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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바람과 먼지의 세상, 그 길 위에 서서
이 풍진 세상에 /가겨 찻집

‘쉬운 글’과 ‘풍부한 표현’ 사이

by 낮달2018 2020. 3.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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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쉬운 글’이라고 해서 ‘풍부한 표현’을 배제하는 건 아니다

▲ 모음삼각도. 나는 'ㅡ'와 'ㅓ'의 발음을 분간하지 못한다.

이른바 ‘나가수’ 선풍이 우리 시대의 말법을 바꾸어 놓았다. 직업으로서 자기 정체성을 드러내야 할 자리에는 어김없이 ‘나는 ○○다’가 쓰이니 말이다. 그것은 일상 속에서 잊혀 가는 ‘실존’을 대중 앞에서 더불어 확인하는 ‘정체성(아이덴티티: identity)의 통과 의례’ 같은 것은 아닐는지.

 

“나는 국어 교사다.”

 

나는 그런 식의 자기 확인이 굳이 필요하지 않을 만큼 충분히 자신이 국어 교사라는 사실을 강하게 의식하며 살아왔다. 블로그를 비롯한 몇몇 지면에 실을 글을 쓰거나 사람들 앞에서 이야기할 때 나는 자신의 직업과 그것이 규정하는 어떤 ‘멍에’를 늘 의식하곤 했다.

 

소일거리로 쓰는 편한 글도 퇴고를 거듭하고, 미심쩍은 낱말은 몇 군데 사전을 뒤적이는 수고를 아끼지 않는다. 늘 ‘학교 문법’을 의식하면서 말하고 쓰다 보니 자연 내 말글살이는 꽤 보수적인 구석이 있다. 그러나 내 아킬레스건은 타고난 ‘발음’ 능력이다.

 

나는 모음삼각도를 그려서 그 차이를 설명할 수 있는데도 ‘ㅓ’와 ‘ㅡ’를 거의 구분해 발음하는 게 잘 안 된다. 그게 내 노력의 부족 때문인지, 발음기관을 제대로 쓰지 못해서인지는 잘 알 수 없다. 이런 발음의 구분은 여자애들이 훨씬 예민한 듯하다. 여학교에선 다소 지적되곤 했지만, 사내아이들은 내 발음에 거의 이의를 제기하지 않으니 말이다.

▲ 이오덕, <우리글 바로 쓰기> (한길사 )

철 지난 ‘한자혼용론’에 목을 맨 사람들은 여전한 듯하다. 이들은 로비를 통해 ‘국어기본법’을 손보자고 덤비기도 한다. 그러나 이 ‘글로벌’한 ‘정보화 시대’에 ‘혼용론’이 설 자리는 없지 않은가. ‘한글 전용’은 이미 시대적 대세다. ‘한글전용’이란 “모든 글은 한글로 쓸 수 있다.”는 믿음과 그 현실적 표현이다.

 

필요한 경우에는 한자를 나란히 쓸 수는 있지만, 굳이 그래야 할 일이 어디 있는가. 창간된 지 20년이 넘은 <한겨레>에서 그동안 쓴 한자를 상상해 보라. 굳이 괄호 속에 한자를 쓰는 것은 자신의 의도를 독자들이 알아채지 못한다고 예단하는 필자의 ‘과잉친절’일 뿐이다.

 

나는 ‘한국 한문학’이 ‘국문학’의 일부라고 믿지만 그래서 한문도 한글처럼 배워야 한다는 식의 의견에는 동의하지 않는다. 특히 우리말의 70%가 한자어이므로 한자(한문)를 배우면 국어를 더 잘할 수 있다는 따위의 주장에도 별로 동의하고 싶지 않다.

 

한자가 낯설지 않은 우리 세대와는 달리 요즘 아이들에게 한자는 다만 외국어일 뿐이다. 영어가 아이들에게 낯선 낱말이듯 복잡한 기호처럼 ‘그려야 하는’ 한자도 아이들에게 낯선 이국의 문자 이상도 이하도 아니기 때문이다. 나는 굳이 어원을 통해 영어의 낱말을 배우지 않듯 한자의 음과 훈을 통해 한자어를 익혀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한자어도 우리말 ‘유산’이다

 

그러나 나는 한글로 표기하는 한자어도 우리말의 만만찮은 ‘유산’이라고 생각한다. ‘한자’에 필요 이상으로 기겁을 하는 한글 전용론자와 갈리는 대목이다. 굳이 한글로 표현할 수 있는 말을 어렵게 한자로 표기할 일이야 없겠지만 유의어가 가진 ‘독특한 의미망’을 부정할 필요가 없다는 생각 때문이다.

 

모든 ‘글쓰기’의 기준이랄까, 표준을 제시한 이는 이오덕 선생이었다. 그는 <우리글 바로 쓰기>를 통해 ‘백성의 말’을 지향한 언어 민중주의자였다. 그는 무엇보다도 ‘글 쓰듯 말하지 말고 말하듯 글을 쓰라’고 했다. 그는 ‘언문일치’를 가장 바람직한 형태의 말과 글로 여겼다.

 

특히 그가 책을 통해 지적한 잘못된 표현들은 이 나라 지식인이라면 누구나 자신을 돌이켜 보게 했다. 관형격 조사 ‘-의’와 접미사 ‘-적’의 사용, 일본말투의 표현 등에 들이댄 그의 비판은 그만큼 매서운 것이었다. 나는 그의 책을 읽고 그가 지적한 오류(‘-에 다름 아니다’, ‘주목에 값한다’ 따위)를 기꺼이 버렸다.

 

그의 ‘결벽’은 좀 까다롭다. 그는 ‘먹거리’ 등, 민중의 삶과 동떨어진 고유어로 새말 만들기에도 거부반응을 보였다. 그가 너그러웠던 것은 사투리와 같은 백성의 말, 농민과 고향의 말이었던 것 같다. 그는 심지어 순수한 우리말인데 지금은 그다지 쓰지 않는 말을 찾아내어 쓰는 일도 그리 곱게 보지 않았다.

 

이 같은 이오덕 선생의 태도에 대해서 “가장 ‘단아한 문체’의 에세이스트”로 평가되는 고종석조차 손을 홰홰 내젓는다. 고종석은 이오덕의 처방으로 자신의 글쓰기를 바로잡았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처방을 전적으로 따르지 못한다고 고백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오덕의 처방을 죄다 따를 수는 없었다. 어느 땐 그의 견해에 공감할 수 없었고, 어느 땐 공감하면서도 해묵은 습성을 이기지 못했다. 이오덕의 우리 말 치료는 어휘 수준을 훌쩍 넘어서 문체에 이르고 있는 만큼, 그에게 ‘양호’ 판정을 받을 글쟁이는 거의 없을 것이다.

 

(……)이오덕 선생이 살아 계셔 이 글을 읽으신다면 고치실 곳이 한두 군데가 아닐 것이다. 그렇지만 나는 선생이 고치신 곳을 내 고집대로 되돌려 놓을지도 모른다.

 

     ― 고종석 “말들의 풍경” 중에서

 

▲이오덕(1925~2003) 선생

고종석과 견줄 형편은 아니지만 나는 그의 선택보다 선생의 생각에서 더 멀리 있을지 모르겠다. 나는 이오덕을 따르는 이들이 한결같이 이야기하는 ‘쉬운 글’에 동의한다. 그러나 동시에 나는 쉽지 않은 글이 지향하는 ‘풍부한 표현’ 쪽의 손도 들어주고 싶다.

 

‘쉬운 글’과 ‘풍부한 표현’ 사이의 경계는 좀 모호하다. 전교조 합법화를 앞두고 바빴던 시절의 일인데 이래저래 공식적으로 말할 기회가 잦았다. 나는 자신이 국어 교사라는 사실을 염두에 두지 않을 수 없어서 글은 물론이거니와 말도 깡총하게 정리해서 하려 애썼다.

 

그런데 정작 사람들 사이의 평가는 엇갈렸던 모양이다. 짧은 인사말인데도 ‘서·본·결을 나누어서 정리를 깔끔하게 한다’는 평가와 함께 ‘쉬운 말을 어렵게 한다’는 반응도 있었으니 말이다. 쉬운 말을 어렵게 한다고 평가한 이는 영어 교사였다. 나는 머리를 갸웃했을 뿐 웃고 말았다.

 

‘쉬운 글’과 ‘풍부한 표현’

 

단순히 이야기의 골자만을 나누는 게 대화라면 이 세상에 그 숱한 비유와 상징이 무슨 소용인가. 사랑의 고백이 어찌 ‘나는 너를 사랑한다’밖에 없겠는가 말이다. 만약 그것밖에 없다면 세상은 얼마나 끔찍하겠는가. 일상의 언어가 반드시 건조한 ‘지시적 의미’로 칠갑한 말뿐이겠는가.

 

십몇 년 전에 ‘문학 교사의 책 읽기’라는 글을 썼다. 유년기부터의 독서 편력을 미주알고주알 다룬 글이었는데 어떤 동료 교사로부터 ‘무슨 소린지 모르겠다’는 힐난하는 듯한 얘기를 들었다. 마땅히 대꾸할 말이 떠오르지 않아 궁싯거리다 말았다.

 

무슨 현학적인 철학을 다룬 것도, 특별한 비유나 상징을 쓴 글도 아닌데 그렇게 나오니 당혹스럽기 짝이 없었다. 그걸 간단히 ‘무식’으로 치부할 일은 아니지 않는가 말이다. 액면 그대로 비트겐슈타인의 어록을 떠올리는 이유다. 진실로 ‘그의 언어의 한계는 그의 세계의 한계’인 것인가.

 

글에도 흐름이 있다. 그 흐름은 때론 아름다운 ‘우리말’ 물길로 흐르기도 하고, 때론 살가운 ‘한자 말’로 그 흐름을 바꾸기도 하면서 뜻과 마음을 얻고 펴는 것이다. 글은 ‘말의 운용’으로 이루어지지만 거기 쓰인 재료의 성질에 따라 그 뜻을 달리 새겨야 하는 건 아니다. 문제는 그것들의 조화로운 어우러짐일 터이기 때문이다.

 

 

2012. 3. 28. 낮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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