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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션(mission)’ 유감

by 낮달2018 2020. 4.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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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션(mission)’은 ‘과제, 임무’를 완전히 대체했다

▲  SBS-TV 의 인기 프로그램  < 생활의 달인 >  ⓒ  SBS  화면 갈무리

바야흐로 ‘미션(mission)’의 시대다. 특히 텔레비전의 프로그램마다 미션이 넘친다. 코흘리개 아이들부터 칠팔십 노인에 이르기까지 아무 망설임 없이 ‘미션’과 ‘도전’을 외쳐댄다. 사람들이 즐겨보는 오락 프로그램에서 미션은 출연자의 능력을 재는 수단이 되거나 그것을 수행하는 과정에 동참함으로써 대리만족을 맛보기도 하는 것 같다.

 

‘미션’이라고 하면 40대 이상은 80년대에 상영된 같은 이름의 영화를 떠올릴 수 있을 터이다. 롤랑 조페 감독의 이 영화는 내용보다 신부로 출연한 로버트 드 니로와 제레미 아이언스가 맡은 역할과 연기가 꽤 강렬한 인상으로 남아 있다.

 

미션? ‘신이 내린 성스러운 임무’

 

남미 오지의 자연을 배경으로 한 장엄한 영상미가 돋보이는 이 영화는 1986년도 칸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받았을 뿐 아니라 상업적으로 성공했다. 그땐 무심코 흘려보냈지만, 엔니오 모리코네의 음악은 최근 TV 프로그램에서 소개되면서 한 바탕 유명세를 치르기도 했다.

 

영화는 폭력에 대한 두 사제의 서로 다른 대응을 중심으로 종교적 사랑을 다루고 있다. 제목 ‘미션’의 의미는 주인공인 신부들이 수행하는 ‘신이 내린 성스러운 임무’를 뜻한다. 영화에서야 신부들의 성스러운 희생과 투쟁이 강조되지만, 기실 ‘미션’의 배경은 아메리카 대륙과 원주민들을 대상으로 한 백인들의 잔혹한 정복사라 할 수 있다.

 

아메리카 대륙에 상륙한 백인들은 인디언들에게 그들이 오랫동안 간직하였던 종교 대신 성경을, 백인들의 법률과 언어를 강요하였다. 이 백인 정복자들이 새로운 영토를 늘릴 때면, 먼저 성경과 신부가 도착하였다. 이들 신부에게 주어진 임무가 바로 ‘미션’이었던 것이다.

▲ 영화 <미션>(1986). ‘미션’은 ‘신이 내린 성스러운 임무’를 뜻한다 .

백과사전에서는 미션을 ‘선교(宣敎), 그리스도교 신앙을 전하는 교회의 활동’으로 풀이하지만, 영어 사전에서는 ‘전도’나 ‘포교’에 이어 ‘임무’, ‘과제’ 등의 여러 가지 의미로 새기고 있다. 애당초 선교에서 쓰인 단어의 의미가 확대된 경우로 보면 될 듯하다.

 

각 지상파 방송에서 내보내고 있는 오락 프로그램마다 다투어 ‘미션’을 다루고 있다. 가장 일반적인 의미의 ‘미션’은 SBS에서 방영하는 ‘생활의 달인’에서 수행하는 그것이다. ‘수십 년간 한 분야에서 종사하며 부단한 열정과 노력으로 달인의 경지에 이르게 된 사람들’을 다루는 이 알싸한 프로그램은 모르긴 몰라도 만만찮은 시청률을 자랑한다.

 

TV 방송마다 넘치는 ‘미션’

 

상상을 초월하는 온갖 분야의 삶의 이야기와 현실감이 담긴 이 프로그램은 당연히 그 달인이 이른 ‘도(道)’를 검증하여야 한다. 이 검증을 위해 부여하는 ‘과제’가 바로 ‘미션’이다. 글쎄, 나는 출연자들이 얼마나 제대로 ‘미션’의 뜻을 알고 있는지 좀 의문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거침없이 그 과제를 ‘미션’이라 부르고 거기 ‘도전’한다.

 

리얼 버라이어티 예능 프로그램의 양대 산맥이라는 ‘무한도전’(MBC)과 ‘1박2일(KBS2)’에도 ‘미션’은 어김없이 등장한다. 여기서도 한정된 시간 안에 수행해야 하는 과제를 ‘미션’이라고 부른다. 역시 거침이 없다. 그걸 시키는 사람이나 그 과제를 따르는 사람이나.

 

요리 프로그램에서 ‘레시피’가 ‘조리법’을 대체한 것처럼 미션은 바야흐로 이 나라의 방송에선 표준 언어의 지위를 얻은 듯 보인다. ‘그렇구나’ 하고 바라보지 못할 것도 아닌데 볼 때마다 좀 마음이 불편하다. 여전히 나는 백인들 정복의 역사에 명멸했던 ‘미션’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것일까.

 

한때는 TV 프로그램 이름이나 연예인 이름조차 ‘한글화’를 강요하던 시절도 있었다. 그래서 멀쩡한 ‘김세레나’가 ‘김세나’가 되고 ‘라나 에 로스포’가 ‘개구리와 두꺼비’가 되고 ‘바니걸스’가 ‘토끼 소녀’, ‘어니언스’가 ‘양파들’이 되는 시대가 그것이었다.

 

언어나 문화 정책마저 정책 당국자의 의지가 일관되게 관철되던 군부독재 시기의 웃지 못한 소극이다. 그러나 적어도 과잉이긴 했지만, 그때는 ‘모국어’에 대한 자의식이랄까, 정체성에 대한 자각들이 살아 있었던 시기였다는 걸 부인할 수는 없다.

 

미션, ‘중요임무’보다 '과제'로

 

국립국어원이 몇몇 언론사와 함께 하는 ‘우리말 다듬기’는 여전히 이어지고 있지만, 정작 그 성과들이 현실 언어생활에 적용되는가는 별개처럼 보인다. 사람들은 외국어를 쓰면서 그게 우리의 언어생활과 어떤 연관이 있는가에 무심하기만 한 것이다.

 

우리말 다듬기를 마친 말을 살펴보면 ‘미션’도 있다. 미션은 누리꾼들의 투표를 거쳐 ‘중요임무’로 순화되었다. 앞서 든 TV 프로그램의 내용에 비추어 보면 거기서 ‘미션’은 의미상 ‘중요임무’보다는 ‘과제’에 훨씬 가깝다. 그러나 예의 TV 프로그램에서 미션을 ‘중요임무’든 ‘과제’든 바꾸어 부를 가능성은 없으리라.

 

이미 ‘미션’은 비슷한 포맷의 방송에서 하나의 형식으로 자리 잡았다고 보아도 무방할지 모르겠다. 그 같은 경우를 거쳐서 우리말이 이른바 ‘글로벌화’ 되는 것이라고 강변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이런 방식으로 영어가 우리말의 자리를 대체하는 만큼 우리말의 외연이 줄어들 수밖에 없다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2011. 4. 20. 낮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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