한 여행의 귀로에서였다. 보길도에서 완도로 나와 내비게이션에 ‘보성녹차밭’을 입력한 뒤 녀석이 안내하는 대로 차를 달렸다. 보성에 차 재배를 시작한 것은 일본인들. 1939년 일본인 차 전문가들이 보성을 최적의 홍차 재배지로 선정, 인도산 차 종자를 수입하여 여기 파종한 것이 시초. 1957년 새로운 차 재배단지를 개간하고 70년대 말∼80년대 초에 재배면적 확대에 힘써 현재는 358ha에서 연간 200여 톤의 차가 생산되는 전국 최대의 다원이 형성되었다고. 우리가 방문했던 곳은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차밭이며, 한국 유일의 차(茶) 관광농원이라는 대한다업 관광농원. 입구 주차장부터 곧게 선 삼나무 행렬이 방.. 2020. 2. 6.
강화도, 안개, 사람들 강화도에서 열린 시민기자 연수 1. 강화도 지지난 주에 강화(江華)를 다녀왔다. 초행이었다. 웬만하면 수학여행 따위로도 인연을 맺을 만한 동네였는데 나와 강화는 연이 없었던 모양이다. 나는 화문석(花紋席)과 강화도 조약으로 불리는 병자수호조약, 전등사와 마니산, 왕실의 몽진과 고려대장경, 몽골의 침입과 삼별초, 외규장각과 프랑스의 문화재 약탈, 정족산성과 병인·신미 두 양요(洋擾), 운요호사건 등의 근대사의 일부로 강화를 기억한다. 그러나 그것들은 내가 눈으로 확인한 사실이 아니라, 교과서에서 배우고 그림이나 텍스트로 이해한 이미지일 뿐이다. 강화에서 전개되었던 역사적 사실도 구체적인 공간과 관련지은 이해는 아니며 ‘꽃무늬 돗자리[화문석(花紋席)]’도 마찬가지다. ‘강화’란 지명은 꽤 울림이 좋다. 멀쩡.. 2020. 1. 18.
얼음 낚시, 혹은 파한(破閑)의 시간 얼음 낚시 구경 누차 밝혔듯 나는 ‘재미없는 사람’이다. 마땅한 취미도 기호도 갖지 못한, 이른바 ‘잡기’에는 아예 손방이다. 당연히 ‘낚시’도 모른다. 선친께서는 물론, 돌아가신 형님도 낚시광이라 할 만한 분이었고, 중형도 그 방면으로는 빠지지 않는 사람인데도 그렇다. 벗들 가운데도 낚시를 즐기는 이들도 적지 않은 편이다. 자연 그들의 낚시 길에 어쩌다 동참할 기회도 있긴 했는데 결과는 ‘역시’였다. 나는 입질조차 없는 수면에다 낚싯대를 드리우고 한나절을 꼬박 지새우는 그들의 인내와 기다림에 경의를 표하는 편이다. 대신 30분을 견디지 못하고 주리를 틀고 마는 자신은 낚시와는 털끝만 한 인연도 없는 게 확실하다고 여긴다. 낚시의 역사는 인류의 역사만큼이나 오래다. 인간이 최초로 사용한 도구 중 하나가 .. 2019. 12. 31.
첫아이 ‘돌사진’ 찍던 그 사진관…추억 돋네요 경북 군위 화본마을에 있는 추억박물관 ‘엄마 아빠 어렸을 적에’ 추억은 과거와 현재, 혹은 슬픔과 기쁨의 경계를 허물어뜨린다. 한 시절의 슬픔과 아픔을 환기하지만, 그것은 현재의 고통이 아니므로 사람들은 그 시절을 아련하게 떠올린다. 그것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모두 마음속에 따뜻한 등불 하나 켜지는 것이다. ‘추억’을 상품으로 파는 시절 사내들이 군대 얘기에 열을 올리는 것도, 보릿고개 시절을 겪은 세대들이 그 끔찍한 가난을 입에 올리는 이유도 그것이 지나간 고통을 ‘일별해 보는 것’일 뿐이기 때문이다. 만약 과거의 한 시절을 떠올리는 것만으로 그 시절의 고통과 아픔을 복기하는 것이라면 누가 그따위 추억을 입에 올리겠는가 말이다. 세월이 흐르고 시절이 바뀌면서 이제는 그 추억을 상품으로 파는 시대가 되었.. 2019. 11. 20.
여섯 해, 직지사도 세상도 변했다 2012년에 다시 찾은 직지사 황악산(黃岳山) 직지사(直指寺)를 다시 찾았다. 2006년 9월 초순에 다녀간 이후 꼭 6년 만이다. 그때 나는 김천에 사는 한 동료 교사의 부친상 문상을 다녀오던 길이었다. 9월이라 아직 나무와 숲은 푸르렀고 하오 다섯 시였는데도 해는 한 뼘이나 남아 있었다. [관련 글 : 절집 안으로 들어온 숲, 직지사] 모시고 간 선배 교사와 함께 두서없이 경내를 돌아다니다 우리는 이 절집이 만만찮은 아름다움을 갖고 있다는 데 합의했다. 오래된 산사는 널찍했고, 띄엄띄엄 들어선 전각과 어우러진 숲이 아름다웠다. 그때 쓴 글의 이름이 ‘절집 안으로 들어온 숲, 직지사’가 된 것은 그런 까닭에서였다. 직지사는 신라 눌지왕 때인 418년, 아도 화상이 인근 태조산 도리사와 함께 세운 절이다.. 2019. 11. 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