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이 바람과 먼지의 세상, 그 길 위에 서서

이 풍진 세상에 /가겨 찻집 202

도찐개찐 : 오십보백보 ‘도찐개찐’ vs ‘오십보백보’ 어저께 인터넷 매체 에 오른 표제어 가운데서 ‘도찐개찐’이라는 낱말을 보고 고개를 갸웃했다. ‘거기가 거기다’, ‘오십보백보’라는 뜻으로 쓰는 말이긴 하지만 그게 공식 문서에 쓰인 걸 본 건 처음이었기 때문이었다. 바로 에서 ‘도찐개찐’을 찾아보니 아니나 다를까, 그건 표제어에 오르지 않은 낱말이다. 의 ‘한글맞춤법 검사기’에 넣으니 대치어로 ‘오십보백보’를 들며 아래 도움말을 붙이고 있다. “여기서 쓴 ‘긴’은 ‘윷놀이에서, 자기 말로 남의 말을 쫓아 잡을 수 있는 거리’를 뜻합니다. ‘진’과 ‘찐’은 사투리입니다. 결국 ‘도’나 ‘개’가 그게 그거라는 뜻으로 현재 주로 ‘오십보백보’를 씁니다. 맹자가 한 ‘오십보백보’보다는 순우리말이어서 좋긴 하지만, 아직 널리 쓰지 .. 2020. 1. 1.
이제 ‘허접하다’도 ‘개기다’도 쓸 수 있다 국어원, ‘2014년 표준어 추가 사정안’ 발표 문화체육관광부 국립국어원(원장 민현식)은 국민이 실생활에서 많이 사용하고 있으나 그동안 표준어로 인정되지 않았던 ‘삐지다, 놀잇감, 속앓이, 딴지’ 등 13항목의 어휘를 표준어로 인정한다는 내용의 ‘2014년 표준어 추가 사정안’을 발표했다. 발간(1999) 이후 언어생활에 쓰이면서도 표준어로 인정되지 않은 낱말들을 검토해 온 국어원이 2011년 8월, ‘짜장면, 맨날, 눈꼬리’ 등 39항목을 표준어로 추가[관련 기사 : 이제, ‘짜장면은 짜장면이다’]한 지 세 해 만에 다시 표준어를 더한 것이다. 어문 규범과 언중들의 언어생활이 반드시 일치하는 것은 아니다. 따라서 언중들이 쓰는 낱말 가운데에 는 규범 바깥에 있는 말이 꽤 된다. 이번에 추가된 표준어는 .. 2019. 12. 16.
‘베품’이 아니라 ‘베풂’이다 어간이 ‘ㄹ’로 끝나는 용언의 명사형은 반드시 ‘ㄻ’으로 써야 한다 학교 테니스장 철망에 펼침막 하나가 걸렸다. “베품, 나눔, 보살핌이 있는 아름다운 우리 학교”다. 학교 폭력 예방 관련 펼침막인데, 관제(官製) 물건치고는 쓰인 글귀가 썩 훌륭하다. 그러나 옥에는 늘 티가 있다. 첫 단어는 잘못 쓰였다. ‘베품’이 아니라 ‘베풂’이라야 한다. 우리말에 ‘명사형’이라는 게 있다. 동사나 형용사를 명사처럼 쓰기 위해 어간에다 일정한 어미를 붙인 형태다. 이 명사형은 품사가 바뀌지 않으면서 임시로 명사 노릇을 하는 낱말이다. 이처럼 용언을 명사형으로 바꾸어 주는 어미를 ‘명사형 어미’라고 하는데 이 명사형 어미로 ‘-(으)ᅟᅠᆷ, -기’가 있다. 다음은 명사형 어미가 붙어서 만들어진 명사형의 예다. ⑴ 시민.. 2019. 11. 10.
금도(襟度), 넘어서는 안 되는 선? ‘금도(襟度)’는 “다른 사람을 포용할 만한 도량”의 뜻 “선을 넘었다”고 하든지 ‘금도(禁度)’라는 새말을 만들어 쓰자 이 글은 2014년 9월, 박근혜 대통령이 국무회의를 통해 국회의원의 세비 반납 등 국회를 작심 비판한 것에 대해 “금도를 넘었다”고 규정하고 강력히 반발하고 나섰을 때 썼다. ‘금도(襟度)’는 ‘행동의 경계’가 아니라 ‘다른 사람을 포용할 만한 도량’이라는 의미다. 그래서 이 ‘금도’란 낱말이 ‘행동의 경계’ 내지는 ‘넘어서는 안 되는 선’ 따위의 뜻으로 잘못 쓰이고 있음을 지적한 것이다. 곁들여 비슷한 사례라고 할 수 있는 ‘옥석구분(玉石俱焚)’이나 ‘면장(面墻)’의 본 의미도 환기하였다. 그리고 5년. 그러나 상황은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 최근 자유한국당은 “벌거벗은 임금님”이라.. 2019. 10. 30.
‘자기소개’의 두 가지 방식, 혹은 태도 자기를 소개하는 방식 두 가지와 태도 # 1. 가끔 듣는 지역 기독교 방송(CBS)에서는 지역 유명 인사들이 실명으로 의견을 제시하는 형식의 프로그램이 있다. 이들은 서두에 자신을 소개한 다음 의견을 밝히는데, 그 자기소개의 방식이 다소 부담스럽다. “○○대학교 ○○○ 총장입니다.” # 2. 몇 해 전, 한국방송(KBS)의 ‘○○○ PD의 소비자 고발’이라는 프로그램에서 본 장면이다. 이 프로그램의 간판 진행자는 한동안은 ‘○○○ PD’로 자신을 소개하더니 어느 날부터는 ‘피디 ○○○’으로 바꾸어 말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말하는 것이 바르다는 시청자의 지적에 따랐다면서. 보통 우리는 직위를 먼저 대고 이름을 말하는 방식으로 자신을 드러낸다. 그런데 앞의 예에서는 이름 뒤에 자신의 직위를 붙였다. 단지 .. 2019. 10. 20.
‘잊혀진 계절’은 없다 ‘잊혀진 계절’은 가수 이용의 히트곡이다. 1984년께 내 초임 시절에 대단한 인기를 끌었던 노래였다. ‘시월의 마지막 밤’과 그 이별을 노래한 노랫말은 다분히 신파조였다. 그러나 전체 분위기에 힘입어 이 노래는 제법 쓸쓸한 정서를 자아내면서 팬들의 사랑을 받았던 것 같다. 노래야 공전의 히트를 기록했지만, 사실 제목에서 ‘잊혀진’은 어법에 어긋난다. ‘잊힌’이라 써야 할 데에 ‘잊혀진’이라 쓰는 경향은 문학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프랑스 여류화가였던 마리 로랑생의 시 ‘갑갑한 여자보다……’의 번역에도 “죽은 여자보다도 / 한층 더 가엾은 것은 / 잊혀진 여자이어요.”라며 같은 표현이 쓰였으니 말이다. ‘잊혀진’이 어법에 어긋나는 까닭은 그게 이중의 ‘피동 표현’이기 때문이다. ‘피동’이란 주어가 다른 주.. 2019. 10. 19.
[한글 이야기] ‘불여튼튼’에서 ‘빼박캔트’까지 언어의 이종교배(한자, 영어와 결합한 한글) 한 민족이나 국가 단위의 고유 언어가 오랜 역사를 통하여 그 혈통의 순수성(?)을 유지하는 건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교통과 통신 사정이 오늘날과는 비교할 수조차 없는 전근대에도 이민족의 언어가 유입되면서 이런저런 언어적 변화가 이어졌으니 말이다. 그 변화의 으뜸은 외국어에서 빌려와 마치 우리말처럼 쓰는 외래어 가운데서 오랜 세월이 지나 자연스럽게 우리말이 된 낱말인 ‘귀화어(歸化語)’다. ‘붓, 먹’(중국), ‘부처’(인도), ‘보라매, 송골매, 수라’(몽골), ‘냄비, 구두, 가마니’(일본), ‘담배, 빵’(포르투갈), ‘가방’(네덜란드) 등 외래어라는 생각이 들지 않을 만큼 익숙해진 낱말이 바로 귀화어다. 본래 ‘새말[신어(新語), 신조어(新造語)]’은 .. 2019. 10. 14.
[한글 이야기] ‘슬림(slim)하고 샴푸(shampoo)하다’? 한글과 영어의 ‘이종교배’ 십여 년 전 일이다. 휴대전화를 새로 바꾸었는데 이 물건이 좀 얇고 날씬한 놈이었다. 이를 본 젊은 여교사가 탄성을 질렀다. “야, 슬림(slim)하다!” 언젠가 미용실에서 머리를 깎았는데 이발을 끝낸 미용사가 내게 정중하게 물었다. “샴푸(shampoo)하실래요?” 나는 접미사 ‘-하다’를 영어와 그렇게 붙여 써도 된다는 걸 그때 처음 알게 된 느낌이었다. 우리말 ‘조어법(造語法)’(새로운 단어를 만드는 법)의 큰 줄기는 파생법과 합성법이다. 단어를 형성할 때 실질적인 의미를 나타내는 중심 부분을 ‘어근(語根)’이라 하는데 이 어근에다 접사(어근에 붙어 그 뜻을 제한하는 주변 부분)를 붙여서 만드는 게 파생어니, 파생법은 이 파생어를 만드는 방법이다. 어근에다 새로운 어근을 .. 2019. 10. 13.
[한글 이야기] ‘심심파적’과 ‘불여튼튼’ ‘순우리말 어근’에 ‘한자어’가 붙어서 만들어진 말 얼마 전 의 서평 기사에 ‘심심파적’이란 낱말을 썼다. 송고할 때는 분명 그렇게 썼는데, 편집하면서 실수로 빠졌는가, 기사에는 ‘심심파’로 나왔다. 수정해 달라고 요청하려다가 말았다. 아는 사람은 바르게 고쳐서 읽겠지 하고서. ‘심심파적’에서 ‘심심-’은 형용사 ‘심심하다’의 어근(語根)이다. ‘-파적(破寂)’은 말 그대로 ‘고요를 깨뜨림’이란 뜻이니 이는 곧 ‘심심풀이’란 뜻으로 쓰이는 말이다. 순우리말 어근에다 한자어가 붙어서 만들어진 말인 셈이다. 언제쯤 이 말이 쓰이기 시작했는지는 알 수 없다. 표준국어대사전의 용례에도 김원우의 소설(1986)과 이희승의 회고록(1996)을 인용하고 있으니 그리 오래되지는 않은 듯하다. 기본적으로 ‘새말[신어(新.. 2019. 10. 13.
[한글 이야기] 언어 민주화 - ‘당 열차’에서 ‘우리 열차’로 기차 내 안내 방송도 ‘당 열차’에서 ‘우리 열차’로 바뀌었다 2010년에 블로그에 ‘권위의 언어, 평등의 언어’라는 글을 썼다. 우리의 일상 언어 속에 깃들어 있을 수 있는 ‘권위와 평등’의 문제를 돌아본 글이었다. 나는 교사들이 자신을 ‘선생님’이라고 지칭하는 이야기에서부터 시작하여 권위주의 시대의 권력자들이 쓰던 말도 되돌아보았다. [관련 글 : 권위의 언어, 평등의 언어] 박정희는 꼬장꼬장한 목소리로 ‘나’를 썼고, 전두환은 좀 느끼하면서 거만한 목소리를 ‘본인’이라고 말했다. 뒤이어 노태우는 ‘이 사람’이라는 독특한 지칭을 썼다. 그러나 지금은 대통령은 물론, 국회의원이든 누구든 자신을 그런 방식으로 말하는 사람은 없다. 말하자면 시대의 진전이겠는데, 대중 앞에 자신을 ‘저’로 낮추는 것은 유권.. 2019. 10. 12.
[한글 이야기] 젺어 보기, ‘고장 말’의 정겨움 ‘겪다’를 ‘젺다’로 쓰는 경상도 말 경상도에서 나고 자라서 군대 생활 빼고는 지역을 떠난 적이 없다. 당연히 경상도 고장 말에 인이 박였다. 그러나 아이들에게 국어를 가르쳐야 한다. 당연히 수업 때 쓰는 ‘말’을 의식하지 않을 도리가 없다. 초임 시절엔 딴에는 표준말을 쓴다고 적지 않은 노력을 기울였다. 억양이야 타고난 지역의 그것을 버리기 어렵지만, 일단 어휘는 공인된 표준말을 썼다. 자주 ‘ㅓ’와 ‘ㅡ’를 잘 구분하지 못하는 편이긴 하지만. 그래서 뜻한 바는 얼마간 이루었다. 강원도에서 전학 온 아이가 다른 교사들의 수업은 잘 알아듣지를 못하지만 내 수업은 힘들이지 않고 들을 수 있었다고 했으니. 표준말 정책이 고장 말을 열등한 존재로 밀어냈다 경력이 늘고, 나이가 들면서 수업 언어로 굳이 ‘표준말.. 2019. 10. 11.
[한글 이야기] ‘연쇄점’에서 ‘하나로 마트’까지 영자의 국어 침탈사, 또는 민중들의 조어법 여름방학이 끝날 무렵, 성주의 포천계곡을 다녀오던 길이었다. 좁고 구불구불한 지방도로를 타고 오는데 언뜻 연변의 건물에 붙은 간판이 눈에 들어왔다. ‘농협 연쇄점’. 길가의 허술해 뵈는 나지막한 슬래브 건물에 걸린 낡고 오래된 간판과 그게 담긴 풍경은 좀 비현실적인 느낌이었다. ‘연쇄점’에서 ‘하나로 마트’까지 문학 수업 시간에 ‘철쇄(鐵鎖, 쇠사슬)’를 가르치고 난 뒤, 아이들에게 ‘연쇄점(連鎖店)’을 물었더니 대부분 요령부득의 표정인데 의성에서 유학 온 아이 하나가 대답한다. “본 적 있어요.” “무슨 뜻일까?” “‘체인점’요.” “정답!” 아이들 사이에서 탄성이 터져 나왔다. 시골아이들은 ‘촌스러운 경험’에다 도회의 그것을 더하니 훨씬 경험의 폭이 크다. .. 2019. 10.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