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이 바람과 먼지의 세상, 그 길 위에 서서

이 풍진 세상에 /가겨 찻집 202

‘주야장천(晝夜長川)’에서 ‘주구장창’까지 사자성어 ‘주야장천(晝夜長川)’은 어떻게 ‘주구장창’이 되었나 세계에서 인정하는 과학적이고 창의적인 ‘한글’이라는 문자 체계를 갖고 있다는 것과 우리 어휘체계에 한자어 비중이 높다는 것은 별개의 문제다. 이른바 동아시아의 공동 문어(文語)로서 한문의 지위는 굳건한 것이어서 15세기 중반의 훈민정음 창제도 그 지위를 흔들지 못했다. 여말선초에 들어온 성리학으로 무장한 사대부들은 한문을 중심으로 언어와 문자 생활을 영위했다. 대신 한글은 일종의 여기(餘技)로 시조나 가사 같은 노래를 표기하는 데 썼다. 한자는 조선조 5백 년 동안 주류문자의 지위를 온전히 누렸다. 그러나 역사의 진전 앞에 이 중국 문자도 결국 그 소임을 다할 수밖에 없었다. 온전히 한글문학이 시작된 것은 개화기 이후 근대문학이 시작되면서부터.. 2020. 8. 7.
‘조사’와 접미사 ‘-하다’는 붙여 쓰자 조사는 앞말에, 접미사 ‘-하다’는 어근에 붙여 써야 한다 “우리말은 정말 어렵다”라는 말을 자주 듣는다. 되돌려 주는 말은 늘 같다. “영어를 배우기 위해 들인 시간과 노력의 반의반만 들여 보라.” 그래도 대부분 머리를 갸웃하고 만다. 아무도 정작 그렇게까지 애쓰고 싶은 마음은 없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걸 모른다고 해서 의사소통이 안 되는 일 따위는 없으니까 말이다. 그러나 우리말이 어렵다는 데 내가 유일하게 동의하는 부분이 ‘띄어쓰기’다. 영어의 장점은 띄어쓰기에 대해 고민하지 않아도 된다는 점이 아닌가 싶다. 20년이 넘게 우리 말글을 가르쳐 왔어도 여전히 긴가민가 싶은 게 이쪽이다. 그러다 보니 자연 다른 사람들의 띄어쓰기에 대해 너그러워질 수밖에 없다. 어떠냐고 물으면 됐네, 그만하면 되겠다고.. 2020. 8. 7.
‘병’과 ‘빙’, 혹은 ‘빙모’와 ‘병모’ 경상도 사람들의 이중모음 발음 우리말에서 모음은 단모음이 10개(ㅏ, ㅐ, ㅓ, ㅔ, ㅗ, ㅚ, ㅜ, ㅟ, ㅡ, ㅣ), 이중(복)모음이 11(ㅑ, ㅒ, ㅕ, ㅖ, ㅛ, ㅠ, ㅘ, ㅙ, ㅝ, ㅞ, ㅢ)개로 모두 21개다. 단모음은 발음할 때 입술의 형태가 바뀌는 모음인 이중모음과 달리 발음할 때 입술의 형태가 바뀌지 않는 모음이다. 당연히 발음하는 데 드는 수고가 적으니 발음하기가 쉽다. ‘과자’를 [가(까)자], ‘경남’을 [갱남]으로 읽는 까닭 아이들이 ‘과자’를 ‘가자’, 또는 ‘까자’로 발음하는 것은 그게 발음하기 쉽기 때문이다. 어른들도 다르지 않다. 경남 사람들이 [경남]이라고 발음하는 대신 [갱남]이라고 발음하는 것은 이중모음 ‘ㅕ’보다는 단모음인 ‘ㅐ’가 발음하기 수월하기 때문이다. 요즘 미.. 2020. 8. 5.
‘마더(mother)하세요’, 혹은 ‘엄마 되세요’? 보건복지부의 캠페인 ‘마더(mother)하세요’, 과도한 한글 비틀기 · 우리 회사 마더를 소개합니다. · 자~ 임산부는 듣지 말고… 김 대리 오늘 또 지각이야? 엉?! · 회사에선 후배지만, 출산은 제가 선배잖아요? · 애들이 기다리는데 집에 안 갈 거야? · 육아휴직 1년 동안 잘 키웠네, 회사도 이렇게 잘 키워 줄 거지? · 아이구! 하나도 안 바쁘다니까~ 부인한테 집중해! · 고마운 마더들이 있기에 엄마가 될 수 있다는 용기를 얻었습니다. · 언제나 마음을 더해주는 당신, 당신이 마더입니다. 마더하세요! 오늘 아침 식탁에서 들은 라디오 방송 내용이다. ‘우리 회사 마더’, ‘고마운 마더들’, ‘당신이 마더입니다’ 등에 쓰인 ‘마더’가 무엇이라 느껴지는가? 글쎄 알파벳과 초급 영어 이상을 배운 사람.. 2020. 8. 3.
‘먹을 만하다’와 ‘주먹만 하다’, 어떻게 다르나 보조 형용사 ‘만하다’는 띄어 쓰고, 조사 ‘만’은 붙여 쓴다 (1) 사과가 모양은 그래도 먹을 만하다. (2) 화를 낼 만도 하다. (3) 아기가 주먹만 하다. 위의 세 문장에서는 모두 ‘-만 하다’라는 부분이 들어 있다. (1)과 (2)의 다른 점은 (1)은 ‘만하다’를 붙여 썼고, (2)는 ‘만’과 ‘하다’를 띄어 쓰고, ‘만’에 조사인 ‘도’가 붙은 것이다. (3)은 ‘만’이 앞말에 붙었고, ‘하다’는 띄어 썼다. 이들의 문법 명칭은 다음과 같다. (1) 사과가 모양은 그래도 먹을 만하다. ➜ 보조 형용사 (2) 화를 낼 만도 하다. ➜ 의존명사 (3) 아기가 주먹만 하다. ➜ 조사 1. 만하다 : 보조 형용사 (1)의 ‘만하다’는 보조 형용사다. 보조 형용사란 본용언 아래에서 그것을 돕는 구실을.. 2020. 7. 28.
‘모래사장’과 ‘선취 득점을 올리다’ 우리말의 ‘겹말’ 생각 프로야구 경기 중계를 시청하다 보면 진행자가 쓰는 말에 머리를 갸웃할 때가 더러 있다. 흔히 캐스터(caster)로 불리는 이들 전담 아나운서들은 시청자들에게 경기 진행 상황을 중계하면서 그 흐름과 관전 포인트를 짚어주는 등의 구실을 한다. 그런데 어느 한 팀이 먼저 점수를 낸 상황을 전하는 이들의 해설은 어느 채널이든 비슷하다. “○○이 ‘선취점’을 올립니다.” “○○이 ‘선취득점’을 하는군요.” “○○이 ‘선취득점’을 올립니다.” 겹말, 되는 말과 되지 않는 말 ‘선취점’은 “운동 경기 따위에서, 먼저 딴 점수”다.() 관용구로 ‘선취점을 올리다’가 주로 쓰인다. 그러나 ‘선취(先取)’의 ‘취’가 이미 ‘취하다(따다)’의 뜻이니 뒤에 쓴 ‘득(得, 얻음)’이든, ‘올림’이든 불.. 2020. 7. 26.
군불은 ‘때고’ 책은 ‘뗀다’ 방송에서조차 ‘때다’와 ‘떼다’를 혼동 인터넷 신문이나 텔레비전에 어법에 어긋난 낱말이 눈에 띄는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특히 워낙 유(類)가 많아서 그런지 온라인 신문의 경우에는 이런 현상이 비일비재하다. 그래도 아직은 굳건히 기본을 지키고 있는 곳은 종이신문이다. 아마 교열 부서라는 거름 장치가 작동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교열 부서를 당연히 갖추고 있는 텔레비전 방송에서 비슷한 실수를 되풀이하는 건 영 볼썽사납다. 온 국민이 들여다보고 있는 이른바 골든 타임에 방영하는 예능 프로그램에 등장하는 자막이 눈을 의심하게 할 땐 시청자인 내가 다 무안하다. 지난 주말 텔레비전에서 방영한 ‘진짜 사나이’를 잠깐 보다가 어법에 어긋나게 쓰인 자막 때문에 결국 채널을 돌리고 말았다. 어떻게 저런 실수.. 2020. 7. 24.
기지개는 ‘켜고’ 어깨는 ‘편다’ ‘켜는’ 것과 ‘펴는’ 것은 따로 있다 기지개는 ‘켜고’ 어깨는 ‘편다’ 어저께 어느 유수 일간지 기사에서 ‘기지개를 펴다’라고 쓴 표현을 보았다. ‘펴다’라고 쓰기도 하는가 싶어 검색했더니 그걸 제목으로 쓴 기사가 여럿 뜬다. 궁금했던 사람이 또 있었던 듯, 국어원과 몇몇 매체의 관련 기사는 똑 부러지게 ‘틀리다’고 하진 않고 “‘켜다’로 쓰는 게 적절하다”고 답하고 있다. 국어사전의 예문에 ‘기지개를 펴다’는 없다. 은 “(‘기지개’와 함께 쓰여) 팔다리나 네 다리를 쭉 뻗으며 몸을 펴다.”로 풀이하고 있다. 의미로만 보면 기지개를 펴지 못할 이유는 없지만 그게 어색하게 느껴지는 것은 이미 관용구로서 ‘기지개를 켜다’가 언중들의 언어 속에 깊숙이 들어와 있기 때문이다. ‘착용하다’의 뜻으로 쓰는 말은.. 2020. 7. 23.
‘뿐’과 ‘-ㄹ뿐더러’, 띄어쓰기는 어렵다? [가겨 찻집] 의존명사 ‘뿐’과 보조사 ‘뿐’, 그리고 어미 ‘-ㄹ뿐더러’ 어쩌다 텔레비전 한글 퀴즈 쇼 프로그램을 보면서도 갑자기 머릿속에 하얘지는 느낌을 받기도 하는 부분이 띄어쓰기다. 요즘 글을 쓰면서 ‘한글 2018’의 맞춤법 기능이 얼마나 기막힌 것인가를 실감하고 있다. 정말 생광스럽게 이 기능의 도움을 받고 있다. [관련 글 : 뒤늦게 아래 아 한글에서 맞춤법을 배우다] 띄어쓰기는 어렵다? 띄어쓰기가 어려운 이유는 같은 단어인데도 그 문법적 기능이 다른 경우가 적지 않아서다. 조사인지 접미사인지 구분하기도 쉽지 않고 의존명사와 어미의 구분도 모호할 때도 있다. 모든 단어를 띄우는 로마자가 부러워지는 대목이다. (1) 나는 다만 최선을 다할 뿐이다. (2) 모란이 지고 나면 그뿐 내 한 해는 다.. 2020. 7. 22.
‘사리(沙利/砂利)’가 ‘자갈’이라고? 법제처의 법률에 남은 일본식 용어 정비 법제처에서 법률에 남은 일본식 용어를 정비하기로 했다고 한다. ‘납골당’과 ‘엑기스’ 등 법률 36건, 대통령령 105건 등 모두 310건의 법령에 쓰이고 있는 일본식 용어 37개를 이해하기 쉬운 우리말로 바꾸겠다는 것이다. 늦었지만 환영할 만한 일이다. 법제처에서는 이 용어들을 부처 간 협의를 거쳐 내년에 수정할 계획이란다. 이르면 내년 후반기부터 이 37개 용어는 공식 법률에서 퇴출당할 것이다. 그러나 일상생활에서 이 말들이 사라지는 것은 아무래도 쉽지 않을 듯하다. 37개 낱말을 훑어보고 난 느낌은 좀 씁쓸하다. ‘납골당’이나 ‘엑기스’야 워낙 자주 쓰이는 말이니 익숙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따로 설명을 붙이지 않으면 해득하기 어려운 다음 낱말들은 어떤가. 법.. 2020. 7. 21.
한글날, 공휴일로 복원! 나라글자를 기리는 국경일, 22년 만에 공휴일로 복원 내년부터 한글날이 다시 국가공휴일이 된다. 행정안전부는 한글날을 공휴일로 지정하는 내용의 ‘관공서의 공휴일에 관한 규정 일부 개정령안’을 11월 8일부로 입법 예고했다. 처음 공휴일로 지정된 1949년 이래 한글날은 41년 동안 국경일의 지위를 누려왔지만 1991년에 ‘경제’에 발목이 잡힌다. 1990년 공휴일 제외 사유 “노동생산성 떨어진다” 당시 노태우 정부는 ‘쉬는 날이 많아서 노동생산성이 떨어진다’라는 이유로 한글날을 ‘국군의날’과 함께 공휴일에서 제외한 것이다. 이후 한글 관련 단체들의 끊임없는 공휴일 재지정 청원에도 불구하고 한글날은 복원되지 못했다. 2005년에는 한글날이 ‘기념일’에서 ‘국경일’로 격상된 게 고작이었다. 이번 ‘관공서의 .. 2020. 7. 20.
‘들어내다’는 돼도 ‘들어나다’는 없다 ‘드러나다/들어나다’, ‘드러내다/들어내다’ “속에 가려져 있거나 잘 보이지 않았다가 잘 보이게 되다.”, “감추어지거나 알려지지 않았다가 널리 밝혀지다.”(다음한국어사전)의 뜻인 ‘드러나다’를 ‘들어나다’로 쓰는 이가 적지 않다. ‘드러나다’의 사동사인 ‘드러내다’를 ‘들어내다’의 형식으로 쓰기도 한다. 댓글에서 맞춤법 오류를 지적하는 일이 없어서일까. 분철(끊어적기)의 문법 의식? 글쎄, 이유를 굳이 찾자면 이들은 ‘드러나다’를 제대로 쓴 글을 읽은 경험이 없어서가 아닐까 싶다. 듣기만 하고 써 보지 못한 낱말을 적으면서 엉뚱한 문법 감각이 오작동(?)한 결과로 말이다. ‘엉뚱한 문법 감각’? 학교 문법을 배우면서 익힌 ‘분철(分綴:끊어적기)’에 대한 기억이 환기되었을 수도 있겠다는 말이다. 발음 나.. 2020. 7. 14.