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이 바람과 먼지의 세상, 그 길 위에 서서

이 풍진 세상에 /풍경140

시인의 마을, 생명의 숲을 찾아서 경북 영양 ‘주실마을’ 기행 전날 마신 술이 미처 깨지 않은 주말 아침에 아내를 재촉하여 길을 나선다. 오늘의 여정은 경북 북부의 3대 오지인 이른바 ‘비와이시(BYC, 봉화·영양·청송)’ 가운데 하나인 영양이다. 내 계산은 아주 단순했다. 나는 영양 ‘주실마을’을 들렀다가 그 마을 숲을 만난 뒤 ‘대티골 숲길’을 한 바퀴 돌아보리라고 생각하였다. 경북 영양군 일월면 주곡리(注谷里) 주실마을 숲은 지난해에 베풀어진 ‘아름다운 숲 전국대회’에서 ‘생명상’(대상)을 받았다. 올해는 같은 면 용화리의 ‘대티골 숲길’이 어울림 상을 받았으니 영양의 숲은 시방 이태에 걸쳐 ‘아름다운 숲’으로 기려지고 있는 참이다. 그뿐이 아니다. 주실마을이 어디인가. 청록파 시인 조지훈(1920∼1968)이 태어난 동네다. 19.. 2020. 11. 12.
일연의 인각사, 혹은 역사를 기억하는 방법 [가을 나들이 ②] 군위 인각사(麟角寺) 아미산 가는 길에 애당초 내 여정에 포함되어 있지 않았던 인각사에 들른 것은 아쉬움 때문이다. 군위군이 브랜드 슬로건으로 선정할 만큼 일연과 , 그리고 인각사는 지역의 풍부한 문화 콘텐츠임에 틀림이 없다. 그러나 내 기억 속의 인각사는 한적한 시골, 초라한 전각 몇 채가 쓸쓸하게 서 있던 20여 년 전의 풍경에 머물러 있다. 물론 일연이 를 편찬한 절집이라고 해서 인각사가 규모를 갖춘 사찰이어야 할 이유는 없지만, 나는 거기서 일연의 시대를 떠올릴 단서라도 하나 찾아보고 싶었다. 아직도 인각사 대신 ‘인각사지’인 까닭 인각사는 고로면 화북리 화산(華山)의 북쪽 기슭 강가 퇴적 지대에 자리 잡은 절이다. 등에 의하면, 인각사 북쪽에 있는 높은 절벽에 전설상의 동물인.. 2020. 11. 11.
경북 군위에도 ‘작은 공룡능선’이 있다 [가을 나들이 ①] 경북 군위군 고로면 아미산(峨嵋山) 지난 7일은 입동(立冬)이었다. 비가 올 거라는 일기예보에 미루었던 나들이를 이날 나선 것은 전혀 비가 올 것 같지 않을 것처럼 날이 맑았기 때문이었다. 지난해부터 간다 간다 하다가 끝내 이루지 못했던 아미산을 드디어 찾았다. 경북 군위읍에 사는 벗의 경차를 타고 고로면 석산리로 향했다. 군위에서만 30여 년째 살고 있는 벗은 익숙하게 꼬불꼬불한 지방도로를 여유롭게 달렸다. 도중에 인각사(麟角寺)와 일연공원을 들렀다가 군위댐(화북댐) 근처 음식점에서 늦은 점심을 먹었다. 군위(軍威)는 경상북도 한가운데쯤에 있는 조그만 고장이다. 남으론 팔공산과 대구광역시에 닿고, 동으로는 청송군·영천시와, 서로는 구미시와 칠곡군, 북으로는 의성군과 접경하고 있다. .. 2020. 11. 10.
10월, 화초 기르기 ‘입문(?)기’ 화초 기르기에 입문하다 주변에 꽃을 가꾸는 이가 있으면 저절로 그 향을 그윽하게 누릴 수 있다며 ‘근화자향(近花者香)’ 운운한 게 지난 8월 말께다. 올해 학년을 같이 맡은 동료 여교사가 조그마한 화분마다 꽃을 길러서 창문 쪽 베란다 담 위에 죽 늘어놓았다는 얘기도 곁들였었다. 그저 꽃을 기르는 취미가 있나 보다, 하고 심상하게 바라보기만 했는데 웬걸, 이 이는 ‘화초 기르기’의 고수다. 추석을 쇠고서는 내게 멋진 화분에 든 고무나무를 분양해 주더니, 며칠 전에는 제라늄 한 포기를 건네주었다. 집에다 가져갔더니 아내와 딸애가 반색했다. 고무나무도 그렇고 제라늄도 처음이다. 고무나무는 두껍고 윤이 나는 대여섯 장의 잎이 보여주는 단순함과 무게감이 마음에 찬다. 잘은 모르지만 이런 화초가 주는 묘미는 그 단.. 2020. 10. 21.
물에 잠길 뻔했던 문화재들, 이리 보니 반갑네 음악과 유적 어우러진 충북 제천 ‘청풍문화재단지’ 수몰(水沒)의 역사는 근대화, 정확히 말하면 댐 건설의 역사와 겹친다. 자연적 지형의 변화로 한 마을이 깡그리 사라지는 일은 있을 수 없으니 말이다. 댐 건설은 당연히 인공의 호수를 만들어낸다. 이 인공호는 그 발치에 누대에 걸친 지역 공동체를 수장시켜 버린다. 수몰은 그 땅에 살던 사람들을 낯선 땅으로 쫓아냈다. 이른바 ‘수몰 실향민’이다. 분단으로 고향 잃은 사람들 대신 근대화와 개발은 물에 잠긴 고향을 둔, 전혀 다른 실향민을 양산했다. 그들은 물에 잠긴 집을 떠나 호수 주변의 인근 마을에 새로 뿌리를 내리거나 고향을 등지고 도회로 떠났다. ‘발 달린 사람’은 간단히 물에 잠긴 옛터를 떠나지만, 문제는 발 없는 고가 등의 문화재다. 이들은 여느 집이.. 2020. 10. 20.
[사진] 해바라기와 코스모스, 누가 주연일까 김천시 감문면 배시내의 해바라기와 코스모스 단지 등잔 밑이 어둡다는 건 언제나 사실이다. 장천 코스모스 축제를 다녀오면서 경기도와 충청도, 강원도와 전라도 등지에서 열리는 코스모스 축제를 주워섬겼지만 정작 인근에서 베풀어진 행사는 모르고 지나갔길래 하는 말이다. 지난 일요일은 방송고 등교일, 정기고사를 치르는 날이었다. 아침에 교무실에 들른 우리 반 여학생(소녀가 아니라 50대 아주머니다.)이 스마트폰으로 잔뜩 찍은 사진을 보여주며 인근에 있다는 해바라기 밭을 소개해 주었다. “한번 가보세요. 아주 대단해요.” “거기가 어디요?” “김천 감문인데요. 배시내라고 아세요?” “배시내?” “배시내 지나 개령 가는 길에 있는 빗내들이라는 곳인데요…….” “빗내? 아, ‘빗내농악’의 그 빗내?” 삼한시대에 김천시.. 2020. 10. 8.
늦은 메밀꽃, 이른 단풍 1. 임기리의 ‘늦은’ 메밀꽃 강원도 봉평 메밀꽃 구경을 나섰다가 영주 무섬에 다녀온 게 지난 9월 5일이다. 우연히 봉화 소천면 임기리 메밀밭 소식을 듣고 거기서 ‘원수’를 갚겠다고 별러 온 지 2주였다. 썩 내켜 하지 않는 가족들을 구슬려 집을 떠난 게 오후 2시가 훨씬 넘어서다. 봉화군 소천면 임기리 지역은 50ha에 메밀을 재배하고 있는 국내에서 최대의 메밀 생산지라고 한다. 당연히 축제도 베풀어진다. ‘소천 메밀꽃 축제’는 9월 19·20일 이틀에 걸쳐 현지에서 베풀어질 예정이었다. 그러나 신종 플루가 번지면서 이 축제는 취소되었다. 나는 축제가 취소돼 한적한 임기리를 돌아볼 수 있다는 사실에 쾌재를 불렀었다. 일부러 내비게이션이 일러 주는 낯선 길을 선택한 것까지는 좋았다. 그러나 임기리 근처.. 2020. 9. 21.
해바라기가 있는 숲길 강원도 태백시의 ‘해바라기 축제’ 태백시의 ‘해바라기 축제’ ‘해바라기 축제’라고 들어보았는가. 강원도 태백시 황연동 구와우 마을에 있는 태백고원자생식물원(이하 식물원)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여름 축제다. 2005년부터 시작된 축제라는데 우리가 정작 이를 알게 된 건 며칠 되지 않는다. 가족의 여름휴가로 영월에서 열리고 있는 ‘동강 국제사진전’에 들렀다가 우리는 에서 축제 기사를 읽은 딸애의 제안으로 태백까지 내쳐 달린 것이었다. 영월 사진박물관과 모운동(‘해를그리며’ 님의 기사에서 얻은 정보로 잠깐 들렀다.)을 거쳐 태백 구와우 마을에 도착한 것은 오후 네 시가 겨워서였다. 식물원 입구가 어쩐지 허술해 보였다. 커다란 입간판 뒤편의 가건물에서 표를 팔고 있었는데 외부 벽면에 ‘공지사항’이라며 펼침막이 붙.. 2020. 8. 16.
군위 선방산 기슭의 옛 가람, 지보사(持寶寺) 의상이 창건한 고찰, ‘보물이 많다’고 한 절집 지난 목요일, 처가를 다녀오는 길에 군위에 사는 이 선생에게 들렀다. 정직하게 살아가는 사람인데, 그 정직이 때로 그의 삶을 고단하게 만드는 듯하다. 그러나 그는 고단하지만, 자신의 원칙이나 정직을 포기할 수 없는 사람이라고 나는 이해한다. 여기서 ‘정직’이란 자기감정을 꾸미거나 ‘교언영색 하지 않음’의 뜻이다. 날씨가 뜨거웠지만, 그를 길라잡이 삼아 인근 군위읍의 지보사와 부계의 한밤마을을 둘러보기로 했다. 언제나 길 위에는 스승이 있다. 주제 없는 시답잖은 얘기로 지새우는 동행 길이었지만, 새삼 새롭고 배우고 느낀 게 여럿이다. 짐작했겠지만 그런 깨달음은 쉽사리 말이나 글로 뭉뚱그릴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지보사는 군위읍 상곡리, 그 모습이 마치 배를 .. 2020. 8. 9.
코로나 시대의 여행, 바다보단 ‘자작나무숲’ ‘국립 김천 치유의 숲’에서 자작나무를 만끽하다 난생처음으로 자작나무숲을 만났다. 경북 김천시 증산면의 수도산(修道山, 1317m)에서다. 강원도 아닌 경상도 내륙에 자작나무숲이 있다고는 전혀 생각지 못했다. 텔레비전에 나온 영양군 수비면 죽파리의 자작나무숲을 시청하던 딸애가 스마트폰을 검색한 끝에 김천에도 자작나무숲이 있다는 사실을 발견한 거였다. 경북 내륙에도 자작나무숲이 있다 그다음 날, 수도산을 향해 떠난 것은 김천농협공판장에 과일을 구경하러 갔다가 시간이 남아서였다. 경매가 끝나는 정오까지 기다리는 대신, 내비게이션에 ‘국립 김천 치유의 숲’을 입력하고 바로 길을 떠난 것이다. 산 아래, 주차장에 차를 대고 가파른 아스팔트 길을 십여 분 땀 흘리며 올랐다. 그때 나는 내 목적지가 도선국사가 창건.. 2020. 7. 15.
접시꽃, 기억과 선택 사이 접시꽃, 저장된 기억의 선택 언젠가는 “사물에 대한 우리의 기억은 매우 선택적인 것처럼 느껴진다.”라고 썼지만 이제 “사물에 대한 우리의 기억은 매우 선택적이다.”로 써도 무방할 듯하다. 우리 기억의 층위를 채우는 갖가지 사물들에 대한 우리들의 인식은 지극히 주관적이고 자의적인 게 분명하기 때문이다. 기억의 선택, 접시꽃 어느 해 봄은 흐드러지게 핀 찔레꽃이, 또 어느 해에는 숲마다 담쟁이덩굴이 무성했다, 고 느낀다. 그러나 그 해 특별히 찔레꽃이 풍년이었던 사실을 입증할 방법도, 그때가 담쟁이의 생육에 특별히 더 좋았던 시기였다는 객관적 증거도 없으니 그 느낌이란 결국 기억에 책임을 물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일상에는 엄연히 존재하지만, 때로 우리의 기억 속에서는 그것은 얼마든지 존재하지 않을 수도 있.. 2020. 6. 22.
[사진] 소백산 죽계구곡 주변 소백산 죽계구곡(竹溪九曲) 지난 6월 6일, 아내와 함께 소백산 죽계구곡(竹溪九曲)을 다녀왔다. 초암사와 성혈사를 들른 건 물론이다. 나오는 길에 소수서원을 들렀고, 블로그에다 그 답사기를 썼다. 뒤늦게 죽계구곡 얘기를 써서 어제 기사로 올렸다. 기사를 스크랩해 오려다가 링크하기로 한다. 기사에서 블로그로 담는 스크랩은 글꼴이 작아지면서 전체적 분위기가 옹색해지는 듯해서다. 한갓진 답사기에 불과하지만 한 이틀쯤 짬을 내서 끙끙거린 결과물이다. 성혈사 얘기는 더 쓰고 싶었는데, 자료를 검색하다가 늑대별 님께서 몇 년 전에 쓰신, 훌륭한 기사가 있어서 포기했다. 늘 다녀와서야 보지 못한 것, 빼먹은 걸 깨닫는다. 며칠 전 정겨운 술자리를 나눈, 미리 공부하고 명승과 유적을 찾는 ‘이 땅에서 잘 놀기’의 주인.. 2020. 6. 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