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이 바람과 먼지의 세상, 그 길 위에 서서
이 풍진 세상에 /가겨 찻집

썩은 소나무 그루터기, ‘고두배기’를 아십니까?

by 낮달2018 2020. 3. 27.
728x90
SMALL

경상도 방언 ‘고두배기’의 표준어는 ‘고주박이’

▲ 아직 이른 듯하지만 이미 봄은 오고 있다 . 아파트 화단의 산수유가 꽃눈을 틔우고 있다 .

아직 봄이라 하기에는 이르지만, 삼월이 코앞이다. 지난겨울은 길고 추웠던 까닭에 자연 산행을 나서는 날이 줄었었다. 줄기만 한 게 아니고, 가파른 산길을 오르고 나면 넓적다리관절(고관절) 쪽에 통증이 있곤 하여 어느 날부턴가 산행 대신 이웃 가맛골[부곡(釜谷)]까지 평지를 걷고 있다.

 

그러다가 새로 발견한 산길이 이웃한 중학교 뒷산을 올라 가맛골까지 벋은 밋밋한 숲길이다. 다소 가파른 오르막을 10여 분만 오르면 산등성이에 이르고 여기서부터는 완만한 경사의 산길이 죽 이어지는 맞춤한 길이었다.

 

그 길에서 만난 것은 청미래덩굴의 열매다. 사람 손을 타지 않아서인지 가맛골 뒤 저수지 근처의 잡목숲에는 청미래덩굴 군락이 빨갛게 열매를 매달고 있었다. 그 길을 지날 때마다 물끄러미 그 열매를 바라보곤 했다. 그걸 굳이 입에 넣어보지 않았던 것은 마음이 늙어버린 탓일 것이다.

▲ 사람들 손을 안 탔던가 .새 등산로 길가에 군락을 이룬 청미래덩굴이 빨간 열매를 아직 달고 있었다 .

아파트 게시판에 봄철 산불 조심 기간(1.25∼5.15)이라면서 입산 시 라이터 등 인화성 물질 휴대해선 안 된다는 글이 붙었다. 담배를 끊은 지 10년도 넘은지라 그런 걱정은 접어두어도 좋다. 천천히 산길을 오르면서 이런저런 갈피 없는 생각들에 젖는데 늘 그렇듯 옛날 생각들이기 십상이다.

 

어릴 적 산불을 내고서 캐던 ‘고두배기’

 

초등학교 4학년 때던가, 고향 뒷산에 올랐다가 산불을 낸 적이 있었다. 중학생이던 형과 함께 나무하러 가는 형 친구를 따라 산에 올랐다. 형이 화투 놀이를 하자면서 주머니에 화투를 꺼냈는데 화투장이 잔디 위에서 제대로 붙어 있지 않자 화투판만큼만 태우자며 성냥을 꺼내 잔디에 불을 붙였다.

 

한겨울, 바싹 마른 잔디에 붙은 불이 어떻게 번졌는지는 물어보나 마나다. 발치의 불은 밟고 윗도리를 벗어 껐지만 불어오는 세찬 바람은 불을 순식간에 산등성이로 몰아갔다. 불길을 잡다가 안 되겠다고 판단한 형 친구는 빈 지게를 지고 사람을 데리러 마을로 내려갔다.

 

무시무시한 소리를 내며 타오르는 불길 앞에 우리 형제는 속수무책 멍하니 불길을 돌아보며 절망할 뿐이었다. 결국, 저수지 공사를 하던 인부들이 대거 올라와 두어 시간 동안 진화한 결과 불길은 간신히 잡혔다.

 

형과 나는 지서에 불려 가서 혼찌검이 났다. 성깔깨나 있어 뵈는 지서 주임은 ‘소년교도소’에 보내야겠다고 으름장을 놓았고 나는 잔뜩 겁을 집어먹었다. 아버지께서 대신 사죄한 끝에 우리는 집으로 돌아왔다.

 

이튿날, 우리 형제는 짚을 잔뜩 썰어 한 부대 짊어지고 아버지를 따라 우리가 태운 산자락을 돌았다. 타 버린 산자락에 그을린 무덤이 예닐곱 군데가 있었는데 우리는 아버지의 지시에 따라 여물을 뿌리고 마음속으로 그 무덤의 임자들에게 잘못을 빌었다.

▲ 땅에 박힌 채 썩은 (소)나무의 그루터기인 고두배기는 요즘 산에서 얼마든지 만날 수 있다.
▲ 베어낸 나무의 남은 그루터기 . 얼마간 시간이 지나면 이놈도 고두배기가 될 것이다 .

산에서 내려올 때 우리는 산자락을 타면서 만난 ‘고두배기’를 보는 족족 넘어뜨려서 그걸 빈 부대에 담아 짊어지고 내려왔다. 무언가 죄스러워 그런 땔감이라도 만들어 와야 할 것 같아서였다. 인정이 요즘 같지 않은 1960년대여서 그걸로 이 방화사건을 막을 내릴 수 있었다.

 

얼마 전까지 ‘고두배기’의 표준말이 뭔지 몰랐다

 

‘고두배기’가 무엇이냐고요? ‘땅에 박힌 채 썩은 소나무의 그루터기’다. 소나무라고 했지만 다른 나무도 우린 고두배기라고 불렀다. 고두배기는 썩어서 발로 슬쩍 밀어도 넘어가니 힘들이지 않고도 갈무리할 수 있는 땔감이었다.

 

중고교에서 30년 넘게 국어를 가르쳤어도 정작 나는 그 ‘고두배기’의 표준말을 몰랐다. 굳이 그걸 알아봐야 할 이유가 없어서였다. 국어사전엔 방언으로 표준어를 검색할 수 있는 기능이 없었고 <방언사전> 같은 걸 찾을 생각도 않았기 때문이다.

▲ 표준말로 솔가리 (말라서 땅에 떨어져 쌓인 솔잎)를 경상도에선 '깔비'라 한다.

요즘 들어서야 기특하게도 인터넷에서 찾아보면 답을 얻을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인터넷 검색으로 찾은 곳이 ‘고향 말 여행’이다. 경남 통영지방의 초등학교 교사 한 분이 열고 있는 인터넷 웹 사이트인데 얼마 머무르지 않고도 나는 거기가 보물섬이라는 걸 알았다. 

 

‘경남 전 지역(부산ㆍ울산 포함)에서 사용하는 말 가운데서 표준어와 차이 나는 말 전부를 올리는 것을 원칙’으로 했다는 이 사이트에선 ‘8도 방언 여행’을 떠날 수 있고 ‘방언’으로 ‘표준어’를, ‘표준어’로 ‘방언’을 찾을 수도 있다.

▲ 방언으로 표준어를, 표준어로 방언을 검색해 볼 수 있는 웹 사이트 '고향 말 여행'.

마치 정겨운 시골 구멍가게 같은 모습을 한 이 사이트에서 나는 쾌재를 불렀다. 내가 궁금해했던 엔간한 경상도 사투리의 표준어로 모두 찾을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사이트를 운영하는 그 초등 선생님을 만날 수 있으면 고마운 마음을 전하고 싶을 정도였다.

 

‘고두배기’의 표준어는 ‘고주박’이다. 그렇게 간단하게 찾을 수 있는 말이었는데, 좀 허탈할 지경이었다. 신이 나서 나는 생각나는 사투리로 검색을 계속해 보았는데 엔간한 낱말은 모두 답을 보여 주었다.

 

‘깔비’라고 하는 건 ‘말라서 땅에 떨어져 쌓인 솔잎.’인데 표준어로는 ‘솔가리’다. ‘모캐이’는 ‘구부러지거나 꺾어져 돌아간 자리.’, 즉 ‘모퉁이’의 사투리다. 이 말은 우리가 아닌 부모님 세대에서 늘 쓰시던 말이었다.

 

경상도에서 흔히 쓰는 말로 ‘갋다’란 말은 ‘맞서서 견주다’의 뜻인데 표준어로는 ‘가루다’다. 그러나 우리는 그것 대신 ‘갋다’를 매우 즐겨 쓴다. “그 사람 같지 않은 인간은 갋지를 말아라”와 같은 형식으로 말이다.

 

다른 지역 사람이 못 알아듣는 경상도 사투리로 ‘널(너얼)찌다’와 ‘띠끼다’가 있다. 앞엣것은 ‘떨어지다’, 뒤엣것은 ‘넘기다’다. ‘띠끼다’는 안동 지방에 가면 ‘떨어뜨리다’, ‘내려주다’는 뜻으로 쓰인다. 이 경우엔 같은 경상도 사람도 못 알아듣는다.

 

* 다리 건너다가 널쪄서(떨어져서) 다리를 뿔랐단다(부러뜨렸단다).
* 공부한다고 책장을 띠끼고(넘기고) 있는데 모르지. 공부하는 긴(건)지, 폼만 잡는 긴지.
* 가다가 나는 역 앞에 띠끼 도(내려다오).

 

‘고향 말 여행’의 운영자는 국어사전에 나오는 ‘사투리’의 뜻풀이는 대체로 부정적인 의미라고 전제한다. 그러나 긍정적인 의미가 있는 말로 ‘지역어, 방언, 탯말, 고향말’이 있는데 특히 ‘탯말’과 ‘고향말’은 ‘방언을 널리 사랑하는 사람들이 주로 쓰고 있는 말’이라고 주장한다.

 

‘지역어’와 ‘방언’이 사전에 올라 있는 말인 대신에 ‘탯말’과 ‘고향말’은 아직 표준어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운영자는 사투리란 ‘우리 조상들이 오랫동안 써 온 말 중에서 표준어로 인정받지 않은 말’이라고 정의하면서 사투리에 대한 사랑을 드러내고 있다.

아이들에게 국어를 가르치면서 규범어인 표준어를 강조할 수밖에 없긴 했다. 초임 시절만 해도 가능하면 표준어를 쓰려고 애썼지만 나이 들면서 사투리를 쓰는 게 그리 편할 수 없었다. 사투리에 대한 용인의 범위는 나이 들면서 점점 커졌다는 얘기다.

 

그런 뜻에서 나는 ‘고향 말 여행’의 운영자와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는 셈이다. 규범 밖의 언어이긴 하지만 사투리는 모국어의 외연을 넓히면서 표현과 의미를 더욱 풍성하게 만든다는 점에서 우리 민족의 소중한 언어 유산이다.

 

 

2018. 3. 1.

반응형
LIST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