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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바람과 먼지의 세상, 그 길 위에 서서

이 풍진 세상에 /풍경140

의성 골짜기 ‘비밀의 정원’을 아시나요 경북 의성 금성면 산운마을의 소우당 별서 정원 의성으로 귀촌한 벗에게서 산운(山雲)마을 소우당(素于堂) 정원에서 전통 혼례 시연을 한다는 소식을 들은 것은 보름쯤 전이었다. 그가 "소우당 알지?" 하고 물었는데, 물론 나는 단박에 어느 겨울날에 그와 함께 들렀던 산운마을과 소우당을 떠올렸다. 그려, 그런데 정원은 잠겨 있어서 담 너머로 곁눈질만 했지. 의성군 금성면 산운마을의 전통가옥 소우당 400년 이상을 이어온 영천 이씨 집성촌 산운마을은 경북 의성군 금성면 산운 1리에 있다. 2016년 2월, 근처 초전리에 사는 벗과 함께 마을의 고가 몇 군데를 둘러보고 소우당에 들렀을 때 정원은 굳게 잠겨 있었다. 나는 담 위로 사진기를 들이밀고 사진 몇 장을 찍는 거로 아쉬움을 달래야 했다. 지난 9일 오후에 .. 2019. 11. 15.
맑은 빛깔로 물든 대구 팔공산 ‘단풍 터널’ [사진] 대구 팔공산 순환도로의 ‘단풍’ 팔공산 단풍길을 처음 들른 것은 2012년이다. 그때 나는 순정(純精)의 단풍을 만난 감격을 기사로 썼다. (관련 기사 : 그 숲길, ‘순정’의 단풍을 잊지 못하리) 이듬해에도 나는 거길 들렀다. 전년의 감격에 못지않은 감동으로 나는 부지런히 그 풍경을 렌즈에 담았다. 두 번 다 거길 찾은 날은 감독관을 면하게 된 대학 수학 능력 시험일이었다. 단풍길의 주말은 차 댈 데가 없다고 했고, 평일에 시간을 내기로는 수능시험일이 제격이었던 것이다. 아마 두 날 다 기온이 꽤 내려간 날이었던 것 같다. 가을의 관습적 표지로서의 단풍을 제대로 만나는 일은 쉽지 않다. 해마다 같은 날 같은 시간에 들른다 해도 나무와 숲은 사람들을 기다려주지 않는다. 어떤 때는 이르고 어떤 때.. 2019. 11. 12.
이야기 따라 가을 따라 가본 선비 집과 절집 경북의 서원과 산사 가을 풍경 소나무와 잣나무의 ‘푸름’을 알려면 날이 차가워져야 한다고 했던가. 정직하게 돌아온 가을을 제대로 느끼려면 길을 나서야 한다. 무심한 일상에서 가을은 밤낮의 일교차로, 한밤과 이른 아침에 드러난 살갗에 돋아오는 소름 따위의 촉각으로 온다. 그러나 집을 나서면 가을은 촉각보다 따뜻한 유채색의 빛깔로, 그 부시고 황홀한 시각으로 다가온다. 시월의 마지막 주말, 길을 나선다. 대저 모든 ‘떠남’에는 ‘단출’이 미덕이다. 가벼운 옷차림 위 어깨에 멘 사진기 가방만이 묵직하다. 시가지를 빠져나올 때 아내는 김밥 다섯 줄과 생수 한 병을 산다. 짧은 시간 긴 여정에 끼니를 챙기는 건 시간의 낭비일 뿐 아니라 포식은 가끔 아름다운 풍경마저 심드렁하게 만든다. 오늘의 여정은 영주 순흥, .. 2019. 11. 7.
그 숲길, ‘순정(純精)’의 단풍을 잊지 못하리 [여행] 팔공산 단풍길 순례 가을에 나뭇잎이 붉거나 노랗게 물드는 현상, 단풍(丹楓)은 가을의 관습적 표지다. 사람들은 ‘꽃소식[화신(花信)]’으로 오는 봄의 추이를 짚듯 첫 단풍의 시기로 가을을 가늠하는 것이다. 새봄의 꽃소식은 북으로 올라오지만, 단풍은 온 산을 발갛게 물들이며 남으로 내려온다. 단풍은 나뭇잎이 더는 활동하지 않게 되면서 나타나는 현상이다. 잎이 활동을 멈추면 엽록소가 파괴되고 자가분해가 진행된다. 이 과정에서 안토시아닌이라는 화학물질이 단풍의 빛깔을 결정한다. 안토시아닌이 생성되는 종은 붉은색 또는 갈색 계열의 단풍이, 안토시아닌이 생성되지 않는 종은 엽록소의 녹색에 가려 보이지 않던, 잎 자체에 들어 있는 노란빛 색소들이 나타나게 되어 노란 단풍이 드는 것이다. 보통 하루 최저 기.. 2019. 11. 6.
우포(牛浦), 2009년 가을 2009년 가을에 찾은 창녕 우포 지난 10월 말께에 우포(牛浦)를 다녀왔다. 우연한 여행이다. 블로그의 이웃들과 함께였다. 애당초 내가 정한 목적지가 아니었기에 그것은 내게 아주 가볍고 부담 없는 시간이었다. 사진기를 갖고 갈까 말까 하고 망설였지만 나는 줌렌즈를 끼운 카메라를 맹꽁이 가방에 넣고 동행했다. 1박 2일이라고 하지만 우리가 같이한 시간은 길지 않다. 심야에 술을 좀 마셨고, 이른 새벽에 서둘러 숙소를 떠나 안개 자욱한 우포늪 주변을 서성였다. 나는 빛 따위는 신경 쓰지 않고, 되는 대로 셔터를 눌렀다. 늘 그렇듯이 나중에 이미지를 통해 여정을 복기(復碁)하면서 쓸 만한 사진만 고르면 될 터이니까. 동류의 사람들이 만나는 건 즐거운 일이다. 유유상종이라 하지 않는가. 비슷한 눈으로 세상을 .. 2019. 11. 5.
“아니 웬 알프스? 그래, 알프스 맞아!” 영남 알프스 간월재 ‘억새 하늘길’ 등정기 *PC에서 ‘가로 이미지’는 클릭하면 큰 규격(1000×667픽셀)으로 볼 수 있음. ‘알프스(Alpes)’는 유럽 중부에 있는 산맥의 이름이다. 그러나 우리가 일상에서 ‘알프스’를 말할 때, 그 함의는 훨씬 새롭고 깊다. 실제로 알프스를 가보았는지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 이나 같은 영화나 애니메이션으로 형성된 이미지 때문일까. 알프스는 영세중립국 ‘스위스’와 ‘요들송’ 같은 이미지와 중첩되면서 ‘순결하고 아름다운 산, 마지막 청정 지역’ 같은 느낌으로 다가오는 것이다. “아니! 영남에 웬 알프스?” 일본 중부 지방의 산맥 몇을 일러 ‘일본 알프스’라고 한다는 걸 알았을 때, 이른바 ‘탈아입구(脫亞入歐)’에 안달하는 일본인들의 ‘유럽 지향’이 알프스까지 끌어들였.. 2019. 10. 31.
은행나무 이야기 살아 있는 화석 은행나무 올해는 유난히 은행나무 단풍이 아름답다. 예년에도 그랬던가 싶을 만큼 출퇴근길에 만나는 은행나무 가로수의 물결은 눈부시고 화사하다. 그러나 그것은 또 아침저녁으로 조금씩 바뀌어 간다. 보도에 수북이 쌓인 은행나무 낙엽을 밟으며 출근하는 기분은 그러나 스산하지는 않다. ‘살아 있는 화석’, 은행나무 은행나무는 겉씨식물에 속하는 낙엽교목인데 연관 종이 없는 특별한 종으로 은행나무문에 속하는 유일한 종이다. 공룡과 같은 거대한 파충류를 비롯하여 양서류, 암모나이트 따위가 번성한 중생대(약 2억 4500만 년 전부터 약 6,500만 년 전까지)에 번성한 식물이어서 살아 있는 화석의 예로 널리 알려졌다. 영화 가 천년의 세월을 풀어낸 것도 은행나무 수명이 워낙 오래이기 때문이다. 은행나무.. 2019. 10. 29.
문경새재에 당도한 가을, 단풍 방송고 소풍으로 찾은 문경새재 방송고 소풍(요즘은 이걸 굳이 ‘체험학습’이라고 한다)으로 문경새재에 다녀왔다. 연간 등교일은 24일뿐이지만 체육대회를 비롯하여 체험학습, 수학여행, 졸업여행은 방송고의 필수 과정이다. 정규과정과는 달리 수학여행조차 ‘당일치기’로밖에 운영하지 못하는 한계가 있긴 하지만 말이다. 방송고의 ‘마지막 소풍’ 방송고의 행사는 여느 날에는 수업 때문에 나누지 못한 소중한 친교가 이루어지는 시간이다. 참여자는 1/3 수준에 그치지만 학생들은 행사를 치르면서 남녀노유에 따라, 형님, 누님, 오빠, 동생 하면서 진득한 동창으로서의 정리를 나누곤 하는 것이다. 지난 일요일, 2학년은 경주로 수학여행을, 1학년과 3학년은 각각 상주 경천대와 문경새재로 소풍을 떠났다. 목적지가 문경새재로 결정.. 2019. 10. 18.
감 따기와 ‘곶감’ 만들기 처가의 감을 따서 깎아서 말리다 감 이야기는 이태 전에 이미 주절댄 바 있다. [감 이야기-땡감에서 홍시, 곶감까지] 감과 이어지는 이런저런 이야기는 시골에서 자란 사람이라면 누구에게나 한 자루씩 있을 터이다. 마당에 감나무 한두 그루 없는 시골집은 없을 터이니 말이다. 1. 감 따기 옛날 사람들은 어떤 방식으로 감을 땄던가. 지지난해던가, 난생처음으로 감을 따면서 그런 생각을 했다. 그건 보기보다 만만치 않은 일이었다. 물론 준비는 했다. 먼저 소용에 닿는 도구를 팔지 않나 싶어서 인터넷을 검색해 보았다. 물건이 있긴 했는데 값이 5~7만 원이라 좀 비쌌다. 까짓것, 만들어 가지, 뭐. 나는 집안에 굴러다니던 굵다란 철사에다 빨간색 양파망을 씌워 포충망처럼 만들었다. 처가에 가서 장대 끝에다 그걸 친친.. 2019. 10. 17.
감 이야기(1)- 땡감에서 홍시, 곶감까지 감, 감꽃, 홍시, 곶감, 그리고 까치밥까지 곳곳에서 만나는 감나무마다 가지가 휘어질 듯 주렁주렁 감이 달렸다 싶더니 올해는 감이 풍년이란다. 일전에 아내가 처가에 가더니 감을 한 광주리 얻어왔다. 팔순의 장모님께서 몸소 장대로 딴 감이다. 아내는 그놈을 곱게 깎아 대바구니에 담아 베란다에 내어놓았다. 그게 제대로 말라 온전한 곶감이 될지 어떨지, 아내는 미덥지 않아 한다. 볕이 모자라거나 날씨가 궂어서 감 표면에 곰팡이가 피어 못쓰게 된 경험이 한두 해가 아니다. 제대로 말라 뽀얗게 분이 나는 곶감의 달콤한 감칠맛을 기대하지만 그게 이루어지는 게 만만치 않은 것이다. 감은 우리나라에선 가장 흔한 과일이다. 아무리 없는 집이라도 토담 가까이 감나무 한 그루씩은 갖추고 사는 게 우리네 시골 풍경이 아닌가... 2019. 10. 17.
영동의 비단강, ‘풍경’에서 ‘정경(情景)’으로 [여행] 충북 영동 송호관광지, 양산팔경과 금강 둘레길 블로그를 꾸려오면서 ‘풍경’이란 꼭지를 두고, 일상과 여행지에서 만난 경관을 담고 이런저런 소회를 붙인 지 10년이 훨씬 넘었다. 내가 만나는 모든 장면은, 그것이 자연이든, 인공물이든, 사람이 있든 없든 ‘풍경’으로 수렴된다. 물론 그것은 저마다 다른 모습, 다른 느낌으로 다가온다. 풍경(風景)은 ‘바람과 볕’이다. 건축가 승효상은 ‘물적 대상’에 불과한 서양의 ‘랜드스케이프(landscape)’와 달리 우리말의 ‘풍경’은 ‘사람이 주체적으로 빛을 보는 일’이라고 해석한다. 그는 ‘풍광(風光)’이나 ‘경관(景觀)’, ‘관광(觀光)’도 마찬가지 의미로 새기는데 나는 그의 의견에 흔쾌히 동의한다. 흔히 경치라고 부르는 풍경은 단순한 사물, 대상이 아니.. 2019. 10. 12.
그 산사의 단풍, 이미 마음속에 불타고 있었네 구미 태조산 도리사(桃李寺) 기행 대저 기억이란 그리 믿을 게 못 된다. 그것은, 더러 ‘본 것’과 ‘보고 싶은 것’의 절묘한 합성이거나, 보고 싶은 것에 대한 심리적 지향 같은 것이기 때문이다. 구미 태조산 도리사(桃李寺)의 단풍이 내게 그렇다. 내 기억 속에서 그 절집 부근의 단풍은 늘 핏빛으로 선연하다. 그러나 어쩌다 한번 찾아보는 도리사의 단풍은 예전 같지 않았다. 물론 계절이 조금 이르거나 늦을 수도 있다. 들를 때마다 도리사의 단풍은 조금 옅어서 미진하거나 약간 넘쳐서 칙칙하기만 했다. 그 아쉬움은 해마다 구미 쪽을 지날 때마다 내 발길을 도리사로 이끌곤 하는 것이다. 도리사의 단풍, 마음속에 핏빛으로 선연하다 절집으로 들어가는 길치고 아름답지 않은 데는 없다. 더구나 손대지 않은 천연의 숲길.. 2019. 10.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