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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바람과 먼지의 세상, 그 길 위에 서서
이 풍진 세상에 /풍경

맑은 빛깔로 물든 대구 팔공산 ‘단풍 터널’

by 낮달2018 2019. 11.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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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대구 팔공산 순환도로의 ‘단풍’

팔공산 단풍길을 처음 들른 것은 2012년이다. 그때 나는 순정(純精)의 단풍을 만난 감격을 기사로 썼다. (관련 기사 : 그 숲길, ‘순정’의 단풍을 잊지 못하리) 이듬해에도 나는 거길 들렀다. 전년의 감격에 못지않은 감동으로 나는 부지런히 그 풍경을 렌즈에 담았다.

 

두 번 다 거길 찾은 날은 감독관을 면하게 된 대학 수학 능력 시험일이었다. 단풍길의 주말은 차 댈 데가 없다고 했고, 평일에 시간을 내기로는 수능시험일이 제격이었던 것이다. 아마 두 날 다 기온이 꽤 내려간 날이었던 것 같다.

 

가을의 관습적 표지로서의 단풍을 제대로 만나는 일은 쉽지 않다. 해마다 같은 날 같은 시간에 들른다 해도 나무와 숲은 사람들을 기다려주지 않는다. 어떤 때는 이르고 어떤 때는 너무 늦다. 기온과 습도, 햇볕과 바람 따위가 빚어내는 이 성장(盛粧)한 가을의 절정은 해마다 다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아직도 내장산의 단풍을, 그리고 설악산이나 지리산의 단풍을 제대로 만나지 못한 나는 세 해만에 다시 팔공산을 찾았다. 수능일은 모레지만 이제 일을 벗은 나는 가벼워졌다. 비록 순환도로를 한 바퀴 도는 데 그치지만 이 ‘단풍길’에서 나는 예의 이름난 산에 못지않은 ‘단풍’의 감동을 누리고 싶었다.

 

팔공산 단풍길은 파계사(把溪寺)에서부터 수태골을 지나 동화사(桐華寺)에 이르는 16.3㎞에 걸친 팔공산 순환도로에 펼쳐진 길이다. 산을 오르며 만나는 단풍이 아니라 차를 타고 가거나 보도를 걸으며 즐길 수 있는 단풍이다.

 

단풍길의 양쪽 도로변에는 단풍나무가 두 줄로 나란히 늘어서 있다. 그것은 마치 붉고 노란 잎으로 이루어진 단풍의 터널이다. 단풍길의 단풍나무는 여느 단풍나무처럼 칙칙한 빛깔이 아니라 매우 투명한 선홍(鮮紅)빛이다.

 

단풍길에는 사진을 찍고 있는 사람들이 드문드문 이어졌다. 아가씨들과 중년 여인들의 넘치는 탄성과 유쾌한 웃음소리가 한적한 숲길의 고요를 깨뜨리며 트인 하늘로 흩어지곤 했다. 나는 차를 대고 언덕길을 오르내리거나 차를 몰고 두어 차례 숲길을 왕복했다.

돌아와서 나는 정진규 시인의 ‘내장산 단풍’을 읽었다. 그리고 시인이 노래하는 ‘내장(內藏)’의 의미를 오래 골똘하게 생각해 보았다.

 

‘그럴만한 세월이었지 내 안 어디에나 숨어있는 너를 내가 짚어 내기 시작하면서부터 그토록 꼬리를 감추던 네가 전신(全身)으로 돌아서 달려드는 게 두렵다 충만은 언제나 소멸을 예감한다 그것도 알몸이어서 더욱 그러하다 다만당 한 가지 네 비트를 나만이 알 수 있도록 네가 나의 감옥을 지었다는 사실이다 내가 수감되었음을 한동안 나도 몰랐다 내장산 단풍 보러 가서 내장된 단풍을 본 사람은 하나도 없는 듯하다 내장(內藏)을 본 사람은 하나도 없는 듯하다 이미 제가 내장되었음을 짚은 사람은 하나도 없는 듯하다 지리산 철쭉바다 세석평전(細石平田)을 보았던 임오년 늦봄 나의 일기에 네가 좀 비치는 걸 적어둔 게 있기는 하다만 이번 가을 내장산 단풍 보고 와서 나는 더욱 확실해졌다 너를 은애하는 사람이 되었다’ - 정진규, ‘내장산 단풍’ 전문

 


2016.11.16. 낮달

 

 

맑은 빛깔로 물든 대구 팔공산 '단풍 터널'

[사진] 대구 팔공산 순환도로의 ‘단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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