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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바람과 먼지의 세상, 그 길 위에 서서

이 풍진 세상에 /풍경140

역과 기차, 그리고 세월… 철길과 역 그리고 역(驛)이란 공간이 주는 울림은 만만찮다. 그것은 한 세계를 다른 세계와 이어주는 장소다. 만남보다는 이별이 더 익숙한 공간이기도 하다. 역은 그것을 구성하는 요소들, 이를테면 대합실과 개찰구, 플랫폼, 철길 따위의 부속 요소들이 함축하고 있는 이미지들과 함께 사람들에게 저마다 달리 다가간다. 역, 한 세계를 다른 세계와 이어주는 곳 오늘날에는 그 의미가 ‘철도역’으로 축소되었지만, 근대 이전에는 그 의미가 훨씬 드넓었다. 왕조시대에 역은 역마(驛馬)를 갈아타는 곳이었고, 사람과 말, 마차가 머무르는 여관과 차고이기도 했다. 또 역은 통신을 전달하는 수단으로도 이용되었다. 그러나 현재의 역은 옛날과는 사뭇 다르다. 그 의미조차 축소되어 ‘철도’라는 특정한 교통수단에서만 쓰는 용어가 된 .. 2019. 5. 16.
시간을 잇는 외나무다리를 건너다 뭍의 섬, 경북 영주 무섬마을의 ‘고향 이야기’ 마을을 둥그렇게 물이 돌아 흐르는 이른바 ‘물돌이 마을’로 안동에 하회가, 예천에 회룡포가 있다면 경북 영주에는 무섬이 있다. 안동시 임동면 무실의 행정명칭이 ‘수곡(水谷)’이듯 무섬의 주소는 정확히 영주시 문수면 수도리(水島里)다. 무섬은 ‘물의 섬’이라는 ‘물섬’에서 시옷(ㅅ) 앞의 리을(ㄹ)이 떨어진 형태다. 이는 ‘불삽’에서 ‘부삽’이 나온 것과 같은 이치다. 그러나 이 이름과 그 해석은 그리 합리적이지 않다. 섬은 당연히 물 가운데 있는 것, ‘물’자를 굳이 붙일 이유가 별로 없다. 누군가의 주장대로 ‘뭍’에 있는 섬, ‘뭍섬’에서 온 이름일 가능성이 훨씬 커 보인다. 이웃한 동네, ‘술미’의 한자 이름은 ‘탄산(炭山)’인데 이는 아마 본디 이름 .. 2019. 5. 14.
"여기 알아? 동네 사람들이 벽 속에 있어" 안동 신세동 길섶 미술로(路)에는 사람들의 삶이 있다 흔히들 ‘가난’은 불편한 것일 뿐 부끄러운 것은 아니라고 한다. 현대사회에서 개인의 책임으로 물을 수있는 문제가 아니라 사회와 제도 등 구조에서 비롯된 게 가난이니 이 명제에 잘못은 없다. 그러나 사실 가난이란 그리 만만한 게 아니다. 명심보감에 이르기를 ‘사람이 가난하면 지혜가 짧아진다’[인빈지단(人貧智短)]고 한 까닭이 달리 있는 게 아니다. 삶이 고단하면 지켜야 할 예의범절도, 사람 노릇도 쉽지 않아진다. 궁핍 가운데 살아가는 것은 사람은 물론이거니와 한 가정의 삶을 옥죄는 질곡인 것이다. 가난하다고 아름다움을 모르겠는가 가난한 이들은 ‘먹고 살기 바빠서’ 넉넉한 이들이 누리는 많은 것들을 포기하고 살아야 한다. 식구들끼리의 단란한 외식은 물론이.. 2019. 5. 13.
갤러리 카페의 <조영옥 드로잉전>- 쉼 없는 발걸음이 부럽다 조영옥 드로잉전 인근 상주에서 조영옥 선배가 드로잉(drawing)전을 열고 있다. 지지난해 함창읍의 카페 「버스정류장」에서 전시(2016.10.6.)를 한 지 꽉 찬 2년 만이다. [관련 글 : 가을 나들이 - 그림, 책, 사람을 만나다] 지난여름 내 친구 박용진의 드로잉전에 이어지는 전시다. [관련 글 : 시골 화가의 ‘드로잉’으로 세상 바라보기] 물론 장소는 같은 곳, ‘갤러리 카페 포플러나무 아래’에서다. 박용진 드로잉전에 이어 블로거 ‘선돌’ 이 선생의 전시회(여긴 가 보지 못했다.)가 있었고, 이번이 그다음 전시인 것이다. 지난 금요일(10.5.) 오후에 이 전시는 문을 열었다. [관련 글 : ‘갤러리 카페’ ‘포플러나무 아래’의 미래가 궁금하다] 뒤늦은 태풍 때문에 종일 비가 내리고 있었다... 2019. 4. 29.
‘갤러리 카페’ ‘포플러나무 아래’의 미래가 궁금하다 상주 연악산 기슭의 갤러리 카페 ‘포플러나무 아래’ 전시공간을 두어 ‘갤러리 카페’라 불리는 ‘포플러나무 아래’는 경북 상주시 지천1길 130번지에 있다. ‘포플러나무 아래’는 상주시 청리면으로 벋은 연악산(淵岳山, 706.8m)이 품고 있는 신라 시대의 고찰 용흥사(龍興寺)와 고려 시대 절집인 갑장사(甲長寺)로 오르는 길 오른쪽에 자리 잡았다. 서른 평쯤 되는 카페는 2층이지만 1층이 언덕 아래 가려져 있어 호젓한 단층 건물처럼 보인다. 올 2월에 명예퇴직하고 이 카페를 연 주인장은 안인기 화백(56)이다. 그는 경북대학교 사범대학 미술교육과를 나와 상주와 인근 시군의 중등학교에서 미술을 가르쳐 왔다. 초기에는 평면작업을 했으나 지금은 일상생활에서 생긴 폐품이나 잡동사니를 소재로 제작하는 정크아트(Ju.. 2019. 4. 28.
시골 화가의 ‘드로잉’으로 세상 바라보기 [전시회] 박용진 드로잉전, 갤러리 카페 ‘포플러나무 아래’에서 오래된 벗 박용진이 전시회 소식을 전해 온 것은 가족 여행 출발 전이었다. 상주시 외곽에 후배 미술 교사가 연 카페에서 ‘드로잉(소묘)전’을 연다고 했다. 그는 나보다 반년 앞서 퇴직했고, 예천을 떠나 상주에서 그림을 그리며 살고 있었다. 전시회 여는 날이 여행 일정 중이어서 나는 여행을 다녀와서 보자고 말했다. 내가 박용진을 처음 만난 것은 스무 살 무렵이다. 그림 그리는 고교 동기를 통해서였는데 통성명을 하고 동갑내기여서 말을 텄을 뿐 특별한 교유를 나눈 것은 아니었다. 다시 그를 만난 것은 서른아홉, 해직 5년여 만에 복직하면서였다. 20년 만의 해후, 그의 판화 ‘실직의 하루’ 나는 신규 특채로 경북 북부 예천군의 한 공립중학교로 발.. 2019. 4. 28.
[사진] 탑과 메밀밭 메밀꽃 속 안동시 일직면 조탑리 5층전탑 탑은 이 땅에선 서원(誓願)이었다. 위로는 임금으로부터 아래는 무지렁이 백성에 이르기까지 사직의 안위와 일가의 안녕을 꿈꾸는 '서원의 대상'이었다. 부처님 나라[불국(佛國)]를 꿈꾸었던 왕국의 역사, 탑들이 견뎌낸 천 년의 침묵이 안고 있는 것은 그러한 서원의 세월이었다. 그러나 오늘날 탑은 이미 그 고유의 기능을 잃은 것처럼 보인다. 여전히 소수의 사람들이 탑에다 서원을 올리긴 하지만 이미 탑은 잊힌 구조물이 되었다. 한때, 탑은 사부대중들의 서원을 오롯이 품은 거룩한 건축이었지만 이제 그것은 벌판에 선 옹색하고 휑뎅그렁한 ‘돌(벽돌)무더기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안동시 일직면 조탑리에 있는 보물 제57호 조탑리 5층 전탑도 마찬가지다. 조탑리(오죽하면 탑을 지.. 2019. 4. 28.
봄나들이 - 초전리 ‘꽃 대궐’과 미성리 ‘그 여자’의 집 봄나들이, 의성 초전리와 군위 미성리 * 가로 사진은 누르면 더 큰 사진으로 볼 수 있음. 1. 의성군 금성면 초전(草田)리 복사꽃과 모과꽃 의성에 들어가 사는 친구 장(張)을 찾으러 가는 길 주변은 꽃 천지였다. 이미 구미엔 대부분 지고 있는 꽃들이 군위에서 친구 이(李)를 태우고 의성으로 가는 길 주변 들과 숲에는 한창이었다. 복사꽃이 그랬고, 산벚꽃이 그랬다. 위도의 차이가 개화 시기를 결정한 탓이었을 것이다. 어릴 적 즐겨 불렀던 동요 ‘고향의 봄’을 흥얼거리고 싶게 만드는 풍경들이었다. 연변의 풍경들은 이 7·5조 운율의 노래에서 ‘울긋불긋 꽃 대궐’을 실감하게 해 주는 것이다. 우리는 그 뜻을 가늠해 보지 않고 무심히 불러왔지만, 이원수가 ‘꽃 대궐’이라 쓴 이유가 거기 있음은 분명하다. 나의.. 2019. 4. 21.
대구 금호강의 섬 하중도 유채꽃 나들이 [달구벌 나들이] ⑤ [사진] 대구 금호강 하중도(河中島) 유채꽃 *PC에서 ‘가로 이미지’는 클릭하면 큰 규격(1000×667픽셀)으로 볼 수 있음. 한 달 전쯤 아내와 함께 대구를 다녀오는 길이었다. 북대구 나들목으로 나가는데 오른쪽 금호강 가녘에 꽤 너른 유채꽃밭이 펼쳐져 있었다. “어, 웬 유채꽃? 볼 만한데, 언제 구경 올까?” 했더니 아내는 “당근 좋지”다. 집에 와서 인터넷 검색으로 거기 가려면 내비게이션에 ‘금호강 하중도’나 ‘노곡동 하중도’로 입력하면 데려다준다는 걸 알았다. 거기 가면서 따로 날 받을 일은 없으니 4월 두 번째 주말인 13일, 김밥으로 소문난 동네 분식집에서 김밥 도시락 두 개를 사서 바로 출발했다. 금호강 하중도 3만여 평 유채꽃 단지 강변이라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 2019. 4. 21.
영주댐 건설로 망가진 회룡포, MB 녹색성장의 결말 망가진 예천 회룡포, 엠비표 녹색 성장의 결말이다 * 가로 사진은 누르면 더 큰 사진으로 볼 수 있음. 영주댐 건설 이후 시름시름 앓는 내성천 지난 9월의 셋째 주말, 경북 예천의 회룡포를 찾았다. 나는 2005년부터 한해 걸러 한 번씩은 내성천이 마을을 한 바퀴 휘감는 회룡포에 들르곤 했다. 시인 안도현과 조성순을 불렀다고 전하면서 내성천에 들러 달라는 김소내 선생의 전갈을 받은 것은 열흘 전쯤이었다. 그리고 지난 9월 20일, 예천민예총과 소내 선생이 준비한 예천아리랑제 ‘엄마야 누나야 강변 살자’가 회룡포 마을에서 열린 것이다. 나는 무엇보다도 상류에 영주댐이 건설되면서 옛 명성을 잃어가고 있는 내성천의 안부가 궁금했다. 거기다 소내 선생을 비롯한 예천의 옛 동지들과 고교 동아리 후배인 두 시인과 .. 2019. 4. 21.
낙동강 마지막 주막에서 만나는 ‘오래된 그리움’ 복원된 예천 삼강주막을 찾아서 * 가로 사진은 누르면 더 큰 사진으로 볼 수 있음. 다시 삼강(三江)으로 길을 떠난다. 낙동강과 내성천, 금천의 세 강줄기가 몸을 섞는 나루. 경북 예천군 풍양면 삼강리로 간다. 거기 이백 살도 넘은 회화나무 그늘, 낙동강 천삼백 리 물길에 마지막 남은 주막. 일흔 해 가까이 뱃사람과 장사치들 등 나그네들을 거두었던 어느 술어미의 한이 서린 곳, 삼강주막으로 간다. 삼강은 낙동강 하구 김해에서 올라오는 소금 배가 하회마을까지 가는 길목, 내륙의 미곡과 소금을 교환하던 상인과 보부상들로 들끓던 곳이었다. 한 세기 전에 이 주막이 들어섰을 때, 삼강 나루는 짚신 신긴 소를 서울로 몰고 가던 소몰이꾼으로 북적였다. 소 여섯 마리를 실을 수 있었다는 큰 나룻배는 바로 삼강의 번성.. 2019. 4. 20.
마지막 주막, 바람벽에 새겨진 술어미 피울음 내륙의 섬마을 예천 회룡포와 삼강주막 * 가로 사진은 누르면 더 큰 사진으로 볼 수 있음. ‘물돌이동’은 하회(河回)의 다른 이름이다. 낙동강이 그 유장한 흐름으로 마을을 휘감고 흘러가는 형국이어서 그런 이름이 붙었다. 모두 그만그만한 우리 하천들의 규모와 배산임수의 땅에다 터를 잡아온 선인들의 지혜를 헤아려 보면, 그런 모양새의 마을은 쌔고 쌨어야 한다. 경북 예천군 용궁면 대은리 회룡포(回龍浦) 마을도 그런 마을 중 하나다. 하회마을보다는 덜 유명하지만, 관광자원을 개발하려는 지방자치단체의 이해와 저마다 승용차를 부리는 시대에 힘입은 데다가, 공전의 히트를 기록한 TV 드라마 ‘가을동화’ 덕분에 온 나라에 알려졌다. 덕에 널리 알려진 회룡포 하회와 다른 점이라면 그 물이 낙동강 상류의 지류 내성천이라.. 2019. 4. 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