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이 바람과 먼지의 세상, 그 길 위에 서서

이 풍진 세상에 /가겨 찻집 202

‘복 지리’? ‘복 맑은탕’! ‘복 지리’가 아니라 ‘복 맑은탕’으로 써야 맞다 나는 일본어와는 인연이 없다. 고등학교 시절에도 제2외국어는 독일어를 배웠다. 한 일 년 남짓 배웠나, 기억나는 건 독일어를 가르치던 키 작은 선생님과 독일어 알파벳 ‘아, 베, 체, 데, 게, 하……’, 그리고 ‘이히 리베 디히(Ich liebe dich)’가 고작이다. 그 무렵 대부분의 고교에서는 독일어나 불어를 가르쳤다. 80년대 초반에 부임한 첫 학교에서도 불어를 채택하고 있었다. 몇 해 후에 학력고사 득점에 유리하다면서 일본어로 바꾸기까지 그 여학교에서 불어를 가르친 사람은 임용 동기인 여교사였다. 70년대만 해도 독학으로 하는 일본어 공부가 유행하기도 했지만 나는 그런 데에 워낙 오불관언이었다. 천성이 게으른데다 새로운 것을 배우는 데 대한 부.. 2020. 5. 20.
대통령의 비문(非文) 이명박 대통령의 비문법적 문장 이 대통령의 맞춤법은 이미 온 나라에 널리 알려져 있으니 한두 개 맞춤법이 어긋나는 것쯤이야 새삼스럽지 않다. 그런데 이번 타계한 박경리 선생을 조문하면서 방명록에 남긴 말씀은 단순히 표기에 어긋난 맞춤법 문제에 그치지 않는다. 이 대통령은 방명록에 “이나라 강산을 사랑하시는 문학의 큰별께서 고히 잠드소서.”라고 썼다. 이 문장에서 띄어쓰기가 바르지 않다든가, ‘고이’를 ‘고히’로 쓴 것쯤은 애교로 넘길 수도 있겠다. 문제는 고인이 된 사람의 행위를 현재 시제인 ‘사랑하시는’으로 쓴 것을 포함, 이 문장이 문법에 어긋난, 이른바 ‘비문(非文)’이라는 데 있다. 이 문장이 비문이 되는 이유는 주어인 ‘큰 별께서’와 서술어인 ‘잠드소서’가 서로 호응하지 않기 때문이다. 문장 쓰.. 2020. 5. 9.
‘미션(mission)’ 유감 ‘미션(mission)’은 ‘과제, 임무’를 완전히 대체했다 바야흐로 ‘미션(mission)’의 시대다. 특히 텔레비전의 프로그램마다 미션이 넘친다. 코흘리개 아이들부터 칠팔십 노인에 이르기까지 아무 망설임 없이 ‘미션’과 ‘도전’을 외쳐댄다. 사람들이 즐겨보는 오락 프로그램에서 미션은 출연자의 능력을 재는 수단이 되거나 그것을 수행하는 과정에 동참함으로써 대리만족을 맛보기도 하는 것 같다. ‘미션’이라고 하면 40대 이상은 80년대에 상영된 같은 이름의 영화를 떠올릴 수 있을 터이다. 롤랑 조페 감독의 이 영화는 내용보다 신부로 출연한 로버트 드 니로와 제레미 아이언스가 맡은 역할과 연기가 꽤 강렬한 인상으로 남아 있다. 미션? ‘신이 내린 성스러운 임무’ 남미 오지의 자연을 배경으로 한 장엄한 영상미.. 2020. 4. 20.
‘몇일’은 없다 ‘며칠’은 있어도 ‘몇일’은 없다 어형의 변화를 설명하는 이론에 ‘부정회귀(不正回歸)’가 있다. 이는 ‘옳지 않다고 생각되는 어형을 올바르다고 생각되는 것으로 되돌리기 위하여 오히려 바른 어형까지 잘못 고쳐버리는 것’을 이른다. 이 현상은 주로 우월한 방언(주로 서울 방언)에 대하여 그렇지 못한 지역과 사회 방언의 사용자가 말을 고상하게 하려고 방언이나 비속어 냄새가 나는 말을 지나치게 바로잡으려는 데서 비롯된다. 대표적인 예가 ‘길쌈’이다. ‘길쌈’의 옛말은 ‘질삼’이다. 그러나 ‘질’은 주로 방언에서 쓰이는 소리(길 : 질, 기름 : 지름, 길다 : 질다)여서 사람들은 이를 ‘길’로 되돌린다. 결국, 멀쩡한 ‘질쌈’은 사투리로 떨어지고, 잘못 돌이켜진 ‘길쌈’이 표준말의 자리를 차지하게 된 것이다. .. 2020. 4. 18.
‘과반수(過半數)’를 넘는다? ‘과반수(過半數) 넘다’는 잘못된 표현이다 ……이날 서면을 통해 인권위에 오는 24일 열리는 심포지엄 불참 통보를 했다. 심포지엄 발표자는 10명으로 발표를 거부한 인사가 과반수를 넘는다. 며칠 전 한 인터넷 언론에 실린 뉴스다. 문장 끝부분의 ‘과반수를 넘는다’는 표현은 잘못이다. 과반수(過半數)의 ‘과’에 이미 ‘넘는다’는 뜻이 포함되어 있어서 이 표현은 불필요한 ‘중복 표현’이 되기 때문이다. 의사·의결의 정족수를 말할 때 ‘과반수 출석에 과반수 찬성’이라고 쓰지, ‘과반수 이상’과 같이 쓰지 않는 이유도 같다. 우리말에는 외국과의 접촉을 통해 한자어나 서양에서 온 외래어, 그리고 일본어가 꽤 많이 들어와 있다. 그 결과 자신도 모르게 ‘한자어와 고유어’, ‘외래어와 한자어’, 또는 ‘외래어와 고유.. 2020. 4. 17.
‘작열’과 ‘작렬’ 사이-우리말 발음 이야기 우리말 발음 - ‘작열’과 ‘작렬’ 창피한 이야기다. 오래전에 온라인 서점에서 운영하는 블로그에 글을 쓰면서 ‘살육(殺戮)’을 ‘살륙’으로 쓴 적이 있다. 명색이 국어를 가르치는 처진데 그런 잘못을 저질러 놓고 틀린 줄도 모르고 있었다. 어떤 이웃이 ‘초면에 미안’하다면서 ‘살육’이 아니냐고 반문하는 덕분에 잘못을 바로잡았다. ‘살육’과 ‘도륙’ ‘사람을 마구 죽임’의 뜻으로 쓰는 ‘살육’에 쓰인 한자는 각각 ‘죽일 살’, ‘죽일 육’이다. 여기서 ‘戮(육)’은 원음이 ‘륙’이다. 살육에선 ‘육’으로 읽지만 ‘사람이나 짐승을 함부로 참혹하게 마구 죽임’의 뜻을 가진 ‘도륙(屠戮)’의 경우에는 ‘륙’으로 읽으니 잠깐 헷갈렸던 모양이다. 인터넷 지면에 흔히 쓰이는 낱말 중에 ‘작열(灼熱)’이 있다. ‘사를 .. 2020. 4. 12.
국회, ‘한글 시대’로 가는가 국회기와 국회 배지 속 한자 ‘국(國)’자 사라진다 오는 16일에 본회의에서 개정안이 통과되어야 한다는 절차가 남긴 했다. 그러나 그간 논란이 끊이지 않았던 국회기와 국회 배지(Badge) 속 한자 ‘국(國)’자는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되었다. 1948년 제헌 국회가 열린 이래, 제5대와 8대 국회 때 각각 1년여 한글을 쓴 걸 제외해도 무려 64년 만이다. ‘금배지’에 한자 대신 ‘한글’을 새긴다! 지난 8일, 국회 운영위원회(위원장 최경환)는 노회찬, 박병석 의원과 위원장이 낸 ‘국회기 및 국회 배지 등에 관한 규칙’의 일부개정 규칙안을 심의하여 위원장 안을 위원회 대안으로 채택한 것이다. 일단 상임위를 통과한 안이니만큼 본회의 통과는 어렵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국회의원에 왼쪽 가슴에 다는, 이른바.. 2020. 4. 9.
‘삼D 프린터’와 ‘스리디 업종’ 사이 ‘삼디(3D)와 스리디(three D)’ 관련 소극 한편 더불어민주당의 문재인 후보가 ‘3D 프린터’를 ‘삼디 프린터’로 읽은 뒤에 이런저런 설이 난무하고 있다. 민주당에서 탈당해 대선 출마를 선언한 김종인 후보는 ‘잠깐 실수로 잘못 읽었다고 하기엔 너무도 심각한 결함’이라며 ‘국정 책임자에게 무능은 죄악’이라고 공격했고, 국민의당 안철수 후보는 “전문가 사이에서 통용되는 단어가 있다. 누구나 ‘쓰리디 프린터’라고 읽는다”라고 밝혔다. 이에 당사자인 문재인 후보는 “우리가 무슨 홍길동이냐”며 “‘3’을 삼으로 읽지 못하고 ‘스리’라고 읽어야 하느냐”고 되받았다. 한글문화연대도 이에 대해 ‘공공 영역에서 외국어와 어려운 말을 남용하는 것은 병폐’라며 김종인, 안철수 후보를 싸잡아 비난했다. 3D 프린터 업.. 2020. 4. 5.
선거는 ‘치르고’ 문은 ‘잠근다’ ‘선거’와 ‘경기’는 ‘치루지’ 않고 ‘치른다’ 끝소리가 ‘ㅡ’인 동사 가운데 어떤 낱말들은 ‘ㅡ’가 아닌 ‘ㅜ’로 발음하는 사람이 꽤 많다. ‘치루다’(치르다), ‘잠구다’(잠그다) 같은 말이 그렇다. 잘못이라고 신문이나 방송 등 여러 매체에서 끊임없이 지적하는데도 이런 쓰임은 여전히 이어지고 있다. 에서 검색해 보았더니 인터넷신문을 물론이거니와 중앙 일간지에서도 이 ‘잘못된 표현’이 버젓이 쓰이고 있었다. “큰 선거를 치루다 보면…….” “리그 경기를 치루다…….” “아내와 큰일을 치루다…….” 기본형을 잘못 쓰다 보니 활용도 제멋대로다. 활용 형태를 “치루어(치뤄), 치루니, 치루고…….”, “잠구어(잠궈), 잠구어서(잠궈서), 잠구고…….”처럼 쓰는 것이다. “액체 속에 넣다.”, “김치·술·장·.. 2020. 4. 5.
‘사랑’의 ‘사전적 정의’, ‘이성애’로 돌아가다 사전에서는 ‘사랑’을 어떻게 정의하는가 국어사전은 모국어 사용의 준거로서 기능한다. 국어와 관련한 시비는 ‘사전 찾아보기’로 해결의 실마리를 찾곤 하는 것은 그 때문이다. 또 사전은 일정한 기간마다 사라지는 말, 뜻이 바뀌는 말과 함께 새말의 탄생 따위를 반영한다. 국어사전을 편찬하는 일을 관련 한글 단체와 출판사 등 민간에만 맡기지 않고 정부가 직접 담당하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우리나라에서는 국립국어원이 편찬한 이 모든 언어생활의 준거로 널리 이용된다. 국립국어원, 기독교계 요구에 밀려 재개정 최근 에 실린, 지난 2012년에 바꾼 ‘사랑’에 관한 정의가 이성애를 기준으로 삼은 과거로 되돌아갔다고 한다. 언어 사용에서 차별을 없애고 소수자 인권을 보호하려 한 뜻풀이가 동성애를 조장한다며 재수정하라는.. 2020. 4. 4.
‘쉬운 글’과 ‘풍부한 표현’ 사이 ‘쉬운 글’이라고 해서 ‘풍부한 표현’을 배제하는 건 아니다 이른바 ‘나가수’ 선풍이 우리 시대의 말법을 바꾸어 놓았다. 직업으로서 자기 정체성을 드러내야 할 자리에는 어김없이 ‘나는 ○○다’가 쓰이니 말이다. 그것은 일상 속에서 잊혀 가는 ‘실존’을 대중 앞에서 더불어 확인하는 ‘정체성(아이덴티티: identity)의 통과 의례’ 같은 것은 아닐는지. “나는 국어 교사다.” 나는 그런 식의 자기 확인이 굳이 필요하지 않을 만큼 충분히 자신이 국어 교사라는 사실을 강하게 의식하며 살아왔다. 블로그를 비롯한 몇몇 지면에 실을 글을 쓰거나 사람들 앞에서 이야기할 때 나는 자신의 직업과 그것이 규정하는 어떤 ‘멍에’를 늘 의식하곤 했다. 소일거리로 쓰는 편한 글도 퇴고를 거듭하고, 미심쩍은 낱말은 몇 군데 사.. 2020. 3. 28.
썩은 소나무 그루터기, ‘고두배기’를 아십니까? 경상도 방언 ‘고두배기’의 표준어는 ‘고주박이’ 아직 봄이라 하기에는 이르지만, 삼월이 코앞이다. 지난겨울은 길고 추웠던 까닭에 자연 산행을 나서는 날이 줄었었다. 줄기만 한 게 아니고, 가파른 산길을 오르고 나면 넓적다리관절(고관절) 쪽에 통증이 있곤 하여 어느 날부턴가 산행 대신 이웃 가맛골[부곡(釜谷)]까지 평지를 걷고 있다. 그러다가 새로 발견한 산길이 이웃한 중학교 뒷산을 올라 가맛골까지 벋은 밋밋한 숲길이다. 다소 가파른 오르막을 10여 분만 오르면 산등성이에 이르고 여기서부터는 완만한 경사의 산길이 죽 이어지는 맞춤한 길이었다. 그 길에서 만난 것은 청미래덩굴의 열매다. 사람 손을 타지 않아서인지 가맛골 뒤 저수지 근처의 잡목숲에는 청미래덩굴 군락이 빨갛게 열매를 매달고 있었다. 그 길을 지.. 2020. 3. 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