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대통령의 비문법적 문장
이 대통령의 맞춤법은 이미 온 나라에 널리 알려져 있으니 한두 개 맞춤법이 어긋나는 것쯤이야 새삼스럽지 않다. 그런데 이번 타계한 박경리 선생을 조문하면서 방명록에 남긴 말씀은 단순히 표기에 어긋난 맞춤법 문제에 그치지 않는다.
이 대통령은 방명록에 “이나라 강산을 사랑하시는 문학의 큰별께서 고히 잠드소서.”라고 썼다.
이 문장에서 띄어쓰기가 바르지 않다든가, ‘고이’를 ‘고히’로 쓴 것쯤은 애교로 넘길 수도 있겠다. 문제는 고인이 된 사람의 행위를 현재 시제인 ‘사랑하시는’으로 쓴 것을 포함, 이 문장이 문법에 어긋난, 이른바 ‘비문(非文)’이라는 데 있다. 이 문장이 비문이 되는 이유는 주어인 ‘큰 별께서’와 서술어인 ‘잠드소서’가 서로 호응하지 않기 때문이다.
문장 쓰기에 있어서 초보자들이 가장 많이 범하는 오류가 주어와 서술어 간의 호응을 이루지 못하는 경우다. 일정한 문장에서 주어와 서술어는 짝을 제대로 맞추어야 한다. 그러나 이런 주술호응에 어긋난 비문도 적지 않다. 다음 문장은 전형적인 주술호응을 이루지 못한 문장이다.(*는 비문 표시)
* 확실한 것은 그들이 이제까지의 잘못을 반성하고 앞으로 진실한 국민으로 살아갈 것은 틀림없습니다
이 문장에서 주어는 ‘확실한 것은’이고 서술어는 ‘틀림없습니다.’다. 그러나 실제로 ‘틀림없습니다.’라는 서술어의 주어는 바로 앞에 있는 ‘살아갈 것은’이니 맨 앞에 나온 주어는 서술어가 없는 셈이어서 비문이 되었다. 이 문장은 ‘확실한 것은∼살아가야 한다는 것입니다.’로 쓰거나, 서술어가 없는 ‘확실한 것은’을 없애면 자연스러운 문장이 될 수 있다.
·그들이 이제까지의 잘못을 반성하고 앞으로 진실한 국민으로 살아갈 것은 틀림없습니다.
·확실한 것은 그들이 이제까지의 잘못을 반성하고 앞으로 진실한 국민으로 살아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서술어 ‘잠드소서’는 ‘잠들라’라는 의미의 높임표현이다. 그런데 이 ‘잠드소서’라는 명령형(실제로는 기원하는 뜻이지만 활용 형태로는 명령형으로 본다.)은 죽은 사람에게 직접 건네는 형식으로 주로 쓴다. 그래서 일반적인 형태의 주어에 붙여 쓸 수 없다. 다음 문장은 비슷한 형식의 잘못된 문장이다.
* 일생을 조국 광복을 위해 바쳤던 선생께서 고이 잠드소서.
위의 예문이 주술호응을 이루는 문장이 되기 위해서는 ‘선생님께서’를 주격조사 ‘-께서’ 대신 ‘선생님이시여’와 같이 호격형으로 바꾸어 주어야 한다.
·일생을 조국 광복을 위해 바쳤던 선생님이시여, 고이 잠드소서.
따라서 이 대통령의 문장을 바르게 고치면 다음과 같은 문장이 된다.
·이 나라의 강산을 사랑하시던 문학의 큰 별이시여, 고이 잠드소서.
‘강산 사랑’을 언급한 것은 고인의 대하소설 <토지>를 의식한 표현으로 보이는데, 어쨌든 대통령의 기원처럼 박경리 선생께서 이승의 고단한 삶을 내려놓고 편히 쉬셨으면 좋겠다.
2008. 5. 8. 낮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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