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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풍진 세상에 /풍경

문경새재에 당도한 가을, 단풍

by 낮달2018 2019. 10.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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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고 소풍으로 찾은 문경새재

방송고 소풍(요즘은 이걸 굳이 ‘체험학습’이라고 한다)으로 문경새재에 다녀왔다. 연간 등교일은 24일뿐이지만 체육대회를 비롯하여 체험학습, 수학여행, 졸업여행은 방송고의 필수 과정이다. 정규과정과는 달리 수학여행조차 ‘당일치기’로밖에 운영하지 못하는 한계가 있긴 하지만 말이다.

 

방송고의 ‘마지막 소풍’

▲ 마지막 소풍의 기념 촬영

방송고의 행사는 여느 날에는 수업 때문에 나누지 못한 소중한 친교가 이루어지는 시간이다. 참여자는 1/3 수준에 그치지만 학생들은 행사를 치르면서 남녀노유에 따라, 형님, 누님, 오빠, 동생 하면서 진득한 동창으로서의 정리를 나누곤 하는 것이다.

 

지난 일요일, 2학년은 경주로 수학여행을, 1학년과 3학년은 각각 상주 경천대와 문경새재로 소풍을 떠났다. 목적지가 문경새재로 결정된 것을 알고 나는 일찍이 4년 전에 여학교 아이들과 함께 걸은 문경새재 길을 떠올렸다.

 

두 시간쯤 다리가 뻐근해지는 거리이긴 하지만 그게 새재를 제대로 만나는 길이었기 때문이었다. 4년 전과 같이 괴산 쪽 3관문 주차장에서 내려 거꾸로 경상도로 넘어오는 코스를 선택하기로 했다.

 

3관문 아래에 있는 충북 괴산의 주차장에 버스가 닿은 것은 11시가 겨워서였다. 정작 이 코스를 걸어본 학생은 많지 않은 듯했다. 나는 두 시간 남짓 걸어야 한다, 그러나 3관문까지만 오르막이고 그다음엔 내리막이니 힘들지는 않다, 천천히 주변의 숲과 단풍을 구경하면서 내려가자고 이야기했다.

 

3관문까지는 완만한 경사, 우리는 천천히 담소하면서 산행을 시작했다. 10월 중순, 제대로 된 단풍을 만나기는 어렵다고 생각하고 있었지만, 아직 조령산에 단풍은 썩 이른 듯했다. 길 주변의 숲은 아직 초록빛이 두드러졌고, 간간이 눈에 띄는 붉은빛은 아직 옅어 보였다.

 

길은 자연 그대로의 흙길이지만 널찍하게 잘 정비되어 있었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적지 않은 탐방객들이 어깨를 나란히 하고 산길을 오르고 있었다. 바야흐로 관광 성수기다. 새재는 도립공원이긴 하지만 전국에 이미 널리 알려진 관광지가 된 것이다.

 

조선시대에 영남에서 서울로 가는 길은 세 갈래가 있었다. 영천과 안동을 지나 죽령을 넘어 서울로 가던 영남좌로, 김천을 지나 추풍령을 넘어가던 영남우로, 부산에서 대구·문경새재·충주·용인을 지나는 영남대로가 그것이었다. 문경새재를 거치는 영남대로가 조선시대의 가장 큰길이었다.

▲  조곡관에서  3.5km  떨어진 곳에 세워진  3 관문 조령관 ( 鳥嶺關 ).  남쪽은 경북 문경 ,  북쪽은 충북 충주 땅이다.

과거 보러 가던 선비들이 새재 길을 선호하게 된 것은 민간의 속설 탓이었다. 죽령은 ‘죽 미끄러진다’해서, 추풍령은 ‘추풍낙엽처럼 떨어진다’는 이유로 선비들은 죽령과 추풍령을 기피한 것이다. 마침맞게 이 고개는 ‘경사스러운 소식을 듣는다’는 ‘문경(聞慶)’의 새재였다.

 

임진왜란 당시에 천험의 요새였으나 신립이 이를 버리고 탄금대에 배수의 진을 침으로써 끝내 패배하고 만, 통한의 장소가 또한 새재다. 총 길이가 10km인 문경새재는 외침에 대비하여 세 개의 관문을 두었다. 선조 때 2관문인 조곡관을 시작으로 숙종 대에 이르러 모두 3개의 관문이 세워진 것이다.

 

문경 쪽에서 고갯길을 따라 10km 남짓 떨어진 산속에 1관문인 주흘관(主屹關), 거기서 3.1km 떨어진 곳에 2관문인 조곡관(鳥谷關), 거기서 다시 3.5km 떨어진 곳에 3관문 조령관(鳥嶺關)이 솟아 있다. 이 조령관 남쪽은 경북 문경 땅이고, 북쪽은 충북 충주 땅이다.

 

10여 분을 오르니 이내 주흘관, 3관문이다. 관문 안쪽 길 복판에서 단체 사진을 한 장 찍고, 이제 다시 산을 내려가기 시작했다. 어쩐지 숲과 나무의 빛깔이 오히려 북쪽보다 더 아련하다. 북쪽 사면의 숲이 아직도 초록빛이 승하다면 이곳의 초록빛은 얼마간 홍(紅)과 황(黃)에 곁을 준 듯한 느낌이다.

 

그리고 2관문을 거쳐 1관문에 가까워지면서 숲의 빛깔은 다시 바뀌었다. 초록이 옅어지면서 홍과 황은 조금씩 짙어지는 변화다. 단풍은 당연히 북에서 시작해서 남으로 내려온다. 그리고 수직으로는 높은 산에서 시작해서 산 아래로 내려오는 게 정상이다.

▲ 문경새재 2관문 조곡관. 1관문 주흘관(主屹關)에서 3.1km  떨어진 곳에 세워졌다.
▲ 문경새재의 1관문인 주흘관. 문경 쪽에서 고갯길을 따라  10km 남짓 떨어진 산속에 있다.

그러나 요즘은 정작 산보다는 평지의 나무들에 단풍이 더 빨리 찾아오는 느낌이 있다. 공해 때문일까. 그예 1관문을 지나고 해발이 낮아지면서 단풍의 붉은 빛은 훨씬 더 선명하고 요염해진다. 분주히 오가는 탐방객들의 발걸음 속에서 새재의 가을은 시방 무르익고 있는 듯했다.

 

익어가는 단풍, 이별의 날은 다가오고

 

새재 입구에 다다랐을 때는 이미 출발하고 두 시간이 훌쩍 지난 뒤였다. 우리는 거의 10km를 걸은 것이다. 다리도 팍팍했고, 끼니때를 한 시간이나 넘기고 나니 배도 고팠다. 모두 지친 얼굴을 하고 미리 이쪽으로 건너와 있던 버스를 타고 문경온천 쪽의 식당으로 달렸다.

 

문경 쪽에 사는 학생이 예약해 둔 식당에서 먹은 건 ‘문경 약돌 돼지’였다. 약돌에 사료를 섞어서 기른 돼지라는데 맛이 다르긴 했다. 일 때문에 서둘러 가야 했던 우리 반의 남학생 하나가 가지고 온 송어회를 곁들인 늦은 점심 식사는 무척 푸짐했다.

 

사람들은 모두 입을 모아 말했다. 코스를 잘 선택해 주어 고맙다고. 새재는 와 봤지만 그렇게 전 구간을 걸어서 구경하기는 처음이라고. 다리는 아팠지만 정말 좋았다고. 20대에서부터 60대까지 어우러진 방송고의 마지막 소풍은 팍팍한 다리를 두들기며 끝났다.

 

남은 건 12월 초순의 졸업여행이다. 아마 그게 고교 3년의 마지막 행사가 될 것이었다. 인근의 전문대학 수시전형에 합격한 이들은 내년 춘삼월이면 대학생이 될 것이다. 60대에 고교 졸업장을 손에 쥐고 대학생이 되는 봄을 맞으며, 이들의 삶은 다시 젊어지고 새로워질 것이다. 그게 말하자면 ‘배움의 길’이 아니겠는가.

 

 

2014. 10. 21. 낮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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