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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사전적 정의’, ‘이성애’로 돌아가다

by 낮달2018 2020. 4.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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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전에서는 ‘사랑’을 어떻게 정의하는가

▲ '사랑'의 사전적 정의는 1년 만에 결국 '남녀'를 언급함으로써 이성애로 되돌아갔다.

국어사전은 모국어 사용의 준거로서 기능한다. 국어와 관련한 시비는 ‘사전 찾아보기’로 해결의 실마리를 찾곤 하는 것은 그 때문이다. 또 사전은 일정한 기간마다 사라지는 말, 뜻이 바뀌는 말과 함께 새말의 탄생 따위를 반영한다.

 

국어사전을 편찬하는 일을 관련 한글 단체와 출판사 등 민간에만 맡기지 않고 정부가 직접 담당하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우리나라에서는 국립국어원이 편찬한 <표준국어대사전>이 모든 언어생활의 준거로 널리 이용된다.

 

국립국어원, 기독교계 요구에 밀려 재개정

 

최근 <표준국어대사전>에 실린, 지난 2012년에 바꾼 ‘사랑’에 관한 정의가 이성애를 기준으로 삼은 과거로 되돌아갔다고 한다. 언어 사용에서 차별을 없애고 소수자 인권을 보호하려 한 뜻풀이가 동성애를 조장한다며 재수정하라는 기독교 단체 등의 요구에 밀린 것이다.

 

국립국어원은 2012년 대학생 5명이 국민신문고를 통해 ‘사랑의 정의를 바꾸자’는 제안을 받아들여 사랑을 비롯해 연애·애정·연인·애인 등 다섯 단어의 뜻을 성 중립적으로 바꾸었다. “이성애 중심적인 언어가 성 소수자 차별을 낳는다”라는 주장을 받아들인 것이다.

 

‘사랑’은 ‘어떤 상대의 매력에 끌려 열렬히 그리워하거나 좋아하는 마음’, ‘연애’는 ‘연인 관계인 두 사람이 서로 그리워하고 사랑함’, ‘애정’은 ‘애인을 간절히 그리워하는 마음’, ‘연인’은 ‘서로 열렬히 사랑하는 관계에 있는 두 사람. 또는 몹시 그리며 사랑하는 사람’, ‘애인’은 ‘서로 열렬히 사랑하는 사람’으로 각각 뜻풀이가 바뀌었다.

▲ <표준국어대사전>은 사랑, 애정, 연애 등 단어의 행위 주체를 남녀로 되돌렸다.

이들 단어에 드러난 변화의 핵심은 행위 주체를 전통적 성구분인 ‘남녀’로 명시하지 않고 동성애자 등 성 소수자까지 포괄할 여지를 두었다는 점이었다. 그러나 이에 대한 기독교계 등 일부에서의 항의와 개정 반대 캠페인은 집요했다. 기독교계에서는 이러다 ‘결혼에서도 남녀를 뺄 거냐’며 국어원에 전화, 메일, 팩스 보내기 운동을 펼친 것이다.

 

결국, 국어원은 이들 단어에 대한 내부 재검토를 거쳐 지난 1월 ‘사랑’, ‘연애’, ‘애정’ 등 3개 단어의 행위 주체를 ‘남녀’로 되돌렸다. 불과 1년여 만에 동성애를 포괄하던 ‘사랑’의 정의는 ‘이성애’로 꼼짝없이 되돌아간 것이다. 국어원이 보여준 적지 않은 결기는 그러나, 기독교계의 여론 앞에 무장해제된 셈이다.

 

국어원은 이 원상회복 조치에 대해 “수정된 단어 뜻풀이가 사랑의 본질적이고 전형적인 뜻이 반영되지 않았다는 지적이 제기되어 표준국어대사전 정보 보완 심의를 통해서 사랑과 관련된 단어들의 뜻풀이를 언어학적이고 사전학적인 관점에서 다시 한번 재점검하게 되었다”라며, “사랑이라고 하면 떠오르는 그런 전형적인 쓰임이 사전에 나타나지 않기 때문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을 수용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다름’을 받아들이는 사회로의 한 발자국을 되돌리다

 

여기서 ‘전형적인 쓰임’이란 물론 이성애를 이르는 것이다. 결국 정상인 이성애에 대해 성 소수자의 사랑은 비정상이라는 사회적 통념, 넘어야 할 사회적 편견을 드러낸 것이다. 이 조치에 대해 성 소수자 차별반대 무지개행동이 “‘다름’을 받아들일 수 있는 사회가 되도록 내디뎠던 한 발자국을 되돌려버렸다”라며 재수정을 규탄하고, 국제앰네스티 대학생 네트워크가 “다양한 사랑의 형태를 포괄하지 못하는 언어는 그 자체로 인간에 대한 차별이자 폭력”이라고 비판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이에 대한 누리꾼들의 비판도 뜨겁게 이어지고 있다. 국립국어원 누리집 ‘나도 한마디’ 난에는 국어원의 조치에 대한 찬반 의견이 엇갈린다. 누리꾼들은 “기독교의 기본 정신은 과부와 고아 같은 소수자와 어려운 사람들을 포용하고 사랑하는 것”이라며 “예수님의 사랑이 이렇게 좁은 거였나”라며 실망을 토로하고 있다.(<한겨레> 기사 참조) 

 

우리 사회에서 기독교계는 불교계 못지않은 사회적 영향력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사랑의 종교로 널리 알려진 기독교계가 주도하는 사회적 의제 가운데서 퇴영적인 성격의 것들이 적지 않다. 시대적 변화나 진보적 의제에 오불관언인 이들의 독선적 세계 인식이 대중으로부터 외면받는 이유다.

 

기독교계의 항의와 재개정 캠페인에 투항해 버린 국어원에 대한 실망도 크다. 국어원은 여론의 추이나 특정 종교의 압력에 백기를 들기보다는 ‘언어에 대한 차별과 소외가 없는 다원적 언어정책 수립’이라는 국어원 윤리 헌장에 비추어 이번 조치가 합당한 것인지를 스스로 물어보아야 한다.

 

국어원의 ‘사랑의 정의’ 재개정에 대해 청년 녹색당은 논평을 통해 ‘사전에 없다고 해서 사랑하는 마음이 사라지지 않는다’라며 ‘동성애를 옹호하고 그들의 사랑을 축복해달라는 것이 아니다. 그저 그들이 마음껏 사랑하도록 내버려 두시라’라고 요구하고 있다.

 

국어사전에 성 소수자의 사랑을 포함하지 않는다고 해서 그들이 서로 사랑하는 마음은 사라지지 않는다. 사랑은 말로 정의되는 성격의 것이 아니다. 다만 국어사전의 정의가 소수자를 차별하는 쪽으로 규정되어서는 안 된다.

 

동성애를 혐오하는 기독교계와 그들의 압력에 굴복하는 국립국어원에 더 이상의 차별을 멈출 것을 요구한다. 동성애를 옹호하고 그들의 사랑을 축복해달라는 것이 아니다. 그저 그들이 마음껏 사랑하도록 내버려 두시라.

 

 

2014. 4. 2. 낮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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