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가의 감을 따서 깎아서 말리다
감 이야기는 이태 전에 이미 주절댄 바 있다. [감 이야기-땡감에서 홍시, 곶감까지] 감과 이어지는 이런저런 이야기는 시골에서 자란 사람이라면 누구에게나 한 자루씩 있을 터이다. 마당에 감나무 한두 그루 없는 시골집은 없을 터이니 말이다.
1. 감 따기
옛날 사람들은 어떤 방식으로 감을 땄던가. 지지난해던가, 난생처음으로 감을 따면서 그런 생각을 했다. 그건 보기보다 만만치 않은 일이었다. 물론 준비는 했다. 먼저 소용에 닿는 도구를 팔지 않나 싶어서 인터넷을 검색해 보았다. 물건이 있긴 했는데 값이 5~7만 원이라 좀 비쌌다.
까짓것, 만들어 가지, 뭐. 나는 집안에 굴러다니던 굵다란 철사에다 빨간색 양파망을 씌워 포충망처럼 만들었다. 처가에 가서 장대 끝에다 그걸 친친 동여맸다. 한두 개쯤 딸 때만 해도 괜찮았는데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장대도 약했지만, 철사가 감의 무게를 감당하지 못해 이내 휘어버린 것이다.
나무에 직접 오르거나 나무 옆의 콘크리트 담 위에 올라서서 작업하는 게 제일 나았다. 그러나 그건 자칫하면 떨어질 수 있었고 무엇보다 손이 미치는 범위가 뻔했다. 고심 끝에 나무 둥치를 두드리기도 하고 나중에는 장대를 휘두르기도 했다. 이러구러 작업은 끝났지만, 결과가 좀 그랬다. 마구 떨어진 감은 으깨지거나 멍이 잔뜩 들어 있었기 때문이다.
열흘 전쯤에 아내가 감을 따러 가자고 했을 때, 그러마고 대답해 놓고 혹시 싶어 다시 인터넷을 검색했다. 이태 동안의 발전(!)은 그야말로 눈부셨다. 여러 가격대의 감 따는 도구가 다투어 나와 있었다. 나는 자루의 길이가 3m에 가까운 3단봉이고 주머니 쪽에도 갈퀴가 달린 놈으로 골랐다. 배송비 포함하여 17,000원이라면 비싼 것은 아니다.
며칠 전 짬을 내어 우리 내외는 처가에 들러서 감을 수확했다. 밀짚모자로 햇볕을 가리고 나는 감을 땄고 아내는 내가 딴 감을 광주리 등에 옮겨 담았다. 두 시간 남짓 만에 작업은 끝났다. 나는 알루미늄 봉이 약하지 않을까 저어했지만, 그건 생각보다 훨씬 튼튼했다. 제구실을 한 감 따는 도구를 가리켜 아내와 장모님은 이구동성으로 외쳤다.
“여보! 대박!”
“그 물건 참 희한하네, 이 사람아.”
홍시는 주머니를 갖다 대는 거로 그만이었다. 저절로 감이 주머니로 굴러떨어졌기 때문이다. 아직 익지 않은 놈들은 주머니에 달린 갈퀴에 걸어서 당기거나 ‘Y’자 봉 끄트머리를 이용해 가지를 꺾는 방식으로 땄다. 더러 옆 가지의 감이 떨어져 박살이 나는 경우가 없지는 않았지만, 우리는 두세 접쯤의 감을 고스란히 거둘 수 있었다.
지나가는 사람마다 찬탄하면서 예의 물건을 어디서 살 수 있는가를 물었다. 나는 인터넷 대신 시장에 가면 아마 있을 거라고 대답해 주었다. 꼭대기에 있는 놈을 따기엔 봉의 길이가 모자랐다. 부득이 담에 올라가지 않을 수 없었는데, 중간에 한번 균형을 잃고 떨어질 뻔한 것을 빼면 작업도 순조로웠다.
결국, 올해 감 따기는 성공적으로 이루어졌다. 나는 감 따는 도구를 접어서 광 깊숙한 곳에다 보관했다. 내년도 내후년도 이 녀석의 도움을 받으리라 기대하면서.
2. 곶감 만들기
아내가 곶감을 만들겠다며 베란다에 감을 말리려 했던 것도 이태 전이다. 아낸 잔뜩 기대한 모양이지만 시도는 절반의 성공에 그쳤다. 바람이 제대로 통하지 않아서 바닥에 닿은 부분부터 곰팡이가 피기 시작한 것이다. 결국, 아내는 반쯤 말라서 잔뜩 당도가 높아진 ‘반건시’로 그것을 거둘 수밖에 없었다.
인근에 감의 고장인 상주가 있다. 그 지역에선 해마다 이맘때쯤부터 곶감 생산에 들어간다. 곶감 건조장에 깎은 감이 주렁주렁 매달린 풍경을 떠올리고 나는 생각했다. 천장에 매달아 놓으면 곶감을 제대로 말릴 수 있지 않을까. 세월이 얼마나 좋은가. 나는 즉시 인터넷 검색을 통해서 플라스틱으로 만든 ‘곶감 걸이’를 샀다.
감을 따고 난 뒤, 내가 뒤처리를 하는 동안 아내와 장모님과 함께 감을 깎았고, 그걸 걸이에 열 개씩 매달았다. 나는 그걸 창고 처마 아래에 가로로 친 줄에다 나란히 걸었다. 해는 설핏 기울고 있는데 깎은 감이 줄지어 걸린 모습은 보기에 아주 좋았다. 장모님께서 함박웃음을 지으셨다.
“동네 사람들이 이걸 보면 어디서 샀냐고 난리가 나겠네, 이 사람아.”
혹시 감에 파리가 꾀지 않을까를 염려하니, 장모님은 장에 가서 모기장 천을 떠다가 가려 놓겠다 하신다. 이왕 길이 난 김에 아내는 집에 와서 나머지 감을 깎아 베란다에 내다 걸었다. 이동용 옷걸이와 빨래 건조대에 감이 나란히 걸린 모습은 보는 것만으로도 흐뭇하다.
아내는 베란다 창문은 늘 열어두는 걸 잊지 말라고 당부했다. 그리고 시간만 나면 베란다의 감을 살펴보고 탈 없이 감이 말라간다고 안도한다. 반건시가 되는 데는 40일, 제대로 곶감이 되려면 꼬박 두 달이 필요하단다. 그게 말라가는 걸 지켜보는 마음은 어쩐지 조마조마하다.
곶감의 색을 좌우하는 것은 습도라고 한다. 곶감 건조에 가장 알맞은 날씨는 낮에 따뜻하고 밤에 추워야 한다는 것이라는데 아파트 베란다야 그런 조건과는 무관한 곳이다. 그래서 아내와 나는 ‘건시’는 몰라도 ‘반건시’ 근처에라도 가게 감이 제대로 말라 주기를 바라고 있을 뿐이다.
2014. 10. 17. 낮달
'이 풍진 세상에 > 풍경' 카테고리의 다른 글
“아니 웬 알프스? 그래, 알프스 맞아!” (0) | 2019.10.31 |
---|---|
문경새재에 당도한 가을, 단풍 (2) | 2019.10.18 |
감 이야기(1)- 땡감에서 홍시, 곶감까지 (0) | 2019.10.17 |
영동의 비단강, ‘풍경’에서 ‘정경(情景)’으로 (0) | 2019.10.12 |
그 산사의 단풍, 이미 마음속에 불타고 있었네 (0) | 2019.10.04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